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179)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179화(179/326)
‘고작 어린 옹주에게 앙심을 품어 이런 일까지 했다는 말을 어찌 믿겠느냐!’
‘저, 저는 그저 약초만 조금 빼돌리려고 했을 뿐이옵니다! 전하!’
‘영천군의 주변을 더욱 샅샅이 조사하라!’
‘예!’
덕분에 불똥이 튄 것은 평소 영천군과 교류하던 이들과 가까운 친지들이었다.
‘아니옵니다! 저희가 한때 영천군과 가까이 지내기는 하였으나 거리를 둔 지 좀 되었습니다!’
‘예! 수영 옹주 자가의 험담을 하는 것을 보고 일찌감치 거리를 두었사옵니다! 오, 옹주 자가께서도 아실 것이옵니다!’
‘뭐, 뭐??’
재빠른 손절 정도가 아니라 옹주 자가에게 고자질까지 했다는 친지들의 말에 영천군의 눈이 배신감으로 번뜩였다.
‘아니옵니다. 전하! 소신이 역적이라면 저놈들도 한패이옵니다!’
‘미쳤는가, 영천군!’
‘누굴 끌고 들어가려고! 나는 누구와는 달리 옹주 자가께 위해를 가하려는 생각 따위 해 본 적도 없네!’
난장판이었다.
영천군과 실제로 가까이 지내며 옹주를 흉보았던 이들의 사정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불만을 토하시기에 그저 조금 말을 맞춰 드린 것뿐이옵니다.’
‘술에 취하신 분이 하시는 말씀에 어찌 일일이 대거리를 하겠사옵니까!’
중요한 건 정작 세자를 해하려는 자들에 대해서 입을 여는 자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전하! 영천군이 역심을 품었음이 분명하옵니다!’
‘아니옵니다, 전하! 영천군이 종친이라고는 하나 언사가 졸렬하고 경박한 자라는 사실은 저자의 어린아이들도 모두 아는 사실이옵니다. 그런 자가 어찌 이런 치밀한 일을 꾸밀 수 있었겠사옵니까!’
‘영천군이 누군가에게 이용당했다면 정작 가장 중요한 역적의 수괴는 잡지 못하고 억울한 사람만 만드는 일이 될 것이옵니다!’
‘옹주 자가를 해하려 한 일은 사실이온데 억울하다니요!’
이번 일에 대해 대신들 역시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으나 신중한 입장인 이들도 많았으므로 저마다 갑론을박하며 다툴 뿐이었다.
문제는 강무를 함께한 무관들 중에 그들의 끄나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덕분에 강무에 동원되었던 이들이 신분을 다시 확인받고 당시 일에 대해 다시 확인을 받는 등 고난을 겪어야 했다.
결론은 외부인의 침입이 아닌가 하는 쪽으로 기울었지만 그건 곧 병사들의 무능을 증명하는 일이었으므로……. 궁궐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울려 퍼졌다고 한다.
그리고 결국 영천군은 봉작(封爵)과 재산을 모두 빼앗기고 죄인의 몸으로 유배당하게 되었다.
일단 옹주를 해하려 했다는 의혹은 분명했으므로 역모죄 이전에 유배행은 확정된 상태였다.
덕분에 억울해할 필요는 없었다.
다만 이제 언제라도 사약을 받을 수 있는 몸이라는 사실과 지금까지의 삶을 살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이 영천군을 절망하게 했다.
혐의가 혐의였으므로 처자와 함께하지도 못했다.
영천군의 친형인 화천군은 본인의 처신과 아들인 무영군이 사건 당시 세자를 찾으며 헌신했다는 사실 덕분에 화는 모면할 수 있었다.
게다가 옹주 처소의 궁인들도 화천군의 여식인 송안이 옹주를 찾아와 영천군이 옹주를 음해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사죄하고 갔다는 증언을 해 주기도 했다.
화천군과 영천군은 친동기간이었으므로 당연히 의혹의 목소리가 높았으나, 일단 끌려오자마자 동생을 제대로 단속하지 못한 자신의 죄가 크다며 죄를 청하는 화천군에게 사람들은 그리 모진 반응을 보이지 못했다.
수상쩍다고 하면 더없이 수상쩍겠지만.
영천군이 자신이 아닌 형을 위해 목숨을 걸고 역모를 저지를 만한 인물인가?
자신뿐만 아니라 온 가족의 목숨을 걸어야 할 일을.
자신도 아니고, 자식도 아니고, 형을 위해서?
영천군을 아는 모든 이들 중에 이 의문에 대해서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평소에도 형의 말을 잘 듣지 않는 말썽꾼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다들 잘 알고 있었다.
덕분에 화천군은 화를 면할 수 있었지만, 동생을 제대로 단속하지 못한 죄가 깊다며 봉작을 거두어 줄 것을 청하였다.
왕이 가납하지 않자 그 후로는 외부와의 접촉을 끊다시피 하고 집 안에 틀어박혀 죽은 듯이 조용하게 지내고 있다고.
말하자면 살기 위한 극도의 몸사림이었다.
물론 그 외의 다른 종친들 역시 말할 것도 없이 다들 공포에 떨며 몸을 사리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세자를 노린 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알아낼 수 없었다.
보고서를 읽고 몇 가지 질문을 한 후 그대로 잠들어 버린 나는 다음 날 정오가 지나서야 눈을 떴다.
의식하지 못했는데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었다.
나는 자고 일어나 비교적 맑은 정신으로 다시 보고서를 확인하며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많은 일이 있었는데.”
“세자 저하도 옹주 자가도 계시질 않아 내내 궐 안 분위기가 살얼음판 같았사옵니다.”
역시 다들 눈물 나게 환영하는 이유가 있었다.
“또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원.”
“옹주 자가의 말씀대로입니다. 이런 일이 많아서 좋을 게 없지 않습니까.”
문초를 당한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다고 들었지만 뭐…… 피비린내 나는 일이 많아서 좋을 게 없다는 건 사실이었다.
이번 일로 종친들은 더 조심하고 숙이고 다녀야 할 모양이었다.
‘종친 노릇도 참 못 할 일이네에.’
말 그대로 남의 일인 나는 궁녀들이 머리를 빗겨 주는 사이 무거운 눈꺼풀에 저항했다.
“옹주 자가? 곤하시옵니까?”
“응. 졸려.”
“여정이 길었으니 여독이 쌓이셨겠지요.”
뭐 안 그래도 곱게 자란 몸이 갑자기 장기 여행을 했으니 아무리 가마를 타고 다녀도 피곤할 만했다.
게다가 예상되는 다른 원인도 있었고.
“아…… 약 먹기 시작한 뒤로 잠이 많이 늘었으니 너무 놀라지 마.”
“약이라면 세화 의원이 새로 만든 약을 이르시옵니까?”
“응. 덕분에 요즘 졸릴 때가 많네.”
세화가 그 고생을 하며 가져온 약으로 만들었다는데 너무 독해서 날짜를 두고 복용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먹고 나면 한동안은 굉장히 졸렸다.
처음에는 꽤 심했는데 지금은 그래도 매일은 아니고 이레에 하루 이틀 정도 심하게 졸리곤 했다.
‘지금 졸린 건 약 때문인지 피곤해서인지 모르겠네.’
그래도 모처럼 궁에 돌아왔는데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잔 것도 모자라서 또 잔다니 이래도 되는 걸까.
고민하면서 결국 밖으로 나섰다.
“옹주 자가. 곤하시면 다시 주무시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
“으음. 너무 자는 것 같아서 좀 그래.”
약이 독하긴 독한지 자꾸 눈꺼풀이 감긴다.
“조심하십시오. 옹주 자가.”
“어라. 천호?”
“예. 옹주 자가. 천호입니다.”
언제 온 건지 서신 몇 개를 안고 있는 천호가 내 처소 나인들에게 가져온 서신들을 전달하고 나에게 달려와 손을 뻗었다.
“위험하십니다. 옹주 자가.”
“음. 졸려. 업어 줘.”
“예이.”
여행 다니는 동안 천호에게 매달려 다닌 시간이 많았다 보니 이제 너무 익숙해서인지 나도 자연스럽게 천호에게 엉겨 붙었다.
천호도 이젠 포기한 듯 익숙하게 나를 받아 업었다.
“내가 업어도 괜찮은데. 옹주 자가, 제가 업어 드릴까요?”
“괜찮습니다. 제가 업는 쪽이 더 안정감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기는 하지만…….”
내가 너무 병든 닭처럼 꾸벅꾸벅 졸기만 하니 불안해하는 사람도 많았다.
덕분에 세화와 성지는 이상한 증상이 아니라고 끊임없이 사람들을 설득해야 했다.
원래 세화는 운동도 지금까지처럼 꾸준하게 하시는 게 좋겠다고 했지만 근래에 들어 자꾸 배고프고 졸려서 마음대로 되질 않았다.
그나마 매일 이러는 게 아니라는 사실과 조금씩 나아질 거라는 사실이 위안이었다.
나는 졸린 눈을 깜빡이며 소이와 잡담을 이어 갔다.
“그러고 보니 연말이지…….”
강무가 초겨울이었던 데다 세자의 부상 때문에 느긋하게 돌아오니 어느새 연말이었다.
음력 기준이니 양력으로 지면 지금은 아마 1월 정도일까.
“예, 곧 섣달그믐이옵니다. 올해에도 나례연을 할까요?”
“역모 얘기에 세자 저하가 다치기도 해서 도성 분위기가 썩 좋지는 않잖아? 올해 나례연은 아마 화려하지 않겠어?”
“아아. 그것도 그렇군요.”
나례(儺禮)란 본래 섣달그믐날 궁중, 관아, 민간 등에서 가면을 쓰고 주문을 외우며 귀신을 쫓는 시늉을 하며 묵은해의 잡귀를 몰아내던 의식을 말한다.
처음에는 그런 의미였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연극이나 공연 등이 주가 되는 나례희(儺禮戱)의 성격이 강해져서 나례희, 나례연(儺禮宴)이라도 불렸다.
성격이 다소 바뀌었다고는 해도 이런 건 원래 액운을 쫓는 것이 목적이기도 하니 이번처럼 세자가 암살당할 뻔하고 다치기까지 한 일을 지우기 위해서라도 화려하게 해야 할 듯했다.
민심이 흉흉해지는 것보다는 다들 공연 보고 노는 데 정신 팔리는 게 나았고.
“떠들썩한 건 나쁘지 않지.”
아무래도 궁은 좀 황량하고 말이지.
‘확실히…… 아이들이라도 여럿 있으면 좀 덜 황량할 거 같기도 하네.’
하지만 왕족의 아이들이란 한 명만 남고 모두 궁을 나가야 하는 처지이니 쓸쓸할 수밖에 없었다.
“아, 그러고 보니 내궁 쪽에 놀이기구 새로 만들려고 발주 넣어 놓은 건 얼마나 진행됐어?”
“만드는 것 자체야 오래 걸리지 않지만 역시 궁 안에 놓기 걸맞게 꾸미는 데에 시간이 걸린다고 하옵니다.”
“외형도 중요하지만 안정도 중요해. 하긴 만든 사람 입장에서도 목숨이 걸린 일인데 열심히 하겠지?”
“그럼요. 옹주 자가. 출출하지는 않으셔요? 정자에 앉아 잠시 간식이라도 드시지요.”
“응.”
나 요새 너무 먹고 자고, 먹고 자고만 반복하는 거 같네…….
멍하니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놀이기구에 대한 생각으로 돌아갔다.
갑작스러운 민원으로 만들게 되었지만 떠나기 전에 이미 발주는 넣어 놓은 상태였다.
이미 몇 개나 놀이기구를 만든 기술자들이니 걱정은 하지 않지만 그래도 신중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아. 그러고 보니 조카가 생긴다면 조카들을 위해 만들어 줘야 할지도 모르겠네.’
그게 언제가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때는 어린이용 바이킹이라도 만들어 볼까.
어린아이 한두 명 태우는 정도라면 사이즈도 작고 무게도 가벼울 테니 그렇게 위험하지 않을 거 같은데…….
내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천호에게 속닥거렸다.
“잘 봐 둬. 옹주 자가께서 저렇게 뭔가 생각에 빠진 듯한 골똘한 얼굴을 할 때는 보통 또 뭔가 일거리를 생각하실 때야.”
“그런데 옹주 자가께서는 왜 자꾸 일을 새로 만들어서 하시는 거죠?”
“난들 알겠느냐.”
그렇게 말하며 성 겸사복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다른 데서 하면 무례한 행동이지만 봐줬다.
“아니, 성 겸사복은 언제 왔어.”
“옹주 자가께서 소식을 알아내어 알려 달라고 하셨잖습니까. 덕분에 이 추운데 강원도에서 얼마나 헤매고 다녔는지 아십니까? 다들 처음 보는 외지인이라고 경계는 오지게 하지.”
성 겸사복에게는 그날 마을에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좌세마를 좀 찾아 달라고 부탁했었다. 덕분에 한동안 연락도 끊겨 있었는데 이렇게 돌아온 걸 보면 뭔가 실마리를 찾은 건가…….
“찾았어?”
“못 찾았습니다. 왜 그렇게 도망치듯 사라졌는지 원.”
“뭐 죄라도 졌나…….”
대체 좌세마는 왜 그렇게 필사적으로 도망하는 걸까.
“사실 우리 돌아올 때 한번 만났다고 들었어.”
나는 그렇게 말하며 천호를 가리켰다.
“엑?”
힘들게 뒤쫓았는데 찾지 못한 성 겸사복은 억울한 눈으로 나와 천호를 번갈아 보았으나 우연히 만난 걸 어떡해. 우린 부상자가 있어 천천히 다닌 데다 경로는 일부러 랜덤으로 정하곤 했으니까.
그나저나 연 좌세마는 대체 뭐지. 왜 그렇게 피해 가는 거지.
아무리 성원 세자의 죽음에 책임을 느낀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혹시 성원 세자 재산이라도 몰래 빼돌린 거 아냐?’
어쩌면 부왕이나 세자는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성원 세자의 유품이나 재산에 대해서 그 두 사람이 아는 게 많을 테니까.
‘그랬다 해도 과한데.’
아무리 그래도 이번처럼 세자의 목숨을 구한 공이 어디 흔한 공이던가.
과거에 저지른 잘못이 있어도 어지간하면 용서받지 않을까.
물론 성원 세자의 재산을 빼돌렸다면 보통 일이 아니겠지만, 지금의 세자를 구했다면 나름 상쇄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물론 본인이 상을 안 받겠다는 걸 우리가 어쩔 수 없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