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206)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206화(206/326)
서울 경기 등 가까운 지역의 관청들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매일 기별청에 사람을 보내 조보를 베껴 갔지만, 원래 며칠씩 모아서 전달되던 지역에서는 굳이 지저분한 손글씨로 보는 것보다는 깔끔한 인쇄본으로 받아 보는 것을 선호하게 되었다.
‘손으로 갈겨쓴 글씨를 보다 깔끔한 인쇄본을 보려니 눈이 맑아지는 기분이 든다나? 하긴 글씨가 지저분하면 눈에 잘 안 들어오니까.’
원래도 조보 받아다 해석해서 파는 사람이 있었을 텐데, 실업자 되는 거 아닌가 싶어서 원래 일하던 사람들에게 고용 계약을 권하고 있기도 했다.
산업기술의 발달은 실업자를 만드는 법이라 급격한 기술 발달이란 게 그렇게 좋기만 한 건 아니었다.
지금이야 아직 기계식 대량 생산도 아니니 반대로 고용을 창출하고 있지만.
“세책방도 직원 새로 고용했다며?”
“예. 조보도 그렇지만, 세책방 자체도 점점 규모가 커지고 있어서 혼자서는 허리가 휩니다요. 이게 다 아기씨 덕분 아니겠습니까?”
“지금은 5일에 한 번이지만 판매량이 조금 정착되면 매일매일 이렇게 팔아야 할지도 모르니까 각오해 두는 게 좋을 거야.”
“아이고.”
장씨 아저씨는 앓는 소리를 하고 있었지만 입은 웃고 있었다.
고생하는 만큼 더 챙겨 주고 있기도 하고. 조보를 사기 위해 세책방까지 온 사람들이 나온 김에 은근슬쩍 세책방을 둘러보며 아닌 척 소설책으로 손을 뻗은 덕분에 뜻밖의 매출도 더 오른 모양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제법 매출이 괜찮은데.’
아직 가격 책정이 좀 걸리는 부분이 있는데 원가 절감할 수 있는 부분 좀 없으려나.
박리다매를 생각하면 좀 더 내리는 방법도 있긴 한데.
‘종이 질을 두 가지로 해서 팔아 볼까? 있는 집에서는 좀 더 좋은 걸 원할 거 같기도 하고. 아니, 하지만 그렇게 장기 보관할 만한 내용이 아닌 경우도 많으니까 의미가 없을지도……. 게다가 앞으로 내용도 늘려 볼 생각이고.’
아직은 인쇄소에서 대량 생산이 익숙하지 않고, 조보 외의 다른 내용을 채우기도 어려울 거 같으니까 느긋하게 진행해 봐야지.
“요즘 세책방 장사는 좀 어때?”
“나쁘지는 않습니다만 아무래도 요즘에는 대박작이 별로 없어서 아쉽습니다. 지천 선생의 작품도 그렇고, 다른 인기작들도 연극으로 만들어지면서 매출이 팍팍 올랐었는데 요새는 좀 주춤하지요.”
“아. 요즘에는 눈에 띄는 게 없나?”
“예에. 아무래도 좀. 그래도 지속적으로 팔리는 책들은 여전히 잘 나가는 편입니다요. 연극 무대 옆에서는 여전히 잘 팔리고요. 인기작들은 ‘꽃 그림자’ 때처럼 삽화본을 시도하고 있습니다만 처음부터 삽화본으로 팔라는 사람도 있고, 삽화는 싫다는 사람도 있어서 수요 예측하기가 쉽지 않지요.”
“그럼 아예 처음 판매할 때부터 주인공 삽화만이라도 달아 놓을까? 아니면 속표지나 부록같이 따로 한 장 넣어 주는 것도 괜찮을 거 같은데. 아무래도 그림이 있으면 제목만 있는 것보다 눈에 잘 들어오고 인상에 남잖아? 다른 세책방 책들이랑 차별화도 되고.”
“역시 아기씨께서 상재(商材)가 남다르십니다요. 하지만 그렇게 팔았는데 잘 안 팔릴까 봐 걱정 아니겠습니까.”
“음…… 그림은 인쇄가 좀 성가시긴 하지? 적당히 무리 안 되는 선으로 한번 진행해 봐. 어차피 잘될 작품은 귀신같이 알아보는 거 다 알고 있어.”
이 아저씨 안목을 안 믿으면 세책방 장사는 못 했지.
“아기씨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참 요즘에는 시영원에서 다른 삽화가를 소개해 줘서 삽화가도 늘었습니다만……. 자기들도 해 보고 싶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던데 다른 삽화가를 고용해도 괜찮겠습니까?”
“시영원 사람들하고만 할 필요는 없지. 실력만 괜찮다면야. 어디나 다양성은 필요하고 사람 취향은 다양하니까.”
“알겠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직업군이 생기나요.
‘그래 봤자 아직 부업 정도겠지. 이 시대에 그림이 주가 되는 건 주로…….’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장씨 아저씨를 붙잡았다.
“혹시나 싶지만…… 심각한 풍기문란이 될 만한 책은…….”
“아, 아니! 아기씨께서 이 세책방의 주인이신 걸 알 사람은 다 아는데 제가 어찌 그, 그런 책을 팔겠사옵니까?”
장씨 아저씨는 칠색 팔색을 하며 펄쩍 뛰었고, 아까부터 함께 있던 천호가 못 들은 척 고개를 돌리는 것도 보였다.
‘아, 청소년 앞에서 할 얘긴 아니었나.’
장씨 아저씨가 정말 안 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이 세책방은 인쇄를 통한 대량 생산에 맛을 들였으니 수작업으로 만들어지는 춘화(春畵, 대략 18금의 야한 그림책)는 주력 상품이 아닐 터였다.
“팔지 말라고까지는 안 하겠지만 괜히 걸리면 귀찮아지는 거 알지?”
“그, 그럼요.”
“나중에 이상한 소문 나면 책임질 수 있어?”
“아기씨께서 아직 아기씨이신데 제가 어찌!”
내가 마님 소리 들을 정도 되면 제대로 팔아 보겠다는 뜻인가.
“나야 그리 빡빡하게 굴고 싶지 않지만…… 내 주변은 그렇지도 않거든? 혹시 모르니까 조심해.”
“예, 알겠습니다.”
사실 이 시대가 내가 야한 거 좀 봤다고 큰일 날 나이도 아닌데 아직 겉모습이 어린아이다 보니 주변의 과보호가 심했다.
지금 내 뒤에서 눈을 번뜩이고 있는 소이라든가.
‘소이도 야한 책을 아예 안 보는 거 같지는 않던데.’
궁녀들이라고 그런 데 관심 없는 것도 아니고. 그냥 다들 내 눈에 안 띄게 하려고 필사적인 모습이 나름 기특해서 그냥 모르는 척해 주고 있었다.
나는 심드렁하게 그런 생각을 하며 모처럼 저자를 걸었다.
“길에 활기가 넘치는 것은 좋은데 묘하게 어수선하네.”
“글쎄요. 근래에 고급 식당이 새로 생겼다고 듣긴 했는데 혹시 그것 때문일까요?”
“흐음. 나도 얘기는 들었는데 장사가 잘되나 보지?”
“예에. 듣기로는 사람이 줄을 선답니다.”
원래 한양에서 가장 핫한 고급 식당은 내가 예전에 시영원 사람들을 고용해 만든 곳이었다.
전직 양반……이 아니라 내 사노비들이 주방을 맡고 있고, 시영원 사람들과 일반적인 방법으로 취직한 사람들이 공존하고 있다.
비교적 오래전에 만들었지만 수익은 아직까지 무난하게 유지되고 있는 편.
가끔 문제가 생긴 적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제 경력도 많이 쌓여서 그대로 독립시켜도 될 정도다.
“그럼 우리 식당이랑 경쟁업체네.”
“하하. 궁금하십니까?”
“아무래도 좀?”
“하지만 거긴 사람이 많아서 예약을 해야만 들어갈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그럼 예약을 하지, 뭐.”
나는 이 시대의 부와 권력을 모두 갖춘 권력자~
그런 나한테 부족한 건~
“그……리고 어린아이는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고 들었습니다.”
“엑?”
……음, 부족한 건 노화? 아니, 성장?
내 떨떠름한 얼굴을 본 천호가 어색하게 웃으며 설명했다.
“술도 팔고 있고, 조용한 곳이라고 들었습니다. 예전에 기방에 가던 사람들 중에는 자연스럽게 시월각으로 가게 된 이들도 있지만 저쪽도 많이 찾는다고요.”
“음. 하지만 그렇게 말하니까 좀 찜찜하네.”
“말은 시월각처럼 공연을 할 뿐이라고 하는데 어떨지는 들어가 보지 않으면 모르는 법이니까요.”
천호는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으나 대충 무슨 의미인지 알 만했다.
내가 운영 중인 식당도 사실 술도 팔고 있고, 어린아이를 데리고 오는 경우는 드물지만 얘기를 들어보니 아무래도 조금 분위기가 다른 모양이었다.
“하긴 기방을 없앴다고는 해도 그쪽 수요층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방탕한 생활하던 놈들이 갑자기 조신해질 리도 없지 않은가.
물론 평범하게 잔치의 분위기를 띄우는 ‘공연’만이 목적인 경우는 지금도 엄격한 관리하에 출장 공연을 하고 있었지만, 사람들이 갑자기 바뀌는 게 아니다.
다방골에는 원래 자영업으로 노래를 부르는 기녀들도 있었고, 시월각으로 모두 데려온 것도 아니니까.
‘거기까지는 내가 어찌하기 어렵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시월각이나 수영 공원 등에서 공연할 수 있는 이들의 수는 정해져 있고, 지방에서 기녀들을 데려오면서 경쟁이 더 치열해졌으니 그 안에 들어오지 못하는 이들 역시 적지 않았을 거다.
게다가 아무리 능력으로 밀려난다 해도 원망이 생기기도 하고…….
“내가 다 관리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면 오만이겠지만 저런 게 또 생겼다고 생각하니 좀 짜증 나는군.”
“아직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내부 사정이 어떤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장사가 잘될지도 모를 일이고요.”
“음. 하긴 그것도 그렇지.”
장사라는 게 원래 쉽지 않기도 하고.
‘일단은 좀 지켜볼까.’
알아보려면 알아볼 방법이야 많지만 너무 경쟁업체 견제하는 것처럼 보일 거 같아 내키지 않는군.
그냥 평범한 식당이면 아무리 경쟁업체라도 그렇게까지 걱정하지 않아도 될 텐데 뭔가 찝찝했다.
‘사실 너무 경쟁자가 없는 것도 좋지 않지…….’
하지만 내가 하는 사업들은 대체로 경쟁자가 많지 않았다.
가이가 하고 있는 사업들은 비교적 경쟁하는 상단이 있지만 아무래도 뒷배가 든든한 곳과 아닌 곳의 차이는 있다고 들었다.
그 외에 채소 장사도 워낙에 내 신용이 탄탄하고, 겨울 채소 장사야 다른 곳에서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장사고.
시영 놀이터, 혹은 시영 공원이라고도 부르는 놀이공원 겸 공연장은 만들려고 만든 건 아니지만 그럭저럭 장사가 잘되고 있었는데, 다른 공터에도 어설프게 빙글빙글 돌아가는 놀이기구를 적당히 만들어 놓고 돈을 받는다는 얘기는 들었다.
다만 아무래도 이쪽의 놀이기구가 겉보기부터 차이가 있는 데다 돈을 쓴 만큼 튼튼했고, 운영도 나름 단련된 전문 인력들이 움직이고 있어서 뭔가 다르다나.
‘듣기로는 사고가 나서 운영이 정지된 곳도 있다고 들었는데.’
이거 정부에서 단속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도 나왔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냥…… 사고가 나지 않은 곳에는 우리 쪽 장인들 파견해서 놀이기구를 제대로 만들어 주고 제작비와 수수료를 받으라고 했다.
나중에 관리 소홀이 문제 되면 그건 다시 그쪽 책임이고.
어차피 규모 면에서 상대가 되질 않으니 경쟁 상대도 아니었다.
‘하지만 저 새로 생긴 식당…… 쪽도 어찌 보면 경쟁 상대는 아닐 거 같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나는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옹주 자가. 소식 들으셨사옵니까.”
“그렇게 말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
나는 모처럼 후원 정자에 앉아 평온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내 옆에는 고양이 한 마리와 까마귀 한 마리가 있었는데, 한 마리는 키우는 거고 한 마리는 키우지도 않는데 옆에 붙어 떨어지질 않았다.
사실 까마귀는 겨울에 강원도 가기 전에 적당히 풀어 줬는데, 내가 궁으로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디서 다치고 돌아다니는 거 한심해서 데려다 치료해 줬다.
‘같은 애가…… 맞겠지, 뭐.’
아니어도 상관없고.
다쳐서 데리고 있는 동안 온돌방에서 돌봐 준 게 문제였을까. 상처도 나은 듯해서 방생하려고 했더니 그대로 다시 안으로 들어오고, 밖에 나가는 걸 거부해서…….
날 따듯해지면 알아서 나갈 줄 알았는데 나가질 않고 이렇게 사람을 귀찮게 하고 있었다.
나가지도 않는데 굶기는 것도 그렇고. 지난 몇 개월간 먹이 주며 돌봐 줬더니 이젠 새장에 넣지 않고 풀어놔도 도망가지 않고 성가시게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거기에 까마귀라고 반짝이는 걸 좋아하는 건 여전해서 또 사람을 성가시게 하기에 가볍게 응징하며 교육하고 있었다.
요즘에는 꼬마 사이즈에서 벗어나다 못해 다소 두툼해진 고양이와 둘이 종종 싸우고 있던데 궁인들이 용호상박(龍虎相搏)도 아니고 봉호상박(鳳虎相搏)이냐고 웃을 정도였다.
“……아무리 고양이라지만 살을 빼야 하는 게 아닐까.”
“옹주 자가. 좀 들어주시옵소서.”
“응. 말해.”
“옹주 자가께서 하고 계신 조보 사업에 관한 일이옵니다.”
“조보를 왜? 아바마마께서 허락도 하셨는데.”
승정원과 주상 전하가 OK 했으면 문제없는 거 아닌가.
“양사(兩司)에서 상소문이 올라왔다고 하옵니다.”
“양사(兩司)? 양사면 사헌부(司憲府)와 사간원(司諫院) 아냐. 거기서 왜.”
사헌부와 사간원은 대체로 왕에게 직언을 하고 왕권을 견제하기 위해 존재하는 부서로, 품계는 낮아도 실권 있는 위치라고 할 수 있었다.
저기도 엘리트 코스라 삼사(三司, 사헌부·사간원·홍문관)를 거쳐야 승진길이 잘 열린다고 들었다.
나랑은 별 상관없지만.
“승정원에서 내용 확인까지 했는데. 내가 뭐 국가기밀이라도 유출했대?”
“그런 것은 아니옵니다만. 아무래도 이미 옹주 자가께서 하고 계신 사업이 많은데, 또 조보를 판매하는 것조차 옹주 자가께서 하시니 특혜가 의심된다는 상소가 올라왔다고 하옵니다.”
“조보를 찍어서 판매하자는 생각을 내가 했는데 특혜라고 하면…….”
물론 왕에게 바로 청해서 진행할 수 있는 게 특혜라면 특혜긴 하지.
아니, 그럼 무슨 공개 입찰이라도 했어야 하나……?
“그럼 그 일은 나중에 아바마마께서…… 아니, 오라버니를 통해 따로 언질이 있으실 테니 괜히 아는 척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예. 옹주 자가.”
“그리고 일이 어떻게 되든 초서 해석은 계속해야지.”
“……다른 사람 고용해 주세요.”
예상대로 다음 날. 세자가 사람을 통해 나를 불러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 설명했다.
“음. 그러니까 내가 아바마마를 통해 말해서 먼저 진행된 거지, 원래 계획을 하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 말인가?”
“듣기로는 그렇게 말하더구나. 백성들이 호구지책으로 하려는 일을 옹주가 먼저 시작해 버려서 그들은 시도조차 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그럴듯한 말이기는 한데…….”
안타깝지만 정치하는 놈들 중에 정말 백성들 생각해서 옹주 상대로 그런 소리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에 대해서 나는 무척이나 회의적이었다.
‘뭔가 있을 거 같은데.’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나는 다른 사람이 나와 비슷한 사업을 하는 것에 대해선 그렇게 부정적인 입장은 아니었다.
‘원래 경쟁업체가 없으면 발전도 없는 법이지.’
물론 지금 내가 운영하고 있는 동안에야 독과점을 하든 뭘 하든 나쁜 짓을 할 생각이 없으니 상관없지만, 이윤 추구를 최우선으로 삼는 기업 입장에서 경쟁업체 없이 독점 체제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지는 뻔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