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252)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252)화(252/326)
“진짜예요?”
천호의 떨떠름한 목소리에 아저씨들은 일제히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거든?”
“아니, 우리가 뭘 어쨌다고…….”
아저씨들이 온몸으로 부정하고 있었지만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단호했다.
“하지만 아저씨들이 지나가고 없어졌다고요!”
“거참, 우리 아니라니까. 게다가 오늘도 오락장에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데. 왜 우리가 가져갔다고 생각하는 거냐.”
아저씨들이 말을 걸며 아이들에게 다가가자, 아이들은 기가 죽어서 천호 뒤에 달라붙어 작은 목소리로 항변했다.
“그, 그치만…….”
“얼굴이 무서운걸…….”
“…….”
아이들의 말에 주변에서 귀를 기울이고 대화를 듣던 이들이 다들 빵 터져서 켁켁거리며 웃었다.
저 아이들 생각에는 물건이 없어졌는데 마침 그 옆을 지나간 험악한 인상의 아저씨들이 있으니, 범인이 틀림없다고 단정 지은 모양이었다.
‘으음. 겁이 있는 듯 없는 듯.’
하긴 애들이 그렇지, 뭐.
옆에서 듣고 있던 나는 일단 아이들을 잘 달랬다.
“아가들아. 아무리 얼굴이 무서워도 나쁜 짓은 안 했을 수도 있단다.”
“정말요?”
“우리, 아가 아니거든요?”
“맞아. 아가는 더 어린애들이지.”
이 아가들이 뭐래.
나는 내 성장 전 사이즈와 엇비슷한 아이들의 항변을 적당히 씹으며 생산성 있는 대화 쪽에 집중했다.
“그래. 선량한 얼굴로 나쁜 짓 하는 사람도 많거든. 특히 사람들한테 사기 치고 거짓말하는 건 오히려 겉보기엔 멀쩡한 얼굴인 경우가 더 많단다.”
“왜요?”
“너희라면 저 아저씨가 하는 말을 믿겠니. 여기 형이 하는 말을 믿겠니?”
“……!”
내 말에 아저씨들의 얼굴과 천호의 얼굴을 한 번씩 쳐다본 아이들은 뭔가 깨달음을 얻은 얼굴로 천호에게서 후다닥 멀어졌다.
천호는 어처구니없는 듯 살짝 원망스러운 어조로 투덜거렸다.
“저한테 왜 그러세요.”
“아니, 나는 예를 든 것뿐이거든?”
애들도 세상이 험하다는 건 알아야지.
아이들은 저들끼리 쑥덕거리다가 나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그럼 누나같이 예쁜 사람도 나쁜 짓 해요?”
“음…… 할 수도 있지.”
아이들은 혼란스러운 얼굴이었으나 나름 납득했는지 조용해졌다.
“그러니까 사람을 얼굴만 보고 의심하거나 믿으면 안 된단다.”
“예.”
이러니저러니 해도 말을 잘 듣는군……이라고 하면 저기 아저씨들은 억울하겠구나.
“응. 그러니까 무슨 일 때문에 그러는지 말 좀 해 주렴. 다들 궁금해서 죽을 거 같은 얼굴이니까.”
“하지만 그럼 누나도 믿으면 안 되는 거 아닌가…….”
“학습이 빠른 건 칭찬할 일이지만 일단 대화가 우선일 듯하구나. 너희 보호자들은 어디 있니?”
내 말에 아이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 바빠요.”
“오냐.”
다행히 없는 건 아닌가 보군.
‘하긴 보호자가 없는 아이들이었으면 시영원으로 갔겠지.’
행색을 보아하니 나름 깔끔한 것이 거리를 떠도는 아이들도 아니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얘기하자.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길을 막잖니.”
“네에.”
회유가 통한 건지 뭔지, 아이들은 일단 내 말대로 안으로 따라 들어왔다.
“아저씨들도 같이 가시죠?”
“으음. 이대로 가는 것도 억울하니까 그렇게 하지.”
천호의 권유도 있어서 착호군 아저씨들도 순순히 안으로 따라 들어왔다.
아이들이라 말이 제대로 안 통하기도 하고. 사람을 경계하는 걸 보니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내려면 좀 성가시겠다 싶었는데 역시 아이들은 아이들이라 의외로 쉬웠다.
딱히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여기 아이들도 먹을 수 있는 음료랑 과자 인원수대로 줘.”
“예.”
“!!”
내 말에 곧 과일청으로 만든 음료와 과자가 나오자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내 눈치를 봤다.
“저, 정말 이거 먹어도 돼요?”
“이거 비싼 거 아니에요?”
글쎄. 아마 좀 비쌀걸.
“내가 사는 거니까 먹어도 된다.”
“와아!!”
조금 경계하고 있던 아이들의 눈은 과자가 코앞에 놓이자 금방 반짝반짝 빛나며 나에게 무한한 호의가 담긴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래. 애들은 애들이지…….’
처음에는 조금 눈치를 보던 아이들은 한 명이 먼저 과자에 손을 뻗자 너 나 할 거 없이 허겁지겁 과자를 먹기 시작했다.
“으음. 모르는 사람이 사 주는 거 함부로 받아먹으면 안 되는데.”
“사 주신 분이 그런 말씀을 하셔 봤자…….”
그러게 말입니다.
아저씨들도 겸사겸사 과자를 얻어먹으며 나와 천호의 대화에 피식피식 웃었다.
“후아. 맛있다.”
“정말.”
전투적으로 과자와 음료수를 먹어 치운 아이들은 곧 배부른 고양이처럼 내 주변에 엎어졌다.
애들 경계심이 이렇게 바닥까지 떨어지다니 걱정이었다.
‘시영원 아이들에게도 교육을 좀 더 단단히 시켜 놓도록 해야지.’
예전에 큰 사건(*옹주 유괴 사건)이 있어서 경계가 강화된 덕분에 요즘에는 아이들 납치 사건 같은 건 일어나지 않는다던데, 언제 또 그런 일이 일어날지는 모를 일이었다.
“다 먹었니?”
“예!”
“더 먹으면 안 돼요?”
“조용히 해, 바보야!”
눈치 없이 과자를 더 먹고 싶어 하는 아이도 있었으나 곧 다른 아이들에게 제압되었다.
“그래서, 이제 얘기를 좀 들을 수 있을까?”
“예에. 그게…….”
아직도 망설이는 아이가 있는 반면, 난생처음 맛본 과자 앞에서 경계심이 바닥까지 떨어진 아이도 있었다.
“우와. 저기, 누나. 누나는 부자예요?”
아이는 나한테 쪼르르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속삭였다.
‘내가…… 부자냐고?’
옹주로 다시 태어나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질문이었지만 답은 하나였으므로,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부자란다.”
“와, 정말요? 어떻게 부자 됐어요?”
“음. 집에 돈도 있었고. 도와주는 사람도 있었고. 운도 좋았고.”
내 말에 뒤에 있던 소이가 딴지를 걸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오해의 소지가 있잖습니까.”
“다 사실이잖아. 애초에 자본금 없으면 이렇게 돈 못 벌었다고. 내가 내 힘과 노력만으로 성공해서 부자 됐다 그러면 그냥 기만이지.”
우리가 아옹다옹하는 사이 아이들도 뭔가 말이 오가는 듯했다.
“그럼 말해도 되지 않을까?”
“그러게.”
부자라는 게 뭔 상관인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은 또 저들끼리 쑥덕거리더니 이내 결심한 듯 한 명이 내게 다가와 속삭였다.
“저기, 이건 비밀인데요.”
“비밀?”
내가 되묻자 아이들은 또 저들끼리 투닥거렸다.
“야, 그걸 진짜 말하게?”
“아니, 부자면 좋은 거라고 갖고 싶어 하진 않을 거 아냐.”
너희가 부자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 건 잘 알겠다.
‘보통 부자가 더 욕심이 많은 법인데.’
나중에 가르쳐 줘야지.
“알았어. 다른 사람한테는 말 안 할게.”
“진짜요?”
“응.”
나는 아이들에게 몇 번이나 다짐을 받고, 전직 착호군 아저씨들까지 좀 떨어지게 한 후에야 아이들과 대화를 이어 갈 수 있었다.
“여기 오락장은 옹주 자가께서 만드셨다고 들었거든요.”
“그렇지?”
“실은 저희는 옹주 자가께서 좋아하는 물건을 드리고 싶어서 왔어요.”
“???”
뭔 소리야, 이게.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아이는 스스로도 내용 정리가 안 되는지 횡설수설하기 시작했으나, 어찌어찌 내용 파악은 가능했다.
아이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저 아이들은 각기 다른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왔다고 했다.
심지어 시영원 출신이거나, 시영원 선생들 밑에서 공부를 한 아이들이었다.
“한동안은 농사일이 바쁘지 않기도 하고, 겨울 동안만이라도 한양에서 일하며 공부해 보지 않겠냐고 해서 형 누나들 따라 올라왔거든요.”
“저희 언니도 시영원에서 서울 오면 공부도 가르쳐 주고 밥도 준다고 해서 저랑 같이 따라왔어요.”
“아아.”
안 그래도 전부터 싹수 있는 애들은 서울로 보내라고 했었다.
말은 나면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고 하지 않던가.
아무래도 공부든 뭐든 재주가 있다면 서울이 빛을 보기 좋았다.
‘게다가 올해는 작황이 좋지 않은 지역도 많아서 형편이 좋지 않은 집도 많으니, 이번 기회에 애들을 많이 올려 보내도 괜찮겠냐고 해서 허락했었지.’
운영이야 이제 내가 지시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는 알아서 돌아가고 있었고, 시영원에도 사람이 지방으로 많이 빠졌으니 반대로 지방에서 사람을 데려와 채우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아무래도 시영원도 지방보다는 서울 본원 쪽이 풍족한 편이니까 아이들을 먹이는 것도 비교적 부담 없을 거고.
“물론 저희도 공부하고 있어요!”
“일도 조금씩 돕고 있고요. 여기 오는 것도 허락받고 다 같이 왔어요.”
“얘는 다른 지방에서 온 거 아니고 여기 살던 애라서 길을 잘 알거든요.”
“서울에 온 김에 시영공원이나 오락장에 와 보고 싶었거든요. 아이들 사이에서도 유명해요.”
“아…….”
어쩐지 애들은 옹주 자가라고 꼬박꼬박 제대로 부르더라니. 시영원 선생들에게 배운 아이들이어서 그랬구나.
그나저나 나는 본의 아니게 뭘 만든 거냐.
‘무슨 서울로 수학여행 와서 에X랜드나 X데월드 가듯이 찾네. 아, 근데 비슷한 거 맞네?’
여기는 몰라도 시영공원은 그냥 그거였다. 지방 분원에도 비슷한 것을 만들긴 했는데 아무래도 규모 면에서 차이가 있었다.
일단 아이들의 신원에 대해서는 확인을 했으므로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그래서 너희는 여기서 뭘 잃어버렸는데?”
“실은요. 여기에다 선물을 두고 가고 있었거든요.”
“선물?”
예상치 못한 단어였다.
“누구한테?”
“옹주 자가요!”
“……어? 나…… 아아니, 옹주 자가께?”
“예! 옹주 자가 덕분에 다들 배곯는 것은 면했다고 했어요.”
“저희 집은요. 이번에 흉년이라 먹을 게 별로 없었는데 옹주 자가께서 시영원을 통해 먹을 것을 주셔서 덕분에 다들 굶지 않았대요.”
“우리도.”
“저희도.”
“…….”
사람들을 굶길 수는 없다고 별생각 없이 한 일인데 당사자들에게 이런 말을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다들 애들이라 정신이 없어서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