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215)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215화(215/326)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물었다.
“그런데 도둑이 들었단 말이지?”
“예에…….”
“굳이 나한테 보고했다는 건 시영원 내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뜻이고?”
“예. 민 상궁 마마님께 듣기로는 옹주 자가의 분부로 준비 중이던 은행(銀行)에 도둑이 침입하려고 했답니다. 다행히 순찰 중이던 경비한테 걸려서 실패하고 도주했다고 들었습니다.”
“실패했다니 그나마 다행이긴 한데…….”
내 반응이 겨우 누그러진 듯하자 세화와 천호가 겨우 안심한 듯 어깨를 살짝 늘어뜨리는 것이 보였다.
너무 신경 쓰게 한 거 같아서 좀 미안하군.
“저어, 송구하오나 그 ‘은행’이란 것이 무엇이옵니까?”
“아.”
천호의 질문에 세화 역시 궁금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시영원 사람 외에는 아직 잘 모르는 거였지.
“세자 저하께서 시영원…… 학당의 아이들 중 성적이 우수한 일부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내리기로 하셨다는 것은 알고 있지?”
“예.”
“장학금 지급을 위해 세자 저하께서 나에게 맡긴 돈을 관리할 겸 시영원 내에 따로 준비 중인 시설이야.”
“따로 시설을 만드시는 겁니까?”
“응. 따로 관리해야 할 정도라니 너무 한 번에 많은 돈을 준 게 아닌가 싶겠지만 워낙에 인원이 여럿이기도 하고, 동궁전 측에서 일일이 관리하기 성가셔하는 거 같아서 한 번에 받기로 했거든.”
아무리 그래도 동궁전에서 다들 나를 너무 믿는 거 같지만.
“덕분에 금액이 커져서 내가 돈을 관리하기 위해 따로 만든 거야.”
“그렇다면 꽤 거금이 있었겠군요.”
“응. 사실 시영원의 운영 자금도 그렇고 이래저래 돈 관리는 철저히 해야 하는데 규모가 커지다 보니 민 상궁이 나인들과 관리하는 것도 점점 버거워 보이더라고.”
그래서 사람을 선별해 돈 관리를 좀 더 체계적으로 하고, 나중에 좀 안정되면 시영원 내에 사람들이 돈을 맡기는 기구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어서 일부러 명칭을 은행이라고 지었다.
‘아무래도 다들 집 비우고 돈 벌러 다니니까, 모아 둔 돈은 마당에다 항아리째로 묻어 둔다든가 하는 시대라.’
물론 저화(楮貨)도 쓰이지만 당장 쓰지도 않을 돈을 굳이 들고 다니는 것도 신경 쓰이지 않겠는가.
“하지만 은행에 대해서는 아직 시영원 내부인들밖에 모를 텐데 거기를 노렸다니.”
은행 건물에 넣어 둔 시영원 내부 자금은 아직까진 분원 만드는 일을 제외하면 시영원 밖으로 돌릴 일이 크게 없었다.
본래 시영원 운영 관련 장부를 보관하는 곳을 임시로 은행 자리로 지정하고 엄중하게 관리하며 일부러 경비 인력도 새로 뽑았다.
그러니 시영원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 해도 잘 모르는 이들은 그곳에 돈이 있다는 것까지는 몰라도 뭔가 중요한 물건이 있을 거라는 건 대충 예상하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천호는 딱 집어 은행이라고 말했지.’
천호도 시영원 사람이 아니다 보니 은행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어디 있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현장을 본 것이 아니라 민 상궁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할 뿐이니 은행을 노렸다고 말을 전했다는 것은 도둑들이 정확하게 돈이 있는 곳을 노렸다는 뜻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자연스레 한숨이 흘러나왔다.
“범인도 시영원 내부인이겠구나.”
“예에.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듯했습니다.”
“시영원 분위기가 좋지 않겠군.”
“그야. 내부에서 이런 일이 생겼으니 서로서로 의심하지 않겠습니까.”
“흐음.”
그동안 한 가족처럼 생각하며 내부 결속이 꽤 강했을 텐데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이야.
내가 인상을 찌푸리는 게 신경 쓰였는지 세화가 조심스레 물었다.
“괜찮으시옵니까? 너무 마음 쓰지 않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게. 방금 약 먹었는데.”
세화가 걱정스러운 듯 다시 진맥을 청하기에 그냥 팔을 맡겼다.
“후우. 사람이 많으니 아무래도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도 생기겠지. 내가 하는 일에 불만이 있는 사람이 없으리란 법도 없고, 아무리 교육한다 해도 삐뚤어지거나 범죄에 손을 대는 사람은 있는 법이니.”
게다가 예전처럼 아이들에게 집중 케어가 가능하지도 않다. 사람이 워낙 많아져서.
‘그래도 나름 인성교육에는 신경을 쓴다고 썼는데.’
지금까지 저들끼리 싸우거나, 소소한 문제는 있었어도 그리 큰 일을 만든 적은 없다고 알고 있었는데 아니었을까.
아무래도 부족했던 모양이라 조금 씁쓸한 건 사실이었다.
“그래서 범인은 아직 못 잡은 건가?”
“제가 얘기를 들을 때는 아직 범인을 잡지는 못했습니다만, 내부에서 수색 중이라고 하니 어지간하면 잡히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실패했으니 도망갈 곳도 마땅치 않을 테고, 심지어 도망친다면 범인이라고 자백하는 셈이고.
“다만 시영원 내에 사람이 워낙 많은 데다 근래에 다들 다른 지방으로 많이 빠지지 않았습니까. 덕분에 지금 시영원에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가리고 사건 당시에 어디에 있었는지도 조사하려다 보니 아무래도 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렇겠지. 안 그래도 일도 많을 텐데 힘들겠군.”
천호도 그간 시영원 사람들에게 정이 붙었는지 감싸 주려 애를 썼다.
“다들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에 대해 자책하고 있었습니다.”
“흐음. 자책할 일은 아닌데. 하지만 역시 시영원 아이들 중에 범죄자가 있다고 하니 마음이 좋지 않은 것은 어쩔 수 없겠지.”
하, 자식이 엇나갔다는 소식을 들은 부모의 기분이 이런 건가.
지난번에 들은 도박 얘기도 그렇고. 사람이 많으면 문제가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거기까지 생각하니 문득 걸리는 것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전에 듣기로 도박에 빠진 사람도 있다고 했었지…….”
“예? 예에. 저도 들었습니다. 의외로 여럿 있는 듯했습니다.”
거기까지 생각하니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현대에도 도박이나 주식 같은 데에 빠져서 돈 날린 후에 그거 만회하겠다고 집 안에 있는 돈은 물론이고 집문서고 땅문서고 다 들고 나가서 마저 날리는 일이……. 드물지 않지.’
드라마에서도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게다가 이 시대에는 정말 제 처자식까지 팔아먹는 놈들도 있었지.
그리고 시영원 아이들 입장에서 시영원은 제집이나 마찬가지.
“에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예?”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보다 내가 한번 가 봐야겠다.”
“뒤숭숭한데 굳이 가 보지 않으셔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예. 그냥 도둑인지 더 위험한 놈들인지 모르지 않습니까.”
“옹주 자가. 너무 마음을 쓰시는 것은 건강에 좋지 않사옵니다.”
소이와 천호, 세화까지 모두 나를 붙잡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후에도 비슷한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이번에는 나가 봐야겠다.”
“한동안 안 나가신다 했습니다.”
“이젠 더위도 한풀 꺾였으니 좀 괜찮잖아. 한동안 너무 안 돌아다녔지.”
아무래도 선풍기도 에어컨도 없는 여름은 좀.
“그러고 보니 여름이라 다들 기력이 떨어졌을 텐데. 나중에 송비한테 말해서 맛있는 것 좀 만들어 달라고 해서 가져가야겠다.”
“다들 기뻐할 겁니다.”
이젠 사람이 너무 많아서 한번 가져가려면 대량 생산이었다.
‘아이가 너무 많아서 간식 한번 제대로 못 챙겨 주는 부모가 된 기분이야.’
내 갑작스러운 외출에 가벼운 반항은 있었으니 다들 이젠 익숙해졌다는 듯 외출 준비를 했다.
그리고 근무 중인 세화는 남기고, 소이와 천호를 데리고 궐 밖으로 나서면서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아앗.”
“어찌 그러시옵니까?”
“어으음. 암것도 아냐.”
“?”
영문을 모르는 소이가 의아해하는 듯했으나 천호는 나와 마찬가지로 뭔가 깨달은 듯한 얼굴을 했다.
‘성 겸사복 불러서 세자가 말했던 일을 시킨다는 걸 깜빡했네.’
그나마 아직 부르진 않아서 다행인가.
성 겸사복의 업무 조정에 관해서는 세자와 이미 이야기가 되어 있으니 내가 불러서 일을 설명하고 내일 세자에게 보내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니 오늘 시영원에 갔다가 궁으로 돌아와서 불러도 충분하긴 했다. 내일 당장 떠나야 하는 것도 아니고.
사실 세자가 명해도 될 일인데.
‘하긴 세자가 명하면 성 겸사복이 하기 싫다고 사직서 내고 튈지도 모르긴 하지…….’
내가 요즘 눈에 띄게 무럭무럭 자라고 있어서 그런가.
듣기로는 성 겸사복이 요즘 들어 슬슬 ‘아이고, 아무래도 몸이 예전 같지 않네요’, ‘일하기 싫어요’, ‘은퇴하고 싶어요’ 노래를 부르며 강력하게 퇴직을 어필하고 있다는데 왕과 세자가 못 들은 척하고 있다고.
‘성 겸사복을 파견하는 것도 사실 새삼 급한 일은…… 아니었지.’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증거 인멸을 하기에는 너무 오래전 일이었다. 성 겸사복이 간다고 뭘 찾을 수 있을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고.
성 겸사복을 보낸다는 건 아마 행정적인 증거는 더 이상 찾기 어렵다는 뜻일 거다.
그나저나 세자는 왜 새삼 연선오에게 성원 세자에 대해 묻고 싶다고 한 걸까.
‘혹시 그 사고에 대해 뭔가 의혹이라도 있었나.’
아무래도 옹주인 나와는 달리 세자는 이것저것 더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입장이었다.
당시의 정황으로 보면 죽은 경언군, 아니, 폐서인 이수 쪽이 뭔가를 노리고 저지를 만한 일로 보이긴 하지만 그냥 불행한 사고가 아니었던가.
‘내가 그때 의식이 없었던지라 조사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까지는 잘 모르겠네.’
그래도 성원 세자의 죽음에 관한 일이니 의혹이 있다면 부왕이 적당히 봐주고 넘어가지는 않았을 거다.
당시에 경언군을 살려 두긴 했지만 일단은 친아들이니 쉬이 처분을 내리긴 어려웠을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아니었다.
살아남은 자식이라고는 셋뿐이었으니.
‘그래도 결국 사약을 내리기도 했고.’
당시 경언군과 깊은 연관이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그때 연루되어 처형당하거나 유배를 가는 등 힘을 잃었다.
참 아이러니하지만 결과적으로 성원 세자의 죽음으로 가장 이득을 본 사람은 지금의 세자였다.
‘생각해 보면 적반하장으로 원한을 품은 사람도 있지 않을까 싶네.’
세상은 넓고 이상한 사람은 많으니까.
썩 영양가는 없는 생각을 하며 시영원에 도착하니 다들 당황한 얼굴로 나를 맞았다.
내가 올 걸 예상하지 못했나.
“옹주 자가, 오셨사옵니까.”
“응. 일이 생겼다고 들어서. 그런데 왜 이리 소란스러워?”
“아, 이쪽으로 오시지요.”
민 상궁은 어쩐 일로 나를 다짜고짜 뒤쪽에 은행이 있는 쪽으로 인도했다.
평소 놀던 데와 뭐가 다르냐고 하면……. 외부인은 들어오기 힘든 곳이라고 할 수 있었다.
평소에도 다른 아이들이 자주 드나드는 곳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유독……. 분위기가 싸늘했기에 사정을 아는 만큼 설명을 듣지 않아도 무슨 일인지는 알 만했다.
‘범인 잡았나 본데.’
타이밍 좋게 도착했네.
예상대로 스무 살은 되었을까 싶은 남자아이 몇 명이 무릎 꿇고 덜덜 떨고 있었다.
“생각보다 더 금방 잡았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요…….”
하긴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시영원 수뇌부는 아직까진 반쯤 전직 체탐인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니까.
은퇴했다고는 하지만 어설픈 도둑들을 잡는 것쯤은 어렵지 않은 모양이었다.
범인은 예상대로 내부인이었던 모양이고.
아이들은 내가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더 절망한 얼굴로 고개를 바닥에 처박고 떨기 시작했다.
나는 굳이 범인들에게 묻지 않고 민 상궁에게 물었다.
“그래서 이유가 뭐래.”
“그게…….”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어서 이유는 내가 예상했던 대로였다.
“그러니까, 돈을 훔쳐서 노름빚을 갚으려고 했다고?”
“아, 아닙니다! 빚을 갚을 만큼 돈을 따면 바로 제자리에 돌려놓으려 갚으려고 했어요! 이, 이번에야말로…….”
“음. 전형적인 도박중독자의 발언 같은데.”
혹은 투자중독자?
주식이니 코인이니 투자하다 망한 사람들도 대체로 저런 마인드로 가족들 통장 훔쳐 가고, 대출받고, 사채 쓰다 온 가족을 수렁으로 끌어들이는…….
“아니, 옹주 자가께서 그런 걸 어떻게 아시는 겁니까.”
소이가 뒤에서 꿍얼거렸으나 못 들은 척했다.
글쎄, 뉴스에서 보지 않았을까.
“이거 신문에 기사로 좀 낼까…….”
아무래도 사람들이 경각심을 좀 가져야 할 거 같은데.
“아니! 잠깐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