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184)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184화(184/326)
이 사람은 대체 왜 여기에 있단 말인가.
아니, 그보다 혹시 자신을 따라 뛰어 내려온 건 아니겠지? 아직 조심해야 될 때인데.
이 상황에서도 직업정신이 우선인 세화는 반사적으로 세자를 따라온 송 내관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으나 곧 포기했다.
송 내관이 무슨 힘이 있겠는가. 세자가 뛰면 뒤따라 뛰는 수밖에 없는 것을.
그런 세화의 복잡한 마음을 알 리 없는 이들은 세화와 갑자기 나타나 세화와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내를 번갈아 보다가 뭔가 깨달은 듯 얼떨떨한 얼굴로 물었다.
“아, 혹시 의원님의…….”
“아, 아니야!”
“마, 맞네!”
“어머나아…….”
주변에 있던 다른 배우들 역시 히죽히죽 웃으며 두 사람을 응시했다.
심지어는 부상을 입고 일어나지도 못하는 주연 배우들까지.
방금까지 아파서 찡그리고 있던 사람들이 또 입꼬리만 히죽 올라가는 모습은 그야말로 매를 부르는 상황이었으나, 아쉽게도 부상자라 차마 등짝을 때릴 수도 없었다.
주연 두 사람은 뭔가 시선을 주고받더니 이런 말을 꺼냈다.
“그럼, 그냥 의원님과 여기 선비님이 같이 올라가시는 건 어떨까요? 저희가 뒤에서 대사만 읽으면 두 분이 적당히 입만 움직여 주시고요.”
“그러게요. 연기라도 다른 남자와 붙어 있으면 좀 그렇죠…….”
“생각해 보니 마지막 장에서 주연 두 사람은 많이 움직이지 않아도 되거든요!”
“뭐? 그럼 그냥 부목부터 하고…….”
두 사람의 말에 세화가 몸을 빼려 하자 부상자 두 사람은 아까와는 달리 과장되게 다친 부위를 붙잡았다.
“아이고! 다리가……!”
“아앗, 발목이……!”
“…….”
“…….”
주변에서도 나서서 두 사람을 부추기기 시작했다.
“어차피 가면도 쓰니까요! 옷만 갈아입으시면 되겠어요.”
“치수도 맞을 것 같네요!”
“제대로 된 무대가 아니라도 적어도 이야기가 어떻게 끝나는지 만이라도 보여 드리고 싶어요. 안 될까요?”
이렇게 눈을 반짝이며 부탁하는데 거절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게다가 아까 과장된 연기와는 별개로 두 사람은 분명 많이 다친 부상자가 맞았다.
당황해서 서로를 보고 있던 세자와 세화는 얼떨떨한 얼굴로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감사합니다!”
“어서 준비를!”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몰려들어 세화와 세자를 끌고 갔다.
“자, 여기 가면요.”
“자, 이쪽에서 옷 갈아입으세요.”
“?”
“?”
그렇게 두 사람은 얼떨결에 팔자에도 없는 무대에 서게 됐다.
그리고 바로 전에 이 연극의 뒷부분을 본 적이 있는 세자와, 관계자라 내용을 알고 있는 세화는 동시에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마지막 내용은 남주와 여주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장면이 대부분이지 않았나?’
오랜만에 시월각에 오니 익숙한 연극이 상연 중이었다.
그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꽃그림자와 꽃비는 시월각의 고정 레퍼토리 중 하나였으니까.
다만 그런 만큼 배우들과 연출이 내 눈에 익숙해야 할 텐데.
어째선지 지금 상연 중인 공연은 내가 지금까지 봐 온 공연들과는 굉장히 괴리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괴리감만큼이나, 주연 배우 두 사람이 내 눈에는 몹시 낯이 익어 보였다.
“…….”
나는 나에게 자리를 안내해 준 시월각 아이를 붙잡고 물었다.
“저기 저, 두 주연 배우 말인데…….”
“아. 역시 티가 나지요? 실은 아까 조금 사고가 있어서 주연 배우들이 다쳤거든요.”
“어? 어쩌다? 많이 다쳤어?”
“다행히 그때 세화 의원님이 계셔서 바로 응급처치해 주셨어요. 그런데 하필 다친 사람 둘이 주연 배우라 공연을 중지해야 하나 했었는데 마침 무대에 서 줄 수 있는 대역을 찾았거든요.”
“그래서 세화가 저기 있는 거야?”
“……예. 역시 알아보시는군요.”
아무리 가면을 써도 옆에서 오래 지켜봐 온 사람은 알아보게 되어 있다.
특히 목소리를 들으면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지 않겠는가.
“세화도 목소리가 의외로 쩌렁쩌렁하네.”
“그게, 분명 처음에는 배우들이 뒤에서 대사를 읽기로 되어 있었는데 어느 순간 저렇게…….”
아이는 시선을 피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나는 아이가 가져온 차를 마시며 무대를 내려다보았다.
그래도 둘 다 내용은 잘 숙지하고 있는지 제법 어색하지 않게 연기를 이어 가고 있었…… 아니, 저거 원래 지금 둘이 막 좋아한다, 아니다, 실랑이하는 부분이잖아.
‘꽤…… 리얼해 보이는데?’
“세자 저하이시니, 저 같은 사람 마음을 쉽게 대하여도 된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내가 언제 그대를 쉽게 대했다고 하는 건가!”
아주 박진감이 넘치네.
그런데 지금 진짜 문제는 세화가 아니라…… 세화의 상대역인 남자 배우였다.
‘세자야…… 너 여기서 대체 뭐 하는 거니.’
진짜 세자가 세자 연기를 하고 있다니.
아무리 가면을 쓰고 있어도 뻔히 보이는 혈육의 흑역사 생성에 나는 허허 웃으며 차를 마시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원래 대사랑도 좀 다른데. 지금 진짜 싸우나.’
분명 연극에서는 두 사람이 저렇게 말다툼을 하다가 마음 확인하고 둘이 잘되는 것처럼 현실 배제하고 얼렁뚱땅 끝나는 스토리였던 것 같은데.
원작까지 그렇다는 건 아니고. 연극은 연극이다 보니 아무래도 생략이 필요해서 그렇게 됐다.
‘하이고…… 쟤네 이런 데서 정말 뭐 하는 건지.’
모르는 사람이 보면 연극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아는 사람이 보면 눈 뜨고 못 봐 줄 치정 싸움이었다.
“오늘 손님 중에 혹시 좀 높은 사람 있는 것 같아?”
“요즈음에는 분위기가 흉흉해서 높으신 분들은 잘 찾지 않으십니다.”
아, 영천군 반역 사건 때문에 다들 긴장 중인가.
“어휴, 다행이네.”
증말 내가 별꼴을 다 본다야…….
그런 생각은 나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천호도 조금 당혹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저기, 옹주 자가. 무대에 있는 두 사람 어딘지 세화 누님과 세자 저하랑 비슷해 보이는데요.”
“음…… 역시 네 눈에도 그렇게 보이지?”
“예.”
“내버려 두자. 대부분은 못 알아챌 테니까.”
“그래도 괜찮을까요?”
“뭐, 괜찮겠지.”
저런 건 원래 사극이나 드라마 같은 데서 급하게 쫓기고 있을 때 일어나는 사고여야 할 거 같은데. 아닌가?
‘이젠 본 지도 오래돼서 가물가물하네에.’
듣자 하니 시월각은 근래에 열성 팬이 무대로 달려드는 사고가 종종 있어 무대와 관객의 거리를 더 멀어지게 만들었다고 한다. 오늘 갑작스러운 사고가 난 원인이기도 하지만 안전거리는 확실히 필요해 보였다.
덕분에 객석과의 거리가 멀어서 나나 천호처럼 두 사람을 가까이에서 오래 지켜본 사람이 아니라면 지금 무대 위에 있는 사람이 세자와 세화라는 것까지는 모를 것이다.
“여기 과자 좀 더 달라고 해. 이거 좀 흥미진진하네.”
“……옹주 자가.”
“왜.”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천호는 혼란스러운 얼굴이다. 하긴 일국의 세자가 저러고 있는데 내가 내버려 두고 과자만 먹고 있으니 이게 맞나 싶겠지.
“차라리 세화가 좀 더 권력욕이 있으면 좋을 텐데 말이지.”
“예?”
“세화한테는 말하지 마라.”
“예…….”
강원도에서 천호가 세화를 업고 내려온 이후로 둘이 누나 동생 하기 시작한 것 같은데 괜히 말 잘못 전해졌다가 세화가 도망치면 곤란했다.
‘내 일을 가져가 주실 귀인이신데.’
다행스럽게도 둘 사이에 풍기던 핑크빛 무드가 내 착각이 아니었는지 무대 위의 두 사람이 결국 말다툼을 끝내고 끌어안고 있었다.
“오래 기다리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오나, 저하…….”
그리고 과자를 먹으며 그 대사를 고스란히 듣고 있는 내 심경은 이렇다.
“내일 당장 해도 괜찮은데.”
“푸훕. 콜록.”
옆에서 소심하게 차를 마시던 천호가 사레들려 콜록거리는 것을 보며 나는 쯧쯧 혀를 찼다.
‘둘이 가면 쓰고 있어서 참 다행이지 뭐야.’
1층의 관객들이 날것 그대로인 커플의 사랑싸움과 애정행각을 보고 박수갈채를 보내는 사이, 나는 세자와 함께 왔을 송 내관과 호위에게 오늘 일에 대해서 입단속을 했다.
“이런 일이 빨리 알려져서 좋을 게 없다는 건 송 내관도 알지?”
“예. 옹주 자가.”
“괜히 잘못했다가 둘이 깨지면 원손 보는 날만 늦어지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어.”
“!”
원손(元孫)! 세자 저하의 아들!
그야말로 세자의 측근들이 가장 바라 마지않는 단어였다.
‘세자가 어디까지 생각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조금 뒤 연극 의상을 갈아입은 세자와 세화가 새삼스럽게 내외하며 2층으로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나는 해맑게 웃는 얼굴로 두 사람을 반겼다.
“안녕. 오라버니~ 열렬하더라.”
“!”
“!”
굳어서 움직이지 못하는 세화의 옆에서 세자 역시 붉어진 얼굴로 입만 뻐끔거렸다.
부끄러운 짓을 했다는 자각은 있나 보지.
“아니, 뭘 그렇게 부끄러워하고 그래?”
“너, 너는, 그걸 꼭 티를 내야겠느냐?”
“아, 거참. 본 걸 봤다고 하지 그럼 못 봤다고 하리?”
그러게 누가 이런 공공장소에서 그렇게 대놓고 치정 싸움에 애정 행각을 벌이라고 했나요?
본인이 무대 위에서 했던 말들을 되새기고 있기라도 한지 세화는 얼굴이 빨갛게 익어서 차만 마시고 있었고, 세자는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내게 성을 내고 있었으나 별로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게다가 오라버니, 다른 데도 아니고 내가 운영 중인 가게에서 이런 일을 해 놓고 내가 모르길 바란 거야?”
“!”
정말? 너 진심으로 하는 소린 아니지?
장소가 장소이니 내가 지금 여기 없었어도 두 사람의 일은 결국 내 귀에 들어왔을 거다.
나는 세자의 속을 박박 긁으며 우아하게 차를 마셨다.
그렇게 내가 차를 마시는 동안 두 사람은 죄라도 지은 것 마냥 말이 없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내 눈치라도 보는지 둘 다 그 작은 소음에도 움찔 떨었다.
“말해 두지만.”
“…….”
“…….”
아니. 꼭 내가 괴롭히는 것 같잖아?
“나는 두 사람 사이를 반대하지 않거든?”
“그, 그래?”
“…….”
세자는 반색하고 세화는 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