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247)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247)화(247/326)
“그래서 어찌할 생각인가? 한번 들어나 보지.”
“예.”
논의를 위해 모였던 이들이 물러가고 어르신과 둘만 남자 청년, 정문원은 입을 열었다.
“수영 옹주가 골동품들을 수집하고 있지 않습니까.”
“……제법 유명한 사실이지.”
“우선 저는 옹주의 주변 인물들을 포섭하고, 옹주가 좋아할 만한 골동품을 중개하며 신뢰를 쌓고, 저와는 다른 누군가 대리인 하나를 골동품 판매상으로 위장해 수영 옹주에게 접근해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팔도록 하는 겁니다.”
“그래서?”
“몇 차례 거래 후 이제 옹주가 신뢰한다 싶을 때 값비싼 물건을 추천하면 옹주도 쉽게 걸려들 겁니다. 그리고 그때 파는 척하고 돈만 챙겨 종적을 감추는 거지요.”
“말하자면 사기를 치자는 건가?”
“그 후에 옹주가 사기당한 물건 중 하나를 어렵게 구해다 준다면 쉽게 옹주의 환심을 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며 그는 얼마 전 우연히 마주쳤던 옹주를 떠올렸다.
독을 치료한 덕분에 이제 어린아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모두가 알고 있는 그 많은 사업들을 주도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아직 어린 소녀였다.
‘옹주가 해 온 일들을 보면, 궁녀들이 관여한 것들 외에는 깊이 생각하고 시작한 사업은 무엇 하나 없었지.’
본인은 아무 생각 없이 해 온 일들이다 보니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는 격으로 시작한 것을 주변에서 열심히 보좌하며 돈이 모인 셈.
그리고 어미의 출신이 천한 탓인지 그 돈으로 하는 일이라고는 천한 것들의 끼니 챙겨 주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나중에는 가난한 양반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시월각에서 기녀들을 지원해 준다는 말도 들리는데, 그걸 옹주가 하는 일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었다.
‘어린 옹주가 그런 생각까지 했을 리는 없고, 세자 저하가 시킨 일이겠지. 어리석은 백성들이라 순진하게 옹주를 찬양하는 모양이지만 나 같은 사람들이 보기엔 뻔하지.’
체면도 잊었는지 아무리 궁녀들을 대리로 내세웠어도 음식 장사에, 기녀들 공연에, 저속하게도 소설 따위를 찍어 내고.
조금 고상해 보이는 취미는 기껏해야 도자기와 골동품 수집과 신문 발매 정도.
그나마도 최근에는 어디에 그리 돈을 쓰는지 좋은 물건이 있어 보여 드리고 싶다고 찾아가도 좀처럼 물건을 사는 일이 없었다.
덕분에 요즘에는 옹주 사가를 찾아가는 이도 드물었다.
‘하지만 나는 다르지.’
영선이 있으니까.
한때 자신과 혼담이 오갔던 여인이었으나 집안이 역모로 몰락하고 옹주의 노비가 된 여인.
총명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신임을 얻어 옹주의 사가에서 골동품을 관리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어떻게 옹주를 구워삶은 것인지 심지어 골동품의 구매까지 영선에게 맡겨 놓고 있다고 들었다.
사실 영선을 잘만 구슬리면 옹주의 돈을 어찌 융통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 같았다.
‘당시에도 보기 드물게 박식한 여인이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분명 그 조부께서 손녀의 교육에 관심이 많으셨다고 들었다.
만나 뵌 적은 없지만 하나뿐인 손녀를 아끼는 마음에 아이에게 글자는 물론 이런저런 잔재주도 가르치셨다고.
어릴 적부터 몇 번인가 소문으로 들은 적이 있어 알고 있었고, 혼담이 오갈 때도 그걸 딱히 어떻다 생각한 적은 없었다.
‘혼인하면 자식들 교육이나 집안 관리도 걱정 없을 거라 생각했었지만 그런 재주가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물론 그런 속사정까지 말할 생각은 없었다.
문원의 계획을 들은 어르신이 물었다.
“어찌 환심을 얻을 생각인가?”
“옹주의 총애를 받는 영선이라는 노비가 저와 안면이 있습니다. 그를 통하면 어렵지 않을 겁입니다.”
“그 영선이라는 여인이 자네에게 협력할 것 같은가?”
“지금은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 노비가 되었지만 영선은 멀쩡한 양반가의 아가씨였습니다. 아무리 옹주가 노비들에게 관대하다고 한들 노비를 부리며 살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겠지요. 여인 하나 구슬리는 것이 무에 어렵겠습니까.”
“흐음.”
“무엇보다 영선의 아버지가 어르신께 은혜를 입은 이들 중 하나입니다. 여식이 어찌 감히 아버지의 명을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은혜를 입었다고?”
“예. 역모죄로 광산에서 노역을 하던 이들을 일부 합류시키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때 그중에 영선의 부친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문원의 말에 어르신은 반색했다.
“오. 그렇단 말인가?”
“게다가 과거 저와 혼담이 오간 여인입니다. 역당의 딸로 노비가 되어 감히 다시 양반가와의 혼인을 꿈도 꿀 수 없을 테니 제가 거두어 준다고 하면 싫어할 리가 있겠습니까.”
“그래. 그렇다면 그 아비를 한번 불러들이도록 하지.”
“정말이십니까?”
“본디 천한 출생이라면 모를까, 반가의 여식이었다면 부친의 말을 거역하기는 어렵겠지.”
“그리해 주신다면 훨씬 일이 쉬워질 것입니다. 그리고…….”
문원은 조금 뜸을 들였다.
“또 무언가 필요한 것이 있는가?”
“예. 어르신께서 수영 옹주가 좋아할 만한 것들을 몇 가지 가지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뭐든 협조적으로 나올 것 같더니 그 말에 얼굴이 조금 흐려지는 것을 본 문원은 혹 자신이 심기를 거스른 것인가 싶어 숨을 삼켰다.
어르신도 조금 난처한 얼굴이었다.
“저것들을 내가 보관하고 있기는 하지만 내가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물건들일세. 그분께서 모으신 것들이니까.”
“잠시 미끼로 쓰는 것뿐입니다.”
“예전에도 그러다가 그분께서 진노한 적이 있네.”
문원도 그때 일을 떠올리며 한숨을 삼켰다.
“제가 어찌 그 일을 모르겠습니까.”
골동품으로 사기 치다 수영 옹주와 잘못 얽혀서 노비 매매까지 걸렸던 그 일.
아마 누구도, 그 일이 세자가 직접 나설 정도로 커질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으리라.
‘그 덕분에 노비 매매가 끊긴 것도 모자라 각 집안에서 노비를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까지 조사에 들어가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그 미친놈들은 어떻게 거기서 하필 수영 옹주를 납치했는지 기가 찰 노릇이었다.
다행히 제대로 아는 것이 없어 일이 더 커지지는 않았지만 그 후 한동안은, 다들 숨을 죽이고 살아야 했다.
그렇게 몸을 낮추고 있다 겨우 시작한 도박장.
시영원 사람들을 건드린 것은 그 일로 인한 원한 때문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수영 옹주에게 좋은 감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이번에도 수영 옹주를 잘못 건드린 것이 도리어 화가 된 셈이었으니 사실 더 이상 수영 옹주와는 얽히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나는 것은 억울했다.
“하오나 역시 단기간에 옹주의 신임을 얻고 돈도 모으려면 이 방법이 가장 빠르지 않겠습니까.”
“자신이 있는 모양이지?”
“수영 옹주가 이제 어린아이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이 자란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곱게 자라 세상 물정을 모르는 젊은 여자애에 불과합니다. 돈을 빼돌리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좋네.”
문원은 결국 어르신의 허락을 받아 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중에 어떤 걸 필요로 하는가?”
“제가 직접 확인하겠습니다.”
“옹주가 이런 걸 보는 안목이 있을지 모르겠군.”
문원은 그 말에 맞장구치는 대신 애매하게 말을 흐렸다.
다른 사람들은 수영 옹주가 다른 양반 자제들과 마찬가지로 물건의 가치도 잘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영선에게 들은 얘기들로는 옹주도 제법 안목이 있는 모양이었다.
어리다고는 하지만 왕실에서 자라 눈이 높은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터, 어설픈 물건으로는 옹주를 속일 수 없었다.
‘사실 어설픈 물건들로는 영선을 속일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고.’
골동품에 대해서는 문원도 역시 조금 안목이 있었다.
가문이 몰락하기 전에는 집안에 오래된 도자기나 서적들도 제법 있었고, 문원 역시 조부모님께 그런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으니까.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집에 찾아온 영선과 어색하게 대화를 나눌 때는 그런 것들을 화제로 어색함을 덜었던 적도 있었다.
‘수영 옹주는 영선과 비슷한 취향이라고 했으니 옹주가 마음에 들어 할 만한 것을 고르는 건 어렵지 않을 터.’
우선은 영선의 환심부터 사야 했다.
재회한 것도 우연은 아니었지만 그때도, 그 후 종종 찾아갔을 때도 그리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으니 반은 성공한 셈이 아닐까.
영선도 옛 기억이 남아 있을 테니 자신을 거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선보다 더 자신을 반기는 사람이 있으니까.
***
“으음.”
“어찌 그러시옵니까. 옹주 자가.”
나는 드물게 사가에 있는 영선이 보내온 서신을 읽고 침음을 흘렸다.
“영선의 어머니가 건강이 좋지 않으시다네.”
“영선의 어머니라면 분명 옹주 자가의 사가에서 모녀가 함께 지내고 있지 않사옵니까?”
“응.”
영선이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는 건 나도 기억하고 있었다.
내 사가로 소속을 옮길 때 영선의 어머니도 함께 가도록 했으니까.
‘흠. 분명 영선의 어머니는 집안이 풍비박산 난 충격으로 쓰러졌다고 했지.’
원래도 타고나길 그리 강건한 사람은 아니라는 모양이었다. 그래서인지 자식도 영선이 하나뿐이었고.
그런데 남편은 역모로 끌려가고, 평생 곱게 살았을 마나님이 하루아침에 양반에서 노비로 전락했으니 충격으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벌써 몇 년 전 일이고 많이 좋아져서 잘 지내고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
솔직히 내 사가에서 지내고 있으니 밖으로 나갈 일도 딱히 없고, 거기서 다른 사람들도 내 총애를 받고 있는 영선의 어머니를 굳이 구박할 만큼 눈치가 없지 않았다.
지낼 만하니 오히려 시름시름 앓는 것 같기도 했지만 영선이 어머님 몫만큼 일하려고 애쓰곤 했으니 별말은 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일도 별로 없고, 몸도 약하니 그저 영선이와 함께 도자기 먼지 털고 책 정리하는 정도나 돕는다고 들었는데.
“의원도 불러 보았지만 아무래도 영 차도가 없는 모양이야.”
“저런. 영선이 상심이 크겠습니다.”
그렇게 친한 사이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안면이 있는 사이라 소이도 안타까운 목소리였다.
“음…… 그래서.”
“?”
“영선이 혼인을 생각하고 있다는데?”
“예?”
내 말에 소이가 당혹스러운 얼굴을 했다.
사실 나도 좀 비슷한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