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223)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223화(223/326)
“코 옆에 큰 점이 이렇게 있어서, 한번 보면 누굴 말한 건지 바로 알 텐데.”
“일부러 처음 몇 판은 돈을 따고, 다음 몇 판에는 다시 돈을 잃고 도망치고 있는데요.”
“너무 시간 끄는 게 티가 났나.”
“똘마니 같은 놈들만 보이지 이렇다 할 윗사람 같은 인물이 안 보이니 영 소득이 없네요.”
그럭저럭 친한 척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영양가 있는 내용이라고는 없었다.
“이렇게 된 거 아예 집 안으로 잠입할 수는 없을까요?”
“그런 일 하는 놈들이 그렇게 허술하진 않을 겁니다.”
겉으로 보이게도 내부가 넓어서 분명 작당하는 놈들이 있을 터인데.
“하지만 시영원에도 그 정도는 능력자는 있지 않습니까.”
선생들 중에 전직 체탐인들이 있다는 걸 아는 이들은 미묘한 반응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들 은퇴하기도 했고, 물론 체탐인 될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지만…….
그렇게 다들 고민 중일 때 누군가 중얼거렸다.
“성씨 아저씨가 있으면 좋을 텐데…….”
“그 아저씨 또 타지로 출장 가셨대.”
“헤에. 아저씨 의외로 유능하구나…….”
성씨 아저씨의 정체(?)에 대해 알고 있는 체탐인 출신들은 그저 침묵할 뿐이었다.
지아는 괜한 일을 벌이는 것에 부정적이었지만 모른 척 넘어가는 것도 내키지는 않았다.
“성씨 아저씨께서 아셨다면 분명 옹주 자가께서 말씀드렸을걸. 우리끼리 잠입해 보죠.”
“지아는 반대할 줄 알았는데 의외네.”
“그야 옹주 자가께서 아시면 또 직접 위험한 데에 뛰어드실지도 모르니까요!”
“…….”
그건 그렇지.
다들 굳이 말은 안 했지만,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당연하다는 듯이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 사이에 미묘한 위치인 이중 첩자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렇다고 하는데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아니, 다들 대체 나를 뭘로 보고.”
천호가 전해 주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혀를 찼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아직 어린 몸으로 그런 위험한 데에 가겠냐.
물론 시영원 아이들이 그런 위험한 곳에 잠입하겠다고 하는 것도 걱정이었지만.
‘으음. 그래도 체탐인 아저씨들이 함께할 테니 괜찮겠지?’
나는 초조한 기색을 숨기기 위해 냉차를 마시며 한숨을 내쉬었다.
내 앞에 앉은 천호는 간식으로 나온 감란전병을 부지런히 제 입으로 나르고 있었다.
하긴 아직 먹을 거에 눈 돌아갈 나이지…….
덩치만 큰 대형견 강아지를 보는 기분으로 내 앞에 있던 것까지 건네주자 얼굴이 확 밝아졌다.
음. 좀 귀엽군.
“그런데…… 너는 그걸 나한테 왜 말하는데.”
내 일정 알아내야 해서 천호까지 불렀다며. 다들 나한테 숨기고 있는 거 아냐?
“제 임무는 시영원 소식을 옹주 자가께 전하는 것이니까요.”
“그건 그렇지만. 시영원 아이들이 입막음하지 않든?”
“옹주 자가께 전하지 말라는 말은 했습니다만…… 그 말을 따를지 말지는 제 마음이죠.”
이걸 기특하다고 해야 할지.
접시에 있던 것들을 꿀꺽꿀꺽 삼킨 천호가 조금 눈치를 보며 덧붙였다.
“알고 계시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요.”
“알아도 내가 위험한 데 가지는 않을 거 같아서?”
내 말에 천호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어차피 혼자서는 못 가실 테니까요.”
“쳇.”
내가 혀를 차자 과자를 먹던 천호가 내 눈치를 봤다.
“왜 화를 내세요.”
“화 안 냈거든?”
시영원 사람들이 나를 걱정해서 다들 말하지 않는 것도, 천호가 나한테 이걸 전해 주는 것도 이해는 갔다.
“그렇지만 너무 위험한 거 같은데.”
“그렇죠. 아무래도 도박장 같은 건 뒷골목 놈들하고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도 있고요. 그래도 예전 인신매매 일로 어지간한 놈들은 다 노역장으로 끌려갔을 텐데요.”
“하나 잡고 나면 하나 새로 생기는 건가…….”
진작 대체할 뭔가를 마련했어야 했나.
수상쩍기는 했지만 그때 일로 적당히 마무리되지 않을까 했는데 아무래도 다들 그냥 넘어가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긴 은행에 있는 시영원 자금에까지 손대게 만들었으니 여러 가지 의미로 선을 넘은 셈이지만…….
내부의 일이라 그대로 조용히 덮고 넘어가려는 거 같더니.
‘음. 생각해 보면 그럴 수 없을 만도 하지.’
다들 은근히 시영원에 대해 자부심이 있는걸.
“하아. 그래서 어찌할 생각이라고?”
“도박장에 들락거리고 있는 아이들이 안에서 일부러 싸움을 벌이겠답니다. 소란이 일어나서 그 ‘높으신 분’이 나타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있으니 그사이에 안에 숨어들어 보겠다고요.”
“아니, 그거 어느 쪽이든 위험하잖아.”
“굳이 시영원과 옹주 자가를 노리는 거라면 배후가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렇게까지 안 해도 괜찮은데…….”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이걸 책망할 수도 없었다.
‘그야 나를 걱정해 주는 거니 기분이 나쁜 것도 아니고.’
다만 걱정이 될 뿐이었다.
“그래서, 도박장으로 들어가는 건 누군데.”
“몇 명 있기는 한데 주축이 되는 건 지아라고 들었습니다.”
“……? 시영원 여자아이들은 도박장으로 안 끌어들인다고 하지 않았어?”
그간 천호가 전해 준 얘기에 따르면 그랬던 거 같은데?
“그렇습니다만…… 아무래도 젊은 남자들 중에는 그 안에 들어가서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기녀들 때문에 당황하지도 않고, 겁도 없이 도박까지 할 수 있는 인재가 딱히…… 많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너무, 생각지도 못한 사실이라 나는 잠시 멍해졌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장학생인 척 잠입해서 도박해 왔다는 애가 지아야?
아, 물론 지아가 장학생 후보가 맞긴 하지만.
“……시영원 남자애들 밥을 좀 줄일까?”
내가 애들을 너무 배부르게 키운 거 같아. 헝그리 정신이 부족한 거 같은데?
먹기는 여자애들 두 배는 먹는 놈들이…… 이렇게 유혹에 약해서야 어디다 쓴담?
내가 정색하자 천호가 애써 아이들을 두둔했다.
“치사하게 먹는 걸로 그러세요. 차라리 때리세요.”
아무래도 두둔하는 건 아닌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너는 물망에 안 올랐고?”
“저는 덩치도 크고 너무 눈에 띄어서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자들이 시영원에 대해 잘 아는 듯하니 어쩌면 제 얼굴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요.”
“아, 그것도 그렇네.”
시영원이나 혜민서, 혹은 내 사저 등 내가 갈 만한 곳에서 잠복하고 있으면 내 정체나, 나를 수행하고 있는 이들에 대해 아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천호의 얼굴을 빤히 보다가 혀를 찼다.
“쯧. 쓸데없이 잘생겨서는.”
“네? 그, 칭찬이십니까?”
“잘생기면 뭐 해. 쓸데가 없는데.”
“???”
천호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의견을 구하듯 소이를 돌아보았으나 소이도 그저 시선을 피하며 말없이 웃을 뿐이었다.
‘천호 같은 애들은 외모가…… 너무 눈에 띄긴 하지.’
잘생긴 놈들에게 그런 잠입 임무란 어울리지 않았다. 너무 기억에 잘 남기도 하고 말이지.
차라리 여자 꼬시는 거라면 모를까.
천호는 조금 불만 섞인 얼굴로 보고를 이어갔다.
“그래서 지아가 남장을 하고 드나들고 있는데, 얼굴에 수염까지 살짝 붙이고 있어서 그런가. 의외로 아직까지 안 들켰습니다.”
주변에서 보기에도 감쪽같았다고.
‘그렇게 말하니 좀 보고 싶기도 하군. 키가 좀 작은 미남자로 보이지 않으려나.’
그나저나 지아가 직접 움직이고 있다니 역시 걱정이었다.
너무 위험한 일은 하지 않으면 좋겠는데. 바빠서 제대로 신경을 못 썼더니 그사이에 이런 일을 벌이고.
“그래서, 언제라고?”
“오늘이요.”
“……빨리도 말한다!”
찰싹!
고사리에서 단풍잎 정도로 자란 손바닥이 천호의 등짝을 강타하자 천호가 억울한 듯 항변했다.
“어제 정해졌다구요.”
***
오늘도 남장을 하고 도박장에 들른 지아는 먼저 도박장에 와 있는 낯익은 얼굴 몇몇을 확인하고 내심 안도했다.
이미 몇 번이나 와서 이제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이곳의 침침한 분위기는 영 익숙하지가 않았다.
‘아저씨들 말씀으로는 아무래도 도박 중간에 속임수를 쓰고 있는 것 같다고 했지.’
도박판은 원래 그런 곳이란다.
걸리면 끝장이지만 걸리지만 않으면 무슨 수작이든 부리는.
애초에 이런 곳인 것도 모르고 순진하게 돈을 벌려고 한 것부터가 잘못이라면 잘못이었다.
‘아기씨라면 사기 치는 놈이 잘못이지! 라고 소리치실 것 같지만.’
떠올리니 괜히 표정이 무너지는 것 같아 헛기침을 하며 입가를 가렸다.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건 시영원 사람이 새로 들어올 때다.
아는 척을 하며 끌고 오고, 억지로 도박을 권하는 척하면서 전부터 쌓인 감정을 풀듯이 싸울 예정이었다.
이미 주변에는 재주가 부족해 무대에 제대로 서지 못하는 젊은 기녀들 몇몇이 술 시중을 들고 있었다.
물론 단순히 시중만 드는 것은 아니었다. 여인들은 일부러 목표가 된 손님들의 시선을 끌어 그들을 함정에 빠트리는 것을 돕고 있었으니까.
지아도 처음에는 괜히 달라붙어 오는 기녀들 때문에 당황해 실수를 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
같은 여인인 지아도 이럴 정도이니 젊은 사내놈들이라면 혼이 빠지는 것도 이해가 갔다.
정작 도박판에 대해 설명할 때는 기녀들이 이렇게 밀착해 온다는 건 쏙 빼놓고 말하더니 마지막 자존심이었나.
하지만 처음에나 좀 당황했지, 이제는 덤덤하게 여인들을 밀어낸 지아는 여전히 어수선한 주변을 무심한 척 살피며 패를 집었다.
도박에 열중하는 척하고 있었지만 사실 정신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오늘 정말로 올까.’
오늘로 급하게 날을 정한 것은 이곳에서 자주 마주쳤던 다른 도박꾼과 하인의 대화에서 은근히 들은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자는 술에 취해서 기녀들을 끼고 다니는 파락호 놈으로밖에 안 보였는데, 이곳의 단골인지 기녀들은 물론이요, 일하는 자들까지 모두 그자를 알아보고 비위를 맞췄다.
가끔 돈을 많이 따면 주변에 뿌리곤 해서 손님들 중에서도 싫어하는 이는 없는 듯했고.
당시 지아는 술에 취해 도박을 하다 말고 엎어진 척을 해서 하인들에게 옮겨져 쉬고 있었는데, 마침 옆에 고주망태가 된 그자가 앉아 있었다. 이곳에서는 상태가 좋지 않은 손님들을 따로 치워 두기 때문에 일어난 우연이었다.
그자는 분명 술에 취해 ‘어르신’을 찾았었다. 그리고 일하는 자들이 그를 달래듯 말했었다.
‘큰 판을 벌이기 위해 어르신께서 바쁘시다고, 하지만 곧 오실 테니 며칠만 더 기다리라고 했었지.’
그렇게 말하며 유난히 주변을 살피던 것이 인상적이라 도리어 그 대화가 기억에 남았다.
그놈이 얘기한 날이 오늘이었다.
도박장 안에 들어오든, 아니면 이 도박장이 있는 집안에 나타나든. 이 도박장을 운영하는 자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너무 긴장하면 안 되는데.’
취한 척을 하기 위해 일부러 술도 조금 마셨는데, 긴장한 탓인지 손이 떨리는 것 같았다.
‘차라리 아기씨나 떠올릴까.’
지아가 긴장을 풀기 위해 속으로 시영원에서의 추억담을 되새기려는 사이, 갑자기 뒤쪽이 소란스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