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198)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198화(198/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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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주를 처소까지 데려다 눕히고 마지막으로 진맥까지 한 후 세화는 귀가를 청했다.
“세화 의원도 오늘은 궁에서 묵고 가는 것이 어떻겠는가. 밤이 너무 늦었는데.”
세자가 옹주 처소의 궁녀들을 바라보자 그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갑작스러운 손님을 달가워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냐마는. 상대는 옹주 자가의 오랜 병을 낫게 해 준 의원이니 옹주 처소의 궁녀들 중 세화를 홀대할 이는 없었다.
하지만 괜찮다고 해서 정말 괜찮다고 생각하고 폐를 끼칠 만큼 세화도 순진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사이가 원만하다고 해도! 번거롭게 만들어도 괜찮을 만큼 막역한 사이는 아니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이 살아온 세자는 잘 모를지도 모르겠지만.
“아니옵니다. 돌아가 보아야지요. 오늘 밤은 연등 때문에 거리도 밝고 사람도 많으니 심려치 않으셔도 될 것이옵니다.”
“하지만…….”
세자 때문에 궁인들의 휴식 시간까지 미뤄지고 있는 걸을 느끼며 세화가 내심 한숨을 내쉴 때였다.
“의원님은 제가 집까지 무사히 바래다 드릴 터이니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세자 저하.”
애초부터 너무 늦은 시간이라 세화를 바래다줄 생각으로 기다리고 있던 천호였다.
세자는 썩 달갑지 않은 얼굴이었다.
사실 오늘 세화와 함께한 시간이 너무 짧아 아쉽기만 했다.
처음 단둘(뒤에 송 내관과 호위가 있었지만)이 남아 대화를 할 때는 조금 어색하기는 했지만 그 후로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왜 아무 말씀도 없이 이리 옹주 자가를 통해 부르신 거냐’며 부끄러운 듯 항의하기는 했지만 ‘잘못해서 공연히 그대에게 안 좋은 소문이 나는 것은 피하고 싶었다’는 말에 어느 정도 수긍해 주었고.
이후에는 요즘 유행하는 연극 소품인 가면을 쓰고 함께 거리를 구경하기도 하며 분명 분위기가 괜찮았는데.
그렇게 같이 연등을 보고, 공연을 보고, 작은 머리 장식을 사 주기도 하며 분위기는 그럭저럭 화기애애했었다.
풍등을 들고 달려가는 일가족을 보고 세화가 갑자기 눈물을 흘린 것을 어찌하랴.
세화는 헤어진 가족들이 떠올라 자신만 이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부끄럽다고 했다.
‘차라리 무슨 사정인지 말해 주면 내가 어떻게든 도와줄 수 있을 터인데.’
하지만 세화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는 제대로 얘기해 주지 않는다.
왜일까.
‘내가 세자라서 부담스러운 걸까.’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세자가 생각에 잠긴 잠깐 사이 세화는 천호와 다시 언쟁 중이었다.
“나까지 바래다주었다가는 너무 늦게 귀가하게 될 터인데 무리할 거 없어.”
“의원님을 혼자 보냈다는 걸 아시면 나중에 옹주 자가께서 불호령을 내리실 것입니다.”
“늘 옹주 자가의 뜻을 곡해하는 것이 아니고?”
“옹주 자가 역시 저와 같은 생각을 하실 것이라는 데에 내일 제 몫으로 나올 감란전병을 걸겠습니다.”
천호가 내일 간식을 걸자 세화도 부정할 수 없는지 흠칫 말을 멈췄다.
감란전병이라면 옹주 자가를 모신다고 해도 쉽게 먹을 수 없는 귀한 음식이었다.
세화도 옹주 자가의 병환을 고치며 종종 대접받아 그 맛을 알기에 천호가 감란전병까지 걸고 하는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음…… 감란전병이라면 어쩔 수 없지.”
“그렇지요.”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을 보는 세자는 솔직히 썩 즐겁지가 않았다.
저 둘은 왜 저렇게 죽이 잘 맞는 것 같담.
둘이 친밀해진 계기가 강원도에서 세자가 세화와 함께 조난(암살 시도가 있긴 했지만 솔직히 조난이 가장 적절한 표현이었다)당했을 때 천호가 세화를 업고 내려와서인 것도 사실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그런 걸 티 내는 순간 시아에게 몸도 마음도 쭉정이인 불민 세자라며 인신공격을 당할 것이 불을 보듯 뻔했으므로 세자는 꾹 참고 있었다.
‘어디서 그런 못된 말만 배워 와 가지고.’
어찌 보면 타고난 것 같기도 했지만.
“……둘이 거기서 장난치지 말고 얼른 들어가 보게.”
“예. 세자 저하.”
“저희는 이만 물러나 보겠사옵니다.”
둘이 묘하게 쿵짝이 잘 맞는 것이 달갑지는 않았으나 자신이 이 시간에 세화를 데려다준다고 고집을 부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둘이 함께 있는 것이 맘에 안 들기는 하지만 솔직히 다른 어떤 사내가 세화의 곁에 있었어도 맘에 들지 않았을 것을 알았다. 그래도 천호라면 그간 봐 온 바로는 인성도 믿을 만한 인물이었고.
‘나는 국본의 몸이니…… 사사로이 움직이는 것에도 한도가 있지.’
세자는 누이동생의 처소를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는 어쩌면 나보다는 자유로울까.’
거기까지 생각한 세자는 이내 곧 고개를 저었다.
그 어릴 적 시아의 말이 떠오른 탓이었다.
아까 지화를 떠올린 탓인지 더 생생하게 떠올랐다.
‘아마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시아가 알게 된다면 조용히 넘어가지는 않겠지.’
세자는 몸을 부르르 떨며 서둘러 자신의 처소로 돌아갔다.
세자가 궁을 비우고 저자를 돌아다녔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적으면 적을수록 좋았다.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어쩐지 지화……가 세화와 조금 닮은 듯한 기분도 드는군.’
이제는 얼굴도 잘 떠오르지 않는 여인인데. 이상한 일이었다.
***
늦은 시간 궁에서 빠져나온 두 사람은 둘 다 무거웠던 어깨를 두드리며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세화 누님은 시영원으로 가십니까?”
“응. 근처까지만 데려다주면 돼. 시영원 인근은 자체적으로 순찰을 도니까.”
“그래요? 시영원에는 자주 드나들었는데 그건 몰랐네요.”
“아무래도 여자들이 많이 사는 곳이기도 하고. 특히 예전에 그 인신매매범들에게 잡혀 있던 여인들이 시영원에 의탁했을 때 그들을 팔아넘긴 남편인지 부모인지가 찾아와서 난동을 부리곤 해서 그때부터 순찰을 돌기 시작했다더라고.”
“아, 그때 일은 저도 듣긴 했습니다만…… 참 사람이 맞긴 한 건지. 팔아넘긴 본인들이 염치도 없이 다시 찾아왔다는 거죠?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응.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없었던 일이 되는 건 아니더라고. 애석하게도.”
두 사람은 인간 말종들에 대해 같은 견해를 보이며 시영원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 갔다.
시영원이 아무리 옹주 자가의 이름 아래 보호받고 있다고는 해도 그런 일들이 있었다 보니 조금 불안한 것도 사실이라 젊은 사람들이 순찰을 돌고 있었다.
특히 시영원에는 어린 시절부터 간단하게 조금씩이라도 무예를 익힌 사람들이 여럿 있다 보니 순찰을 돌 인물이 부족하진 않다고.
“흠. 그렇게 대단해 보이는 사람은 많지 않던데요.”
“시영원은 사람이 많은 만큼 먹고사는 게 우선이니까. 병사들처럼 무예만 익히고 있을 순 없지 않겠어? 보통은 호신술 정도고. 뭐.”
가끔 뛰어난 사람도 있다고 들었지만…… 세화도 자세한 건 잘 몰랐다.
체탐인 같은 극비 정보는 시영원 내에서도 아는 사람이 적은 이야기였으므로, 아무리 두 사람이 옹주 자가의 측근이라고 해도 굴러들어 온 돌들이었다. 굳이 말해 줄 이유도 없었으므로 세화도 천호도 그것까지는 알지 못했다.
다들 아마 필요하다면 옹주 자가께서 직접 말씀해 주실 거란 생각에 말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고.
“나도 호신술을 좀 배워 볼까.”
“몸부터 만들어야 하는데 시간이 되시겠어요?”
“아…… 산에서 지낼 때는 매일같이 산을 오르내리느라 체력에는 나름 자신이 있었는데. 하긴 공부하고 일하고 하다 보니 요즘 체력이 달려.”
“그건 혹시 나이 탓…… 아얏!”
철썩!
차진 소리와 함께 세화의 손바닥이 천호의 등을 강타했다.
“어디 가서 그런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
“아파요오.”
“그 커다란 덩치로 아프긴.”
“세화 누님, 저한테 너무 허물없으신데.”
“……그러게.”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인지, 아니면 동생이 생각나서인지 천호를 대할 때는 이상하게 편했다.
너무 편해서 이렇게 등짝을 철썩철썩 두들길 정도로.
‘살면서 이렇게까지 누군가와 거침없이 지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어쩌다 이렇게 허물없이 지내게 되었지?’
세화는 내심 조금 미안한 마음도 들었으나 천호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지 대화를 이어 갔다.
“본인이 의원인데 체력이 떨어진 것 같으면 보약이라도 좀 해 드시는 게 어때요?”
“그럴 여유가 어딨겠어. 윗전들께 올릴 탕약 챙기기 바쁜데.”
“의원이 할 말이 아니네요.”
“원래 의원이 자기 몸은 못 챙기지. 게다가 약만으로는 역시 한계가 있고.”
“그럼 운동하셔야겠네요.”
천호가 정론을 말했다. 그리고 세화 역시 가장 보편적인 답변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없는걸.”
“지금은 괜찮아도 분명 나중에 나이 들면…… 아얏, 아프다니까요.”
천호는 대화와 함께 자연스럽게 매를 벌었다.
“나는 괜찮지만 다른 사람 앞에서 너무 나이 얘기 하지 마라. 잘못하면 불경죄니까.”
“제가 그렇게 높으신 분을 뵐 일이 있을까요?”
“주상 전하도 뵈었다며. 무슨 소리야.”
“아니 그건…… 좀 특수한 경우잖아요.”
지난번 강원도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는 거다.
“전하께서 직접 치하하셨다고 들었는데?”
“아니, 저는 그때도 대단한 거 안 했습니다. 전부 그 전직 좌세마라는 사람이 했다니까요.”
세자익위사 사람들의 말은 달랐지만 세화는 굳이 더 이상 추궁하지 않기도 했다.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사정이 있다는 걸 세화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천호도 그 화제는 달갑지 않았는지, 얼른 오늘 일로 화제를 옮겼다.
“그래서 세화 누님은 오늘 세자 저하랑 무슨 애길 했어요?”
“별걸 다 물어봐.”
“그냥요. 옹주 자가께선 세자 저하 장가보내기에 관심이 지대하시니까요.”
“아…… 그야 그러시겠지.”
세자빈을 맞이하는 세자에게 장가보낸다는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옹주 자가만이 아니라 세자가 혼인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많았다.
애초에 일국의 세자가 스무 살이 넘었는데 아직까지 혼인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이상한 일이었다.
그래서일까 세자 본인도 얼마 전, 수영 옹주의 병이 낫고 나면 빈을 맞이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고.
그 덕분에 궁 안에 있는 이들이 다들 들떠 있던 것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화는 세자의 말에 다른 사람처럼 즐거워할 수가 없었다. 세자의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세자가 자신에게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도.
그것은, 세자의 마음은 너무나 기쁘지만, 세화는 결코 속 편하게 기뻐할 처지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세자에게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일개 의원이고 그분은 세자 저하이시다. 내가 그분에게 공연한 마음을 품어서 어찌할 거야.”
“흐음. 당장 아이부터 낳으라는 것도 아니고, 일단 본인 감정에 솔직해져 보는 건 어때요?”
철썩!
세화의 매서운 손길이 다시 한번 천호의 등짝을 강타했다.
다소 무신경한 발언이었으므로 천호도 별말은 하지 않고 항의의 뜻으로 한마디만 했다.
“아픕니다.”
“옹주 자가를 모시는 사람이 말을 그렇게 막 하면 앞으로 정말 어찌하려고 그래. 옹주 자가의 위신을 상하게 할 셈이야?”
“송구합니다.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충분히 피할 수 있었을 텐데도 일부러 맞아 주는 성의를 봐서 세화도 등짝 스매싱 한 방으로 질책을 멈추기로 했다.
‘게다가 옹주 자가의 이름을 꺼내니 바로 말을 듣는 건 좀 귀엽네.’
세화의 기억 속 어린 동생은 말을 지지리도 안 듣는 아이였는데.
이렇게 오랜 세월 보지 못했으면 어느 정도 기억 속에서 미화될 법도 한데 어쩌면 이리도 현실적인 기억만 떠오르는지.
‘그래도 나름…… 귀엽긴 했는데.’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을까. 동생만 생각하면 가슴이 무거웠다.
“그렇게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는 문제라면 좋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