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201)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201화(201/326)
실질적인 책임자는 서울에 있는 시영원에서 파견된 선생 출신이고, 종친 여식들은 낙하산(사실) 방패막이. 거기에 그 지역 토박이 출신도 권한을 축소해서 실무를 함께 맡길 거다.
게다가 종친 여식들을 계속 지방에 있게 할 수는 없으니 몇 년 단위로 한양으로 불러들이든 다른 지방으로 옮기든 할 거니까 그 지역에서 제대로 된 영향력을 가지기는 어렵고.
지역 토박이가 힘을 가지기 좋은 구조지만 권한은 축소하고 본사(서울 시영원)와의 연결이 적은 데다 종친과 시영원 선생 출신에게 견제받을 테니까 성가신 일을 줄일 수 있었다.
‘서로서로 견제를 하도록 만들어야 투명하게 오래 가지.’
원래 이런 시스템은 인간 불신을 기본 베이스로 깔고 만들어야 오래가는 법이다.
양아치 같은 놈들이 사회생활도 안 해 본 순진한 종친 아가씨들 등쳐 먹을 가능성도 있고…….
그래서 지금! 시영원과 시월각에는 종친 여식들이 모여서 사회생활 겸 진상 체험을 하고 있었다. 시월각은 진상이 적은 편이지만 의외로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니까.
‘뭐 신분만으로 주변에서 다 숙이고 들어가야 하는 삶이니 새삼 크게 어려움은 없겠지만…….’
진상들도 종친 누구누구네 아씨라는 말만 들어도 다들 끼아악, 살려 주세요! 하고 사라지려 할 테니.
가끔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경우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는 결국 내 이름을 앞세우면 된다는 것도 알려 주고 있다.
과도한 음주로 인한 인사불성, 혹은 분노조절장애 환자를 대비한 무력이야 잘 챙겨 주고 있고.
다만 순진한 애들이 놀랄 수 있으니 멀리서라도 겪어 보게 해야지. 진상은 자고로 백문이 불여일견, 백번 설명해 주는 것보다는 한번 직접 보는 것이 나았다.
덕분에 초반에는 무서워서 그만두고 싶다는 심약한 아이들도 가끔 있었지만 그럭저럭 잘 달래서 교육 중이었다. 일은 둘째치고 이런저런 교육을 받고 경험해 보는 것은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실질적으로 집을 떠나 타 지역에서 버틸 수 있을지는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고. 어차피 집안에서 부리던 몸종이나 하인이 따라올 테니 혼자는 아니겠지만.’
어쩌면 시집가는 것 외에 집에서 벗어나 볼 유일한 기회이기도 했으니 호기심으로 자원한 사람도 있을 법했다.
게다가 다들 좋은 집 아가씨들이라 좋은 점이 있었다.
어릴 적부터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쓰고 자랐다 보니 눈이 높은 고급 인력이라 생각보다 여러 가지로 쓸모가 많았다.
‘의외로 능력 있는 애들을 잘 알아보더라고.’
글이든, 그림이든, 노래든, 춤이든.
물론 이런 건 시영원 아이들 중에서도 선생님 소리를 들을 정도로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어느 정도 안목이 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고급문화만 향유해 온 종친들답게 다른 안목도 뛰어났다.
말 그대로 눈이 높아서 좋은 물건을 잘 알아본다.
비단이니 종이니 목재니 도자기니…… 질이 좋은 물건을 다들 한눈에 파악하곤 하더라.
가끔 본인이 좋아하는 분야는 그냥 슥 보고도 어디 어디 산 비단이네요~ 어디 옥이네요~ 하고 알아보기도 하던데 역시……. 필요해서 공부하는 것과 좋아서 공부하는 덕후는 다를 수밖에 없더라.
그렇다 보니 분야에 따라서는 나보다 낫기도 했다.
‘다들 자기 관심 분야가 있는 거지.’
“옹주 자가. 오셨습니까.”
내가 들어가니 즐겁게 수다 떨고 있던 여인들이 동시에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대부분 20세도 되지 않은 젊은 여인들이다.
나는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적당히 스몰토크를 하며 스리슬쩍 수업으로 넘어갔다.
“자, 그럼. 진상 손님이 왔을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말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람을 불러야지요.”
처음에는 다들 얼어서 아무 말도 못 하곤 했는데 근래에는 분위기가 많이 풀어져서 대답이 나오곤 했다.
“시월각이 누구 소유인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 감히 소란을 피운 자들은 엄히 다스려야 합니다.”
“그 말이 맞습니다. 하지만 윗사람으로서 위엄을 보이지 않으면 권위가 살지 않는 법이니. 관리자가 된다면 겁먹은 모습을 보여선 안 되겠지요?”
이 곱게 자란 사람들이 어디서 취객이나 진상을 봤을 리가.
‘뭐, 영천군 같은 사람도 있으니 술주정뱅이 정도는 집에서 봤을 수도 있긴 하겠지만. 대부분 이 나이쯤 되면 성인 남성들과는 생활환경이 분리되어 있으니까.’
그런 이유로 몇몇 현장직이나 무대에 오르는 광대들에게 리얼한 생활 연기를 맡기곤 했다.
“내가 우스워? 니들이 뭔데, 날 그렇게 쳐다봐!”
행패 부리는 진상 연기를 리얼하게 펼치고 있는 사내를 보며 대부분의 소녀들은 몸을 움츠리면서도 눈을 반짝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던 사람이 흐느적거리며 소리를 지르니 그럴 만도 했다.
“세상에…… 정말 저런 사람이 있사옵니까?”
“안타깝게도…… 지금은 귀양 가신 어느 분도…….”
“아앗…….”
다른 종친들 사이에서도 평이 안 좋았나 보다.
진상 연기 시연을 보고 충격받은 귀한 집 아가씨들은 대조적으로 담담한 나를 보며 눈동자를 떨었다.
“휴우. 옹주 자가께서는 어찌 놀라지도 않으십니다.”
“!”
대충 내 호적 나이와 비슷한 아이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리 말하자 몇 안 되는 스무 살 넘은 여인이 당황해 눈치를 주는 것이 보였다.
‘호오. 경언군에 대해 아는 쪽과 모르는 쪽의 세대 차이가 이렇게…….’
아마 모르는 쪽도 내 앞에서 ‘경언군’이라거나, ‘폐서인 이수’ 같은 이름을 꺼내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부모가 엄격하게 가르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놈의 싸패 행각에 대해서 차마 사실적으로 가르쳐 주지는 못했겠지.’
사건 당시야 이것저것 소문이 있었고, 이후에 내가 고의적으로 소문을 퍼트린 적도 있으니까 아는 사람이 적지 않겠지만 너무 어린 아이들 귀에 그런 흉흉한 얘기까지 들어가는 건 막았겠지.
민가의 아이들이라면 몰라도 다들 귀한 집 아가씨들이니.
‘모르면 모르는 대로 두는 게 낫지.’
그놈과 연관되면 정서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가 하나도 없으니.
나는 긴장한 얼굴로 내 눈치를 보는 여인에게 괜찮다는 뜻으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대체 나에 대한 소문이 어떻게 나 있길래 저렇게 긴장하는 거야.
‘내가 누구…… 크게 벌준 적이라도 있었나.’
음. 영천군이 그 모양이 된 건 나 때문이 아니라 자업자득인데 설마…….
새삼 나에 대한 평판이 조금 신경 쓰였지만 뭐, 아무려면 어떤가 싶어서 그냥 관심을 끄기로 했다.
‘그런 것까지 생각하는 건 귀찮아.’
여기 순진한 아가씨들 가르치는 것 외에도 할 일이야 쌓였는데 말이지.
그리고 사실 이런 모임은 딱히 싫지 않았다. 사실 반쯤 또래 여자애들과 수다 떨며 노는 것 같기도 하고.
물론 내 실제 나이를 생각하면 또래 아이가 아니라 젊은 애들 사이에 끼어 노는 것 같지만.
본인들도 비슷한 생각인지 까르르르 몰려다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외로울 테니 한 명씩 보내지 말고 두엇을 함께 보낼까.’
이 시대에 저렇게 가까운 동성끼리 함께 여행을 가는 일도 없을 테니.
개다가 성격도 제각각이니 상호 보완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부모가 무슨 생각으로 보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아가씨도 있는가 하면, 타고나길 사람 부리는 데 익숙해서 절대 남한테 지지 않는 분도 있고.
‘기본적인 인성 테스트는 거쳤으니까…… 일단.’
사실 종친들이 지방에 가서 갑질을 하면 막을 사람이 없으므로 지원자들에 대한 인성 테스트 과정도 거쳤다.
주로 시영원 아이들과 그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통한 리서치.
그리고 시월각에 방문했을 당시의 태도 등을 종합해서 판단했다.
‘시월각은 별실에 접객 담당 하나가 붙어서 대기하는 시스템이라 아무래도 태도가 잘 나타나는 법이고.’
그러니 여기 모여 있는 건 어느 정도 인성이 괜찮다는 평을 듣는 아가씨들이었다.
덕분에 교육 시작하고도 문제가 생긴 적은 없었다. 자기들끼리 언쟁 정도는 한 거 같지만 그 정도야 뭐.
종친 여식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진상을 통한 담력 교육만이 아니었다.
장부 작성법, 그리고 공연에 관한 기본 사항과 신규 공연 계약 시에 필요한 사항, 가게 내부 인테리어에 관한 것 등등 필요한 건 전부 가르치고 있었다.
‘이렇게 가르쳐 놨는데 혼인 때문에 안 한다고 사퇴해 버리면 슬프겠지.’
오히려 신분이 높을수록 혼인을 피하기 어렵고, 혼인 후의 행보에 지장이 생기니 성가신 일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여기 있는 아이들은 다들 의욕이 넘치는데.
‘물론 실전에서 깎이는 게 의욕이지만.’
조금 익숙해지고 나면 실제로 시월각 내에서 문제 일으키는 손님들과 직접 마주하게 할 생각이다.
‘나야 전생에 아르바이트도 했었고, 어린 시절 미친놈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받은 적도 있고, 신분도 깡패니까 조금 막 나갔는데 다들 어떨지 모르겠네.’
적당히 수업을 마치고 나는 피곤하다는 핑계로 먼저 자리를 떴다.
이럴 때는 원래 윗사람은 빠져 주는 것이 예의인 법이라.
듣기로는 내가 가고 나면 한참 더 다과를 즐기며 수다를 떨고, 공연을 보다 간다고 한다.
핑계 김에 부모님 간섭 없이 놀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랴.
나야 아무래도 자주 보는 것도 아니고, 신분 차이도 있어서 허물없이 지내는 것은 어려울 테지.
‘게다가 몇 년이나 자라지 않은 걸 뻔히 알고 있으니 여러모로 말조심도 해야 하고.’
요새 많이 자랐다고는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었다.
내가 먼저 나오는 것을 본 소이가 신경 쓰이는 듯 소곤거렸다.
“옹주 자가께서도 가끔은 함께 다과를 즐기다 가시는 게 어떻겠사옵니까?”
“마음은 알겠지만 나도 진짜 피곤한데. 나 여기 올 때도 졸면서 왔잖아.”
내 대답에 소이는 선선히 납득하면서 조금 아쉬운 눈치였다.
“그건 그렇습니다만…… 피곤하시면 업어 드릴까요?”
“그 정도는 아니야. 좀 움직이기도 해야지. 음, 아직 조금 졸리긴 하네. 배도 좀 고프고.”
“아까까지만 해도 배부르다고 하셨는데 이렇게 돌아서면 배고프다고 하시니 큰일입니다. 어서 들어가 쉬시지요. 아기씨.”
종친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예약해 둔 특실을 나와 아래로 내려오니 무대에서는 공연이 한창이었다.
‘아, 매향이다. 안 보고 가면 삐지겠는데.’
나는 무대를 내려다보며 매향이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마침 나를 찾아낸 듯 매향이가 눈을 찡긋거리자 여기저기서 술렁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매향이가 나를 봤어!”
“아니야! 나야!”
“웃기네. 시선이 전혀 안 맞잖아! 나야!”
“…….”
여기서 댁들이 아니고 나라고 하면 좀 웃기겠지.
내 뒤에 있던 소이가 떨떠름한 얼굴로 속삭였다.
“이쪽 본 거죠?”
“조용히 해.”
악성 개인팬은 잘못 엮이면 성가시다고.
매향이의 노래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뒤쪽으로 가자, 나와 소이의 얼굴을 본 관계자들이 말없이 문을 열어 주었다.
“아기씨!”
“한동안 못 봤는데 요새는 어때?”
“저야 아기씨가 보고 싶어 혼났지요. 근래에 바쁘시다는 말씀은 들었습니다. 그리고…….”
매향이의 시선이 나를 훑더니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다.
“후후. 정말 뵐 때마다 쑥쑥 자라고 계시네요. 아기씨께서 성장하시면 아쉬울 것이라 생각했는데, 정작 이리 성장하시는 모습을 뵈오니 소인이 왜 이리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으음. 다들 나를 볼 때마다 눈시울을 붉혀서 큰일이야.”
“어머나. 소인이 주책맞게 아기씨 앞에서.”
치렁치렁한 무대용 옷을 벗고 한결 가벼워진 매향이가 눈시울을 누르는 것을 보고 나는 한숨을 쉬며 매향이를 안고 토닥여 주었다.
“아이참. 다들 큰일이라니까.”
“후후후. 그렇지요.”
매향이는 조금 복잡한 얼굴이었지만 곧 웃으며 대화를 이어 갔다.
“참, 아기씨 덕분에 요즘에는 새로운 걸 해 보자는 말이 나오고 있답니다.”
“뭔데?”
“지난번에 아기씨께서 강원도에서 그러셨던 것처럼 다른 지방에서 기녀들을 조금씩 데려오고 계시지 않습니까. 게다가 요즘에는 연극에 남녀가 함께 서는 것이 문란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고요.”
“음. 그렇지.”
세자와 세화가 무대 위에서 리얼한 치정 싸움을 벌인 것이 계기 같아서 솔직히 웃을 수 없는데 웃겼다.
“그래서 근래에는 아예 동성들만으로 이루어지는 연극이 주류를 이루면서 저희 기녀들이 모여서 주요 배역을 맡은 가극(歌劇)을 해 보면 어떨까 하고 있습니다.”
“가극?”
“예, 기녀들마다 특기가 다르다지만 다들 기본은 하거든요. 게다가 소인처럼 노래가 특기인 기녀들이 제법 있고요. 소인이 제 입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조금 면구스러운 말씀이지만, 미모와 재능을 두루 갖춘 인재들이 모여 있으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
괜찮은데.
“어라, 그럼 기녀들이 남장하는 거야?”
“배역에 따라서는요.”
“……매향이는?”
“글쎄요. 어찌하올까요?”
그렇게 말하며 매향은 다시 내게 한쪽 눈을 찡긋하며 윙크를 날렸다.
‘이 사람 남장할 생각 만만인 것 같은데.’
잘 어울리겠다. 그리고 또 동시에 든 생각은 이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