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221)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221화(221/326)
아무리 생각해도 혈압을 걱정해야 하는 업종이 맞긴 한데.
세자는 한숨과 함께 서한을 옆으로 내려놓고 한탄했다.
“이런 놈들은 어찌 없어지지도 않는지.”
“그야 힘들게 관직에 올랐으니 그만큼 대우받고 본전을 뽑아 보겠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내가 이만큼 고생해서 출세했으니 주변에 패악을 부려서라도 보상받아야 한다는 천박한 의식이죠.”
“너는 언제나 신랄하구나. 어린애가 대체 왜 저렇게…… 그동안 너무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었던 것이 아니냐?”
밖에서 놀다 안 좋은 데 물들었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하지만…….
“제가 원래대로라면 벌써 밖에 나가서 살았어야 할 몸이긴 합니다만.”
“알았다. 밖에 나가는 거 말 안 할게. 안 하면 되잖느냐.”
“아니, 내가 뭔 말을 했다고…….”
내가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세자는 제 하고 싶은 말만 했다.
“어휴, 너를 어떻게 하가시켜야 할지 모르겠구나.”
“그러니까 하가 안 하고 그냥 출궁하겠다니까요?”
“그런 소리 하지 말거라. 걱정되어서 어찌 너를 혼자 보내겠느냐.”
“아니, 생판 남인 남자하고 같이 나가면 걱정이 안 되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
“……그것도 그렇구나. 어차피 네가 혼인하려면 너보다 연하인 부마를 찾아야 할 텐데 나이도 어린 부마가 감히 너를 당해 낼 수 있을는지…….”
그렇게 중얼거리며 세자는 떨떠름한 얼굴을 했다.
“아니, 저는 딱히 혼인하고 싶지 않은데요.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이 누이동생보다 오라버니의 혼사가 더 시급하고 화급하고 다급한 일이 아니온지?”
“……너 다 나으면 세자빈 맞이한다고 하지 않았느냐.”
“아, 예. 그래서 내년이요? 내후년이요?”
세화랑 뭐 합의는 되셨는지? 설마 새콤달콤 연애만 하겠다, 뭐 이런 소리는 아니지?
내가 건들거리며 묻자 세자가 부루퉁한 얼굴로 시선을 피했다.
어휴. 네가 아직 20대라 참는다, 내가.
세자만 아니었음 등짝 한 대 때려 주는 건데.
“내가 알아서 할 것이니 신경 쓰지 말거라.”
“소녀도 소녀가 알아서 할 터이니 신경 쓰지 마시고 출궁이나 시켜 주시져.”
“안 돼.”
“돼!”
세자는 이제 예전보다 조금 눈높이가 높아진 내 이마를 솥뚜껑 같은 손으로 누르며 ‘안 돼, 안 돼.’를 반복했다.
그렇게 모처럼 오누이 간에 정답게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밖에서 문 상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자 저하, 옹주 자가. 세화 의원이 들었사옵니다.”
“!”
나는 지체 없이 대답했다.
“들라 하게.”
“아니, 잠깐……!”
세자가 막았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문이 열리고 들어온 세화는 우리 오누이의 정다운 모습을 보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세화가 들어오는 순간 살짝 보인 문 상궁이나 다른 궁녀들의 얼굴도 대체로 비슷했다.
주변에 시중드는 사람이 많은 삶은 이런 것도 다 익숙해지는 법이었다.
“어서 와, 세화!”
“……옹주 자가. 괜찮으시옵니까? 머리카락이 다 흐트러졌사옵니다.”
세화가 내 가까이에 다가와 앉으며 묻자 나는 슬금슬금 다가가 세화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내 격의 없는 행동에 세화가 좀 놀란 듯했지만 어쩔 수 없겠지, 신분이 깡패라.
‘음. 세화가 가슴이 좀 있구나…….’
괜찮다. 아직 내 액면가는 기껏해야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의 어린 여자아이.
도의적으로는 문제가 없었다.
……아마도.
“봤지이, 세화? 오라버니가 나 괴롭힌다?”
“어머나, 세자 저하께서 어찌 이리 어여쁘신 누이동생을 괴롭히시겠사옵니까.”
“……크흠. 괴롭히다니 누가 누굴 괴롭혔다는 것이냐.”
세자가 떫은 얼굴을 하거나 말거나 나는 세화의 품에 매달린 채 히죽 웃었다.
‘왜, 부럽냐? 부러워?’
‘그만해라아?’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오누이는 시선만으로도 말싸움을 할 수 있는 법이었다.
“세화한테서 약방 냄새가 난다.”
“의원이니까요.”
그러고 보니 성인 여성에게 안겨 있는 건 오랜만이군.
어쩐지 편안해져서 몸을 맡기고 있으려니 세화도 자연스럽게 내 등을 토닥였다.
그리고 잠시 후 정신이 든 듯 핫, 하고 몸을 굳혔다.
“옹주 자가. 진맥을 하셔야지요. 오늘은 바쁘시다고 들었사옵니다.”
“응. 세화도 오늘 바쁘다며? 오라버니 진맥이랑 한 번에 끝내면 좋겠다 싶어서.”
내가 사업하느라 바쁜 사이, 세화도 착실히 커리어를 쌓고 있었다.
대신들이나 종친들의 가족 중에도 병이 있는 여인은 있는 법이었고, 다들 옹주의 불치병을 치료한 세화에게 진맥을 받고 싶어 했으므로 왕은 가끔씩 세화에게 왕진을 명하곤 했다.
당연히 세화는 다른 의원들이 병명조차 알아내지 못했던 환자들을 치료해서 명성을 높였다.
‘굳이 내가 다 나을 때까지, 같은 말을 하지 않았다면 좋았을 거 같은데…….’
본인이 생각하는 바가 있을 터이니 내가 막을 수도 없고.
“요즘 무리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
“세자 저하와 옹주 자가께서 이리 강건하시니 제가 무리할 일이 무어가 있겠사옵니까.”
세화의 최우선 담당 환자인 나와 세자가 아프지만 않으면 괜찮다는 뜻이었다.
뭐, 왕진이 자주 있는 일도 아니니 무리하지는 않겠지.
‘소설도 비축 분량을 많이 써 뒀다니 이대로 연재를 시작해도 될 거 같고.’
전에 말하는 거 들으니 본편 분량은 이미 거의 탈고(脫稿)한 거 같았다.
인기가 있으면 분량을 좀 늘리고 싶은데 그냥 나중에 가능하면 외전을 써 달라고 할까.
내가 먹을 탕약은 우리 처소 궁녀들에게 맡기고 세화는 세자의 진맥부터 보았다.
세화가 옆에 앉자 세자가 넋을 잃는 것이 보였다.
“…….”
“…….”
“……너는 뭘 그리 보는 것이냐?”
세화가 세자의 손목을 잡고 있는 것을 말똥말똥 쳐다보고 있으려니 세자가 불퉁하게 내뱉었다.
“오라버니. 흥분하면 맥이 빨라진대. 진정해.”
“……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진정된 상태다.”
“……세자 저하. 맥이 빨라지고 계시옵니다만…….”
“…….”
세화의 말에 세자는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여동생도 앞에 있는데 뭘 그리 흥분하고 그래.”
“……!”
“……저하.”
결국 세화도 웃음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잠시 후 어찌어찌 세자의 진맥이 끝나고, 세화가 내 맥을 짚었다.
“옹주 자가께서는 참 언제나 차분하시옵니다.”
“그러게 말이야. 오라버니께서 좀 보고 배우셔야 할 텐데.”
“…….”
“봐봐, 봐봐. 어린 여동생을 째려보고 있는 거.”
“크흠. 내가 언제 너를 째려보았다는 것이냐.”
진맥을 끝내고 건강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나눈 세화는 떠나기 전 밝은 얼굴로 이렇게 덧붙였다.
“저는 세자 저하와 옹주 자가께서 이렇게 함께 계실 때가 가장 좋사옵니다.”
“그런 말 많이 들어.”
그리고 세화를 불러 작은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
“?”
“근데 그런 말을 들으면 세자 저하가 삐질 수도 있어.”
동그랗게 눈을 뜬 세화는 곧 세자를 향해 환한 미소를 남기고 물러났다.
세화가 물러난 후 한동안 조용히 차와 과자만 먹고 있던 우리는 밖이 조용해지자 그때서야 다시 입을 열었다.
세화를 못 믿는 건 아니지만, 세화를 보조하는 다른 여의나 의녀들까지 신뢰하기는 어려웠다.
“아까 하던 얘기를 마저 하시지요.”
“그래.”
사실 평소라면 규장각에서 간식을 배식하며 대화를 나누겠지만, 시영원과 어사 파견에 관해서만큼은 다른 이들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기에 이렇게 동궁전에서 따로 만나 전달하고 있었으니까.
세자의 측근들이라고 할 수 있는 규장각 각신들을 못 믿는다기보다는 아무래도 노출된 곳에서 전달하면 얘기가 새어 나가는 법이라.
그 점에서 동궁전은 무척 폐쇄적인 곳이고 드나드는 사람도 통제가 가능하니, 은밀한 이야기를 하기에 적절했다.
뭐, 이렇게 폐쇄적인 곳에서 세화한테 진맥 받을 때 둘이 뭐 하는지는 알 수 없다만.
“아무튼, 너를 통해 올라오는 정보만 믿고 처벌을 할 수는 없어 직접 어사를 보내 확인하고 있다만 이런 소문이 틀리는 법은 없어 애석하구나.”
“지방으로 간 시영원 사람들이 아무리 근방에 평판이 좋아도 외지인이니까 중요한 정보는 소외되는 법이거든. 그런데 그런 시영원 아이들의 귀에까지 들어온다면 단순 소문이 아닌 거지. 물론 나한테 올리는 것이나 어느 정도는 확인을 하고 보내기도 하고.”
“어지간히 나쁜 놈이어야 한다는 뜻인가…….”
나는 중얼거리는 세자를 보며 캐물었다.
“에구?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니 아무래도 지난번 원주 사또에 대한 소문은 사실이었나 봅니다?”
“음. 네가 전해 준 것 외에도 이것저것 털면 터는 대로 나오는 것이 많아서 비리 조사에, 쌓인 행정 업무도 처리해야 해서 어사가 한동안 돌아오지 못할 모양이더구나.”
“그건 그것대로 나름 보람은 있겠네요.”
“그래. 할 일이 많으니 참 보람도 있겠지.”
사후 처리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는 떠오르는 것을 물었다.
“혹시 무슨 이야기 속에 나오는 암행어사처럼 마패를 들고 관아에 쳐들어갔답니까?”
세자는 미묘한 얼굴로 대답을 회피했다.
“……그건 아마 곧 너에게 상세하게 연락이 오지 않겠느냐?”
이거 보아하니 애들이 소설 한 편 써서 올릴지도 모르겠는데.
나는 히죽 웃으며 세자에게 물었다.
“참. 나중에 암행어사가 탐관오리를 처벌했다고 신문에 실어도 되옵니까?”
“그런 걸 뭘 일일이 허락을 받느냐. 일단 써 와 봐.”
“넹.”
탐관오리도 어지간하면 신문은 볼 테니 경각심이라도 가지면 백성들에게 좋은 일이었다.
본성이 나쁜 놈이든 아니든, 일단 나쁜 짓을 안 해서 피해 보는 사람이 없는 게 최선이니까.
머지않아 자세한 정황을 담은 글이 올 테니 기대해도 좋겠지.
글솜씨 좀 있는 아이에게 시켜서 드라마틱하게 써 보라고 해야겠다. 그런 사이다 썰은 선량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좋아하는 법이거든.
‘그리고 사실 탐관오리들조차도 ‘나는 저 정도는 아니니까 괜찮아☆’ 혹은 ‘저놈들은 멍청하게 걸렸네ㅎㅎ’ 같은 정신 승리를 하며 보는 놈들이 제법 많은 것 같고.’
기사 쓸 거 생각하며 혼자 히죽 웃고 있는데 세자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지방에 만든 시영원 분원들은 괜찮은 것이냐. 아무래도 외지에 만들어서 기녀들까지 강제로 소속시켰으니 좋지 않은 눈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을 듯한데.”
“아무래도 권력자가 만든 곳인 데다가, 여러모로 쓸모 있는 시설이다 보니 배척받고 있지는 않아. 놀이기구는 다들 타고 싶어 하거든. 게다가 음식도 색다른 것을 팔고 있고, 공연도 다들 처음 보는 거고. 이용 고객이 양반만 있는 것도 아니라서.”
“망할 일이 없다면 다행이긴 하구나.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모르겠다만 뜻밖에 이런 식으로 정보를 전하는 것도 쓸모가 있구나.”
“하지만 나중에 이 사실이 알려지고 나면 경계하며 핍박하지 않을까가 좀 걱정이긴 한데.”
“네가 종친의 여식들을 배치해 두지 않았더냐. 설령 시영원이 탐관오리에 관한 정보를 위에 고하는 정보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여도 그들이 감히 쉬이 어찌하지는 못할 것이다.”
삭탈관직으로 끝날 일을 사형으로 만드는 대범한 범죄자도 흔치는 않을 것이란 뜻이었다.
‘그러려고 배치한 건 아니었는데…… 아닌가, 맞나?’
생각한 것과는 다른 진상을 퇴치하게 될 것 같은데.
어쨌든 공을 들인 만큼 도움이 된다는 것을 좋은 일이었다.
“그러니까 돈 좀 줘요.”
“……이미 꽤 많이 준 거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