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243)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243)화(243/326)
“아, 실수했네요.”
지금까지 과녁의 가운데에 잘만 꽂아 넣고 있던 천호의 화살이 과녁을 빗나가 있었다.
“야, 너……”
“그럼 저는 실격이니까 빠지겠습니다.”
천호는 활을 내려놓고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내 옆으로 돌아왔다.
“졌으니까 뭐 좀 사 주세요.”
“……지고 돌아와서 뭐 이렇게 당당해. 그래, 가자.”
“네.”
천호의 말에 주변에서 또 다시 웃음이 터진 것이 좀 신경 쓰였지만, 우리는 그대로 자리를 떴다.
‘내가 그렇게 못 미덥나.’
물론 걱정해 주는 건 고마운 일이지만 굳이 웃음거리가 되면서까지 따라올 필요는 없는데.
그대로 직원을 따라 안쪽 사무실로 향하자, 당연히 천호와 소이도 주변에 보는 눈이 없는지 확인하며 나를 따라왔다.
사무실에 들어가니 익숙한 얼굴의 지배인이 나를 맞았다.
밝게 웃고 있기는 한데, 얼굴에 피곤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것이 아무래도 일이 힘든 모양이었다.
“송구합니다. 오신 것도 모르고.”
“괜찮아. 바쁜 거 아는데 뭐. 그리고 내가 올 때마다 인사할 필요 없어.”
누가 자꾸 찾아오고 나한테 인사하고 그러면 주변 사람들이 다 알아본다고.
시월각처럼 공간이 분리되어 있어 조용하게 지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이곳에서는 그런 예의가 오히려 불편하기에 생략하고 있었다.
물론 이곳 직원들 대부분은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는데, 그건 상당수가 시영원 출신인 탓도 있었고 내 안전을 위해 따로 전달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당연히 직원들 입단속도 단단히 해 둔 상태였다.
오래된 시영원 식구들은 약간 가족 같은 공동체 의식이 있기도 하고, 서로 너무 끈끈해서 가끔…… 옛날에 영화에서 본 마피아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내 사후가 좀 걱정이다…….’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새로 구심점이 되긴 어려워 보이니 알아서 잘 찢어질 거 같기도 한데, 그럼 고아들이나 갈 곳 없는 사람들을 보살피고 취업시키는 기능이 약해진단 말이지.
‘공공기관으로 만들면 좋겠지만 어디 믿을 수가 있어야지.’
아무튼 그건 한참 뒤에 걱정해야 할 일이고.
지배인이 굳이 나에게 사과하는 건 그냥 말 그대로 예의상 하는 말이었다.
권하는 대로 자리에 앉으니 바로 차가 나왔다.
차는 아까 마셨지만 예의상 한 모금 마셨다.
접객용이라 그런지 판매용보다는 조금 귀한 차 같았다.
‘괜찮은 차네. 차 농사도 좀 더 대량으로 해 볼까. 역시 차 농사는 보성이겠지. 근처에 있는 분원에 연락해 볼까.’
차를 마시며 잠시 딴생각을 하던 내가 찻잔을 내려놓자 지배인이 말을 꺼냈다.
“보시기에 불편하신 부분은 없으셨습니까?”
“응. 일단 내가 보는 동안은 괜찮던데. 요즘에는 어때, 별일은 없지?”
“요즘은 전처럼 장사 방해하려고 오는 사람은 없어 비교적 순탄합니다. 가끔 소란이 일 때는 있지만 그 정도야 이제 다들 익숙해져서 괜찮습니다.”
“다행이네.”
“다 옹주 자가 덕분이 아니겠습니까.”
음. 다들 아무거나 다 내 덕분이라고 하니 좀 민망하군.
“그래서 무엇 때문에 나를 보자고 한 건가? 요새 다른 문제는 없다며?”
돈 문제? 재료 수급 문제? 인력 문제? 이것저것 떠올리며 머리를 굴려 보는데 지배인은 뜻밖의 말을 했다.
“아, 예. 송구하옵게도 이리 모신 것은…… 사실 요즘 옹주 자가께 골동품을 바치고 싶다는 사람들이 자꾸 찾아옵니다.”
“골동품을? 나한테?”
“예. 아예 가져다 놓고 사라지기도 해서 아주 난감합니다.”
“……대체 뭐 하려고 그런 짓을.”
“뇌물……이 아니겠습니까.”
“흐음.”
내가 골동품을 좋아해서 수집하고 있다는 건 이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이라 새삼스럽지도 않다.
나한테 뇌물로 보내는 사람도 사실 적지 않고.
“하지만 나한테 뇌물을 보내고 싶은 사람들은 대부분 내 집으로 보내는데?”
“어어. 옹주 자가의 사가를 모르는 걸까요?”
“수영 옹주 사가라고 하면 알 사람은 알 텐데.”
내가 맘에 들어서 받았다고 해도 옮기기 불편하기만 하지.
여기를 통하면 나랑 직접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착각이라도 하고 있는 걸까.
“혹시 여기에 놔두고 뭔가 홍보라도 할 생각이 아닐까요? 수집가들이 여기로 모이면 그 사람들끼리는 좋은 거점을 얻는 셈이니까요.”
“본인들 집에서 할 것이지.”
“그야, 옹주 자가와 연을 틀 수만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겠지요.”
그야 모를 일이지만.
“나는 생각 없으니까 잘 돌려보내.”
“예? 하지만 저기…….”
“왜?”
“누가 보낸 것인지도 말하지 않고, 직원들 말로는 가져온 이들은 대체로 차림새를 보아선 심부름으로 온 것 같았다고 합니다.”
돌려보내면 아랫것들만 혼난다는 뜻인가.
“게다가 혹시 옹주 자가의 마음에 드시는 것이 있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지배인의 말에 나는 입을 삐죽였다.
“정체 모를 이상한 놈들이 보낸 걸 맘에 든다고 받을 순 없잖아. 그럼 앞으로도 계속 올 테니, 아예 여기는 다 돌려보내야지.”
“하지만 막무가내로 두고 가기도 합니다.”
“으음.”
뭐지? 왜지?
난감했지만 딱히 집히는 것도 없고, CCTV가 있는 것도 아니니 뭐 하는 자들인지 알아내기도 어려웠다.
‘이 시대에는 안에 도청기나 카메라 같은 걸 넣어 둘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뭐지?’
알쏭달쏭했지만 사실 가게 입장에서도 난처하겠지.
“그럼 할 수 없지. 혹시 모르니 언제라도 돌려줄 수 있게 들어온 시간과 가져온 사람을 적은 목록을 적어서 잘 보관만 해 놔. 깨지거나 상하거나 하지 않게. 관리하는 법은 나중에 내가 사람을 보내서 상세하게 설명하도록 할 테니.”
“예. 옹주 자가.”
지배인은 내 말에 그제야 안심한 듯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흠. 사람이 부족하지는 않고?”
“예. 워낙에 시영원에 몰려드는 사람이 많기도 하고, 단순히 음식을 나르는 정도는 적당히 사람을 고용하고 있습니다.”
“음. 자꾸 역차별이라는 말이 나오니까.”
“하지만 정보량에서 결국 차이가 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시영원 출신과 아닌 사람 사이에서 정보량 차이 운운할 만한 거라면…….
“내가 누군지 모르는 정도야 아무려면 어때. 먹고사는 데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예. 알겠습니다.”
“내가 누군지 알든 모르든 반가의 여식에게 함부로 대하진 못할 거 아냐.”
이건 교육을 해야 아는 일이 아니라 이 시대에는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혹시나 싶어 하는 말이지만 날 믿고 너무 막 나가면 곤란해. 물론 난동 피우고 진상 부리는 양반이 있으면 내 이름을 써도 상관없지만.”
“유념해 두겠습니다.”
그렇게 대화를 마치고 나는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뭔가 말이 길어졌네.’
별일이 아니어야 할 텐데.
“배웅하러 나오지 마. 눈에 띄니까.”
“……예. 옹주 자가.”
자연스럽게 따라 나오려던 지배인이 내 말에 움찔 몸을 굳히며 내게 마지막으로 예를 표하다 작게 중얼거렸다.
“어쩌면 그자들은 감히 옹주 자가 사가의 문을 두드릴 만한 신분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슨 말이야?”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음. 그래.”
지배인은 빙긋 웃으며 나를 전송했다.
‘뭔가 깨달은 것 같으면 말을 하든가.’
하지만 지금 물어봐 보았자 아무것도 아니라고 얼버무릴 것 같았으므로 나는 천호와 소이에게 물었다.
“두 사람은 어떻게 생각해?”
“아기씨께서도 모르시는 것을 저희가 알겠습니까?”
“소이는 요새 너무 대충 빠져나가려고 한단 말이지.”
성의가 없어. 성의가.
“저도 잘은 모르겠습니다. 늘 찾아오는 것도 아닌 모양이고, 누군가에게 심부름을 시킨 거라면 뒤를 쫓는 것도 어려울 것 같고요.”
“으음. 뇌물이라기에는 누가 보낸 건지도 모른단 말이지.”
찜찜했지만 그런 걸 일일이 신경 쓰기에는 내가 너무 바빴다.
“아, 그러고 보니 사가에도 저런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네.”
“근래에 자주 찾지 않았지요.”
“응. 저것도 최근의 일인 것 같으니까.”
물론 내 사가에는 그냥 당당하게 선물로 들어오는 뇌물들도 있었다.
‘안 그래도 내가 요즘 너무 영향력이 커진 기분이 드는데. 이거 괜히 트집잡히는 거 아냐? 성가셔.’
그리고 제일 빡치는 건 그런 것들이 또 물건은 좋았다.
세상은 역시 돈이었다.
‘하. 그 귀한 것들이 왜 그런 자들의 손에…….’
물론 뇌물 뿌리고 다니는 사람들이니 뒤 좀 털어다 나오는 거 트집 잡아서 뺏는 방법도 있지만…….
한평생 선량하게 살아온 나 같은 사람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괜히 악명을 높이고 원한 쌓아서 좋을 것도 없고.
“음. 오늘은 이만 가자.”
“예. 아기씨.”
그대로 오락장을 나가려던 나는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어 멈춰 섰다.
마침 멀리에 사람들이 활을 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 탓이었다.
누가 쏜 것인지 또 화살이 과녁의 정중앙에 정확히 적중하는 모습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탄성을 지르는 것이 보였다.
그 사이에는 아까 본 천호의 지인들도 있었다.
“천호.”
“예, 아기씨.”
“모처럼이니 더 얘기하다 올래? 어차피 적아를 데리고 다니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아닙니다. 저도 아기씨를 따르겠습니다.”
“고집은.”
“제가 눈을 떼고 있는 사이 아기씨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저는 죽은 목숨입니다.”
“으음.”
나도 아니라고는 못 하겠는데.
“그래도 인사 정도는 하고 와. 숙부한테 소개도 해 준다며.”
“어차피 여기 있을 거 같은…… 알겠습니다.”
자꾸 말에 토를 달아서 좀 째려봐 줬더니 천호는 그제야 슬금슬금 전직 착호군 아저씨들에게로 다가갔다.
“은근히 건방지단 말이야.”
“겁이 없죠.”
내 말에 동의하는 듯 소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
천호는 아까 가장 친밀하게 말을 걸었던 아저씨들 중 하나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아저씨, 저는 이만 가 볼게요.”
“아까 때려치우고 아기씨랑 가길래 그냥 간 줄 알았다. 인마.”
“아기씨께서 인사는 하고 오라고 하셔서. 그런데 아저씨는 지셨나 봐요?”
“너 없어지니까 재미없어서 나도 멈춘 거거든?”
“아, 예.”
건성으로 대답하며 고개를 돌리니 징그럽게도 아직까지 활을 쏘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귀하신 아기씨가 우리같이 험악한 놈들하고 알고 지내는 게 마음에 안 드냐?”
“그런 문제는 아닙니다.”
우리 아기씨가 얼마나 사고뭉치인지 알면 그런 말이 안 나올 텐데.
하긴. 잘하면 이 아저씨들도 다 재취업 길을 걸을지도 몰랐다.
“어차피 갑갑한 게 싫어 군에서 못 버티는 분들 아닙니까?”
“뭐, 너나 형님처럼 태생이 좋질 않다 보니.”
“태생 핑계 대지 마시고요.”
“왜, 저 아기씨가 우릴 고용하실 거 같아서?”
“……사람을 혹사시키시는 분이니 자신이 있으시다면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천호가 그렇게 말하며 조금 지친 얼굴을 하자, 전직 착호군 사내도 떨떠름한 얼굴을 했다.
“저 작은 아가씨가 대체 무슨 일을 시키길래…….”
“신경 끄세요. 그나저나 아저씨들, 그렇게 자신만만하시더니 지고 계시네요?”
아까 얼핏 보았던 면사를 쓴 사내 하나가, 다른 모든 이를 제치고 고득점을 올리고 있는 모습이 천호의 눈에 들어왔다.
‘어쩐지 좀 눈에 익은 거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