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196)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196화(196/326)
“아이고오! 작은 아기씨 손이 맵기도 하시네.”
와하하하!
어린아이에게 맞았다고 엄살을 부리는 광대의 너스레에 사람들이 유쾌하게 웃고 있었지만, 바닥을 뒹구는 광대는 은근히 자기 다리를 쓰다듬으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천호가 한 건가?’
아까 내가 탈을 때릴 때 이미 광대는 몸이 뒤로 넘어가고 있었다.
의심에 찬 눈으로 천호를 보니 내 시선을 슬쩍 피하며 모르는 척 웃고 있었다.
아무래도 천호가 저 광대가 다가오는 순간 다리를 걷어찬 모양인데.
‘이래저래 아팠겠네.’
나는 무례에 대한 대가를 몸으로 때운 광대를 적당히 용서해 주기로 했다.
어린아이를 울려서 재미 좀 보려고 한 것 같으니 자업자득이었다.
“흥. 재밌다고 사람을 이리 놀라게 하니 벌을 받은 것이야!”
“아이고! 용서해 주십시오, 아기씨!”
광대는 공연의 흥을 깨고 싶지 않았는지 여전히 다리가 아파 보였는데도 내 앞에서 손바닥을 비비며 용서를 비는 흉내를 냈다.
나는 일부러 천호의 품에서 몸을 버둥거리며 광대가 쓰고 있는 가면을 손으로 툭툭 쳤다.
“재미가 없으면 혼이 날 줄 알아!”
“그러믄요! 자, 다들 들었지? 여기 아기씨께서 재미가 없으면 우릴 가만두지 않으신단다!”
“어이쿠!”
광대패가 다들 적당히 장단을 맞추자 여기저기서 와하하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 정도면 되었겠지.’
다들 재밌어하는데 흥을 깨기도 그렇고.
그래도 더 공연을 보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아 천호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가자.”
“예, 아기씨.”
이제 와서 그때처럼 호랑이 탈에 겁을 먹을 것도 아닌데 괜히 움찔 놀라서는. 덕분에 내 한쪽 손은 아직도 나를 안고 있는 천호의 옷자락을 꼭 움켜쥐고 있었다.
“놀라셨습니까?”
“조금.”
내가 움찔 떠는 걸 다 알았을 텐데 거짓말을 해서 뭐 하리. 솔직하게 털어놓자 천호가 내 등을 토닥였다.
“제가 곁에서 지켜 드릴 테니 무서워하지 마세요.”
“조금 놀란 것뿐이라니까.”
눈을 깜빡이던 나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언제 비슷한 대화를…… 한 적이 있지 않나?’
이제 천호와 알고 지낸 지도 여러 달이 지나서 그런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뒤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던 소이가 웃으며 물었다.
“공연은 별로 재미가 없으셨나 봐요?”
“음……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아무래도 조금?”
“날이 어두워져서 곧 불꽃놀이도 할 것 같은데 괜찮으시겠어요? 그냥 돌아갈까요?”
“아, 그건 볼래!”
전에도 그건 못 봤어!
불꽃놀이는 다른 데에 불이 붙을지도 몰라서인지 청계천에서 한다. 숯가루에 불을 붙여 불꽃을 만드는데 생각보다 볼만했다.
“와아!”
파지직 소리와 함께 불꽃이 떨어지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천호가 있으니 정말…… 편하긴 하군.’
번쩍번쩍 들어 올려 주니 구경하기가 좋았다. 본인도 키가 크다 보니 그냥 서 있는 것만으로도 잘 보이는 모양이고.
어린아이는 이런 점이 편했다.
“마음에 드셨나요?”
“응.”
“불꽃놀이를 좋아하시네.”
“보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드물걸.”
“하하.”
마음 편하게 구경할 수 있는 건 좋았다.
‘그때는 멀리서 소리만 들었었지.’
그때 분명 폭죽 터지는 소릴 들으면서 나는…….
‘……수천이 옷을 벗겼던가.’
갑자기 현타가 왔다. 아니, 분명 필요한 일이긴 했는데.
“지금은 늦은 거 같지만 그럼 다음에는 한강에 낙화 구경이라도 가실래요?”
“으음. 그건 됐어.”
“관심 없으세요?”
“으음. 됐다니까 그러네.”
“왜요. 가서 구경이라도 하시죠.”
“……됐어.”
그때 그 꼬맹이도 분명 같이 보러 가자는 말을 했었지.
대단한 약속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좀 의리 없는 거 같아서 딱히 내키지가 않았다.
뭐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아무렇지 않아지겠지만.
슬슬 밤이 깊어가는데 거리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북적였다.
“슬슬 돌아갈까?”
“그리하시…… 어?”
고개를 끄덕이던 소이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
“왜 그래?”
“아니, 방금 아는 사람이 보인 거 같아서요…… 잘못 본 모양입니다.”
“누군데?”
“음…….”
소이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확신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분명 아는 사람인 거 같은데 누군지도 잘 떠오르질 않네요. 시영원 사람은 아닌 것 같고……. 그런데 제가 아는 사람이 이런 데 있을 리가 없으니. 제가 잘못 본 거겠죠.”
“하하. 소이도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세상에 닮은 사람도 많다고 하니 그냥 닮은 사람일 수도 있고. 이만 돌아가자. 세화가 있으면 데려가고 없으면 우리끼리 돌아가지, 뭐.”
“예, 아기씨.”
나름 즐거운 한때였다.
아마 이대로 평화롭게 궁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했는데, 뜻밖에도 세화는 아까 그 장소에서 세자와 함께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으음.’
대체 우리와 헤어진 사이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세화와 세자의 분위기가 묘했다.
무엇보다 세화의 눈가가 붉은 거 같기도 하고…….
나는 유력한 용의자를 지목했다.
“오라버니가 괴롭혔어?”
내 말에 화들짝 놀란 세화가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예? 아, 아니옵니다.”
“근데 얼굴이 왜 그래?”
아니긴 뭐가 아니야. 누가 세화를 괴롭혔어, 너냐? 너야?
소곤소곤 대화하며 세자를 노려보자 내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았을 터인 세자가 세상 억울한 얼굴로 알아서 고개를 저었다.
내가 미간을 찌푸리자 세자의 뒤에 있던 송 내관과 호위도 일단 고개를 저었다.
2차 확인까지 마친 후에야 내가 의심을 거두자 세자는 뒤쪽의 두 사람과 나를 번갈아 보며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 너무하는 거 아냐?’
‘내 알 바 아님.’
말없이 대화를 나누는 나와 세자를 본 세화는 눈시울이 아직 붉은데도 푸후후 소리를 내며 웃었다.
“후후. 그런 것이 아니옵니다. 그저 연등을 보고 있으니 오래전 헤어진 동생 생각이 나서 그만.”
“……정말이지? 오라버니가 괴롭힌 거 아니지?”
“아니옵니다.”
“이상한 짓 한 거 아니지?”
“예, 아니옵니다.”
뒤에서는 세자가 여전히 ‘나를 어떻게 보고 그런 소리를……!’ 하며 꿍얼거리고 있었으나 내 앞에서 세화의 얼굴이 한결 밝아진 것을 보고 안도한 눈치였다.
“오라버니가 괴롭힌 거면 나한테 몰래 말해.”
“예에. 꼭 그리하겠사옵니다.”
확실히 그 관등놀이 때를 마지막으로 동생과 헤어졌으니 울적해질 만도 했다.
‘생각해 보니 세화 입장에서 보면 세자와 둘이 데이트하느라고 동생과 잠시 떨어져 있었던 탓에 동생과 헤어진 셈이니, 자책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군.’
수천이를 떼어 놓지 않고 계속 함께 있었다면 그때 동생과 함께 도망칠 수 있었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둘이 함께 도망쳤으면 분명 붙잡혔을걸.’
애초에 원작에서 수천이는 존재감조차 없이 일찍 사망해서 등장도 하지 않는 아이였다.
나 때문에 함께 관등놀이 나왔으니 탈주한 거지.
당시 수천이는 아직 발이 느린 어린아이였고, 세화와 유모가 수천이를 데리고 있었다면 함께 도망치기는 힘들었을 거다
애초에 남매가 함께였다면 사대문을 넘어가는 것부터 막혔을 가능성이 높고.
하지만 사람이란 어째선지 자기 자신의 일이 되면 그렇게 냉정하게 판단하지 못한다.
‘그저 내가 잘못해서 일이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부터 들지.’
전생에 나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부모님과 남동생이 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
그때 부모님은 나도 함께 여행을 가자고 권유했었다.
하지만 나는 괜히 함께 가서 어린 남동생을 돌보는 것이 귀찮았고, 차라리 학원에서 공부하고 친구들과 수다 떨며 노는 것을 택했다.
만약 내가 함께 가기로 했다면 내 학원 일정에 맞춰 날짜를 바꿨을지도 몰랐다.
아니, 어쩌면 내가 마지막에 가지 말라고 말렸다면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그런 식으로 모든 게 내 탓인 것 같다고 자책했었지…….’
물론 나중에 내 말을 들은 언니가 매우 현실적으로 조목조목 아니라고 반박해 주었고, 시간이 흐른 뒤에는 나도 내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고, 누군가가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 줄 필요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자기 사정을 숨기고 있는 세화에게는 그러기 어렵겠지.’
아무것도 모르는 세자가 뭐라고 위로해 봤자 제대로 통하지 않을 테고.
그렇다고 세화 입장에서 보면 ‘내가 실은 역적 자식임!’ 하고 충격 선언을 하기도 어려운 처지 아닌가.
아무리 세자와 서로 좋아하는 사이라도 그건 좀 어려웠다.
‘에휴.’
나는 한숨을 쉬면서도 세화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세화는 뭐가 그리 좋은지 아까부터 웃고 있었다.
내가 재밌나요. 그래요, 뭐 기분이 좋아졌다면 다행이다만.
나는 세화의 상태를 살피다 문득, 어느새 세화 근처로 가까이 접근 중인 세자와 눈이 마주쳤다. 안절부절못하는 얼굴이면 다야?
‘뭐야, 어딜 다가와. 오지 마, 떨어져.’
‘…….’
내가 인상을 쓰자 세자는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슬슬 물러났다.
“푸훗.”
“풉.”
이제 보니 세화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참고 있었다.
‘나만 심각했나.’
주변에서 웃거나 말거나. 나는 세화를 이끌고 우리가 옷을 갈아입은 집으로 들어섰다.
이렇게 눈에 띄는 옷을 입고 궁으로 들어갈 수 없지.
갈아입은 옷은 여기에 맡겨 두고, 다시 평소 복장으로 돌아와 집 밖으로 나오려니 먼저 옷을 갈아입은 세자와 세화가 부끄러워하는 얼굴로 정담을 나누고 있었다.
“아까 입는 옷도 물론 잘 어울렸지만, 평소에도…….”
“…….”
우리 지금 나가면 안 되는 거야?
나는 천호와 소이의 소매를 붙잡고 잠시 멈춰 섰다. 두 사람 역시 분위기를 파악하고 바로 멈춰 섰지만 지금 여기에는 분위기 따위 신경 쓰지 않는 존재가 하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