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173)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173화(173/326)
사냥꾼 두 사람은 길잡이를 하고 횃불을 들어 주고 있었으나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 때 어느새 자연스레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도망칠 정도로 뭘…… 잘못한 거라도 있는 걸까?”
“그럴지도 모르지요. 도망친 노비라든가. 쫓기는 죄인이라든가.”
천호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걸리는 모양이었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그럼 일단 찾아볼까? 여기는 그리 큰 마을도 아니니 수소문해 보면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도망가지 않을까요?”
“내가 옹주라는 건 모르지 않을…… 알까?”
내 말에 천호는 그저 침묵할 뿐이었다.
“확실하지는 않습니다만…….”
“?”
“예전에 옹주 자가께서 납치당했을 때 제가 말을 빌린 적이 있지 않습니까?”
“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말을 빌려줬다는 그 호…… 호인(好人)?”
“혜민서에 와서 말을 찾아갔다는 얘기는 들었지만요. 아무튼 그때 만난 사람들이랑 좀…… 닮았던 것 같아서요.”
“오?”
말하면서도 천호는 다소 자신 없는 목소리였다.
“다들 방한복을 두껍게 입고 얼굴도 반쯤 가리고 있었어서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만…….”
“음. 어느 쪽이든 찾아가서 인사라도 하면 좋지 않을까? 포상도 해야지.”
내가 아니라 부왕이 하겠지만.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몸을 일으키는데 가이가 나를 붙잡았다.
“옹주 자가. 어찌 옹주 자가께서 손수 움직이려 하십니까.”
“아니, 뭐 그렇게 큰 마을도 아니고. 방금 세화도 보고 왔는데.”
산 바로 아래 있는 작은 마을이다 보니 집이라고 해 봐야 고작 몇십 채는 될까 싶은 정도였다.
덕분에 가장 좋은 집인 촌장의 집에 세자와 그 측근들이, 그다음으로 좋은 집인 촌장의 친척 집은 세화가 반쯤 점령하고 있었다. 사람이 오죽 많아야지.
“눈도 내려서 길이 좋지 않습니다. 부디 보중하십시오.”
“음. 조심할게.”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슬금슬금 집 밖으로 나서며 천호에게 손짓을 했다.
‘어휴, 지금도 이런데 자라면 또 얼마나 옴짝달싹 못 하게 할지.’
“하하하. 제가 모시고 가면 괜찮지 않겠습니까.”
“옹주 자가께서 무모한 행동을 하실까 늘 걱정이지. 늘 갑자기 뛰쳐나가곤 하시니…….”
“그럼 제가 안아서 모시지요.”
“?”
그리고 천호는 그 말을 그대로 실천했다.
“아니, 진짜 들고 다니게?”
“옹주 자가가 넘어지시는 것보다는 낫겠지요.”
“나는 좀 뛰다 넘어진다고 큰일 나는 나이도 아닌데.”
“그런 말씀은 어르신들 앞에서 하시면 안 됩니다…….”
그건 나도 알아.
어제 일도 있고, 근래에 천호에 대한 신뢰도가 점점 높아진 덕분인지 나는 천호의 팔에 들린 채 몸도 마음도 편하게 마을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어제는 정신이 없었지만 이 시대의 시골 동네에 와 보는 건 처음이었다.
“흐음. 역시 한양이랑은 많이 다르네.”
“당연하죠. 한양은 서울이잖아요. 이런 궁벽한 시골 촌 동네와 비교할 수 없죠.”
“아니…… 그런 말 대놓고 하지 마…….”
나는 주변에 동네 사람들이 지나가지 않나 두리번거리며 천호를 말렸다.
“저도 촌 동네서 살았는데요 뭐. 여기 사냥꾼들이랑 비슷했을걸요?”
“그런가아…….”
아무래도 시골 동네다 보니 집도 대부분 낡았고, 위생적으로도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음…… 이런 곳까지 삶의 질 개선을 외치는 건 의미가 없나.’
물론 청결은 중요하지만.
비누는 비싸고, 이런 동네에서는 소득이 좋기도 힘들고, 사람에게는 원래 먹고사는 게 더 중요한 법이고.
원래 조용한 시골 동네였을 텐데 어제 일 때문인지 사람들이 여기저기 모여 수군대고 있었다.
그중에는 나를 보며 뭔가 얘기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무슨 얘기를 하고 있을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그래도 어젯밤에 세자를 무사히 찾아서 다행이지.’
사냥꾼들을 푼 보람이 있었다.
“아.”
“왜 그러십니까?”
“어제 고생한 사냥꾼들에게도 뭔가 줘야지. 음. 뭐가 좋을까. 역시 돈인가.”
“그……렇지 않겠습니까.”
“천호는 뭐가 좋아?”
“글쎄요…….”
얘는 말하는 것만 보면 돈 좋아할 거 같은데 은근히 또 관심이 없단 말이야.
나는 일단 촌장을 찾아가 어제 고생한 사냥꾼들에게 상을 내리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고, 촌장은 당연히 기뻐했다. 어제 고생한 사냥꾼들 중에는 촌장의 아들도 포함되어 있었으니까.
“참, 혹시 어제 공을 세운 사람이 누군지 아는가? 아무 말도 없이 그냥 가 버렸는데 혹시 촌장은 알고 있지 않을까 해서.”
“송구합니다. 소인의 아들놈이 아니라는 건 확실한데…… 자기가 공을 세웠다고 말하고 다닌 사람은 딱히 없었습니다.”
“음. 자랑할 법도 한데.”
자기 PR이 부족한 사람인가. 무려 세자를 구했으니 꽤 자랑할 만한 타이틀인데.
나는 혹시나 싶어 천호에게 물었다.
“저기 천호, 혹시 어제 그 사람들도 다쳤어?”
“아니요. 산길을 내려오는 데에도 전혀 무리가 없었고, 둘 다 아무 문제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
그럼 뭐 바쁜 일이라도 있나.
나는 잠시 머리를 굴렸지만 상상력이 빈곤해서인가 딱히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대신 촌장에게 다른 것을 묻기로 했다.
“참. 그거랑은 별개로 사람을 찾고 있는데.”
“예. 말씀하십시오.”
“여기 사냥꾼 중에 얼굴에 이렇게 커다란 흉터가 있는 사람이 있는가?”
내가 손으로 얼굴을 할퀴는 흉내를 내며 묻자 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누굴 말씀하시는지 알겠습니다.”
“다행이다. 그 사람은 어디에 사는지 혹시 아는가?”
“아, 조금 멀리 떨어진 곳이온데…… 어쩌면 그 집 사람들이 어제 공을 세운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마을까지 내려오지 않는 날도 많으니.”
“그래?”
“예에. 정확히는 여기 사는 사람은 아니고, 겨울쯤에 가끔 찾아와 그 댁 일을 도와주곤 하거든요.”
어제도 들은 이야기였다.
“그 댁 아들이 호환을 당해서…… 아, 그러고 보니 몇 년 전인가 저 산 너머 마을에서도 나라님이 그 강무(講武)인가 오셔서 사고가 났다는 소문을 들었었는데, 저희 마을에서도 비슷한 일이 생길 줄은 몰랐습니다.”
“!”
촌장의 말에 나는 움찔 놀라 천호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설마 성원 세자가…… 죽은 곳이 근처였어?’
내가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촌장은 천호에게 길을 설명했다.
“이쪽 길로 올라가서 왼쪽으로 꺾고, 거기서 감나무가 있는 집까지 직진해서…….”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이고. 뭐든 필요한 게 있으면 얼마든지 말씀하십시오.”
촌장이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내 머릿속은 복잡했다.
‘아마 나만 몰랐겠구나.’
부왕도 세자도 이곳에 성원 세자가 사고를 당한 곳과 그리 멀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나야 아무래도 지리에 대해서는 잘 아는 편이 아니고, 여기가 현대처럼 쉽게 지도를 볼 수 있는 곳이 아니니까.
‘괜히 약초를 찾겠다고 했나.’
다들 오고 싶지 않았을 텐데.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오르는 곳에 오고 싶지 않았을 텐데.
게다가 아무리 소탕했어도 또 호랑이라도 새로 자리 잡았으면 어쩌려고.
나는 괜히 천호에게 매달려 어깨에 머리를 박았다.
“옹주 자가?”
“……암것도 아냐. 조금 피곤해서.”
내 말에 작게 한숨을 쉰 천호가 내 등을 토닥이며 나를 달랬다.
“괜찮을 겁니다. 제가 지켜 드린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뭘…….”
“호랑이든 뭐든 나오면 제가 잡아 드릴게요.”
“…….”
뭔가 말도 안 되는데 위안이 되는 거 같은 이 기분은 뭔지.
나는 입술을 삐죽이며 손을 뻗어 천호의 볼따구니를 주물럭거렸다.
역시 어린애라 피부 탄력이 좋았다.
하긴 세자의 얼굴과 비교하면 아무래도 세월이 차이가 있지.
“필요 없거든.”
“하하하하.”
뭐가 재밌는지 천호는 큰 소리로 웃었다.
그런 천호의 태도에 나도 맥이 풀려서 그냥 천호의 어깨에 힘없이 기댔다.
그래도 내심 안도 되는 게 묘하게 기분 나쁜 거 같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어제 산속을 돌아다니느라 힘들었을 텐데 이렇게 돌아다녀도 괜찮아?”
“아니, 이 정도면 일하는 것도 아니고 산책인데요. 한양에 있을 때도 제가 돌아다니던 거리를 생각하면 이 정도 걷는 거야 뭐 아무것도 아니죠.”
그냥 걷는 게 아니라 나를 안아 들고 걷고 있는데?
“몸을 안 움직이면 굳는다고요. 이렇게 길이 안 좋으면 적아를 타는 것도 별로네요.”
쌓였던 눈이 반쯤 녹아 바닥이 반은 미끄럽고 반은 질척거렸다.
‘길이 안 좋긴 하군.’
근데 나를 안고 걷는 게 더 위험하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아바마마께서 천호한테 상을 내리실지도 모르겠네.”
“아…… 너무 과한 건 좀 부담스러운데요. 저는 그냥 옹주 자가 옆에서 떡고물이나 먹고 싶은데.”
“포부가 너무 소박한 거 아냐?”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을까요?”
“음. 그런가.”
하긴 현대에서도 다들 대단한 삶이 추구하기보다는 안정적인 생활을 원하지.
그리고 안정적인 생활을 하면서 가벼운 사치를 하고 싶어 하고.
맛있는 음식이든, 놀이 기구든, 문화 공연이든.
인간은 밥만 먹고 살 수 없는 생물이니까. 엔터는 꽤 중요해. 사람이 노래도 이야기도 없이 살 수 없다고.
천호와 잡담을 하다 보니 어느새 촌장이 가르쳐 준 집에 도착했다.
아쉽지만 역시 천호가 나를 들고 가는데 내가 걷는 것보다는 빠른 것 같았다.
“저어, 누구신지요.”
집에는 웬 아주머니 한 분이 있었다. 사냥꾼들을 찾으러 왔다니까 아주머니는 이쪽이 미안할 정도로 벌벌 떨기 시작했다.
“우리 아들은 왜…… 무슨 잘못이라도 했습니까?”
“아니, 그런 거 아니고…….”
양반 너무 무서워하시네.
내가 좋은 옷 입고 사람 좀 달고 다니니 양갓집 딸이라는 사실은 숨길 수가 없고.
“혹시 이 동네에서 누가 행패라도 부리고 다니나?”
“뭐…… 그런 경우도 비교적 흔하니까요. 여긴 양반은 안 사는 것 같지만요.”
“진짜?”
그래도 내가 어린아이고 천호는 양반으로 보이지 않은 덕분인지 비교적 평온한 대화가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