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251)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251)화(251/326)
사내는 창백한 안색으로 덜덜 떨면서도 입을 멈추지 않았다.
“저, 저희는 혼인을 약속한 사이이옵니다.”
“영선이가 싫다고 하고, 내가 뜻대로 하라 했으니 그걸로 끝난 일이다.”
“오해가, 오해가 있었사옵니다!”
주제에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를 지르다니. 나보다 먼저 화를 낸 것은 당연히 소이였다.
“지금 감히 옹주 자가 앞에서 언성을 높이는가!”
“아! 아닙니다!”
소이의 불호령에 사내는 다시 고개를 조아렸다.
뭐지, 저거. 내가 만만해 보이나?
나는 그놈이 소이에게 적당히 두들겨 맞는 것을 구경하다 입을 열었다.
“오해라고 하니 나도 궁금하구나. 그래, 자네가 영선이를 이용해서 나한테 줄을 대고 돈을 벌려고 했던 게 오해라고 주장하는 것인가?”
“오, 오해이옵니다. 소인은 참으로 영선을 은애(恩愛)하고 있어 함께하고자 하였사옵니다.”
나는 물론이고 대강 사정을 알고 있는 집안 하인들도 다들 이게 무슨 개소리인가 하는 얼굴이었다.
“아니옵니다! 소인들도 그날 주막에서 말하는 걸 똑똑히 들었사옵니다!”
“맞습니다! 무슨 정보를 빼내고, 돈도 버는 게 낫다느니 하면서, 나중에 어린 처녀를 새 부인으로 들이겠다고 했습니다!”
“!”
그날 영선과 동행했던 이들이 증언하자 정 씨는 얼굴을 찡그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마른세수를 하더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려 읍소했다.
“소인이 그렇게 말한 것은 사실이지만, 진심은 아니었습니다.”
“…….”
이게 뭔 개소린지.
일단 계속 짖도록 내버려 두기로 했다.
“어, 어찌 사내가 남들 앞에서 여인에게 빠진 티를 내겠사옵니까? 그저 조금 허세를 부렸을 뿐인데 영선이 그런 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감히 신분도 잊고 제 뺨까지 때렸습니다. 저는 뺨까지 맞았지만 관아에 고하지도 않고 이리 찾아온 것입니다! 저는 다 용서하고 받아 줄 수 있습니다!”
천민인 노비가 양반인 자기 뺨을 때렸으니 강상죄(綱常罪)를 저질렀다고 관아에 고해 버릴 수도 있다는 협박이었다.
“그거 내가 시켰는데.”
“예?”
“혼인할 놈이 변변찮으면 내 대신 때리고 돌아오라고 했는데, 불만이라도?”
“아니, 저는 그저…….”
“뭐, 관아에 갈 거면 가 보든가. 어디, 누가 곤장을 맞을지 한번 보겠나?”
“아닙니다!”
정 씨 사내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갔다. 안 그래도 추운 날 밖에서 난동을 피우느라 지친 것 같은데 저러다 쓰러지면 참 성가신 일이었다.
“영선이를, 영선이를 만나게 해 주십시오.”
사내는 포기할 수 없는지, 아니면 영선이를 만나면 뭔가 뾰족한 방법이라도 나오는지 막무가내였다.
하지만 나는 영선이를 불러 줄 마음이 없었다.
‘이상하게 또 매달리면 잘 잡혀 주더란 말이지.’
왜 자꾸 쓰레기를 주워서 재활용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잡으면 잡혀 주는 여인들은 심심치 않게 존재했다.
나는 영선이 그리되기를 바라지 않았기에 영선을 부르진 않았다.
하지만 이리 소란이 일면 부르지 않아도 모를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옹주 자가.”
“영선이 네가 어찌 알고 왔느냐.”
“송구합니다. 옹주 자가. 소인이 불민하여 옹주 자가께 이런 부끄러운 꼴을 보였습니다.”
그리 말하며 영선은 사내에게 다가가 호쾌하게 따귀를 갈겼다.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빠악!
“악!”
다만 소리가 좀 범상치 않아 나도 모르게 움찔했을 뿐.
“이런 자 때문에 옹주 자가의 귀한 시간을 낭비하게 했으니 송구할 따름입니다.”
“음. 너무 신경 쓰지 말고, 할 말이 있으니 먼저 안에 들어가 있거라.”
“예.”
영선이 방 안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한 나는 부어오른 뺨을 부여잡고 멍하니 앉아 있는 사내에게 마지막으로 명했다.
“내 집에서 나가고, 다신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말거라.”
“오해, 오해입니다. 옹주 자가. 말이 잘못 나왔을 뿐입니다!”
“그 입에 끓는 물이라도 부어야 좀 조용히 입을 다물겠느냐.”
“!”
사내는 그제야 조용해졌다.
“정말 은애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이에게 모욕당하는 것조차 견디기 어려운데, 다른 사람 앞에서 그리 깎아내릴 수는 없는 법이다. 저런 속이 음흉한 자를 가까이할 수는 없지. 끌어내. 그리고 앞으로 내 사가 100리 안에서 저자가 보이거든 두들겨 패서 내쫓아라.”
“예! 옹주 자가.”
“용서해 주십시오, 옹주 자가!”
결국 사내는 하인들에게 끌려 나갔다.
‘저 스토커 찐따 놈. 마지막까지 시끄럽군.’
실제 본인과 대면까지 한 결과 한 가지는 확실했다.
‘영선이가 고생했다.’
몸 고생, 마음고생 가리지 않고.
“괜찮은가?”
“소, 송구합니다. 옹주 자가.”
내가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영선은 내 앞에 엎드려 울기 시작했다.
역시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라 나는 나이를 잊은 척 영선을 달래 주며 등을 토닥였다.
“괜찮아. 영선이 잘못이 아니야. 오히려 빨리 알아서 다행이지. 안 그래?”
“옹주 자가. 송구하옵니다.”
“아니야. 그럴 수도 있지.”
사람한테 배신당한 것은 영선이니 가장 힘든 것도 영선일 터였다.
“아, 그럼 이렇게 된 거 일단 받은 물건도 돌려보내야…….”
“도, 돌려보내지 마세요!”
“?”
훌쩍이고 있더니, 내가 영선의 구 남친이 보낸 물건들을 돌려보낸다고 했다니 펄쩍 뛰며 일어났다.
“옹주 자가께서 좋아하실 만한 것들로 모아 놨단 말이에요. 제가 그자들에게 속았으니 그 위자료라고 생각하고 옹주 자가께서 받아 주세요.”
“아니…….”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어차피 그자들과 더는 엮이기 싫습니다.”
영선은 훌쩍거리며 내 소매를 붙잡았다.
“그래. 알았다.”
돌려주려면 또 찾아가든가 해야 하니.
사람을 그렇게 모멸감 들게 했는데 다시 찾아와서 뭘 다시 내놓으라고 하지는 않겠지.
“이번에 이상한 놈을 만났지만 언젠가 멀쩡한 사람을 만날 테니 너무 낙심하지는 말고.”
“아니옵니다. 옹주 자가. 저는 남자 따윈 필요 없으니 앞으로도 옹주 자가를 모시며 살고 싶습니다!”
“……으음. 그래, 그러고 싶으면 그렇게 하고.”
너무 악덕 주인 같아서 좀 그런데 본인이 원한다니 일단은 그런 걸로 해 두자.
‘한동안은 남자고 뭐고 꼴도 보기 싫을 테고.’
나는 기왕 온 김에 영선이를 달래어 오랜만에 함께 밖으로 나가도록 했다.
범상치 않은 스토커가 있으니 앞으로 한동안은 밖을 돌아다니기도 힘들 테고.
시월각과 장터에 데리고 간다는 말에 영선은 반색을 하며 나설 준비를 했다.
‘내가 너무 무심하긴 했지. 밖에 못 나가게 한 건 아니지만 일단 신분들이 그러하니 마음 편하게 돌아다니지도 못했을 테고.’
영선이도 기분전환 좀 시켜 줘야지…….
도자기고 유물이고 아무리 중요해도 저렇게 울고 마음 쓸 일은 아닌데.
그래도 기왕 혼인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가능한 한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던지라 나도 마음이 썩 편하지는 않았기에 기분 전환은 필요했다.
“영선이도 연극을 좋아하는구나.”
“소설도 읽었는걸요, 싫어하는 이들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하긴, TV도 스마트 폰도 없는 시대니까 볼만한 게 별로 없지.
영선을 데리고 시월각에 나가서 연극도 보여 주고, 새로 만든 오락장에도 데려갔다.
“영선이는 활도 쏠 줄 안다고 했지?”
“예.”
그간 쌓인 스트레스가 많았나. 영선이는 화살로 표적판을 난도질했다.
궁술은 사가에서도 할 수 있으니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가에서도 할 수 있게 좀 알아봐야겠다.
“그런데 옹…… 아기씨. 여기 있는 자잘한 물건들은…….”
화살을 다 쏘고 돌아온 영선은 주변에 장식되어 있는 물건들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맞아 이거 아마 영선이 생각하는 그게 맞을 거야.”
“세상에.”
나한테 주고 싶다고 두고 가는 사람들도 있다는 얘기도 전해 주자 영선을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오늘 본 중에 가장 생기가 넘치는 표정을 했다.
“실은 영선이에게도 한번 보여 주고 싶었거든. 마침 시기도 적절해서 데리고 나왔지. 저 작은 것들 말고 큰 것들 모아 놨으니까 이따가 그것들 좀 봐 줘.”
“예. 옹…… 아기씨.”
영선이는 사가에서만 살아서 그런가, 옹주 자가라는 호칭이 너무 입에 붙어서 큰일이네.
영선이는 오락장 창고에 모아 둔 물건들을 보고 당황한 얼굴이었다.
“의외로…… 이것들도 상당히 좋은 유물들인데 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요?”
“그러게. 나도 궁금하다니까.”
종류도 제법 다양했고 통일성도 없었다.
“사실…… 옹…… 아기씨의 집에도 누군가가 이런 걸 가지고 온 적이 있었습니다.”
“어? 그래? 그런 말 없었잖아.”
“그게, 다짜고짜 옹주 자가께 은혜를 입은 사람이라고 가져와서 곤란하다고 돌려보냈거든요.”
“무슨 은혜?”
“그걸 말도 안 하고 그냥 사라지지 않겠습니까. 저도 그것까지는 알아내기는 어려움이 있어서…… 일단 보관만 해 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가끔, 이름도 없이 뭔가 두고 가는 사람들이 있어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정말 수준도 천차만별이네요.”
자잘한 것들은 귀엽기도 하고. 놓아두고 가는 대로 그대로 장식처럼 쓰는 경우도 있다고.
“일단 귀해 보이는 것들부터 챙기겠습니다.”
“응. 다 정리하면 천호한테 맡겨.”
“네.”
활을 쏘며 스트레스 해소를 한 데다, 좋아하는 골동품들을 잔뜩 봐서인지 영선의 얼굴은 아까보다 꽤 밝아져 있었다.
‘데리고 나오길 잘했네.’
이제 슬슬 돌아가 봐야 할 시간이었다. 그대로 나가서 사가로 돌아가려는데 입구가 묘하게 번잡스러웠다.
“무슨 일이지?”
“글쎄요…….”
시꺼먼 아저씨들과, 어린 꼬맹이들이……. 대치?
게다가 시꺼먼 아저씨 쪽은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아저씨들, 뭐 하세요?”
“어? 아! 마침 잘됐다. 천호! 이 애들한테 나 이상한 아저씨 아니라고 좀 말해 줘라.”
“뜬금없이 무슨 말씀이세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천호는 전직 착호군 아저씨와 아이들 사이로 끼어들어 갔다.
나도 어쩐지 기억에 남은 아이가 있어서 기억하고 있었다.
“아, 이 아이는 전에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예?”
“혹시 전에 말에 치일 뻔한 적이 있지 않니?”
“예? 아, 맞, 맞아요! 그때 그 커다란 말 주인 맞죠?”
지난번에 여기 왔다 나가는 길에 마주친 아이였다. 왜 이 시간에 여기 있는 거지, 어린애가…….
“그런데 너희는 여기서 뭐 하고 있어?”
“이 아저씨가 우리 물건 훔쳤어요!”
“뭐?”
그 말에 일단 아이들과 격리를 도와준 천호의 얼굴에 격렬한 짜증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