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209)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209화(209/326)
세상에 그렇게 사람이 아닌 놈들이 많다니 큰일이었다.
“모아 둔 돈을 사기당했으면, 그래서 먹고사는 건 어떻게 하고 있대?”
“다행히 시영원과 연이 있으니까요……. 시월각에서 일하면서 끼니는 어떻게든 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앞날이 걱정이죠.”
“그야 걱정이겠는데. 그래도 일단 시영원에 의탁할 수 있으면 괜찮을 것 같은데.”
“예에. 본인도 그렇게 말하고 있더라고요. 그래도 어릴 적부터 의지했던 사촌 오라비가 그럴 줄은 몰랐으니 충격이 큰 모양입니다.”
원래 못 믿을 놈이 그러는 것보다는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는 게 더 충격이 큰 법이지…….
“그 사촌 오라비는 뭐 하는 사람인데?”
“그야 잘 모른다나 봐요. 오랜만에 나타나서는 곧 너희를 호강시켜 줄 거라느니 허황된 말만 하고…….”
“저런…….”
나도 모르게 쯧쯧 혀를 찼다. 허언증은 잘 낫지도 않는데.
“예전에 혼약이 오가던 여자도 있었는데 집안이 망하면서 자연스럽게 깨지고 여러모로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나름 변명은 해 주던데요.”
“수년간 찾지도 않았던 어린 사촌에게 삥을 뜯다니 집이 망하지 않았어도 여자가 도망갔어야 할 놈인데.”
“그러게요.”
“원래 살던 곳은 괜찮은 건가?”
“그것도 다 뜯겼다고 시영원으로 들어왔다고 하네요.”
아니, 무슨 일이야.
“어휴. 포도청에 발고는 했대?”
“그게, 그래도 혹시 오라버니가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돌아올지도 모르지 않냐고……. 어쩌면 무슨 사고가 난 게 아니겠냐고 하네요.”
“그으……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될 일이 아닌 것 같은데. 정신 건강에는 차라리 그게 나을지도 모르겠네.”
하이고. 사람들이 마음이 약해서 큰일이네. 이 험한 세상 살려면 좀 독해져야 할 텐데.
“그런 놈들은 잡아서 노역을 시켜야 하는데…….”
“그러게요. 반성도 안 할 테고.”
“남동생도 이제 한창 성장기라 많이 먹을 땐데요. 참.”
우리 셋은 본인들이 듣지 못할 곳에서 한탄을 시작했다.
사람 마음이 참 오묘해서 본인들에게 사기를 친 놈도 가족이라고 욕하면 울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옆에서 떠드는 거 확실히 정신 건강에 좋은 것도 아니고.
“천호도 몰랐어?”
“저도 그렇게 자주 보는 사이 아니라니까요. 하지만 시월각은 몰라도 시영원은 자주 드나들었는데 몰랐네요. 하긴 그 동네 사람이 워낙 많아져서.”
“사람이 그렇게 늘었던가?”
집을 새로 짓고 규모가 커지고 있다는 걸 얼추 알고 있었지만.
“시영원 인근은 워낙에 남자가 드물어서 남자가 들어오면 눈에 띄지만, 여인이 들어오는 건 별로 눈에 띄지 않거든요. 거기 사는 사람들이야 알겠지만.”
“아. 아직도 여성 비율이 높구나. 하긴 어쩔 수 없나.”
“애초에 여자들이 많이 들어오니까요. 그나마 어릴 때 시영원에 들어온 남자애들이 많이 자라서 시영원 내에는 제법 있지만 시영원 인근에는 그렇게 많지 않아요.”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지.
언젠가부터 시영원 인근이 여자 혼자 살기 좋다고 모이기 시작하더니 점차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끼리 집도 합치고 살림도 합치며 점점 늘어났다.
“그래도 근래에는 시영원 출신 아이들이 자라서 자기들끼리 혼인해서 이사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 그건 나도 들었다.”
일부러 그런 건지 내가 성장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퍼지자 프랜차이즈 주막으로 독립한 아이들이 갑자기 줄줄이 혼인을 했었다.
주막 하고 있는 아이들은 혼인을 금방 하게 될 거 같았는데 의외로 안 한다 했더니.
‘진짜 나 때문에 기다렸냐고.’
그런 눈치는 보지 않아도 되는데…….
혼인한 애들한테 축의금도 보냈다. 직접 가고 싶었지만 워낙에 연달아 혼인을 한 데다, 당시에 바쁘기도 바쁘고 무엇보다 너무 졸음이 쏟아지던 시기라 참석은 못 했는데 다들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듣기로는 혼인 전에 부부가 민 상궁에게 찾아와서 인사도 드렸다고.
물론 대부분의 경우 남녀 모두 시영원 출신 아이들이었다.
시영원에서 자란 여자들은 시영원 밖에서 만난 남자들에게 거부감이 심한 경우가 많았다.
시영원 안의 상식과 밖의 상식이 다르다는 사실을 모르는 아이들은 없기도 했고, 굳이 다시 시영원으로 돌아갈 일을 만들지 않겠다는 아이가 많아 씁쓸했다.
‘시영원에서 자란 남자애들은 아무래도 비교적 얌전하고 폭력적인 면도 적으니까.’
가끔 사고 치는 아이들도 있기는 하지만 원래 여권이 강한 여초 사회에서 자란 남자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얌전하고 조용한 법이었다.
가끔 성별 불균형 상황이면 소수인 쪽이 갑(甲)이 될 거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실상은 반대다. 다수인 쪽의 의견이 강해지고 소수인 쪽이 반항하기 어렵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을(乙)이 된다.
여성 인권이 올라가는 계기가 의외로 전쟁으로 인한 남성의 부재(不在)라는 걸 생각하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줄줄이 결혼한 아이들이 나온 덕분에 나나 민 상궁이 아이들이 혼인하지 않도록 가르친다는 괴소문은 그럭저럭 불식된 모양이었다.
도리어 시영원 아이들이 옹주 자가에 대한 의리를 안다며 또 은근히 칭송하는 분위기도 있었다나.
사실 시영원은 남자들 때문에 도망쳐 나온 여자들도 많고, 혼자 살기 힘들어 들어온 여인들이 많다 보니 지금도 우스갯소리로 과부촌 아니냐고 낄낄거리는 놈들이 많았다.
시영원 사람들은 다들 호신술을 배우다 보니 본인들에게 걸리면 매우 처맞을 가능성이 높지만.
“음…… 아직 너무 여초 집단인가 봐.”
“나쁜 건 아니잖아요. 남자들만 모여 있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그야 그건 그렇지만.”
어쩔 수 없다. 어린 시절을 시영원에서 살다 성인이 된 후 독립하는 애들도 남자 비율이 비교적 높으니까.
독립은 경제적 이유도 있지만 시영원 바깥에서 여자 혼자 사는 것에 대한 공포가 큰 듯했다.
그래, 뭐…… 위험한 세상이야…….
보호자가 필요하다는데 내가 이름 좀 빌려주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
“시월각에서 볼일은 대충 끝났고, 이제 시영원에 좀 가봐야겠다.”
“요즘 바쁘시다고 시영원은 너무 등한시하셨죠.”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아직도 좀 졸려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건 좀 힘들다고.”
나는 적아 위에 올라타며 한탄했다.
덥고 습해지면 솔직히 말 타고 다니는 것도 그리 즐겁지 않다.
말이 헐떡이며 걷는 걸 보고 다니는 게 뭐 즐거운 일이겠는가.
마침 천호가 비슷한 소리를 했다.
“이제 더워지면 옹…… 아기씨 업고 다니기도 힘든데 큰일이네요.”
“…….”
“왜 그러세요?”
“아니, 아무것도.”
왜 천호가 적아의 마음을 대변해 주고 있는 기분이 들까.
하지만 이상한 건 아니다. 아직도 내가 밥을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잠이 들면 천호나 소이가 한동안 나를 업거나 안고 다닌 후에 자리에 누인다고 하니. 더운 날씨에 저런 걱정을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음, 그러게. 한동안은 더우니까 어디다 시원한 물 좀 채워 놓고 그 안에 들어가 있을까.”
“그건 그것대로 큰일 날 것 같습니다만…….”
“말만 담그면 되지, 발만.”
여름은 싫다. 덥고 달라붙고, 음식도 금방 상하고, 반팔도 못 입고.
‘나도 정말 강원도로 튀어 볼까.’
하지만 여름의 강원도는 벌레가 있지……. 감당할 수 없는 사이즈의.
그렇게 강원도로 떠날 준비를 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우리는 시영원으로 향했다.
오누이가 시영원으로 들어왔다니 새로 들어온 식구에 대해 당부할 말도 있고.
‘아직 사촌 오라비를 믿고 있는 거 같은데 분명 저러다가 나중에 또 털린다.’
원래 나쁜 놈들은 순진하고 호구 같은 사람들 잘 알아보는 법이었다.
그리고 호구…… 순진하고 착한 사람들은 슬프지만 속고 나서도 또 속는다.
심지어는 속지 않아도 뜯긴다.
‘민 상궁도 시영원 들어오기 전까지 오라비에게 삥을 뜯기던 사람이니.’
문제는 호구가 아니어도 구조상 도망칠 수 없는 경우가 있다는 거다.
이런 경우는 진짜 혈연이 원수지.
시월각의 오누이가 어릴 적 사촌 오라버니를 의지했다는 걸 보면, 그 사촌 오라비가 동생들을 돌보는 것을 포기하고 도망쳤을 가능성도 있었다.
안됐다면 안됐지만…… 그렇다고 저들끼리 어떻게든 먹고살려고 애쓰는 어린 애들을 등쳐 먹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었다.
‘에휴. 사는 게 뭔지.’
사실 그 오누이 때문에 시영원에 가는 것은 아니었다.
이번에 시영원에서도 강원도로 많은 인원이 파견될 예정이었다.
누가 갈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미리미리 인사도 해 놔야지.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
그렇게 오랜만에 시영원에 갔더니 예상치 못한 격한 인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기씨! 세상에!!”
“아, 어? 지아?”
종두법 때문에 한참 동안 시영원을 떠나 있던 지아였다.
다짜고짜 달려드는 지아를 저지하려던 천호에게 괜찮으니 물러나라고 손짓하자 지아가 달려들어 나를 꼭 끌어안고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어라, 설마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꽤 장기간 타 지역을 떠돌았는데 당연히 힘든 일이 있을 만…… 까지 생각했다가 주변에 있는 시영원 사람들이 다들 흐뭇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깨달았다.
그냥 감동의 상봉이었구나. 무엇보다…….
“저, 정말 많이 자라셨네요.”
“음. 어쩌다 보니 지아는 못 봤구나.”
“정말요. 나으실 거라고, 세화 의원님이 치료한다는 얘기만 들었었는데, 제가 못 본 사이에 이렇게 자라시고.”
그래 봤자 아직 지아보다 한참 작았기에 지아는 가뿐하게 나를 안아 들었다.
얘는 대체 뭐 하고 다녔길래 힘이 더 좋아진 거 같냐.
분명 내가 시킨 것보다 많은 일을 알아서 하고 돌아왔을 지아는 괜히 나에게 투덜거렸다.
“저한테는 일만 시키시더니…….”
“믿고 일을 시킬 만한 사람이 많지 않다니까아?”
“늘 그렇게 말씀하시죠.”
아니다. 뭘 시켜도 잘하는 인재가 정말 흔치 않다.
나는 그간 고생했다고 지아를 달래 주었다.
사실 지아만이 아니고 꽤 여러 사람이 오랜만에 시영원에 돌아왔다.
“더 더워지기 전에 돌아와서 다행이네.”
“장마 전에 돌아오려고 애썼죠. 도중에 홍수로 길이 끊기기라도 했다간 큰일이니까요.”
이제 다들 컸는데도 내가 있으니 어린아이들처럼 자신들이 겪은 일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나야 이야기 듣는 걸 좋아하는 편이니 가만히 들어주는 편이고.
아 이 동네는 라디오도 없다고. 멀리 나갔다 온 애들 얘기를 들을 기회가 그렇게 흔하지가 않았다.
저 뒤쪽에서 민 상궁을 비롯한 어른들이 내가 아이들(대략 20대 초중반)에게 둘러싸여 이야기를 듣고 있는 모습을 흐뭇한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다.
“지아는 대단해요. 가는 곳마다 송사(訟事)가 있으면 나서서 도와주고 다녔다니까요.”
“나 참, 그 두꺼운 법전을 어떻게 외우고 있는 건지.”
“지아를 만났던 사람들 중에는 지아를 그냥 외지부(*변호사)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걸요?”
함께했던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자길 칭찬하는데 지아는 이미 익숙해졌는지 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리 대단한 건 아니고요. 그냥 기억력이 좋아서 그렇죠.”
“그게 대단한 거지!”
“송사에서 이기고 당당하게 돌아서는데! 다들 엄청 존경하는 눈으로 본다니까요?”
어쩌지. 얘들 술이라도 사줘야 할 거 같은데. 먹지도 않은 술에 벌써 취한 분위기네.
“하긴 땅 날리고 집 날리고 할 뻔한 걸 구해 주는데 은인이죠.”
“노비로 팔려 갈 뻔한 거 막아 준 적도 있고.”
“지아 대단하구나.”
내가 한마디 거들자 아이들이 ‘크으으~’ 하며 몸부림을 쳤다.
진짜 술이라도 먹여야 할 거 같은데.
‘내 앞에선 다들 술을 안 마시니 어쩔 수 없나.’
내가 지금은 좀 자랐다지만 어쨌든 너무 어린 아이라서 술을 못 마시니까 내 앞에서는 다들 술을 마시지 않는 것으로 오래전부터 자기들끼리 정해 놓은 규칙 같은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빨리 자라서 술이라도 사 줘야지…….
훈훈한 이야기 중이었지만 결국 울분을 토하는 소리도 나왔다.
“아오! 그런데 그렇게 도와줘 봤자 우리 아들이랑 결혼하란 소리나 듣고!”
“몰래 노름하고 노름빚이나 만들어온 아들을 대체 어디다 들이미는지 진짜, 기가 막혀서!!”
“아니, 정말 도로 가서 판결 뒤집고 싶더라니까요! 도로 다 가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