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234)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234화(234/326)
“더 높으신 분?”
“예에. 특히 바둑은 좋아하시는 분들 중에 조금 범상치 않아 보이는 분들도 계셔서 편하지요.”
“하하. 그렇겠네.”
나는 보고를 들으며 매출 현황을 살폈다.
사실 초반에는 그리 흑자를 기대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괜찮았다.
“다들 열심히 하고 있네.”
“아기씨께서 겁을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이번에 여는 것은 조금 실험적이라 어쩌면 실패할지도 모른다고요.”
“아니, 사실대로 말했을 뿐인걸.”
“모처럼 생긴 일자리가 없어지는 것을 바라는 사람은 없습니다. 무엇보다 아기씨께서 운영하시는 곳들이 일하기 좋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없고요.”
“음. 내가 근래에는 시영원 분점을 내느라 다른 일자리 창출에 좀 소홀했지.”
사실 나도 일을 늘리고 싶지는 않았어…….
이번 새 업장을 담당하는, 역시 시영원 출신의 지배인은 웃으며 설명을 이어 갔다.
“아기씨께서 말씀하신 대로 여인들의 경호를 단단히 하고 자리는 따로 조용한 곳으로 옮길 수 있도록 했더니 양반가 부녀자들이 이곳에서 모임을 가지는 일도 늘었습니다.”
슬프지만 여인들 모임에는 언제나 위협이 따르므로, 경비 인원도 확충해 놔서 이상한 놈들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했다. 당연히 이 경우 경비 인원은 대부분 여인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곳 역시 난동 부리는 자들은 단호하게 쫓아내도록 되어 있었으므로 여인들도 안심하고 올 수 있었다.
“반가의 여인들은 의외로 큰 손이라고, 본래 집안 곳간을 관리하는 건 안주인의 몫이니까. 게다가 아이들은 부모를 따라 하는 법이니 나중에 그 아이들도 여기 고객이 될 수 있거든.”
“과연 안목이 남다르십니다.”
“물론 그 전에 우리가 망할 가능성도 있지만.”
“…….”
“……아기씨.”
말을 잃은 지배인과 달리, 내 옆에 있던 소이가 눈치를 주며 한숨을 내쉬었지만 나는 아직 여기가 성공할 거라고 확신하기는 어려웠다.
“거,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듯합니다. 다행히 저희 가게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교류도 활발해졌으니까요. 처음에는 바둑과 장기, 활쏘기같이 가장 흔한 것들에만 사람이 많았지만 지금은 여기저기가 붐비고 있으니까요.”
“음. 그럼 계획했던 대로 진행해도 될 것 같다는 뜻인가?”
“예, 아기씨.”
이미 식당을 관리해 본 경험이 있는 지배인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며칠 후, 식당과 오락장에 몇 가지 새로운 공지 사항이 붙었다.
식당과 오락장에 출입하던 이들은 갑작스러운 공지에 술렁거렸다.
“대회를 연다고?”
“매달 대회를 열어 우승자를 포함해서 상위 몇 명에게는 상금을 준다는데?”
“보니까 바둑이나 장기같이 인기 있는 것들 한정이네.”
“그야 사람이 없으면 경쟁도 안 되고 재미도 없잖아.”
“그런데 이 정도 액수면…… 다른 일은 안 하고 바둑만 둬도 되는 거 아닌가?”
“!!”
참고로 저 공지 사항은 같은 날에 발행된 신문에도 실렸다.
‘판을 좀 키우는 거지.’
현대의 스포츠도 대부분 기업의 후원으로 이루어지지 않던가.
게다가 시합을 보러 오는 사람도 생기니까 생각보다 손해는 아니었다.
입장료를 따로 받는 방식은 아직 거부감이 있을 수 있으니 그냥 식당 이용 요금으로 충분하고.
사람이 너무 많아지면 요금을 따로 받는 방식도 고려 중이었지만 지금은 아직 그럴 때가 아니었다.
편 가르기 같아서 좀 그렇지만 고급 식당 쪽은 진짜 요금을 비싸게 받고 있고, 서민 식당 쪽은 조금 가볍게 먹을 수 있는 메뉴도 늘려 놓았다. 대신 사람이 바글거려서 쾌적하다고 하긴 어렵지만.
나중에 잘되면 오락장도 지방에 비슷하게 적용해 볼까 말까 고민되긴 했으나, 서울과 지방은 상황이 다르니 비슷하게 하기는 어려울 것 같기도 했다. 일단 지금 고민할 만한 문제가 아니기도 하고.
그리고 대회에 대한 공지와 함께 다른 것도 함께 고지되었다.
공지는 신문과 마찬가지로 한글로 쓰여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이 읽을 수 있었다.
“대회의 품위를 위해 도박장에 출입하는 사람의 오락장 출입을 금지……?”
“아아. 뭔지 알겠다.”
“갑자기 왜 그러지?”
오락장에 갑자기 붙은 커다란 공지에 여러 사람이 모여 웅성거렸다.
그 뜻을 깨달은 이도 있고 깨닫지 못한 이도 있었으나, 사람이 이만치 모여 있으면 설명해 주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었다.
“자네들은 몰랐나? 저쪽 맞은편에 있는 식당에 말일세…….”
“나는 몰랐는데!”
“맞아. 전에 여기서 난동 부린 놈이 실은 저기서 보낸 사람이라는 얘기도 있더라고.”
“아니, 겁도 없는 놈들이네.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난동을 부려?”
“에헴. 그렇지. 시정잡배들이 노는 곳과는 엄연히 다르지 않은가.”
“불법 노름이나 하는 놈들이니 눈에 보이는 게 없는 모양이지.”
거리가 가깝다 보니 당연히 노름판에 드나드는 자들도 우리 가게에 오곤 했다.
지아를 비롯해서 그쪽에 잠입했던 이들도 있었고 문지기로 일하는 이들은 그쪽에 드나드는 사람을 알아보곤 했으므로, 도박장 출입하는 사람들이 우리 오락장에 출입한다는 건 금방 알아챘다.
대부분 겉은 멀쩡해 보여도 질이 좋지 않아서 여기 오락장에서도 속임수를 써서 이기거나 괜한 트집을 잡아 난동을 부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으므로 출입 금지의 명목은 충분했다.
이곳에서는 내기라고 해 봤자 고작해야 밥값 내기, 찻값 내기를 하는데도 굳이 위험하게 속임수를 쓰는 놈들이니 상금까지 걸리면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참고로 속임수 쓰던 놈들은 현장에서 걸려서 멍석에 둘둘 말려 내쫓겼다.
‘듣기로는 고객들이 다들 너무 좋아했다던데…….’
무슨 특별 이벤트 보는 것처럼 환호해서 가끔 오라고 해야 하나 싶다나.
본인들은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도박장에 드나드는 놈들 적발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역시 현대와는 달리 인구가 적은 탓인가, 걸러 내는 것도 비교적 쉬웠고.
“아니, 누가 노름꾼이라는 건가!”
물론 인정하지 못하고 소란을 피우는 경우도 있었으나, 덩치 큰 친구들이 가서 친절하게 설명해 주면 다들 얌전히 물러났다.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소란을 피우는 겁니까. 옹주 자가께서 노하시면 뒷감당이 가능해서 이러십니까?”
“…….”
당연히 내 이름도 팔았고.
간혹 항의가 들어왔지만 그 식당에 들어가는 것을 본 사람이 있다고 하면 부정하지는 못했다.
본인은 노름을 안 했을지도 모르지만 했는지 안 했는지 우리가 알 게 뭐람.
“딱 한 번, 친구들이 불러서 갔을 뿐일세! 도박장인지 뭔지는 모르겠고 나는 가서 식사만 했다고!”
다만 저렇게 억울하다는 듯 읍소하면 신분을 확인한 후에 안에 들여보내 주었다.
“다음에 또 그곳에 드나드는 모습이 보이면 그땐 출입 금지이십니다.”
이제는 사람들이 오락장에서 모임을 가지기 시작하니, 이곳에 들어오지 못하고 막히는 이들은 ‘너 실은 노름꾼이냐.’ 하는 말을 듣게 되었다.
도박을 하는 자들도 대부분은 그렇게 당당하게 나 노름꾼이라고 말하고 다닐 만한 일이 아니라는 인식 정도는 있었다.
덕분에 사실 노름을 하든 안 하든, 여기서는 다들 안 한다고 말할 수밖에.
게다가 나중에는 그 도박장이 있는 식당에 드나드는 것을 발견한 누군가가 ‘저 사람이 도박꾼’이라고 고발을 하고 포상금을 받아 갔다.
안 그래도 도박꾼들은 손놀림이 빠르고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는 놈들이니, 이를 아는 이들은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한 방법으로 쓰기도 했다.
허위 고발도 적지 않아 골치였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저쪽은 수익이 꽤나 줄었겠는데.”
“당연히 그렇겠죠?”
안 그래도 오락장에서 대회를 열면 주어지는 포상 중에는 상금만이 아니라 명예도 있었다.
우승자는 신문에도 실리고, 대회가 열린 건물에도 이름을 크게 박아 주며 명인(名人)이라고 불러 주곤 했으니, 괜히 어깨도 으쓱해지고 그 자리를 탐내는 사람들이 생기는 법이었다.
상금을 받고 싶은 자들 중에서 도박판과 겸하던 자들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도박을 끊지 못한 중독자들이라 바로 퇴출당했다.
도박 중독이 어디 쉽게 치료가 되던가.
그리고 그 분풀이는 도박장에 가서 하고 있다고.
‘잘한다. 더 해라.’
지아가 도박장에서 알아낸 소식들은 천호를 경유해 나에게 전해진다.
“어제 오락장에서 퇴출당한 사람이 도박장에 와서 소란을 피웠답니다.”
“잘됐네.”
도박장 쪽은 그야 뭐 망했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예전만큼 성황은 아니었다.
예전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도박장에 갔다가 탈탈 털려서 집문서 땅문서 갖다 바치는 이들, 이른바 호구들의 리필이 줄었다 보니 남은 건 익숙한 얼굴들뿐.
빤히 아는 고인 물들끼리 놀아 봤자 돈이 잘 벌릴 리가 있겠는가.
게다가 도박장이라는 소문도 퍼질 대로 퍼져서 이제 근방에 있는 사람은 식당도 아니고 도박장이라고 부를 지경이었다.
그렇다 보니 지나다니는 사람들조차 도박장, 아니, 그쪽 식당에 들어가는 사람을 보면 ‘지금 저 사람 혹시 나중에 오락장 들어가지 않을까? 보이면 신고하고 포상금 받아야지.’ 하고 안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쳐다보니 체면을 신경 쓰는, 돈 좀 있는 사람들은 괜히 알짱거리지 않았다.
심지어는 도박장 꼬리 잡으려고 어디서 감시하러 나온다는 소문까지 퍼지며 예전처럼 식당을 통해 호구를 수급하기는커녕 식당과 이어진 통로도 막아 놓았다고.
오락장이 유명해질수록 반대로 그쪽에 드나드는 사람은 폐급(廢級) 정도로 인식되고 있었다.
물론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으므로 아직 망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서서히 망하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닐 터였다.
내 입장에선.
“그러고 보니 그때 노름빚으로 도둑질하려던 이들은 어찌 되었습니까?”
보고를 들으며 입꼬리를 올리고 있는데 차와 과자를 가져온 소운이 물었다.
나를 전담으로 따라다니는 소이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아무래도 정보도 늦은 편이라 종종 뒤늦은 의문을 품고는 했다.
그래도 소이 대신 따라나서겠냐고 하면 다들 조용히 사양하지만.
……내가 소이를 너무 혹사해서 그런가.
“내부에서 해결하라고 했으니 내부에서 해결하고 있지.”
“?”
시영원도 사람이 많다 보니 내부에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생각해 보니 원래 놀이기구도 처음에는 그것 때문에 만들어진 거였는데.
‘어쩌다 보니 뭔가……. 많이 변질된 거 같지만…….’
아이들에게 벌을 주는 용도에서 그냥 돈을 받고 많은 사람을 즐겁게 해 주는 용도로 바뀌었으니 상당히…… 괴리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괜찮아. 창조 경제야!’
그걸로 많은 사람이 즐거워하고, 돈도 벌고 있으니 그걸로 되지 않았을까……?
게다가 시영원 내에서는 그럭저럭 잘못을 저지른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 탈 수 있게 놀이기구를 끌어 주기도 하고.
물론 잘못도 잘못 나름이지만.
어쨌든 그래서 할 수 없이 시영원 내부에서 여러 가지 수단으로 잘못을 저지른 아이들에게 벌을 주고 있었다.
그래도 이번처럼 아직 싹수 있는 아이들 중에서도 죄가 무거운 경우는…….
“육아방으로 갔다고 들었는데.”
“육아방이요? 아기 키우는 곳?”
“응. 그중에서도 아직 걷지도 못하는 아기들을 전담으로 돌보는 곳이 있어. 거기서는…… 정말 완전히 머리를 비워 버릴 수 있거든.”
“?”
궁 안에 있던 마지막 아기가 나였다 보니 궁 안에는 갓난아이를 키워 본 적이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아기를 전담으로 돌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아기란 본디 양육자의 체력과 건강과 정신력을 깎아 가며 자라는 법.
젊고 튼튼한 노동력은 언제든 환영이었다.
“처음에는 도박장 관련해서 뭔가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싶어서 그냥 방에 가둬 두고 반성문이나 쓰게 한 정도였는데. 이제는 딱히 그 애들을 통해 더 알아낼 것도 없으니까. 노동이라도 시켜야지.”
“그 정도로 되나요?”
대충 더 중한 벌이 있지 않겠냐는 얼굴이었다.
“네가 아기들을 안 키워 봐서 그래…….”
“옹주 자가, 왜 키워 보신 분처럼……?”
육아방도 아이들 연령대에 따라 나눠지는데, 대략 100일 전인 아이들은 밤낮으로 우는 아이들이 많아 울음소리 소음이 심각하기 때문에 시영원 내에서도 약간 유배지처럼 떨어져 있었다.
죄를 지었으나 아기를 돌볼 능력이 안 되거나, 돌볼 생각이 없는 아이의 경우 바로 그 근처에 있는 방에서 홀로 반성문을 쓰도록 하고 있었다.
‘밤낮으로 아기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곳을 벗어날 수 없는 건 고문에 가깝지…….’
시영원 내에서는 유배행이라느니 지옥방이라느니 하는 이름으로 불리나 보던데.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내가 정한 건 아니다.
원래는 시영원에서 육아를 전담하는 여인들을 우습게 보던 일부 아이들을 훈육하는 차원에서 시작된 일이었다는데, 효과가 좋아서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나.
거기서 아기 울음소리에 시달리며 반성문을 쓰던 아이들은 나중에는 차라리 본인이 아기를 달래게 해 달라고 빌면서 육아방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종일 아기들 돌보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라 녹초가 되어 잠든다니 좋은 일이지. 그래도 혼자 하는 게 아니니 얼마나 좋아.”
게다가 나름 보람도 있는 일이었다. 의외로 아기를 돌보다 반성하고 바르게 사는 아이들도 있다고 하니 나쁜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반대로 거기서 나온 아이들 중에서는 자기는 절대 아이를 안 만들 거라고 학을 떼는 경우도 있다나…….
거기 들어가는 아이들 중에는 의외로 시영원 내에서 비율도 높지 않은 남자아이들이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 시영원 아이들의 혼인율이 낮은 이유도 혹시 그건가 싶지만…….
‘어쨌든 현실 육아를 미리 겪어 보는 건 나쁘지 않지.’
학업에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겪어 보는 게 낫고.
그리고 벌이라고는 해도 아이들 보는 것을 노동력으로 인정해서 임금을 지불해 주기 때문에 약간씩이지만 돈을 모을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