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170)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170화(170/326)
세화의 손길을 피하기 위해 세자는 결국 아픈 곳을 털어놓아야 했다.
“그게 실은 아까 말에서 떨어질 때 발목을 좀…….”
“발목……이요?”
세화는 거침없이 세자의 다리를 붙잡고 신발을 벗겼다.
“으앗?!”
“이건…… 아무래도 염좌(捻挫) 같습니다. 골절이 아니어야 할 텐데,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고…….”
제대로 만져서 확인하자니 세자가 죽을 거 같다. 비명 소리로 사람이 모인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다행히 침은 가지고 있지만 너무 어두운데.’
손으로 위치를 확인하자니 발목이 이미 부어 있고, 만질 때마다 세자가 움찔거리니 제대로 시침할 수 있을지 조금 불안했다.
세화는 일단 주변에 조금씩 떨어진 눈을 모아서 천으로 감싸 부어오른 발목에 얹었다.
“!”
“눈이 오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아니, 도움은…… 아니지 않나? 이대로 날이 추워지면…….”
“세자 저하께서 이리 따끈따끈하신데 제가 무슨 추위를 걱정하겠사옵니까.”
“아니. 일국의 세자를 난로 취급하다니…….”
세화는 잠시 고민했지만 망설이지는 않았다.
“저하.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응?”
그러곤 세자를 품에 안듯이 눕게 했다. 아무래도 바닥이 평평하지는 않다 보니 그동안 두 사람은 자세가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세화야 그럭저럭 괜찮지만 부상자인 세자의 상태가 악화된 건 이 영향도 있을 터였다. 어떻게든 세화와 떨어져 있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으니까.
“어? 어?”
“그리 불편하게 있지 마시고 발은 위로 올리시고 편히 기대십시오.”
“아, 응.”
“조금은 편하십니까.”
“그, 그래…….”
좀 더 일찍 알아챘어야 했는데 이런 상황에 당황해 세자를 제대로 챙기지 못한 자신의 탓이었다.
“송구합니다. 저하…….”
“무슨 소리인가. 자네가 있어서 내가 얼마나 도움받고 있는데.”
세자는 일부러 넉살 좋게 말했으나 세화의 목소리는 어두웠다.
‘아무도, 우릴 발견하지 못하면 어찌한다.’
세화 자신은 오히려 괜찮지만.
세자가 이렇게 열이 나는데 가지고 있는 약초도 변변치가 않았다.
그런 세화를 세자는 여전히 평온한 목소리로 달랬다.
열도 나는 주제에 목소리만은 여전히 담담했다.
“괜찮다. 걱정할 거 없으니…….”
“예? 어찌 그리 생각하시옵니까?”
“시아가 있지 않느냐.”
“수영 옹주 자가께서요?”
이건 무슨 말일까.
세자가 피식 웃는 것이 느껴졌다.
“그 아이가 어떤 아이인데. 분명, 우릴 찾아낼 것이다.”
“…….”
이럴 때 갑자기 동생 팔불출이라니. 어이없지만, 이런 믿음이 귀엽기도 하고 위안이 되기도 하고, 호기심이 일기도 했다.
“옹주 자가께서 어떤 분이신데요?”
“그 아이는…… 참으로 독한 아이지.”
“예?”
자랑하는 줄 알았더니 뜻밖의 말이었다.
“얼마나 독한지…… 독이 든 음식도……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삼킬, 그런 녀석이지.”
“…….”
이게 무슨 말일까.
“옹주 자가께서, 독을…… 드셨나요?”
옹주 자가가 독을 먹었다는 건 모르는 이가 없었다. 하지만 세화가 지금 묻고 있는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세자는 세화의 말이 들리는 것인지 들리지 않는 것인지 계속 말을 이어 갔다.
“그 아이는, 그날 피를 토하면서 내게 말했지. ‘기왕이면 성군 돼라’니. 그 어린아이 입에서 어찌 그런 말이, 나왔을까.”
“……저하.”
“내가 없으면, 그 아이는 또 무슨 짓을 할지 몰라. 그러니, 나는 꼭 살아야지. 살아서…….”
열에 들뜬 목소리에, 세자의 진심이 담겼다.
어쩌면 이것은 자신이 들어선 안 되는 이야기가 아닐까.
“내가…… 그 아이를 지켜야 해. 이제 없는 윤 숙의나…… 형님 대신.”
형님 대신이라.
어쩐지 그 말은 세자 스스로 되뇌는 말처럼 들렸다.
문득 세화는 세자가 아직도 혼인을 하지 않는 이유가 혹 성원 세자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든 순간, 입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제정신이었다면 절대 주제넘게 입 밖에 내지 못했을 말.
“세자 저하께서는, 어째서 아직도 혼인을 하지 않으시옵니까?”
“…….”
주제넘은, 건방진 질문.
하지만 지금의 세자라면 대답해 줄 것 같았다.
“나는 아직…… 세자 자격이 없을지도…….”
“예? 어째서 그런…….”
세화는 그동안 궁에서 의원으로 일하며 세자를 보아 왔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일지 몰라도. 세자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가끔 아끼는 누이동생의 치료 상황을 살피러 오는 그 짧은 시간 외에는 언제나 공부와 정무에 매달리는 사람.
궁인들에게도 함부로 대하는 일 없이 공정하고 반듯한 세자 저하.
주상 전하께서 벌써 대리 청정을 명하시어 국사를 돌보기 시작한 세자.
그런 사람이 자격이 없다면 누가 세자를 대신할 수 있단 말인가.
금상의 아들은 이제 세자 하나뿐인데.
“그건 어쩌면…… 어쩌면…….”
말을 하다 잠이 든 것인지 세자가 조용해진 사이 밖에서 바람 소리에 섞인 소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어두웠던 세상에서 횃불 하나가 하늘 위에 나타났다.
“!”
세화는 반사적으로 세자를 끌어안았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일지 아닐지 확인하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었다.
“거기, 혹시 사람 있습니까?”
“!”
아는 목소리였다.
“천호?”
“세화 의원님? 여기 계신 게 맞습니까?”
“마, 맞아요!! 저하도 여기 계세요!”
“네?!”
그러곤 얼마 후 다른 목소리도 들렸다.
“여기, 이걸 좀 치우고…….”
“앗, 조심하세요!”
천호는 혼자가 아닌 모양이었다. 다른…… 남자 목소리도 들렸다.
“앗, 앗, 으앗?”
그리고 그 사람은 안타깝게도 세자가 그러했듯 이곳으로 다가오다 그대로 미끄러져 아래로 떨어져 버렸다.
세화는 기겁해서 세자를 끌어안아 몸을 피했다.
“아야야…….”
“괜……찮으십니까?”
“괜찮습니다. 이거 원, 구하러 와서 도리어 떨어지다니……. 곧 밧줄을 내려 줄 테니 의원님부터.”
“아, 아뇨! 이분을 먼저 위로 끌어 올려 주세요. 다치셨어요!”
“예?”
사내는 세자를 부축해 이마를 짚어 보고는, 밧줄을 자신에게 묶고 세자를 부축해 밖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괜찮으십니까?”
“괜찮네. 의원님께 밧줄을 내려드리게.”
“예.”
구덩이 밖으로 나오자 횃불의 불빛 때문인지 몽롱한 상태의 세자가 힘겹게 눈을 깜빡였다.
“아…….”
그리고 희미하게 눈을 뜬 세자가 작게 중얼거렸다.
“형님……?”
천호는 구덩이를 살피다 아래로 미끄러진 사내를 보고 잠시 말을 잊었다.
‘아니, 저 사람은 왜 구덩이로 떨어져…….’
꽤 큰 구덩이라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다행히 안에 있는 사람들도 다치지 않은 모양이었다.
사람을 끌어 올리기 위해 일단 밧줄을 주변에 있는 단단해 보이는 나무에 묶고 있던 천호가 내심 한탄했다.
“안에 부상자가 있어서 안고 올라와야 할 것 같답니다.”
“네?”
다행히 쓸모가 있었지만.
‘세자 저하 목소리가 안 들렸던 게, 설마?’
“올라오시면 제가 받을 테니 저 대신 횃불 좀.”
“음. 그래.”
몇 번 마주치며 천호가 보기보다 힘이 장사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들은 무리하지 않고 세자를 천호에게 맡겼다.
떨어진 김에 부상자를 안고 올라오게 된 사내는 다행히 떨어질 때의 인상과는 달리 세자를 안정적으로 안고 올라왔다.
천호는 밧줄을 다른 이에게 맡기고 세자의 허리를 잡아 끌어냈다.
“읏차.”
좀 뜨끈뜨끈한 거 같은데 일단 무사히 숨을 쉬고 있는 세자를 보며 천호는 내심 안도했다.
“형님……?”
“?”
세자가 눈을 뜬 건지 뭐라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으나 곧 다가온 시끄러운 소리에 묻혀 버렸다.
“저하! 저하!!”
“아이고! 무사하십니까?”
세자를 발견하고 일단 얼싸안은 익위사 관원들에게 세자를 맡기고 천호는 다시 밧줄 상태를 확인했다.
옆에선 세자를 안고 올라온 사냥꾼 일행이 본인들도 긴장했는지 안도의 한숨을 쉬며 괜찮냐고 얘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사이가 좋네.’
“이제 의원님을 모시고 나와야 할 것 같으니 제가 다시 내려가지요.”
“잠시만요.”
천호는 잠시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을 전했다.
“이분이 다시 내려가서 의원님도 올려 주신답니다!”
“필요 없으니까 밧줄만 내려 줘요!”
“손 다쳐요! 의원이시잖아요!”
“…….”
세자를 안고 올라왔던 사내는 대화를 듣고 있다가 하하 웃으며 밧줄을 잡았다.
“말씀대로 귀하신 분을 치료하고 계시는 의원님이니 손은 소중히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번에는 조심해서 내려갈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내려가도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