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194)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194화(194/326)
자기가 해 놓고 뭐가 그리 민망한지. 마침 무슨 소란인지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는 것을 본 세자가 반가운 얼굴로 내 손을 잡고 이끌었다.
‘날 놔…….’
떨떠름한 얼굴로 따라가긴 했지만 무슨 일인지 궁금하기는 했다.
“어찌 된 일이오?”
“그게, 어느 양반댁 도련님과 지나가던 꼬마 아이가 시비가 붙은 것 같소.”
우리와 마찬가지로 무슨 일인지 궁금해 다가갔던 이들 중 한 명이 묻자 마찬가지로 기웃거리고 있던 사람이 흥미진진한 목소리로 답했다.
“아니, 그게 시비가 되나……?”
말하는 걸 보면 꼬마 아이는 양반이 아니란 뜻 아닌가.
“그 꼬마가 아무래도 시영원 꼬맹이들 같으니 그럴 만도 하지.”
“아하.”
구경꾼이 전해 준 말에 사람들이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으나 나는 조금 떨떠름해졌다.
‘아니, 우리 애들이야?’
대체 뭐 하고 다니는 거야. 이 꼬맹이들.
물론 그동안 나도 밖을 많이 돌아다녔으니 시영원 애들이 뭐 하고 다니는지 전혀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나름 잘하고 다니던데…….’
어린애들이 멋모르고 나대고 싶어도 연장자 그룹이 민망해하며 하지 말라고 쥐어박고 다니니 큰 문제가 일어나는 경우는 잘 없었다.
애초에 대부분은 양반이라도 시영원 애들하고 그렇게 얽히고 싶지 않아 하고.
‘반쯤 내 가노(家奴) 취급이라서 괜히 잘못 엮여서 내 눈 밖에 나고 싶지 않으니까.’
신분제의 문제를 떠나서…… 이런 비유를 하면 좀 그렇지만 재벌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를 감히 발로 차는 사람이 없는 거랑 비슷하다.
그야 물린다면 신고는 하겠지만, 괜히 잘못 건드렸다간 뒷감당이 안 된다고나 할까.
‘하인들 싸움이 주인들 싸움으로 번지는 게 드문 일도 아니고.’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 되는 거랑 마찬가지다.
그렇게 딴생각을 하고 있는데 모여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환호하기 시작했다.
“와아아!”
“……왜 환호하는 거야?”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안쪽을 들여다보던 젊은 선비 하나가 귀엽다는 듯 몸을 낮추고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쉽게 설명을 해 주었다.
흠. 제법 괜찮은 사람이군.
“시영원 꼬마 아이가 양반댁 도련님과 말싸움이 붙었는데, 한쪽이 경서(經書)의 문장을 외우면 다른 한쪽이 그 문장이 어떤 뜻인지 해석하는 것으로 겨루고 있었습니다.”
“그것참, 고상하게 싸우네요.”
“예. 그런데 지금 양반댁 도련님 쪽이 밀리고 있군요.”
“저런.”
민망하겠네.
아무리 시영원 아이들과 얽히려 하지 않는다고 해도 양반들에게 시영원 아이들은 그냥 옹주 자가를 등에 업고 나대는 같잖은 것들일 뿐일 텐데.
그래도 공부시켜 놨더니 애들이 문자 쓰며 싸우네…….
나름 보람이 느껴지는군.
‘물론 양반이라도 공부 안 하는 놈들은 또 글러 먹은 거 같지만.’
시영원 아이들이라고 다 똑똑한 것은 아니다. 글을 가르친다고 해도 한글 외에는 천자문 겨우 떼는 아이가 대부분이고.
그러니 아마 저기서 양반가 도령이랑 붙었다는 애는 시영원에서도 제법 똑똑한 아이일 거다.
‘그럼 아마 내가 이름이나 얼굴을 알 거 같은데.’
어느 쪽 분야든 눈에 띄는 아이들은 보고가 올라오거든.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 있어도 대체로 티가 나기도 하고.
“와. 시영원 아이들이 똑똑하다는 말은 들었는데 양반댁 도련님이 한 마디도 못 이기시는데.”
“공자 왈 맹자 왈 문자 쓰는 거 봐.”
“하지만 저렇게 똑똑해서 어디다 쓸 거야.”
주변에서 이러쿵저러쿵 말을 늘어놓는 것을 보니 나도 심란했다.
‘역시 과거 시험이라도 볼 수 있게 지원해 줄까.’
역모 때문에 노비가 된 애들은 어렵겠지만 그 외에 애들은 노비라도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은데.
실제로 조선 시대 때도 과거를 볼 수 없는 신분이었는데 재능이 있어서 양반가 양자로 들인다는 식으로 과거 보는 경우가 드물지만 있었다. 물론 워낙에 흔한 일은 아니었던 것 같지만.
그렇게 과거 보고 합격해서 본인은 양반이 되었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천민이라 무덤 앞에서 괴로워했다던가.
물론 시영원……이라기보다는 학당 쪽에는 요즘 양반 애들도 많이 들어와 있긴 했다.
가난한 집이면 혼자 공부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돈 없는 집 아이들이라도 은근슬쩍 찾아오면 다 받아 주고 있었다.
시영원이 옹주가 운영하는 곳이라는 사실이 면죄부라도 되는 듯 양반 아이들도 거부감이 없는 모양이었다.
물론 소량이지만 돈을 받고 있고, 돈이 없으면 노동력이라도 받는다.
글을 아는 양반가 애들이 오면 더 어린 애들 한글이나 천자문 가르치는 데 동원되는데, 육아의 고통을 리얼하게 경험하게 해 준다는 장점이 있었다.
아이 보는 건 육체노동이라고 여겨지지 않는지 신분상 자존심이 상할 일이 아니기도 하고.
그렇게 멋모르고 동원되었다가 가끔 힘들어서 우는 애들도 나온다는데 데려가서 잘 달랜 후에 산에 가서 땔감 주워 오자고 하면 아무 생각 없이 잘 따라온단다.
당연히 거기서도 점잖은 애들은 그대로 육아반 선생으로 반강제 채용을 당한다.
아이들에게 못되게 구는 놈들은 다른 양반 출신 서생에게 인성교육을 받거나 안 되면 퇴출당하기도 했다.
데리고 있는 애들 케어하기도 바쁘니 공부하러 온 애들 인성 교육에 너무 힘을 쏟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어디 가서 시영원 이름을 등에 업고 날뛰기라도 하면 곤란하고.
‘이런 건…… 원래 부모나 공교육이 해야 할 일 아닌가.’
여긴 아직 공교육이 없으니 부모가 해야 할 일이고.
하긴, 그게 쉽지가 않지.
은혜를 아는 아이가 있으면 은혜를 원수로 아는 아이가 있고.
타고나길 유순한 아이가 있는가 하면, 날 때부터 날뛰는 아이가 있다.
그걸 감당하는 건 본래 부모 몫이지.
시영원이 감당하는 것은 부모가 없는 아이들이고. 부모 있는 아이들까지 시영원이 돌봐 줄 수는 없었다.
다만 그렇게 시영원에서 쫓겨난 아이들은 꼬리표가 붙는다.
관대한 시영원 선생들조차 품어 주지 못하는 아이라는 꼬리표가, 주변의 수군거림이 남는다.
‘시영원 기록에도 남지.’
이게 나중에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겉보기에는 시영원 출신들이 꽤 세력이 만만치 않다는 식으로 여겨지지만 실상 시영원의 구성원들은 대부분 아직 새파랗게 어린 청소년들이 많았다.
성인이 되어 독립하는 경우도 많고, 시영원과 이어진 일자리를 얻는 경우도 있지만, 그대로 남아서 새로 들어오는 아이들을 돌보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다 보니 아이들에게는 아직 ‘성공한 어른’의 아웃풋이 부족했다.
‘시간이 필요하겠지.’
내가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비켜, 비켜!”
내가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시영원 아이의 승리로 적당히 마무리되던 현장은 뜻밖…… 은 아닌 인물의 등장으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아버지!”
“누가 감히 우리 아들에게!”
결국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되는 건가.
물론 어른 싸움이 되면 어른 싸움을 하면 된다.
‘근데 난 애초에 누가 잘못했는지를 모르는데.’
사람들이 보기 드문 구경하느라 바빠서 애초에 왜 저 둘이 다퉜는지에 대해서는 다들 관심이 없었다.
‘사람들하고는 참.’
나는 아까 나름 친절한 설명을 해 준 젊은 선비를 눈으로 찾았지만 그사이에 어디 갔는지 보이질 않았다.
“?”
내가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안으로 들어가려는 것으로 보였는지 뒤에서 천호와 소이가 나를 붙잡았다.
“아기씨.”
“아.”
“어찌하시겠습니까?”
“음, 일단 상황을 좀 봐야 할 것 같은데.”
양반이라고 다 이상한 놈들만 있는 것도 아니고, 전후 사정을 듣고 적당히 설교만 하고 아들 데리고 물러난다면 별다른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을 터였다.
‘나도 너무 나서기 싫어.’
놀러 나왔다고.
게다가 저 양반 아저씨 기세가 등등한 걸 보아하니 조금 있는 집 사람 같았다.
‘아, 조금 불길하군.’
왜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는지 사람들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난 덕분에 안쪽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가 들려왔다.
“내가 누군 줄 알고 감히 이런 짓을 벌인 것이냐! 어린 것들이 감히 뒷배를 믿고 이리 날뛰니 강상(綱常)의 기강이 이리 문란해진 것을!”
“모욕을 달게 받아들이지 못한 것을 군자(君子)답지 않은 소인배라 욕하신다면 이는 감당할 것이나, 어찌 키워 주신 분들을 모욕하는 것을 참고 넘어갈 수 있겠습니까?”
“뭐, 뭐라고?”
시영원 선생들의 욕이라도 했나.
‘내 욕을 했으면 문자 배틀이 아니라 바로 왕족 모독이라고 소릴 질렀겠지.’
아이가 화를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저렇게 공손한 태도와 그렇지 못한 내용은 폭력을 부르는 법이었다.
“멈추시지요.”
“넌 또 뭐야?”
“소생은 사간원(司諫院) 정언(正言, 정6품) 윤도원이라 하옵니다. 무슨 일로 이리 진노하셨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사간원 관원이라 칭한 이는 아까 본 그 젊은 선비였다.
‘음. 엘리트 공무원이었군.’
다행히 저쪽은 아이들이 싸우게 된 경위를 알고 있었는지 아이들 싸움에 끼어든 어른을 좋은 말로 타일렀다.
어지간한 권력자가 아니라면야 괜히 삼사(三司)의 눈에 띄고 싶지는 않은 법이었다.
‘근데 세자랑 얼굴을 아는 사이일지도 모르겠네.’
그렇게 생각하며 주변을 살피니 언제부터인지 멀찍이 떨어져 있는 세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살기 힘들구만…….
나는 세자는 무시하고 아이들의 상태부터 살폈다.
아이는 다행히 혼자는 아니었는데 저 삼사의 관원 덕분에 일이 원만하게 해결되자 감사의 인사와 함께 약간의 훈계를 들은 후 떠나는 모습이 보였다.
“애들 좀 따라가자.”
“알겠습니다.”
일이 잘 해결되어서 다행이긴 한데, 그래도 일단 붙잡아서 조심 좀 시켜야지.
다행히 아이들 걸음이 그리 빠르지 않아 따라가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그리고 아이들 역시 자신들을 따라온 이가 있다는 걸 깨닫고 걸음을 멈췄다.
“어? 천호 형?”
평소 내 심부름으로 시영원에 자주 들락거린 덕분인지 아이들은 천호를 알아보았다.
그리고 천호 옆에 있는 나도.
“헉, 아기씨?”
“오냐.”
천호를 볼 때는 반가워하는 얼굴이었다가 나를 보고는 풀이 죽는 걸 보니 썩 기분이 좋지는 않군.
우리는 조금 인적이 드문 곳으로 장소를 옮겼다. 뒤돌아보니 세자가 걱정스러운 듯 우리를 따라오고 있기에 일단 놔두기로 했다.
“아까 싸웠다며.”
“송구합니다.”
아까는 그렇게 당당하더니 내 앞에서는 조용해진다.
나도 이 아이들을 알고 있었다. 예상대로 시영원 내에서 똑똑하기로 손에 꼽히는 아이들 중 하나였다.
“양반 도련님한테도 안 밀렸다지? 공부한 보람이 있네.”
“아직 한참 부족한 몸입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대충 봐도 불만이 있는 얼굴이다.
“왜. 저런 놈들은 편하게 공부만 하는데 너는 그렇게 하지 못해서 억울해졌어?”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렇습니다.”
“너도 그렇게 공부하고, 과거를 보고 싶어?”
“아, 아닙니다.”
아니긴.
심지어 이 아이는 노비도 아닌 양인이었다. 어려움이라면 공부에 집중할 시간과 금전적 여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