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172)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172화(172/326)
“옹주 자가는 참…… 대단하세요.”
떠올리면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세화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당과 하나를 건네준 성지가 뜻밖의 말을 했다.
“맞아요. 세자 저하와 세화 의원을 찾아낸 것도 옹주 자가시라고 들었어요.”
“네?”
“예전에 근방에 호랑이 사냥이 있었다는 얘기를 어디서 들으셨는지 사냥꾼들에게 함정을 파 놓았던 곳을 확인하도록 하셨다고 하니까요. 덕분에 세자 저하와 세화도 찾았다고 들었어요.”
“정말…… 보통 분이 아니시군요.”
문득, 어제 세자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그 아이가 어떤 아이인데. 분명, 우릴 찾아낼 것이다.’
과연 남매라 그런가, 동생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말도 사실일까.’
“하지만 천호도 같이 찾아냈다고 들었어요. 대단하죠?”
“아. 그래서 같이 있었구나.”
어제 군관들과는 확연히 다른 사냥꾼 복장의 사람들과 천호가 함께 있던 것을 떠올린 세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는 정신이 없어 그런 걸 확인할 생각은 못 했다.
“저는 가서 옹주 자가와 세자궁 사람들에게도 세화 소식을 전해야겠군요. 세화는 좀 더 쉬어요.”
“아니, 이제 일어나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괜찮다고 하면 바로 어전으로 불려 가서 사정 청취해야 할지도 모르는데요.”
“아앗…….”
내의원에 들어온 지도 제법 시간이 지났지만 어전에 드는 것만은 썩 익숙하지 않았다.
그것도 진맥 목적이 아닌 사정 청취를 위해서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세화의 얼굴이 구겨지는 것을 본 성지가 킥킥 웃었다.
“걱정 마요. 어차피 지금 모습으로 어전에 못 들어갈 테니까. 아, 어제 세화가 입고 있던 옷은 내가 갈아입히고 적당히 닦아 주고 약도 바르긴 했어요. 알다시피 위생에는 다들 까다로워서.”
“아, 하하. 감사합니다.”
온몸이 난리인데 그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였다.
“아 그리고 세화 의원이 가지고 온 바랑에 들어 있던 약초들은 제가 잘 보관하고 있으니 염려 마세요.”
“아, 하지만…….”
“다른 사람이 못 건드리게 옹주 자가의 사람들이 교대로 지키고 있어요.”
“아…….”
그제야 세화는 안심한 듯 몸의 힘을 풀었다.
“그 상황에서도 약재들은 안 망가지게 들고 왔다고 다들 감동했어요.”
세화의 옷은 너덜너덜한데 가지고 있던 바랑과 안에 들어 있던 약초들은 무사하다는 게 어떤 의미겠는가.
“어쨌든 안심하고 좀 더 쉬어요. 밖에 세화의 안전을 위해 병사들까지 있으니까요.”
“……네?”
이게 대체 무슨 말인지?
어안이 벙벙한 상태의 세화를 남겨 두고 성지는 그대로 방을 나섰다.
따끈따끈한 방 안에서 멍하니 누워 있는데 밖에서 어린아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는 익숙한 옹주 자가의 목소리였다.
“세화는 어때?”
“깨어나서 밥과 약을 먹고 다시 쉬고 있습니다. 상태는 나쁘지 않으니 심려하지 않으셔도 될 듯합니다. 들어가 보시겠습니까?”
“쉬는데 내가 들어가면 불편하기만 하지. 됐어.”
“예.”
걱정이 담긴 목소리가 귀여워서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동시에 어제 세자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 아이는…… 참으로 독한 아이지.’
‘얼마나 독한지…… 독이 든 음식도……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삼킬, 그런 녀석이지.’
설마, 그럴 리가 있을까.
당시 옹주 자가의 연치가 겨우 6, 7세 정도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세자 저하가 그런 상황에서 굳이 거짓말을 할 것 같지는 않았다.
아직 노곤한 몸으로 세화는 눈을 감았다.
자신이 의식을 잃고 있는 동안 어지간한 상황은 다 정리된 듯하니 안도한 덕분이었다.
한동안 산은 쳐다보고 싶지도 않았다.
***
“지금 갔다 왔는데 세화도 눈을 떴대.”
“그래? 다행이구나.”
옹주가 전해 준 소식에 세자가 해맑게 웃자, 고사리손이 찰싹찰싹 응징을 가했다.
“웃음이 나와? 웃음이 나와?”
“아야야야, 아프다. 시아야…….”
붕대를 칭칭 감아 움직이지 못하게 올려놓은 건 왼발이었지만 말에서 뛰어내려 구르고, 구덩이에 빠지고 하느라 여기저기 멍투성이인 몸이었다.
아마 웃통을 벗으면 꽤 알록달록하지 않을까.
아픈 것도 사실이지만 동생 앞에서 과장되게 엄살을 부리던 세자는 시아의 매서운 목소리에 다시 침묵해야 했다.
“세자 저하면 세자 저하답게, 뒤에서 가만히 얌전히 있어야지. 위험하게 어딜 뛰어들어?”
“…….”
“익위사는 괜히 있는 줄 알아? 호위는 괜히 데리고 다녀?”
듣고 보면 다 맞는 말이라 세자는 반발하는 대신 그냥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러게. 내가 왜 그랬을까?”
“정신을 어디다 두고 다니는지. 어휴.”
“…….”
옹주의 말에 옆에 있던 이들도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돌렸다.
아무리 겉보기보다 정신 연령이 높다지만 무슨 애 말투가 저렇담……?
“미안하다.”
“미안해야지!”
조그만 아이가 언성을 높인다.
세상에 누가 일국의 세자에게 이리 언성을 높일 수 있겠냐마는, 어제 종일 걱정하게 만든 장본인은 지은 죄가 있어 꼼짝도 못 했다.
‘성원 세자 형님도 강무 때 그리되었는데 나까지 실종되었으니 시아가 많이 놀랐겠지.’
그 마음을 충분히 알기에 찍소리도 못하고 내내 이렇게 혼나는 중이었다.
“시아야. 오라버니가 다쳤는데 좀 상냥하게 대해 주면…….”
“안 되겠는데.”
“알았어…….”
아무래도 이 작은 동생은 쉽게 화를 풀어 주지 않을 모양이었다.
‘어제 내가 돌아왔을 때는 울면서 뛰어오더니.’
하지만 그걸 지적하는 순간 동생의 화가 더 길어지리라는 것은 자명했으므로 세자는 현명하게 입을 다물었다.
좀처럼 울지 않는 저 동생을 울린 자신이 죄인이었다.
게다가 자신을 찾아낸 이들도 결국 시아가 보낸 사람들이었으니 더 할 말이 없었다.
“송 내관이랑 문 상궁 말 잘 듣고 얌전히 쉬고 있어.”
“알았다. 알았어.”
어차피 발이 이래서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얌전히 있으라니.
흥흥거리며 나가 버리는 시아를 보며 세자가 흐뭇하게 웃고 있는데 병간호를 하는 송 내관과 문 상궁의 시선이 따갑다.
“……잘못했다니까.”
“소인들이 세자 저하께 무슨 말씀을 드리겠사옵니까.”
“그저 옹주 자가께서 소인들의 마음을 대변해 주시니 감읍할 따름이옵니다.”
하여간 궁궐 밥 먹은 인간들이란 돌려까기만 늘어서는.
옆에서 한숨만 푹푹 내쉬는데 바늘방석이 따로 없었다.
‘시아는 귀엽기라도 하지…….’
하지만 이런 말을 했다간 나중에 두 사람의 몫까지 시아가 매우 때릴 가능성이 높았으므로 세자는 입을 다물기로 했다. 어린아이면 뭐 해, 손이 그렇게 매운데.
“약을 달여 오겠사옵니다.”
“응.”
세자가 혼자 있고 싶어 하는 것을 눈치챈 듯 둘 다 조용히 방을 나섰다.
어차피 방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겠지만.
방 안에 혼자 남은 세자는 어제 있었던 일들을 되새겼다. 이번 일은 아바마마 앞에서 제대로 고해야 할 테니까.
‘아바마마께서도 많이…… 놀라셨겠구나.’
성원 세자의 일은 모두의 역린(逆鱗)이건만, 자신이 그 일을 다시 꺼낸 셈이었다.
‘암살이라. 누군가 나를 노리는 것일까.’
어린 시절 독살의 위협을 겪고, 내내 위협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살아왔는데 이런 일은 생각해 보지 못했다.
조선이 언제부터 이런 무법천지가 되었을까. 자신을 노릴 만한 인물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였다.
‘지금 내가 죽는다 해도 다음 왕위를 받을 거라 장담할 수 있는 이가 없는데. 정말 시아에게 들은 대로 노비제를 완화한 일로 재산의 손해를 본 이들이 나를 노렸을까.’
지금 자신이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일이었다. 세자는 한숨과 함께 어젯밤의 마지막 기억을 떠올렸다.
조금 부끄럽지만, 구덩이 안에서 세화에게 기대어 의식을 잃었던 것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 자신을 안고 구덩이 밖으로 데리고 나가 주었던 것도.
자신을 달래듯 ‘괜찮을 겁니다. 세자 저하.’ 하고 다독여 주던 익숙한 목소리.
‘형님……이 아니었나?’
열 때문에 흐려진 시야에 비쳤던 그 사람은 형님이 아니었을까.
시아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이전부터 형님의 죽음에 대해서는 약간의 의혹을 품고 있었다.
처음에는 물론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성원 세자 형님의 죽음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다.
그저 좋아하던 형님의 죽음이 슬펐고, 뒤이어 일어난 시아의 중독 사건으로 사람을 의심하게 되고, 세자의 자리를 물려받으며 일개 대군 시절과는 다른 교육을 받고 왕의 곁에서 실무를 보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그토록 아끼던 성원 세자의 무덤에 대해 의외로 무심한 부왕의 태도도 그러했고.
어느 사이엔가 세자의 측근들에게 배분된 세자의 사유 재산도 그러했다.
의문을 느끼며 사람을 시켜 이것저것 조사했다.
분명 호환을 당했다는 이유로 화장(火葬)한 세자의 유골함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그저 내 망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살아 계신다면 언젠가 돌아오지 않을까 했다.
하지만 정말 어제 만난 사람이 형님이라면…….
‘정말,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르겠구나.’
어쩌면 그저 목소리가 닮은 사람일지도 모르지만. 세자는 어쩐지 형님에게 인정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
“이번에 천호가 큰 공을 세웠다며.”
“공은요 무슨. 옹주 자가가 불러들인 사냥꾼들이 찾은걸요.”
“세자 저하 같이 모시고 왔잖아.”
나는 물론이고 주변에서 칭찬이 쏟아지는 것에 비해 천호 본인은 덤덤한 태도였다.
“저하께서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응.”
묘하게 평소보다 차분한 태도여서 조금 걱정스러웠지만 어디 다치거나 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도와준 사냥꾼들 말인데. 어제 그대로 사라져 버려서…… 혹시 뭐 아는 거 있어?”
“글쎄요. 당연히 상 받으러 나타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직까지 조용한 걸 보면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습니다.”
어제 의식을 잃은 세자와 세화를 안내하고 사냥꾼 두 사람은 그대로 조용히 사라졌다.
‘나도 정신이 없어서…….’
세자를 업고 내려온 건 익위사 관원이었고, 세화를 업고 온 건 천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