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214)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214화(214/326)
이 시대에 외지부, 변호사는 원래 그리 인상이 좋은 직종은 아니다. 송사가 많아지면 관아에서는 성가셔지거든. 일하는 데 방해되니까.
그렇다 보니 왕에 따라서는 아주 눈엣가시로 여긴 경우도 있다던데…….
‘부왕은 다행히 그런 쪽은 아니지.’
하지만 일이 많아지는 것을 달가워하는 공무원이 있겠는가. 당연히 싫어하지.
물론 꼭 공무원만 그런 건 아니지만.
“요즘도 송사를 도와주고 있다던데 본격적으로 외지부로 일할 거야?”
“으음. 사실 직업이라기라기보다는 부업 같네요. 워낙에 시영원 일 돕느라 바빠서요. 자리 비운 사이에 뭔가 더 일이 늘었고.”
“아……. 미안하다.”
“아니요. 미안해하지는 마시고요.”
사실 외지부로 송사 도와줘 봤자 안 좋은 소리 들을 때가 많아서 사람 가려서 도와주겠단다.
그래, 손해 보고 사는 것도 정도껏 해야지.
“아, 전에 얘기 듣다 도박 얘기로 넘어갔는데 그쪽 지방 민심은 좀 어때? 솔직하게.”
“으음. 그러고 보니…….”
“그러고 보니?”
지아는 목소리를 맞춰 속삭였다.
“그 이상한 소문 아직도 돌고 있었어요.”
“소문?”
“네.”
지아가 이렇게 조심스럽게 말할 만한 소문은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왕자가 살아 있다고?”
“예.”
거참 무슨 일인지. 솔직히 뭘 확인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는 소문이라 신경도 안 쓰고 있었는데. 이런 소문이 계속 나고 있다는 건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몰랐다.
“다른 민심은 어때?”
“별다를 건 없었어요. 이상한 소문에 대해서도 뜬구름 잡는다는 느낌이고……. 아, 그런데 노비제 문제로 양반들은 좀 싫어하는 것 같아서요.”
“아…….”
빚으로 팔려 온 경우라든가 자식들에게까지 노비 신분이 이어지지 않도록 한 거 때문인가.
지난번 강원도에서의 역모도 그 때문에 손해를 본 양반들이 저들끼리 쑥덕거리다가 발전한 거 아니던가.
“사실 천민들이 면천하는 건 양인들도 별로 안 좋아하죠.”
“그래?”
“자기보다 아래인 사람이 있는 걸 더 좋아하니까요.”
“아……. 그것도 그렇겠네.”
사람들 심리란 게 그런 거겠지.
“게다가 이번에 기녀들 일도, 기방이 없어진다고 싫어하는 사람이 꽤 많다고 들었습니다. 언젠가 돈 벌어서 기방 좀 가 보나 했더니 못 가 보게 됐다고요.”
“예나 지금이나 인간들 참.”
“예?”
“아무것도 아니란다.”
내 기준으로는 들을 것도 없는 소리들이지만, 저런 걸로 불만이 쌓이면 강원도에서 있었던 일이 다시 발생할 수도 있겠지. 그러니 정치를 할 때에는 여러 의견을 들어주고 조정이 필요한 법이었다.
‘그런데 들어주고 싶지가 않네.’
좀 더 권력이 필요할까.
고작 본인들 기분 좋자고 불행한 사람을 만들겠다는 놈들 비위를 맞춰 줘야 한다는 게 참 그래.
그러니 내가 그놈들 비위를 안 맞추고 살려면 더 큰 권력이 필요하고, 더 큰 권력을 가지려면…….
“돈을 더 벌어야 할까.”
“……아니, 뜬금없이 무슨 말씀이세요.”
“내가 마냥 좋은 일 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실제로는 조선 왕조의 수명을 좀 늘려 보려고 발버둥 치는 거거든?”
“네??”
“계급의 고착화가 원래 망조(亡兆)란 말이지. 하지만 당장 자기 배 불리는 데에만 급급한 놈들은 그런 거 생각 안 하니까 나라가 망하는 거야.”
“아기씨께서 뭔가 위험한 말씀을 하시고 계신 건 알겠어요.”
시영원 출신이 송사에 휘말렸다는 얘기를 듣고 몸을 일으키던 지아는 어처구니없다는 얼굴을 했지만, 곧 내게 인사를 남기고는 ‘돈…….’ 하고 중얼거리며 자신을 부르러 온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안타깝지만 여전히 돈은 못 받을 거 같은 얼굴이다.
“쟤는 어쩌려고 저러나.”
“지아 언니도 아기씨 닮아 가는 거죠.”
아까부터 옆에 있었지만 지아와 내가 어려운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는지 조용하던 아영이도 몸을 일으켰다.
“아영이는 뭐 하러 가니.”
“이제 공부하러 갑니다.”
“공부랑 담쌓은 거 같더니?”
“그래도 기본은 해야죠.”
그렇게 툴툴거리며 아영이도 사라졌다.
아영이도 얼굴은 아직도 동글동글한데 이미 키만 보면 다 큰 것 같았다.
“애들이 다 커서 나랑 놀아 줄 사람이 없네.”
아까부터 하나둘씩 떠나 홀로 남은 나는 바닥을 뒹굴며 중얼거렸다.
“아기씨.”
툇마루에 앉아 있던 천호가 어색하게 웃으며 나를 불렀다.
나도 일하러 갈 때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뒹굴거리고 살고 싶은데 왜 이렇게 사람을 가만 놔두질 않는지.”
“네?”
나는 천호의 손을 잡고 내려와 섬돌 아래에 있는 신발을 신었다.
“세상일은 힘 있는 사람 손으로 결정되는 거잖아?”
“그렇……죠?”
“그래서 곤란해.”
“뭐가요?”
“요즘 오라버니 때문에 슬슬 나도 혼인을 해라 마라 말이 나올 거 같거든.”
“아……. 그렇네요.”
뭐 원래대로라면 벌써 혼인을 했어야 할 몸이지만.
“하지만 아무래도 귀찮단 말이지.”
“네에…….”
역시 여자가 성공하려면 남자를 멀리해야지.
근래에 조정에서 슬슬 옹주가 너무 사업을 키우는 게 아니냐는 말들이 나오고 있단다.
거기에 더해 혼인에 대해서도.
물론 왕도 세자도 신중하자는 입장이고, 심지어 아직 세자가 빈을 맞지 않아서 세자에게 집중포화가 쏟아지고 있었다.
세자가 뜻을 굽히지 않으니, 슬슬 겁을 상실한 누군가가 종친 누구를 세손이나 세제로라도 삼는 게 어떻겠냐고 말할지도 모르는 타이밍.
좌상이 종친들을 물색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자 도리어 누구보다 겁을 먹은 것은 지난번 영천군의 일로 이미 겁을 먹은 종친들이었다.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예.”
마침 시월각에 수업받으러 온 그 딸들은 나에게 물었다.
“소신들은 그런 역적모의를 한 적이 없사옵니다.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얼마 후 종친들이 모여서 석고대죄를 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나는 약간 어지러워지는 기분이었다.
‘아니, 나 이런 거 안 시켰어…….’
어쩌다 이런 일이 되었어……?
나는 지난번 종친 여식들이 모였을 때 내가 했던 대답을 떠올렸다.
‘괜히 대신들 사이에서 이름이 거론되기 전에 그럴 뜻이 없다는 것을 주상전하께 전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보통 후계에 관한 일은 왕실 어른들께 고하고 정당성도 얻고 진행되는 일이지만, 지금 왕실에는 드물게도 교통정리를 하거나 반대로 일을 키울 큰 어른도 없었다.
내가 한 말을 어떻게 해석한 건지 다들 머리를 맞대고 궁리하는 거 같더라니, 괜히 끌려 나오기 전에 먼저 선수를 치기로 했나 보다.
‘저렇게 나오면 좌상도 괜히 종친 이름 갖다 대지는 못하겠지.’
역시 좀 권력의 상징이라서일까, 음모가 있다면 좌상이 꾸밀 거 같다는 편견이 있었다.
하지만 실제 반란을 꼭 좌상이 일으키는 건 아니니까.
지금 대신들 중에 동조하는 이들도 세자를 갈아치우고 싶다는 뜻이 있는 게 아니라, 역시 세자에게 하자가 있는 게 아니냐, 혹은 이렇게라도 해야 세자가 혼인을 할 거 아니냐 하는 사람도 섞여 있는 모양이었다.
사실 그것도 참 너무한 게, 괜히 다음 후계로 거론되었던 종친은 갑자기 목이 서늘해지는 기분일 텐데.
‘아무튼 내가 괜히 관여해서 좋을 일은 아니지.’
나는 그냥 지금까지처럼 내 할 일만 하면 되는 거다.
종친 여식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신경 쓰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그들을 전국의 시영원 분원으로 파견 보내는 것은 결정되어 있는 사항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건 딸을 보낸 종친들의 목덜미를 잡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도 했다.
‘그 정도는 감안하고 보냈을 거고. 일부러 나에게 처신에 대해 물어본 것도 다 이유가 있겠지.’
내가 왜 이런 것까지 고민해야 하나 싶지만 이 동네가 원래 좀 삭막한 동네였다.
나는 비교적 짧고 굵게 끝난 석고대죄의 뒷수습 겸 종친들에게 시원한 음료수를 한 잔씩 돌렸다.
솔직히 본인들 자식들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오싹오싹했겠지만, 아직 더운 날씨에 무리하다간 쓰러질 수도 있었다.
다행히 그 일 이후 후계에 대해 들먹이는 일은 사라졌지만 사람들의 불안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하. 그래도 그동안은 연극 덕을 좀 봤는데 말이지.’
이제 내가 어디까지 도와줄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었다.
강원도에서 성공적으로 분원을 오픈하고 한동안 운영을 돕던 핵심 멤버들은 일부를 남기고 천천히 한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들이 돌아오고 나자 남아 있던 이들 중 일부가 또 다른 지역의 오픈을 돕기 위해 파견되었다.
가장 지원자가 많고 인기 있는 곳은 역시 한양과 가까이에 있는 개성 같은 곳이었고, 먼 지방일수록 역시 꺼리는 사람이 많아 골치가 아팠지만 그럭저럭 굴러갔다.
그렇게 각 지방의 규모 있는 도시들에 멀티플렉스, 아니, 시영원이 건설되고 지방의 소식들이 비교적 쉽게 전달되기 시작했다.
“재밌다면 재밌고 피곤하다면 피곤하고.”
“옹주 자가께서는 참으로 쉬지를 못하십니다.”
“그래도 오라버니께서 세자빈을 맞으시면 세자빈에게 좀 떠넘겨야지.”
“그렇사옵니까.”
그렇게 곤란하게 웃지 말고 마음의 준비를 해 주면 좋겠어.
여전히 약을 먹고 나면 졸리긴 했지만 확실히 예전보다는 나았다.
“그간 많이 자라셨습니다.”
“세화 덕분이지. 음, 오늘은 유난히 졸리네.”
비칠비칠 일어난 나는 자연스럽게 천호의 등에 업혔다.
어느새 한 뼘은 자랐는지 예전보다 확실히 팔다리도 길어진 게 느껴졌다.
‘그래도 여전히 천호는 크군.’
이놈은 뭘 먹고 그렇게 자라는지.
처음에는 내 착각인가 했는데 세화와 나란히 있을 때 보면 더 자란 게 틀림없었다.
“세화도, 같이 산책해.”
“예, 옹주 자가.”
내 말에 세화도 당연하다는 듯 따라나섰다.
내가 굳이 세화를 산책에 부르는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정해진 산책 코스에서 산책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난입하는 불민한 누군가 때문이었다.
“옹주는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자는구나.”
“세자 저하.”
그렇게 세자가 난입하면 다른 궁인들은 마치 예전에 세자가 나를 업고 다닐 때처럼 뒤에 떨어져서 따라오니, 바퀴벌레 커플은 그사이에 연애질을 하는 거다.
나는 비몽사몽한 와중에도 애써 정신을 차리고 천호를 위로했다. 솔직히 나까지 잠들어 버리면 저 둘 사이에 홀로 남는 천호가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천호가 고생이 많다…….”
“아닙니다. 이 정도야 뭐.”
이제 누이동생 업고 다니는 건 천호에게 외주를 준 세자는 대충 세화를 업고 다니고 싶은 얼굴이었으나 아쉽게도 주변의 눈이 있어 뜻을 이루지 못하는 듯했다.
‘예전보다 몸 만드는 데 열심인 거 같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바쁜 놈이 그런 데 한눈을 팔다니. 아직도 종종 밤에 동궁에 쳐들어가 재우고 나와야 하는 것인가를 잠시 고민해야 했다.
‘혹시라도 둘이 사고 치고 있을까 봐 동궁에 쳐들어가는 건 자중하고 있었는데 그럴 낌새가 안 보이네…….’
흑흑. 조선 왕세자 너무 건전해. 이럴 순 없다.
‘아니, 이러는 게 맞긴…… 하지만.’
측근들의 애타는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자는 세화와 함께 즐거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