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23)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23)화(23/326)
‘성공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꽤 걸렸지만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었다.
“후후후.”
“아기씨 기분이 좋으신가 보옵니다.”
“응. 괜찮게 된 거 같아.”
“몇 번이나 ‘이게 아냐!’ 하고 밀어내셔서 당황했는데 어떻게 이런 음식을 생각해 내셨사옵니까?”
“음, 어쩌다 보니?”
생과방 나인들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몇 차례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겨우 원하는 걸 만들 수 있었다.
‘언니를 아는 사람도 있는 것 같지.’
나를 보는 시선 중에는 호의적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미묘한 것들이 섞여 있었다.
‘벼락치기 신분 상승을 한 옛 동료의 딸……로 느끼는 사람도 있는 것 같고.’
그래도 마찬가지로 옛 동료였던 송비가 아는 척을 하니 다들 그럭저럭 반가운 얼굴로 맞아 줬다.
‘몇 번 실패했지만 내가 원하는 대로 잘 만들어졌어.’
달콤하고 부드러운 계란찜을 만들고 싶다는 말에 다들 그게 뭐 어렵냐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아무래도 내가 원하는 식감을 만들기 위해선 다소 시간이 걸렸다.
‘덕분에 궁녀들은 달콤한 계란찜이라는 새로운 음식을 강제 시식해야 했지.’
미안하다아아!!
그래도 옛날에 생과방에서 일하던 가락이 있던 송비 덕분에 생각보다 금방 성공했다.
아무래도 아직 어린 내 손으로 하기에는 좀 어려워서 나는 옆에서 입으로만 만들었다고나 할까.
‘역시 불 조절이 어렵구나.’
전기오븐까지는 바라지도 않지만 가스레인지나 전자레인지는 역시 그리웠다. 그리워해 봤자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우물물에 차갑게 식히는 것까지 완료해서 먹어 본 결과 생각보단 완성도가 괜찮았다.
젤라틴이 없어서 탱글탱글한 맛이 부족하지만 이거라도 어디야.
‘캐러멜 소스 만드는 건 꼭 귀한 설탕을 태우는 것처럼 보여서 좀 눈치 보이니, 역시 그냥 다음에도 꿀을 쓰는 게 좋겠지?’
어릴 적엔 내 목숨을 위협했지만 지금은 건강식품이니까.
애초에 이 시대 디저트류는 꿀을 빼고는 얘기가 되지 않는다.
처소로 돌아온 나는 저녁 식사 후 이제는 윤 숙의로 불리는 내 생모에게 다짜고짜 차갑게 식힌 푸딩을 내밀었다.
“어머나, 아기씨. 이게 무엇이옵니까?”
“맛있는 거요.”
“계란찜이옵니까?”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거예요. 송비랑 같이 만들었어요.”
괜한 걱정을 하지 않도록 서둘러 설명을 덧붙이자 안심한 듯했다.
“이런 조합은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달고 부드러워 맛있습니다.”
잠시 맛을 음미하던 언니는 뭔가 불편한 듯 입을 가렸다. 구역질을 하는 듯했다.
“왜, 왜 그래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옵니다.”
그러더니 뭔가 생각하듯 눈을 깜빡이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계란 때문인지 조금 비린 맛이 나는데 과일청을 조금 넣으면 어떨까요?”
“앗, 그거 좋네요.”
보통은 계란 비린내 때문에 바닐라 에센스를 넣지만 여기서는 구할 수 없어서 고민했는데, 뜻밖의 해답에 나는 손뼉을 쳤다.
“제가 생과방에 있을 때에는 몰래 과자를 만들어 동무들과 나눠 먹곤 했었답니다. 누군가 이리 저를 위해 무언가를 만들어 주는 것은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그것도 아기씨께서 만들어 주실 줄이야, 정말 생각도 못 했습니다.”
푸딩이 뜻밖에 옛 추억을 자극했는지 푸딩을 먹는 언니의 얼굴에 그리움이 담겼다.
그리고 다시 나를 보며 기쁜 듯 웃었다.
“어쩌면 아기씨께서 저를 닮으신 걸까요.”
“다들 얼굴만 봐도 닮았다던걸요.”
“후후. 그렇군요.”
푸딩을 내려놓은 숙의의 손이 나를 꼭 끌어안고 가만가만 머리를 쓰다듬었다.
부모 자식 간에도 칼같이 예를 따지는 곳이 왕실이었지만 지금 이곳에는 둘밖에 없었으므로 우리는 여염집 모녀처럼 달라붙어 속닥거렸다.
아이처럼 구는 게 쉽지는 않았을 때부터, 언니를 닮은 내 생모에게 친밀하게 구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물론 호칭은 조심해야 했지만.
“엄마도 어릴 때부터 과자 만들었어요?”
“과자는 귀한 음식이니 궁에 들어와서 처음 만들었지요. 음. 제가 어릴 적에는 단 음식은 꿈도 못 꿨으니 생과방에서 몰래 과자를 집어 먹는 게 낙이었답니다.”
“어릴 때…….”
그러고 보니 어릴 때 궁녀로 들어왔겠구나.
‘지금까지 가족에 대해 아무 말도 한 적이 없어서 나도 물어보지 않았는데.’
이렇게 총애받는 후궁이 되었는데도 친지와 연락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다른 가족은 없었어요?”
“어릴 적에 모두 잃고 친척에 의탁하고 있었답니다. 하지만 다들 형편이 좋지 않으니 입을 줄이려고 궁녀로 들어왔지요.”
“웅.”
내가 위로하듯 꼭 끌어안자 언니는 기쁜 듯 볼을 비볐다.
“친척들과는 금방 연이 끊길 정도로 관계가 소원했지만, 그래도 가족보다 가까운 친구는 있었답니다. 이웃에 살던 제 또래의 아이가…… 친척들이 먹을 게 부족할 때면 제 몫을 주지 않는 걸 알고 자기가 먹을 음식을 몰래 나눠 주곤 했지요. 그 아이도 결코 풍족한 집은 아니었을 텐데 말입니다.”
“좋은 친구네요.”
식량이 풍족하지 않은 시대이니 형편이 좋지 못한 평민들은 배를 주리는 시기도 있을 것이다. 피붙이조차 식량을 나눠 주지 않는데 생판 남이 그러기는 쉽지 않았을 텐데.
“그렇지요? 어느 날인가, 나중에 자신이 돈을 많이 벌어 와서 배불리 먹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고는 모습을 감췄답니다. 그 뒤로 저도 결국 궁녀로 들어오게 되며 약속은 지키지 못했지만요.”
“그 친구도 만나러 온 적이 없었어요?”
“……제 친척 오라버니인 척 만나러 온 적이 있었지요.”
아, 남자애였어?
추억에 젖은 얼굴로 그렇게 말한 언니는 순간 정신이 돌아온 듯 당황한 얼굴로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댔다.
“이건 아무에게도 말씀하시면 아니 됩니다. 아시겠지요?”
“응.”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어린아이 치고 사고치고 다니는 일이 없다지만 방금 건 조금 위험 발언이었다.
여자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라비라니.
‘음. 약간 썸 타던 사이였나.’
어쩐지 피 같은 음식을 나눠 줬더라니.
옛날 일이라 흠이 될 만한 일은 아니지만 가족인 척 궁에 찾아온 적이 있다면, 궁녀 신분에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심지어 지금은 후궁이기까지 하니 괜히 트집잡힐 일은 피하는 게 좋았다.
하지만 친척들조차 찾아오지 않는데 유일하게 찾아왔던 이라면 그립지 않을까.
“그 뒤로 만난 적은 없어요?”
“……공연히 오해를 사서 좋을 게 없으니까요. 아기씨도 절대 누구에게 말씀하셔선 아니 됩니다. 아시겠지요?”
“응.”
그렇게 몇 번이고 다짐을 받은 뒤, 화제는 다시 내가 만든 푸딩으로 돌아갔다.
“다음에는 소인이 함께 만들어도 되겠습니까?”
“좋아요.”
“아기씨께서 만들어서 전하께 드리면 기뻐하실 겁니다.”
“아바마마께 드리는 건 조금 그렇지 않을까……요.”
왕이나 세자의 의식주는 아무래도 조금 까다롭다.
“왕녀 아기씨께서 만드신 음식이 아니옵니까. 다음에 오실 때 드리시지요.”
“응.”
예전에는 왕과 그다지 사이가 좋아 보이진 않았는데 나를 보러 오면서 둘의 사이가 돈독해진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영빈이 나를 괴롭힐 때부터인가.’
어쩌면 별로 내키지 않는데 나 때문에 총애 경쟁에 뛰어든 거 같아 썩 기분이 유쾌하지는 않았다.
‘요새는 경쟁이고 뭐고 할 것도 없지만.’
중전은 여전히 몸이 약했고, 왕은 그리 여색을 밝히는 편은 아니었다.
궁 안에 아이라고는 나와 영원 대군뿐이다 보니 나를 보러 들르는 빈도수가 높았다.
“중전마마께 가져가도 될까요?”
“달고 부드러운 음식을 싫어하지는 않으실 겁니다.”
중전에게 문안 인사를 올리는 건 왕자녀들의 하루 일과 중 하나였지만, 몸이 약하고 예민한 편인 중전은 직접 올 필요가 없다고 문안을 사양했으므로 사람을 보내 문안드리는 정도였다.
중전이 되기 전에도 영원 대군 이후로 아이를 가지지 못하고 줄곧 몸을 사려 왔지만 태도가 여전한 걸 보면 참 한결같은 사람이었다.
몸이 약하기도 하지만 겁이 많은 것 같기도 하고.
그나마 우리 모녀와는 사이가 좋은 편이었다.
‘내가 영원 대군과 친하기도 하니.’
친하고 자시고 이제 형제라고는 셋뿐. 세자는 바쁠 수밖에 없는 몸이니 나이 차가 있어도 둘이 붙어 다니는 시간이 늘 수밖에.
그나마도 영원 대군은 대군이라고 나름 공부도 해야 했다.
‘푸딩 새로 만들어서 대비전이랑 중궁전에 문안이라도 드리러 가 볼까.’
궁에서 살려면 일단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할 상대였다.
***
차갑게 식힌 푸딩을 들고 중궁전을 방문한 건 며칠 후의 일이었다.
“어? 세자 오라버니.”
“음? 우연히 시아를 만나다니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이구나.”
가끔 생각하지만 이 인간 타고난 플러팅이 장난 아니야.
물론 동궁전은 후궁과는 따로 떨어져 있어 일부러 만나러 가지 않으면 자주 볼 수 없는 구조였지만 사실 비교적 자주 보는 편 아닌가.
“그래. 중궁전에는 어쩐 일이냐.”
“맛있는 거 만들어서 중전마마께도 드리려고.”
“맛있는 거? 시아가 만든 것이냐?”
“아니, 나는 옆에서 이거 해 줘~ 저거 해 줘~ 하는 역할.”
당당한 내 말에 세자는 물론 세자를 따르던 호위까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위험하니까 만들 때는 조심하렴. 아무튼 우리 시아가 효녀구나. 어떤 걸까? 오라버니도 궁금하구나.”
“응. 나중에 줄게.”
“그래. 기대하고 있으마.”
내 눈높이에 맞춰 몸을 숙여 소곤소곤 대화하던 세자의 허리에는 활이 걸려 있었다.
“활 쏘러 가요?”
“그렇단다. 흥미가 있니?”
“응.”
옛날에 친구들이랑 양궁 카페는 가 봤지만 국궁은 또 다르다던데.
반짝이는 내 눈을 본 세자가 뭐가 그리 즐거운지 눈꼬리를 접으며 웃었다.
“시아한테는 아직 이르지만 조금 더 크면 오라버니가 가르쳐 주마.”
“정말?”
“그래. 말 타는 법도 가르쳐 줄까? 어릴 때부터 가까이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좋아!”
내가 꺄르르 웃으며 매달리자 세자도 기쁜 듯 나를 안아 올렸다.
“이렇게 작은데 언제 커서 활을 배우지?”
“금방 클 거야.”
하하호호 하는 나와 세자를 보는 세자의 궁인들은 대부분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예외는 세자 옆에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는 호위와 좀 어리바리해 보이는 어린 내시 정도?
내가 걸음마를 하기 전부터 세자의 호위로 곁을 지켜온 좌세마 연선오는 세자의 주변에서 그나마 나를 보고 웃는 낯을 하는 몇 안 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 외의 궁인들은 글쎄.
‘저 인간들은 늘 뭐가 그리 맘에 안 드는 걸까.’
늘 과중한 공부와 업무에 시달리는 세자 옆에 저런 사람들만 있어서야 세자도 피곤할 만했다.
그러니 나만 보면 얼굴이 활짝 펴서 달려오지.
“나중에 또 셋이 같이 먹어요.”
셋이라는 건 나와 세자와 영원 대군, 삼 남매를 뜻하는 말이었다.
원래도 친하지 않던 경언군을 제외하고 의지할 수 있는 형제는 단 셋뿐이었다.
‘세자는 가끔 경언군을 찾아간다고 들었는데. 그리 좋은 소리는 못 듣는 모양이지만.’
지나치게 착하다고 해야 할지, 친아버지인 왕보다 세자가 더 신경을 쓰는 듯했다.
하긴 경언군과 영빈이 세자의 외가 쪽 친척이랑 가깝다던가, 궁녀들이 그런 얘기를 했었지.
어쨌든 동생들을 아끼는 세자는 우리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걸 무척 좋아했다.
그러니 당연히 기뻐할 거라 생각했던 세자는 조금 어두운 표정을 했다.
“아…… 그래. 그러자꾸나.”
“왜 그래요, 오라버니?”
“음. 실은 오늘 영원 대군과 함께 활을 쏘려 했는데 함께 가지 못하게 되었단다.”
“??”
지금 나랑 이렇게 노닥거리는 걸 보면 꽤 느긋해 보이는데 무슨 일이지?
“시아가 나중에 영원 대군에게 들러 주겠니?”
“응.”
영문은 모르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이유는 중궁전에 들어가자 자연히 알게 되었다.
“영원 대군. 이 어미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까?”
“하오나 어마마마.”
중궁전에 영원 대군이 와 있었다.
다만, 중전과 그리 분위기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