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204)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204화(204/326)
이렇게 말하면 또 할 말이 없네.
결국 다시 말없이 서류에 집중하고 있는데 밖에서 궁녀가 누군가의 방문을 고했다.
“옹주 자가. 세화 의원 들었사옵니다.”
“아, 들어오라고 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세화의 일상은 변함이 없었다.
“오늘도 고생이 많네.”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옵니다.”
요즘에는 탕약이나 시침만이 아니라 안마와 찜질까지 코스에 추가되었다.
급성장 중인 몸이 불편하지 않도록 돌봐야 한다나.
아직도 종종 뼈마디가 쑤시는 걸 보면 설득력이 있는 말이라 세화의 말에 고분고분 따르고 있었다.
“약은 여전히 맛이 없군…….”
“송구하옵니다.”
내 투정도 익숙해졌는지 세화도 이젠 웃으면서 넘기고 있었다.
안마와 찜질 정도는 이제 다른 사람에게 넘겨도 될 것 같은데 세화는 굳이 모든 것을 직접 하고 있었다.
‘음. 나야 다른 사람보다는 세화가 아무래도 마음이 편하지만.’
여러 가지 의미로 믿을 만한걸.
세화에게 치료받는 동안은 일을 할 수 없으므로 나는 몸에 힘을 풀고 누워 세화의 손길에 몸을 맡겼다.
“하우우.”
아직 안마받았다고 이런 소리가 나올 나이가 아닐 텐데.
“혹 미편하신 곳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셔야 하옵니다.”
“음. 관절이 삐거덕거리는 거랑 일이 많다는 거 외에는 딱히.”
내 말에 세화도 난처한 얼굴을 했다. 한숨 쉬고 싶은데 참고 있는 얼굴이었다.
“세자 저하만큼은 아니지만 옹주 자가께서도 너무 일이 많으시옵니다. 너무 무리하고 계시지 않사옵니까.”
“한동안 시도 때도 없이 잠들다 보니 일이 쌓여서 그래.”
다행히 이 시대는 비교적 다들 느긋해서 촌각을 다투는 일은 별로 없었다.
게다가 나는 워낙에 실무자들에게 맡길 수 있는 일들은 전권을 맡기는 편이었고, 나는 나중에 확인만 하니 일이 적은 편이었다.
응. 그러니까 ‘적은 편’.
‘다들 일을 잘해서 다행이지.’
“그래도 덕분에 많이 자라시지 않았사옵니까.”
“아직 더 자라야 해…….”
“예. 더 자라실 것입니다.”
내 투정 섞인 목소리에 세화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서 듣고 있던 소이도 흐뭇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근래에 옹주 자가께서 쑥쑥 자라시니 침방(針房) 나인들이 우스갯소리로 요즘 옹주 자가 덕분에 쉴 틈이 없다고 하질 않겠습니까.”
“대신 그 전 8년간 옷을 많이 안 지었잖아.”
“그야 옹주 자가께서 옷을 많이 안 지으신 거지요.”
“내가 안 지어도 옷이 자꾸 생기는데 뭐 하러 새로 지어.”
부왕이나, 중전이나, 세자가 자꾸 새 옷을 입히려고 하니까 나라도 좀 자중해야 할 거 아냐.
솔직히 중전은 내 옷 안 챙기면 하나밖에 없는 옹주도 안 챙기는 매정한 어머니라고 뒤에서 욕먹을 위치라 얼마나 꼼꼼하게 챙겼는데.
우리 처소 궁녀들이 날 안 챙기는 것도 아니어서 가끔 과하게 느껴질 때도 있을 정도였다.
‘사실 생각해 보니 자기 아들 대신 독까지 먹은 아이면 살뜰하게 살피고 싶을 만도 하고.’
물론 요즘엔 급격한 성장기라 나도 옷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긴 하는데, 주변에서 내가 그런 생각을 할 틈도 주질 않았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왕실 가족들과 담소 나누는 자리에서 농을 섞어 ‘요즘 깨닫고 보면 소매가 짧아져 있는 것이 불편해 그냥 옷을 좀 낙낙하게 지어야겠다’고 했더니 세자가 울컥해서 화를 내기도 했다.
‘새 옷 지어 줄 테니 그냥 좀 입거라.’
‘아니, 옷이 금방 끼어서 불편하다니까요!’
그리고 그런 우리를 보고 있던 중전마마는 웃으며 세자를 놀렸다.
‘옹주가 조금 참아 주세요. 세자는…… 은근히 팔불출이지 않습니까. 사랑스러운 누이동생이 조금 큰 옷을 입고 있는 것도 용납할 수 없는 모양입니다.’
‘아니옵니다!’
‘뭘 또 그리 부정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뿐인 누이동생에게 옷을 새로 지어 주고 싶다는 게 이상한 일도 아닌 것을요. 그렇지 않사옵니까, 전하.’
‘세자가 조금 솔직하지 못한 면이 있지.’
……근래 조선 로얄 패밀리의 트렌드는 세자 놀리기인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나도 동참했다.
‘오라버니께서 이 동생을 그리 생각해 주고 계실 줄은 몰랐사옵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조금 솔직해지시면 어떻겠사옵니까. 오라버니.’
‘너까지…….’
세자의 얼굴에 은은한 배신감이 떠오르는 것이 제법 보람차고 재미있었지.
잠시 회상에 잠겨 있는 사이 세화가 묘하게 들뜬 얼굴로 물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옹주 자가께서 또 재미있는 일을 하신다고 들었사옵니다.”
“재미있는 일? 요즘 내가 하고 있는 건 조보에 관한 것밖에 없는데.”
“예. 바로 그 조보에 대해 저도 들었사옵니다. 옹주 자가께서 배포하신다면 이제 다들 조보를 편하게 사서 볼 수 있겠다지요.”
“어라, 세화 의원도 조보에 관심이 있었구나.”
그러고 보니 의국에서는 조보를…… 안 보던가?
“언제부터 판매하실 예정이신지요? 한양 외의 다른 지방에서도 판매하실 예정은 없으신가요?”
“음…….”
뭐 숨길 일은 아니니 상관없나.
“세화 말대로 한양을 중심으로 시작할 거야. 지방에는 아무래도 인쇄소 만드는 데에도 시간이 걸리니까 점진적으로 늘려 가려고. 왜, 전에 들었지? 각 지방에 시영원 분원도 만들 생각이거든. 기왕 이렇게 된 거 같이 만들면 좋을 거 같아서.”
“과연 옹주 자가께서는 영명하십니다.”
세화가 저렇게까지 대놓고 칭찬하는 거 별로 못 본 거 같은데.
세화도 조보를 보고 싶었는데 쉽게 구해다 볼 수 없었던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짠했다.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 중에는 세화 같은 사람들이 적지는 않겠지.’
“조보는 한글판과 한문판 두 가지로 만들까 고민 중인데 어떨 거 같아?”
“한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으니 아무래도 한글판이 많이 팔리지 않겠습니까?”
“음. 아무리 한문에 익숙해도 한글이 더 눈에 잘 들어오는 건 사실이긴 하지.”
아무래도 초반에는 수요 예측이 조금 난관이 있을 듯해서 미리 수요조사 중이었다.
‘그래도 역시 한양에 사는 사람들이 문맹률이 낮고 인구수가 많으니 잘 벌리겠지. 여기서 번 돈으로 다른 지역까지 확장하면 별문제가 없을 거 같고…….’
아마 다른 지역에서 판매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한양에서 찍어 낸 조보들을 싸 들고 지방으로 내려가서 파는 사람이 많을 듯했다.
“사실 세화한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저에게 말씀이시옵니까?”
“응.”
일단 처음에는 조보만 판매하겠지만 조금씩 지면을 늘릴 생각이었다.
물론 조보와는 구분되게 따로.
민간에서 일어난 사건·사고라든가, 나중에는 각 지방에서 올라오는 정보 같은 것을 넣으면 좋지 않을까 하고.
지방방송처럼 지역 내에서 필요한 정보만 따로 페이지 추가하면 어렵지 않을 거 같고.
어차피 나야 시영원 아이들 통해서 정보 수집이 가능하니까 큰 문제도 없었다. 애들에게는 진위 확인만 제대로 하도록 당부하고.
지금 다른 지역에도 분원이 생기고 있으니 정보 수집에는 어려움이 없을 터였다.
타 지역에서 오는 정보가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려면 시간 차야 있겠지만. 지금은 우선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전해진다는 사실에 의의가 있는 거고.
내 계획을 전하자 세화는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참으로 좋은 생각이시옵니다! 다른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은 쉬이 알 수 없으니까요.”
“뭐, 조정에서 원하지 않는 정보는 한번 걸러 내겠지만.”
아마 역병이 퍼진다거나 하면 민심이 동요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정보를 차단할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 저에게 부탁하고 싶다는 것은 어떤 것이옵니까?”
“응. 간단한 의학상식 같은 것을 지면에 같이 실으면 좋지 않을까 하고. 실생활에서 흔히 쓸 수 있는 치료법이라든가, 다쳤을 때 응급처치법 같은 거 말이야.”
“그렇군요!”
“세화에게 말하는 것은 세화가 아무래도 서민들에게 필요한 치료법도 잘 알 거 같아서 그래. 내의원에만 맡기는 것이 아니라 괜찮다면 혜민서 의원들에게도 설문을 해 볼까 싶기도 하고.”
“알겠습니다. 옹주 자가. 제가 의국 의원들의 의견을 모아 간단한 치료법들을 정리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세화 취향에 맞을 거라는 생각은 했는데 저렇게 눈을 반짝이는 걸 보니 보람이 있군.
“그리고 이건 아까 얘기랑 관계없이 그냥 의견을 묻는 건데.”
“예. 하문하시옵소서.”
세화의 눈이 너무 반짝여서 좀 부담스럽다…….
나를 그렇게 보지 마…….
“이것도 어쨌든 나름 수익 사업이잖아? 그래서 광고……를 받아 볼까 하거든.”
“광고요?”
현대의 신문이야 이젠 신문 대금보다도 광고비가 주수익으로 변질된 사업이지만, 여기는 신문 자체가 목적인 사람이 많으니까.
내가 이걸로 뭐 대단히 큰 수익을 내자는 것도 아니고.
“응. 이것도 당장은 아니지만 다른 지역까지 퍼지게 되면…… 사람 찾는 글이라든가, 돈을 받고 게재하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거든.”
“!”
내 말에 세화는 떠오르는 것이 있는지 표정이 경직되는 것이 보였다.
‘세화도 동생이 찾고 싶겠지.’
혹시 가족들만 아는 뭔가 신체적 특징이라도 있으면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그것도, 정말, 좋은 생각이신 것 같습니다.”
“그래? 천호도 누나를 찾고 있다고 해서 올려 볼까 생각했거든.”
“아. 예. 그렇군요.”
“정작 천호는 누나에 대해 제대로 기억하는 게 없어 어렵겠지만 천호의 누나가 만약 천호를 찾으려고 한다면 음…… 조금은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고.”
어떤 의미로는 천호 덕분에 떠올린 거기도 하고.
‘흠. 생각해 보니 사람 찾는 광고가 의외로 좀 들어올 거 같네.’
전국으로 배포되는 데에 시간이 걸린다지만 오래 걸려 봐야 한 달 아닌가. 읽는 사람 수가 어느 정도일지는 모르지만 분명 효과가 있을 것 같았다.
인도적인 차원에서 정말 가족을 찾는 게 맞다면 돈은 그냥 성의 표시 정도로만 받고 올려 줄 생각이었다.
‘물론 사람 찾는다고 해 놓고 실제로는 도망친 노비 찾겠다는 광고가 많을 거 같아서 떨떠름하다만.’
노비 찾는 주인인지 가족 찾는 이산가족인지 구분하려면 성가시단 말이지.
일일이 탐문 수사를 하기도 그렇고.
“그렇게 돈을 적게 받으면 곤란하지 않겠사옵니까.”
“음. 그래서 실은 세화에게 부탁할 게 하나 더 있거든.”
“제게요? 이번에는 또 무엇이옵니까?”
세화는 이번에야말로 정말 짚이는 것이 없어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혹시 전에 말한 건 생각해 봤어?”
“옹주 자가께서 전에 말씀하신 거라면…… 아, 혹시 소설 말씀이십니까?”
“응. 괜찮다면 연재 형식으로 게재해 보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거든.”
“연재 형식…… 으로 게재한다는 말씀은 혹시……?”
세화가 말을 흐렸지만 대충 뜻은 통했으므로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응. 조보……라고 하면 안 되지. 조보와 함께 판매할 예정인 서울과 경기 지역 소식지에 소설도 넣을까 하고 있거든.”
“네에?!”
세화가 정말로 놀란 듯 드물게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조용히 하라고 검지를 입가에 가져다 대며 고개를 저었다.
본인의 투잡을 다른 사람에게 절대 들키고 싶지 않은 공무원은 제 입을 막고도 문밖이 신경 쓰이는지 자꾸 뒤를 힐끔거렸다.
하긴 세자한테 들키면 정말…… 민망하겠지.
‘하지만 세자라도 내 처소에 그렇게 말없이 오지는 않는다니까.’
게다가 우리 처소 애들은…… 세자 저하의 말도 듣지 않는다.
물론 뭐 대단한 걸 한다는 건 아니고. 그냥 세자가 오면 다짜고짜 나한테 고한다는 뜻이다.
‘절대로 막을 수 없는 부왕은 정말 바빠서 막 오기도 힘들고.’
조금 진정이 된 듯하지만 여전히 불안한 기색의 세화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저어, 하지만 조보를 읽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관리나 유생들이 아닙니까. 그런 사람들이 통속 소설을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