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249)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249)화(249/326)
“사실 아무리 그 주인이 대단한 사람이라 해도 말입니다. 노비가 깨끗한 몸일 리가 있겠습니까. 무엇보다 그렇게 미색이 뛰어난 여인이 말입니다. 그런데도 그런 여자를 내가 데려가 주겠다고 하면, 이유가 뭐든 나에게 평생 감사해야 할 일이지요. 아니 그렇습니까?”
“그야 그렇지. 그럼 그 여인은 부인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첩으로 들이는 거겠군?”
“설령 부인으로 삼고 싶다 한들 그게 가당키나 한 말입니까. 그저 제가 좀 잘 대해 주니까 저가 뭐 여전히 양반가 아가씨라도 된 것처럼 뻣뻣하게 구는 것을 보니 참. 주제 파악도 못 하고.”
문원은 혀를 차며 술을 들이켰다.
“허허허. 여인들이 다 그렇지.”
“그래도 재주가 있어서 주인한테 총애받고 돈을 잘 번다고 하니, 아예 앞으로도 계속 거기서 일하면서 정보 좀 빼내고, 돈도 받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측근도 되고 돈도 벌고 하면 좋지.”
사내는 웃으며 술을 따랐다. 둘 다 이미 취기가 오른 목소리였다.
“뭐, 원래대로라면 제 부인이 되었을 사람이니 저도 험하게 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지금은 적당히 잘 대해 주다가 나중에 깨끗한 처녀를 새로 부인으로 들이면 알아서 자기 위치를 깨닫지 않겠습니까. 내가 데리고 산다고 주인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제 지아비인데 어련히 주인에게 좋게 말해 주고, 돈 벌 수 있게 돕지 않겠습니까.”
“그야 당연하지.”
“그렇지요. 오로지 지아비와 그 자식을 위해 뭐든 하는 것이야말로 여인의 덕목 아니겠습니까. 여인이 제아무리 책을 많이 보고 똑똑한 체해 보았자 어찌 감히 충의(忠義)니 우정(友情)이니 하는 것을 알겠습니까. 여인네에게 지아비보다 중요한 게 뭐가 있겠습니까? 삼종지도(三從之道)가 괜히 있겠습니까?”
“요새 그 시영원 때문에 콧대 높은 여자들이 늘어나서 골치 아프긴 하지. 그러니 배알 없는 사내가 아니고서야 누가 시영원 여자들과 혼인을 하겠나.”
“돈은 잘 번다지 않습니까. 뒷배도 있고요. 그래 봤자 여인들이니 잘 구슬리면 되는데 다들 멍청해서는.”
“자네처럼 성공하기 위해 여자를 속여 넘길 만한 능력자가 어디 흔한 줄 아나.”
사내의 말에 문원은 발끈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제가 저 하나 잘되자고 이렇게 고생해서 돈을 버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 자네 말이 맞네.”
두 사내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깔깔 웃으며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저어…….”
영선이 움직이지 않자 의아함에 따라왔다 우연히 대화를 듣게 된 일꾼들은 굳은 얼굴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영선은 지친 얼굴로 간신히 한마디를 꺼냈다.
“……돌아가지요.”
“그, 그러는 게 좋겠네.”
국수는커녕 막걸리 한 사발 얻어먹기도 글렀다는 사실을 직감한 일꾼들은 기껏 들고 온 무거운 집을 메고 아까보다 더 무거운 걸음으로 조용히 몸을 돌렸다.
이후의 일이 어떻게 될지 제삼자의 눈으로 보면 나름 흥미진진한 일이지만, 그게 자신이 살고 있는 집 앞, 아니, 집 안에서 이루어질 예정이라고 하면 조금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뒤에서 들려오는 두 사내의 목소리는 분명, 자신들의 주인을 속여 등쳐 먹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었다.
일꾼들은 그리 자주 본 적도 없지만, 그런 만큼 더 좋은 주인이기도 한 옹주 자가한테 사기를 치겠다는 저 당당하고 뻔뻔한 놈들을 보고 있자니 한 대 패 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옹주 자가가 사기당해서 돈이 없어지면 가장 고생하게 되는 것은 분명 자신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기 결혼을 당할 뻔한 영선의 기분을 더 우선시해야지.’
‘우리는 상식이 있고 경우가 있는 남자들이니까.’
그나저나 이 혼사는 어찌 되는 것인지.
벌써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는데 주변 사람들 보기 부끄러워서 어디 깰 수 있을까.
‘이렇게 선물까지 주신 옹주 자가께 사기당했다고 어떻게 말을 하냐.’
‘나라면 저거 가만 안 놔뒀을 텐데 역시 원래 양반가 아가씨라 그런가 얌전하구만.’
조용히 영선의 뒤를 따르던 일꾼 하나가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앞서 걷던 영선이 갑자기 멈춰 섰다.
그러더니 뒤를 돌아 성큼성큼 걸어가는 게 아닌가.
“엣.”
“앗.”
그리고 말릴 틈도 없이 아까의 주막 안으로 들어갔다.
물론 말릴 생각도 없었지만, 그래도 말리는 척 정도는 해 줄 수 있었는데 안타까운 일이었다.
술에 취한 사내는 여인이 자신 앞에 서자 멍청한 얼굴로 고개를 들어다가 영선을 보고는 얼빠진 소리를 냈다.
“어?”
찰싹!!
그리고 영선의 강렬한 따귀 한 방이 이어졌다.
술에 취해 있던 사내는 맥없이 쓰러지며 상까지 엎었다.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야!”
주방에 있다가 소란을 듣고 나온 주모가 뛰쳐나왔으나 영선은 손을 탁탁 털며 주막을 빠져나올 뿐이었다.
일꾼 두 사람은 별말 없이 영선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쓰윽 들어 올렸다.
굳어 있던 영선의 얼굴에 일순 피식하고 웃음이 스쳤다.
돌아가는 발걸음에 망설임은 없었다.
영선이 굳이 가서 한 대 패 주고 온 건,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옹주 자가께서 말씀하셨지. ‘남편 될 놈이 영 아니다 싶으면 한 대 패 주고 빨리 돌아와. 내가 지켜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라고.’
그 덕분일까. 화가 나서 그렇지 무섭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실 진짜 무서운 건 집 안에 있었다.
***
“파혼이라니! 기껏, 기껏 혼인하기로 했는데 이게 대체 무슨 말이니.”
“말 그대로예요. 어머니. 저랑 같이 살고 싶었던 게 아니라 저를 통해 옹주 자가에게 접근해 돈을 벌려고 했을 뿐이었어요.”
다음 날 아침.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한 영선은 어머니에게 어제 일에 대해 설명했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돌려서 말하려고 애를 썼지만.
도무지 말이 통할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결국 포기한 영선은 어머니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진실을 말해야 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네가, 네가 부족하니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니냐. 가서 정문원 도령에게 사과하거라. 응?”
“제가 그 사람한테 사과할 일은 없어요. 어머니.”
“그럼 네가 이제 무슨 수로 양반과 혼인할 수 있겠느냔 말이야!”
“네?”
병약해져서 기운이 없다던 어머니가 악을 지르는 모습에 영선은 도망도 못 치고 그저 얼굴만 하얗게 질릴 뿐이었다.
“첩 취급받는 게 당연하지, 양반도 아닌데! 그래도, 그래도 천민과 혼인하는 것보다는 양반의 첩이 나아!”
“어머니!”
“네 나이가 몇인데! 어디서 저런 남자를 만날 거야! 저만한 인물이 어디 있다고!”
“저런 남자가 뭔데요! 신분 하나 빼고 보면 제대로 된 직장도 없고! 늙었고!”
히스테릭하게 소리치는 어머니에게 영선 역시 지지 않고 소리를 질렀다.
어제 정문원은 영선에게 나이가 많다고 했지만 정작 그가 영선보다 나이가 많았으니 늙었다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편찮으신 어머니를 위해 뭐든 해 드리고 싶었던 기특한 마음은 어느 사이엔가 사라지고 없었다.
“네가 잘하면 되잖니!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야! 첩으로 들였어도, 네가 입 안의 혀처럼 굴면, 너 없이는 안 되겠다고, 널 부인으로 삼아야겠다 싶어질 수도 있잖니!”
어머니의 말도 안 되는 말에 영선은 실소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어머니는 왜 그런 걸 못 해서 아버지가 소실(小室)을 보고! 기생집을 다니게 만드셨는데요!”
“뭐, 뭐? 네가, 어떻게 이 어미에게 그런 말을……! 이, 이 불효막심한 것!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내가 너 하나를 보고 살았는데 어떻게 이 어미에게 이렇게 패악을 부리는 것이야!”
아프다는 것도 거짓말이었을까. 너무나도 정정하게 소리를 지르는 어머니의 모습에 영선은 어이가 없어 쓰러지고 싶었다.
지금 가장 충격을 받은 사람은 자신인데 왜 자신이 가해자이고, 어머니가 피해자 같을까.
같이 일하는 다른 노비들에게 미안하다 사과했지만 다들 이해한다는 듯한 표정으로 괜찮다고만 했다.
문제는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는 사실이었다.
“저기, 차라리 옹주 자가께 알려 드리는 게 낫지 않겠어?”
“죄송합니다. 어머니가 소란을 피우셔서.”
“아니. 뭐라고 하려는 게 아니고. 빨리 정리하려면 옹주 자가께 말씀드리는 게 낫지 않나 싶어서 그래.”
“또 번거롭게 하는 것도 죄송스러워서 차마 못 쓰겠어요…….”
“아이고…….”
궁에 있는 옹주 자가는 서신을 보내면 와 주셔서 모든 일을 한 번에 정리해 주겠지만. 차마 옹주 자가께 기댈 용기가 없었다.
그리고 영선을 저격한 추가 타격은 그날 저녁, 해가 진 후에 도착했다.
어두운 시간에 나가는 것이 아무래도 위협적이었기에 바로 저택의 담장 밖에서 대화하기로 했다.
몇몇이 혼자 가는 것은 위험하지 않겠느냐며 몽둥이를 쥐고 따라오려는 것을 애써 말렸다.
그런데 정작 정문원은 혼자가 아니었다.
“영선아.”
“……아버지?”
마지막으로 본 것이 언제인지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지만 자신의 아버지가 틀림없었다.
“그래, 나다. 그동안 잘 지냈느냐? 네 어머니는.”
“……잘 지내세요.”
그동안은 계속 안 괜찮아 보였지만, 오늘 아침에 소리 지르시던 것을 보면 건강해 보였다.
“이야기는 들었다. 네가…… 정 도령을 거부했다지.”
“예.”
“이 아비를 구해 주신 분들이 네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데, 어찌 그리 매몰찰 수가 있느냐. 이런 불효막심한 것 같으니.”
“……옹주 자가가 아니었다면 우리 모녀는 지금처럼 있지 못했을 텐데 어찌 은혜를 원수로 갚을 수 있겠어요.”
“나는 역도가 아님에도 억울하게 역당으로 몰렸는데 억울하지도 않으냐.”
“그게 옹주 자가가 하신 일인가요. 주상 전하께서 하신 일인가요.”
“내가 알겠느냐? 갑자기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고 죄를 인정하라고 했다.”
“어쩌다 역모에 연루되신 것입니까?”
“나는 그저 지인의 부탁을 들어주었을 뿐인데…… 이렇게 억울하게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 버리다니. 고통받는 나를 구해 준 이들이 정 도령의 지인들이었다. 앞으로 이들이 우릴 도와줄 거다.”
아버지는 감성에 맞춘 호소력 있는 설득을 시도했으나 지금의 영선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는 일이 고작 여인을 이용해 옹주 자가께 사기를 치는 것인가요? 역모라도 꾸미고 있는 게 아니고요?”
“뭐가 어째? 너, 네가 어찌 이리 부친의 말을 무시한단 말이냐. 이, 고얀 것!”
부창부수(夫唱婦隨)라더니. 어찌 부부가 이리 똑같으신지.
영선은 아버지의 손이 금방이라도 한 대 칠 것처럼 치켜 올라가는 것을 보고 눈을 감는 대신 반대로 눈을 크게 떴다.
철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