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220)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220화(220/326)
“강제로 이불에 집어넣었으면서 무슨 소리야…….”
“꾸벅꾸벅 졸고 계시기에 편히 쉬시도록 도와드렸을 뿐이옵니다.”
우리가 아옹다옹하는 것을 보며 성 겸사복은 어딘지 흐뭇하게 웃었다.
“부디 소인이 돌아올 때까지 강녕하십시오.”
“당연하지. 성 겸사복도 조심해서 다녀와. 겸사겸사 지난번에 못 찾은 전 좌세마 행방도 좀 찾아오면 좋고.”
“예. 옹주 자가.”
성 겸사복은 그렇게 웃으며 내 처소를 떠났다.
퇴근하려던 천호를 끌고.
‘아무래도 천호 오늘 퇴근 못 할 거 같은데…….’
성 겸사복이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당부할 게 있다나.
오늘 당장 떠나는 건 아니지만 나에게 인사하러 올 시간이 없다는 듯했다.
아무래도 날이 좋을 때 하루라도 일찍 떠나는 게 좋을 테니 채비가 끝나는 대로 바로 떠나겠다고.
하긴 잘못해서 겨울에 강원도 헤매면 죽을 맛일 테니 그게 나을 듯했다.
“강원도에 도착하면 분원에도 들르라고 했으니 중간에 한 번쯤은 연락이 오겠지?”
“그런 말씀은 그만하시고 얼른 쉬시지요. 출출하지는 않으세요? 오늘 나갔다 오느라 많이 드시질 못했는데.”
“……하루 다섯 끼면 많이 먹었지.”
“더 드셔야 하는데.”
“나 돼지 된다…….”
“다 키로 가고 있으며 그런 걱정일랑 붙들어 매세요. 야식이라도 가져올까요?”
“됐어. 오늘은 나갔다 오느라고 보지 못한 서한들도 있고, 생각할 것도 있고.”
그놈의 도박장 관련해서도 근본적인 문제를 좀 어떻게 해야 할 거 같고.
‘정말 신문에 기사로 내 버릴까.’
가지 많은 나무는 바람 잘 날이 없다더니, 요즘 신문 잘 팔려서 흐뭇하다 했더니 다른 데서 문제가 터지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며 멍하니 쌓여 있는 서한을 읽는 사이 소이가 뭔가를 스윽 내밀었다.
“드시지요.”
“…….”
연란고, 푸딩이었다.
방금 문이 열리는 거 같더라니.
“송비 언니가 옹주 자가 돌아오시면 드리려고 미리 만들어 두었답니다.”
설마 이걸 거부하시는 건 아니시겠죠?
이어지는 말이 자동으로 귓가에 울리는 듯했다.
“아니, 뭘 자꾸 먹이려고 해.”
“드셔야지요. 이렇게 매일 늦게까지 일만 하시고.”
“일 아니거든? 그냥 서한(편지) 온 거 읽는 거거든?”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송비가 가져온 연란고와 수저를 받았다.
요새 시영원의 지방 분원들이 여럿 생겨난 덕분에 운영 현황과 함께 슬슬 타지방 정보가 들어오고 있었다.
‘덕분에 평소보다 좀 늦게까지 서한을 읽기는 했지.’
아무래도 여러 가지 정보가 빨리빨리 들어오니까 생각보다 재밌더라고.
물론 정보라고는 해도 대단한 건 아니고.
그냥 어디에 불났고, 어디서 어떤 사고가 났고, 어디서 누구누구가 싸움이 났고, 뭐 그런 얘기들이었다.
아직은 신문에 지방에서 올라오는 정보들까지 싣고 있지 않았지만 곧 왕과 세자에게 심의 기준에 관해 재가를 받아 어느 정도는 지면에 실을 예정이었다.
‘각 지방에서 내는 건 아직 좀 이른 거 같고.’
전문 인력이 필요하지 말입니다.
물론 각 분원에 파견되어 있는 인재들이 있긴 하지만 아직까진 다들 신문에까지 신경 쓸 여력은 없어 보였다.
‘괜히 이런저런 핑계로 트집잡힐 수 있으니까 조심해야지.’
사설(社說) 같은 건 아직 생각도 안 해 봤고, 당장은 조보와 가장 유사한 느낌으로 정보 전달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한 사심이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었다.
물론 아닌 척하면서도 넣으려면 넣을 수 있다는 게 이쪽 사업의 위험성이지만.
‘사실 지금도 좀 위험한 정보가 섞여 있기는 하지.’
최근에는 은근히 어느 지방 수령이~ 무슨 일을 했다더라~ 하는 얘기도 올라오고 있었다.
나한테 올리는 편지라 누가 중간에 빼서 볼 염려도 없다 보니 사실 확인이 된 정보는 이런 식으로 나한테 다이렉트로 올라온다.
말하자면 현장에서 알게 된 정보의 취사선택은 분원의 아이들이 먼저 하고, 최종본을 내가 확인하는 셈이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올라오는 정보들이 늘면서 자연히 내 일이 늘었다.
아직 신문에도 안 올리는데 왜 일이 늘었냐고 한다면…….
“어휴, 이건 또 세자 저하한테 가서 고해야겠는데.”
“아니, 이런 것도 제대로 못 해?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뭐야? 이제 이 정도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예, 예. 알겠습니까. 사또 나리.”
“그놈들 어서 끌고 와서 내 앞에 무릎 꿇려 놔! 알겠어?”
“예!!”
사또의 불호령에 아전과 포졸들은 굳은 얼굴을 애써 숨기며 관아 밖으로 달려 나갔다.
원주 관아 사또 이석박의 심기는 근래 썩 편하지가 않았다.
그리고 수령의 심기가 불편하면 그 여파는 당연히 밑에서 일하는 아랫것들에게 미치는 법. 덕분에 원주 관아 육방(六房)의 아전들은 죽을 맛이었다.
물론 그 원인은 생각할 것도 없이 뻔했기에, 사또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역시 뻔했다.
‘하여간 저 시영원인지 씨양원인지 뭔지 때문에 되는 일이 없어.’
그 시영원인지 뭔지가 생기면서 각 지방 관아에 있던 기녀들을 싹 다 데려가 버렸으니, 부임하자마자 관기 점고부터 한 양반의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특히 사또가 무척 총애하던 기녀 앵앵이의 얼굴을 못 본 지가 벌써 언제인지.
당연히 처음에는 이렇게 될 줄 몰랐다.
알았다면 무슨 핑계라도 대서 보내지 않았을 텐데.
좀 더 전문적인 공연을 가르친다길래 하긴 촌구석 기방과 서울 기방은 수준이 좀 다르긴 하다고 별생각 없이 보냈던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시영원 내에 있다는 공연장에 찾아가서 공연을 보기도 했다. 확실히 괜한 소리가 아니다 싶을 정도로 이전과 뭔가가 다르긴 달랐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공연을 하는 기녀를 보는 건 자리에서 가능했지만, 기녀를 자리로 부르는 것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당연히 부르면 옆자리로 올 줄 알았지.’
어쩐지 공연을 보는 이들 중에 여인도 많고, 드물지만 아직 어린아이들도 와 있다 했더니.
대체 누가 고작 춤추고 노래하고 연극하는 걸 보러 이런 곳까지 온단 말인가.
기녀들이 하는 일은 본래 사내들을 즐겁게 해 주는 일이거늘.
시영원을 만든 것이 수영 옹주라더니 역시 세상 물정을 몰라도 한참 몰랐다.
기껏 가 봤자 먼발치에서 기녀들 얼굴만 볼 수 있는 게 뭐가 좋다고.
부르는 건 안 될지 몰라도 사또 자신이 직접 다가가는 것까지 막을 수 있으랴 했더니, 갑자기 책임자라며 얼굴을 면사로 가린 여인들이 나타나 이석박을 막아서기까지 했다.
얼굴을 가렸다지만 목소리만 들어도 젊은 여인인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 여인들의 신분이 제법 높다는 것도.
여인들의 신분을 알린 것은 그 옆에 서 있던 흉흉한 여자들이었다.
감히 사또 앞을 막아서며 눈을 부라리는데 저렇게 사나워서 어디 시집이나 갈 수 있을지 원.
‘젠장, 하지만 종친이라니.’
아무리 젊은 여인들이라고는 하지만 종친들에게 패악을 부릴 수는 없지 않은가.
그것도 기녀들을 도로 내놓으라고 큰소리를 냈다가는 저들이 나중에 한양으로 돌아가서 이석박에 대해 무슨 소문을 낼지 모를 일이었다.
아무래도 입 가벼운 여자들이 아닌가.
분명 부친에게, 오라비에게 쪼르르 일러바칠 것이다. 게다가 종친들이니 그 소문들이 잘못해서 더 높으신 분 귀에 잘못 들어가기라도 하면…….
이석박은 오싹함에 절로 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고단하게 나랏일을 하는 몸이 고작 여인들 좀 품는 것이 뭐가 문제라고 그것을 막는단 말인가.’
듣기로 여인들은 기녀들을 단속한다는 말에 기뻐하며 칭송한다는데 그 속이야 뻔했다.
역시 여인들이라 뭐가 중요한 건지도 모르고 속이 좁았다.
분명 사내들이 아름다운 기녀들에게 정신이 팔린 것을 질투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어차피 기녀들이야 놀이 상대지.
조신하게 아이를 키우고 집안을 단속하는 것이 진짜 여인이 해야 할 일인 것을. 하여간 그런 것도 모르고 생각 없이 질투심만 많아서는.
“허. 힘들게 백성들을 보살피다 보면 마음을 달래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거늘~ 그걸 모른다니까!”
안 그래도 무지렁이들이 세금은 어찌나 내기 싫어하는지, 백성들이 이래서야 나라가 제대로 굴러갈 리가 없다.
그러니 자신도 이렇게 매일매일 힘들게 일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오늘도 세금이 부당하다고 항의하는 놈들을 끌고 와 문초해야 할 때였다.
‘그놈 부인이 마침 젊고 예쁘다던데.’
남편을 감옥으로 끌고 오면 부인은 자연히 딸려 오는 법이지.
기녀들은 그 시영원인지 뭔지의 연놈들이 눈에 불을 켜고 보호하고 있어 쉬이 손을 댈 수가 없지만, 그들이 여염집 아낙들까지 어찌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이게 다 시영원 때문인 거다. 기녀들이 있으면 손 거친 여염집 여자들한테까지 눈이 안 갔을지도 모르는데.
과연 시영원이 언제까지 왕족들을 앞세워 자신 같은 충신을 핍박할는지. 호오, 통재(痛哉)라.
‘하여간 옛날이 좋았지.’
지금의 세자가 대리청정을 시작한 후로는 이것저것 더 빡빡해지기만 해서 관직 생활이 영 힘들어졌다. 아마 다른 지방 수령들도 모두 동의할 거다.
듣기로는 세자가 여동생인 옹주를 오냐오냐해 주느라 시영원이 저리 건방지게 나오는 모양인데 그야말로 통탄할 노릇이지.
하여간 그 나이 먹도록 여인 하나 없이 쭉정이라 그리 줏대가 없는 것이 틀림없었다.
본인이 여자에 관심이 없으니 저러는 게 아닌가.
수영 옹주가 하는 일을 막을 생각도 없는지, 여비(女婢)들 좀 건드리는 것도 찜찜하게 그 무슨 종두법인지 뭔지 이상한 짓까지 해서 손도 못 대게 만들어서 원성이 자자하다는 것은 모르는 이가 없었다.
다행히 앵앵이는 당시에 몸이 안 좋아 그 종두인가 하는 것을 맞지 않았지만.
‘하여간 사내가 맞는지도 의문이지.’
이래서야 조선의 종묘사직이 걱정이었다.
그러니 자신 같은 충신들이 열심히 하는 수밖에.
그렇게 이석박이 오늘도 충실한 하루를 보내고자 다짐하고 있을 때였다. 이방 하나가 황급히 뛰어 들어와 사또를 불렀다.
“사, 사또! 큰일입니다. 큰일!”
“거 경망스럽게 뭐 하는 건가? 끌고 오란 것들은 어쩌고 혼자 뛰어 들어와?”
채신머리는 좀 없어도 그럭저럭 시키는 일은 잘하는 놈이었는데 왜 저렇게 난리인지.
“그게…….”
“암행어사 출두야!”
“????”
“탐관오리 이석박은 나와서 오라를 받으라!”
“……네?”
특정 인물에게만 평화롭던 관아는 순식간이 쑥대밭이 되었다.
***
최근 지방에서 이런저런 소식이 올라오면서 내가 세자를 만나러 가는 일이 전보다 더 잦아졌다.
아무래도 평소 왕이나 세자에게까지 전해지지 않는 잡다한 이야기나 소식들이 들어오는 법이라, 신선한 정보에 왕과 세자도 흥미로워하고 있었다.
화급을 다투는 중요한 일이라면 장계가 먼저 올라오겠지만, 세상에는 그렇지 않은 일들이 많기도 하고.
무엇보다 지방 관원들이 나쁜 짓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너무 자연스럽게 나한테 올라오는데 이걸 굳이 전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런 소식이 정식으로 위에까지 올라오려면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는 법이었다.
이번에도 이것저것 정리한 소식들과는 별개로 나에게 올라온 원문을 따로 가져와 내밀자 세자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또냐?”
“안타깝게도 또입니다.”
탐관오리에 관한 소문이 단순한 소문만으로 끝나면 좋겠지만, 시영원 사람들이 본인 눈으로 직접 확인까지 하고 써 보낸 글까지 올라오면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예전에 강원도에서 돌아오는 길에 세자한테 걸린 것처럼 가렴주구(苛斂誅求)하다 걸리는 경우가…… 없을 수가 없지.
세자는 내가 내민 서한을 가볍게 훑어보고는 내가 미리 궁인들에게 말해 준비해 온 차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열 오르는 소식을 들고 왔으니 적당히 시원한 음료를 준비해 왔거든.
‘식도(食道)는 소중하지…….’
뜨거운 거 벌컥벌컥 마시다가 젊은 나이에 식도 건강에 문제가 생겨서는 곤란했다.
물론 남주란 원래 튼튼한 존재이니 칼이라도 맞지 않는 이상 어지간해서는 뭔 짓을 해도 멀쩡한 법이지만…… 워낙 격무를 하는 몸이니 이 정도는 신경을 쓰는 게 좋겠지.
……혈압 걱정도 해야 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