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24)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24)화(24/326)
나와 언니-윤 숙의는 지내는 전각은 달라도 크게 보면 같은 처소에서 지내지만 영원 대군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선빈이 중전이 되고, 경원군이 영원 대군이 되며 처소가 바뀐 것이다.
중전은 그 명칭대로 중궁전에서 지내야 하기에 아무리 어려도 공주와 대군은 다른 처소에서 지내야 한다.
따라서 공주와 대군들은 친어머니인 중전을 보려면 중궁전까지 찾아와야 했다.
‘그런데 왜 싸우고 있냐.’
싸운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지만 분위기가 그러했다.
영원 대군이 와 있다는 건 밖에 서 있는 익숙한 궁인들 덕분에 알고 있었지만 이런 분위기일 줄은 몰랐다고.
같이 먹어도 되겠거니 하고 좋아라 들어왔는데 왜 이럼…….
내가 눈만 깜빡이고 있자 선빈 시절부터 낯익은 지밀상궁도 난감한 얼굴을 했다.
여염집도 아닌데 고하지 않고 모르는 척 들어갈 수는 없고, 저 상황에서 내가 왔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미리 연락도 하고 온 내 잘못은 아니었으나 여기선 내가 피하는 게 나았다.
나는 지밀상궁에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냥 나중에 다시 올 테…….”
“소자 이만 물러가옵니다.”
하지만 내가 뭐라 하기도 전, 안에서 영원 대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드르륵-
“시아……?”
방금 대화를 내가 들었으리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는지 순간 찡그린 얼굴을 한 영원 대군은 그대로 후다닥 사라져 버렸다.
‘으음, 어쩐다.’
따라가서 달래 줘야 할까, 아니면 중전이 먼저일까.
잠시 고민했지만 사실 답은 하나였다.
“중전마마. 소녀 문안드리옵니다.”
“오, 그래요. 어서 들어오세요.”
미안하다. 사회생활이 먼저다.
내가 중전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친딸이면 좀 뻗대 보겠는데 그것도 아니고. 영원 대군처럼 중전에게 무례하게 막 나갈 수는 없지.
빈이었을 때는 나를 아기씨라고 불러야 했지만 지금은 법적인 어머니가 된 중전은 조금 지친 얼굴로 나를 맞았다.
“그래, 맛있는 걸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부드러운 음식이라 편히 드실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맛보여 드리고 싶었사옵니다.”
“참으로 기특하기도 하지. 왕녀가 이리 효심이 지극하니 숙의는 참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중전이 된 후로 신경 쓸 게 많아서일까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큰 병이 있다기보다는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들었는데. 영빈이 몰락하며 편해짐과 동시에 중전이 돼서 압박이 생겼으니 참.’
그리고 역시 스트레스에는 단 거가 최고였다.
하지만 이 시대 간식은 튀기는 게 많고 식감이 무거우니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조금 산뜻한 간식은 나쁘지 않을 터.
“이렇게 부드러운 과자는 처음입니다.”
다행히 중전은 푸딩을 마음에 들어 했다!
언니와 함께 만들면서 우유도 넣었으니 더 부드러웠겠지.
‘이 시대에는 젖소도 없고 우유도 나름대로 귀한 음식이지만 중전마마께 올릴 음식이니까.’
푸딩의 효과인지 조금 기분이 풀린 듯한 중전에게 가벼운 스몰 토크로 대화를 이어 갔다.
“숙의와 함께 만든 것이라고요? 과연 숙의의 솜씨라니 납득이 갑니다. 하지만 왕녀에게 요리는 조금 이르지 않습니까.”
“위험하지 않게 조금씩 배울 생각이옵니다.”
“그래, 글도 배우고 있다지요.”
“예. 세자 저하께서 말 타는 법과 활 쏘는 법도 가르쳐 주신다고 하셨사옵니다.”
“……그러합니까?”
밝아졌던 중전의 얼굴에 다시 한숨이 흘러나왔다.
대화가 제대로 들린 건 아니었지만 아까 영원 대군이 뛰쳐나간 원인도 이거였던 듯한데.
“아니 되옵니까?”
천진난만한 얼굴로 조금 어깨를 움츠린 채 불안한 얼굴로 묻자 중전은 잠시 침묵했다.
‘아들인 영원 대군은 못 하게 막았는데 내가 배운다니 바로 그리하라 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사실은 내가 배우는 것을 막을 이유도 없었다.
이유라고 해 봤자 기껏해야-
“왕녀는 아직 어린데 너무 위험하지 않은지요.”
“세자 저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실 것이니 지켜 줄 사람도 많지 않겠사옵니까?”
나는 슬쩍 눈치를 보며 말을 꺼냈다.
“영원 대군 오라버니도 함께 배우면 아니 되옵니까?”
“왕녀가 그리하고 싶은 것이오?”
“네!”
“……시아는 영원 대군을 많이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네.”
“세자 저하보다도?”
“세자 저하요?”
아니 이 사람 지금 뭘 물어보는 거죠?
이 무슨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수준의 질문을?
내가 당황하자 중전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내가 어린 왕녀에게 이상한 질문을 하였습니다. 왕녀에게는 두 사람 다 오라버니인 것을.”
요즘 또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
동궁(세자궁) 쪽 궁인들과 중궁전 쪽 궁인들 분위기가 썩 좋지 않다는 건 얼추 알고 있지만 자세한 것까지는 알지 못했다.
‘우리 쪽 궁녀들하고는 워낙에 연결 고리가 적은걸.’
특히 동궁 쪽 궁인들은 수도 많은 데다 궁에서 지내 온 기간이 워낙에 길어서 위세도 보통이 아니었다.
‘주인이 무던한 성품이라 아랫사람들이 더 나대는 것 같기고 하고.’
나에게 불손한 태도인 것도 그렇고.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중전이 뜻밖에도 내게 팔을 벌리며 말했다.
“잠시 이리 와 보겠습니까.”
“네.”
뭐지.
갑자기 내가 귀여워 보였나. 왜 갑자기 품에 안기래?
의문은 들었으나 이미 다년간의 비즈니스 효도가 습관화된 몸은 착착 움직여 중전의 품에 쪼르르 안겼다. 중전에게서는 희미하게 한약 냄새가 났다.
“시아가 있어 참으로 다행입니다.”
“…….”
이럴 땐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어색하게 품에 안겨 있으니 중전은 내 머리를 한참 쓰다듬더니 활쏘기든 말타기든 영원 대군과 자주 함께 놀아 주라는 뉘앙스의 당부를 했다.
어쩌다 보니 뇌물을 준 기분이 된 나는 중궁전에서 나와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나인들을 통해 영원 대군을 찾았다.
‘얘는 왜 또 연못가에 있어.’
경언군이 없는 연못은 이제 평화로웠지만 여기 올 때마다 애들에게 잘해 줘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여기 있어?”
당연히 있는 거 알고 하는 말이다.
밖에서 영원 대군 소속 궁인들이 안절부절못하며 대기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으니까.
물가에 쪼그리고 앉아 돌멩이를 던지고 있던 영원 대군은 내가 옆에 앉자 다짜고짜 자기 얘길 시작했다.
“어마마마는 중전에 책봉되시고 이전보다 차가워지신 것 같다.”
“그거야 왕자군 때랑 대군이 된 지금 취급은 좀 다르지 않을까?”
“하지만 나에게 유독 더 엄격하시니.”
“나랑 세자 저하한테 엄격할 이유도 없잖아.”
세자는 이미 나이가 찼고, 나는 너무 어리고.
내가 꼬박꼬박 반박하자 기분이 상한 듯 샐쭉하니 나를 째려본다.
“너는 대체 누구 편이냐?”
“내 편인 사람 편이지.”
“못된 것. 내가 저를 얼마나 챙겼는데…….”
어이구, 그랬어요?
혼자 꿍얼거리는 영원 대군을 보니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중전마마께 허락받았으니까 활이랑 말이랑 배우러 가자.”
“허락받았다고? 어떻게?”
“엣헴. 이게 바로 뇌물의 힘이란다.”
애가 똑똑하긴 한데 영 요령이 없어.
역시 세자가 안 되길 망정이지. 이렇게 단순한 애가 어떻게 정치를 해?
‘소설 내에서도 냉정하고 무뚝뚝하고 성격 더러운 놈이었지’
그래도 인기는 있었던 것 같다.
애초에 섭남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 수준이었고.
엄연히 따지자면 경언군이 서브남 역할이었지만 너무 미친놈이라 연재 당시 독자들이 한결같이,
‘작가님?? 설마 저놈이 섭남은 아니죠?? 작가님??!!!’ 하고 저놈은 섭남의 자격도 없다며 성토하는 목소리로 댓창이 터졌다고 하는 전설이…….
‘내가 여주를 위해 좋은 일을 했다…….’
그러고 보니 드라마에서는 너무 잔인해서 경언군이 아예 배제된다는 소문도 있었다.
‘어라? 그럼 남주…… 영원 대군이랑 여주는 어떻게 만나야 하지?’
***
내 기억이 맞다면 여주인공은 예비 세자빈 후보(실질적 내정자)로 중전에게 인사를 드리러 궁에 들어와 우연히 남주와 만나게 된다.
하지만 지금 세자는 남주가 아니고, 세자빈 간택령이 내려지면 아직 어린 여주와는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다. 세자가 스무 살이니 세자빈은 기껏해야 위아래로 서너 살 차이일 테니까.
‘나 때문에 남주와 여주가 아예 만나지도 못하게 되는 건가.’
으음. 하지만 만나지 못하더라도 풍파 없이 사는 게 피차 더 행복한 일 아닐까.
“시아야, 딴생각하지 말고 집중하자.”
“응.”
머리 위에서 들려온 세자의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난생처음 타 본 말 위에서 할 생각은 아니었다.
“시아는 겁이 없구나. 안 무서워?”
“응.”
오늘은 전에 약속한 대로 세자에게 말 타는 법을 배우기로 한 날이었다.
첫날이니 배운다기보다는 말에 익숙해져야 한다며 세자가 나를 안고 말에 탔다.
영원 대군은 혼자서도 괜찮다며 먼저 말 위에 올랐으나 역시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 동생을 보며 세자는 즐거운 듯 시원한 웃음을 터트렸다.
‘어린애 안고 타는 게 더 무서울 거 같은데 말에 익숙한가 보네.’
비교적 빠르게 말 위에서 적응한 나를 보며 영원 대군은 인상을 찌푸렸다.
“너는 무슨 애가 그리 겁이 없느냐?”
“……무서웠어?”
“누, 누가 무서웠다고 그래!”
‘단순하긴.’
현대 한국에서 저 나이면 인터넷에서 이상한 거나 찾아보고 헛소리할 나이인데, 여기선 궁 안에 가둬 놓고 빡세게 관리하며 키우니 애가 저리 순진하다.
저렇게 순진무구한 애가 소설에서는 그렇게 차갑고 무뚝뚝한 놈이 됐다니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래, 경언군 밀어내길 잘했지. 환경은 중요한 거야.’
그러지 않았다면 그 미친 모자가 무슨 짓을 했을지 생각만 해도 오싹했다.
부르르 떠는 나를 눈치챈 세자는 당황한 눈치였으나 나는 괜찮다는 말과 함께 이제 혼자 타 보겠노라 선언했다.
덕분에 세자는 아쉬움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로 말에서 내리더니 굳이 내가 탄 말의 고삐를 손수 잡아 주었다.
세상에 일국의 세자를 말구종으로 부리는 원치 않는 호사를 누릴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을까 싶다. 주변의 시선이 따가운 게 좀 신경 쓰여서 그렇지.
“시아는 벌써 혼자 타고, 대단하구나.”
“오라버니가 옆에서 붙잡아 줬잖아.”
“내가 처음 탈 때는 시아처럼은 못 탔단다. 말 타는 거 어때, 마음에 들었니?”
“응.”
세자가 고삐를 잡아 주는 말을 타고 몇 바퀴인가 혼자 말 위에 앉아 있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엉덩이가 좀 얼얼해서 그렇지.
그래도 금방 회복하겠지. 어릴 때부터 배워야 된다는 게 이래선가 보다.
그렇게 한참을 나와 놀아 준 뒤에야 세자는 처소까지 데려다주겠다며 나를 따라왔다.
궁인들과 함께 먼저 처소로 돌아간 영원 대군은 조금 아쉬운 모양이었지만 굳이 그걸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아마 영원 대군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겠지. 이 사람, 아무래도 나와 놀아 주는 걸 휴일로 여기고 있는 것 같다.
“오라버니는 바쁘지 않아요?”
“바빠도 우리 시아를 데려다줄 정도의 시간은 있단다.”
늘 호위로 따라다니는 익숙한 좌세마야 그렇다 쳐도 오늘 내내 서연관들과 익위사 관원들이 졸졸 따라다니는 거 많이 부담스러웠는데. 아마 세자도 부담스러운가 보다.
그 사람들도 후궁까지 줄줄이 따라오지는 않았으니까.
‘이것도 힐링 타임인가.’
하지만 그 조용한 저녁의 힐링 타임은 어디선가 들려온 괴성으로 인해 깨졌다.
“아아아아악!”
“!”
내 손을 잡고 있던 세자의 몸이 굳었다.
‘오늘 어쩐지 자꾸 생각이 나더라니.’
취영당에 갇혀 지내는 경언군 혹은 영빈……이 아닌 숙원은 가끔 저렇게 발작하듯 비명을 지르곤 했다.
덕분에 궁녀들은 날이 어두워지면 취영당을 피해 멀리 돌아서 다닌다던가.
“아무래도 오늘은 한번 들러 봐야겠구나.”
“안 가면 안 돼?”
“……나라도 가 보지 않으면 멈추지 않을 테니 어찌하겠느냐. 썩 내키지는 않지만 그래도 경언군 역시 나에게는 동생이니 못 본 척해서는 아니 되겠지.”
정해진 궁녀들 외에는 외인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곳이었으나 당연히 예외는 있었다.
물론 왕은 한 번도 취영당을 찾지 않았지만, 세자는 외가 쪽 친척이었다는 것도 있고 그놈의 형 노릇을 해야 해서 가끔 찾아가 생활을 살펴 주곤 했다.
‘기껏 보살펴 줘 봤자 썩 좋은 취급을 받지는 못하는 것 같지만.’
하지만 이놈의 유교 사회에서는 아무리 원치 않더라도 도덕적인 꼬투리가 잡혀서 좋을 게 없었다.
게다가 아무리 싫은 사람이라도, 저렇게 내내 비명을 지르는 걸 들으며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어, 세상은 넓으니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가끔 내 처소에서도 들릴 때가 있을 정도니, 마음 착한 세자는 못 본 척 넘어가기 어려운 처지였다.
“나는 괜찮으니까 싫은 사람한테 갈 거 없어.”
“오라버니는 세자이니 싫은 일도 해야 한단다. 그러니 대신 시아는… 하고 싶은 대로 해도 괜찮단다.”
“내가 취영당에 돌 던질까?”
“아니, 그럼 안 되지이…….”
그리 말하면서도 세자는 어깨를 떨며 웃었다.
“에구. 우리 오라버니 힘들어서 어째?”
“하하하, 그래. 오라비가 좀 힘들구나.”
모처럼 세자가 다시 웃게 되었는데, 또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듣지 말거라.”
세자는 그리 말하며 내 귀를 두 손으로 막았다. 그리고 잠시 후 조용해졌는지 다시 손을 뗀 세자가 속삭였다.
“시아는 그저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먹고, 좋은 생각만 하렴. 알겠느냐?”
“응.”
몸을 숙여 나에게 시선을 맞춘 세자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리자 세자가 애써 다시 밝은 얼굴을 했다.
“그러니 이 힘든 오라비와 또 놀아 주련?”
“응.”
둘이 수다를 떨며 와서인지 내 처소까지는 금방이었다. 세자는 내 배웅을 받으며 다시 무거운 걸음을 옮겨야 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같은 세자의 뒷모습이 영 안 되어 보여서 절로 한숨이 나왔다.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초를 쳤다.
‘하긴, 취영당이 넓다 해도 갇혀 지내는 셈이라 스트레스가 쌓였겠지.’
안 그래도 정상인 사람들도 아닌데.
하지만 그 뒷감당을 세자가 해야 하는 건 좀 그렇지 않나?
왕은 처벌 과정에 세자는 조금도 관여시키지 않았다.
아마 훗날 세자의 치세를 염려해서 한 일이겠지.
‘그럼 중전과 영원 대군은?’
지금의 중전과 영원 대군은 당시 처벌 과정에 관여한 셈이었으니, 경언군의 일로 휩쓸려 피해를 본 이들에게 부당한 원한을 샀을 수도 있었다.
그러니 적극적으로 중전을 보호해 줄 이가 필요하건만 외척의 발호를 막겠다는 명목으로 중전과 영원 대군의 세력이 커지는 것은 또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중전의 입장에서는 그저 후일 세자가 지켜 주리라고 믿는 수밖에 없는 셈이었다.
‘야망이 없다면 말이지만.’
그리고 지금은 아들을 보위에 올릴 야망이 있든 없든 몸을 사리고 또 몸을 사릴 수밖에. 중전의 신경이 날카로운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왕과 세자의 총애를 받으면서 영원 대군과도 사이가 좋은 나한테 살가운 것도 그래서일 가능성이 높고.
후일, 정말 만약의 경우지만 중전과 영원 대군이 위태로워진다면 그들을 살리기 위해 읍소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마 나뿐일 테니까.
정말 마음 편히 살기 힘든 곳이었다.
“아기씨. 피곤하시죠? 오늘은 일찍 주무세요.”
“응.”
그리고 그날.
내가 바꿔 버린 이 이야기는 내가 모르는 곳에서 뜻밖의 분기점을 맞이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