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256)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256)화(256/326)
“그래. 어떻던가.”
“걱정 마십시오. 어리석고 욕심만 많으니 어르신께서 의도하신 대로 잘될 것이옵니다.”
아까까지 문원과 함께 술자리에서 그를 부추기던 이는 어르신 앞에서 본심을 내보였다.
“하는 짓도, 행동도 천박하니 빨리 잘라 버리는 것이 좋겠지.”
“그래도 돈을 버는 재주는 있어 어르신께서 총애하였는데 돈푼깨나 벌었다고 근래에 기세가 등등해서는 건방지게 굴더군요.”
“그간 제법 열심히 일했는데 자기 주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게 그 친구의 가장 큰 단점이지.”
“게다가 이번에도 경박하게 굴다 일을 그르치지 않았습니까. 그런 자를 중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두 사람은 다시 한번 주변을 살폈다.
“그 사냥꾼들과 잘 연결해 주었겠지.”
“예. 전부터 은근히 안면이 있던 사이이니, 다른 언질을 하지 않아도 우리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것입니다.”
“이제부터 그자가 하는 일은, 우리는 모르는 일이지. 우리는 그저 옹주와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이나 조금 더 해 두면 되겠지.”
“예.”
“하지만 기껏 옹주와 안면을 텄는데 설마 장물 판매로 한 명이 못 쓰게 될 줄은…….”
“정문원 그자가 추천한 인사가 아니었습니까. 유유상종이지요.”
“쯧.”
하필이면 왜 또 옹주를 잘못 건드려서 바로 포도청으로 배송된 건지.
“그자가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않겠지요?”
“절도와 장물 유통으로 감옥 가는 편이 더 안전하다는 걸 모를 정도로 바보는 아닐 테지.”
어르신은 일이 좀처럼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을 탄식하며 술잔을 비웠다.
“더 쉽고 편한 일이 있는데 그 길로 갈 수가 없으니…….”
“그분께서는 아직도 연락이 되질 않으십니까?”
“그래. 하지만 아마 곧 연락이 될 것이네.”
두 사람은 비릿하게 웃었다.
***
얼마 후, 사저에서 또다시 연락이 왔다.
“이건 또 뭐야?”
“저희도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사오나, 옹주 자가께 온 것은 틀림없어 보이옵니다.”
“흐음.”
요즘 무슨 일이지.
안 그래도 오락장으로 들어오는 골동품들 정리하는 데만도 꽤 시간이 걸릴 정도로 양이 많았는데.
지금 내 눈앞에는 내가 전부터 찾던 오래된 책들과 유물들이 있었다.
‘갑자기 이게 대체 뭐지……?’
의아해하는 나에게 다른 하인들이 조심스럽게 추측을 내놓았다.
“그, 그 사람이 사죄의 의미로 보낸 것이 아닐까요?”
“설마.”
“아니면 그 사람을 중개인으로 쓰던 사람이 옹주 자가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싶어 보냈을 가능성은 없습니까?”
“그렇다면 본인이 직접 오지 않았을까 싶지만…….”
아니면 이거 혹시 손절의 의미일지도.
영선이 등쳐 먹으려던 놈이랑 자기네랑 관계가 없다고 말이지.
“흐음.”
“어찌 그러십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익명으로 보내오는 것들도 받기로 했고 돌려보내기도 마땅치 않긴 한데…… 그래도 영 내키지가 않아.”
내 말에 소이나 천호도 묘한 얼굴을 했다.
“고서적은 찾기도 힘든 물건이니 좋아하실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보낸 사람도 그렇게 생각을 했겠지…….”
하지만 다른 것도 아닌 서적이라면 더 기분이 찜찜했다.
물론 진품이 맞다면 책에는 죄가 없지만.
“그러고 보니 ‘그자’는 여전히 집 주변을 어슬렁거리나?”
영선이 보지 않는 틈을 타 집안 하인을 불러 물어보니 주먹을 불끈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어지간히 독한 놈인지 아직도 이 근방에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물론 그때마다 저희가 적당히 손을 봐주고 쫓아내지만요.”
“음…….”
집 안에 힘쓰는 인력들이 많아 이래저래 다행이었다.
예전에 도박장 중독자들도 자꾸 찾아와서 강제 격리한 적도 있고, 아무래도 힘쓰는 인력은 계속 필요할 모양이었다.
‘나도 돌아다닐 때 천호를 떼어 놓지 말아야겠다.’
여자에게 차인 놈들은 그게 자기 잘못이든 아니든 남 탓을 하며 폭력을 휘두르고 싶어 하니까.
영선이는 분명 하고 싶은 말이 더 있는데도 아직도 뭔가를 망설이는 듯했다.
그게 무엇 때문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영선이를 너무 재촉하고 싶지는 않았다.
***
“괜찮으신 거요?”
“……괜찮소.”
옹주의 사가 근방으로 가기만 해도 어떻게 알았는지 옹주의 하인들이 나타나 자신을 막아서니, 문원은 영선과 마지막으로 헤어진 후 한 번도 다시 만나 오해를 풀지 못했다.
‘어린 옹주가 남녀 간의 관계에 대해 뭘 안다고.’
그날 영선이 충격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잘만 설득하면 자신에게 돌아올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런데 옹주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 영선은 자꾸 옹주의 뒤에 숨어 나타나질 않았다.
“방해꾼…….”
으득.
벌써 몇 번이나 그 근처에서 붙잡혀 옹주의 하인들에게 매를 맞았는지 모른다.
‘내가 이렇게 고생하는데 어째서 영선은 한 번도 나타나질 않지.’
이 정도면 못 이기는 척 용서해 줄 법도 한데.
이게 다 옹주 때문이었다.
옹주만 아니었으면 지금쯤 영선을 안고 단꿈에 젖어 있었을 것을.
어찌 그리 물색없이 남녀 간의 싸움에 끼어드는 것인지.
기묘한 독으로 자라지 않아 그 나이가 되도록 혼인도 하지 못한 처지이니, 부리던 이가 먼저 혼인하는 것에 샘을 내는 것이 틀림없었다.
자신과 영선이 비록 과거 정식으로 얘기가 오간 것은 아니어도 부모님들이 정한 정혼자였고, 지금도 영선의 부모님들은 자신을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사이가 아니던가.
‘옹주만 없어지면…… 영선도 다시 내게 돌아올 거야.’
이제 나이가 많고, 쓸데없이 아는 것이 많고 고분고분하지 않은 게 큰 흠이지만, 그래도 영선은 보기 드문 미인이었다.
덕분에 소녀 시절에는 주변에 흠모하는 놈들도 제법 있을 정도였다.
‘다른 사내의 것이 되었으리란 생각에 원통해 잠 못 이룬 날들도 많았지.’
영선을 손에 넣고 옹주의 신임을 얻게 되면 일석이조였다.
영선이 총명하다 해도 역시 여인이라 참으로 생각이 짧았다. 자신이 잘되면 영선에게도 좋은 일인 것을.
역시 문자를 익힌 것도 여인에게는 쓸데없는 일이었다.
그저 술자리에서 조금 거슬리는 말을 했다고 이렇게 경솔하게 혼담을 깨어 버리고 사람에게 상해까지 입히다니…….
“이게, 다…… 옹주 때문이야.”
혼자 중얼중얼거리는 정문원을 보며 사냥꾼들을 저들끼리 시선을 공유했다.
‘미친놈이군.’
‘미친놈이야.’
하긴 미친놈이니 이런 짓을 하고 있겠지.
‘우리야 돈만 받으면 되니까.’
도성 근처에는 호랑이들이 많지 않았다.
그간 정부에서 호랑이 사냥을 적극적으로 해 온 탓이었다.
그러니 호랑이를 원하는 곳으로 유도하려면 여러 날에 거쳐 짐승의 피가 필요했다.
어느 정도까지는 함께했지만 더 위험한 곳까지 간다면 함께할 생각은 없었다.
‘미친놈과 함께 개죽음할 수는 없지.’
잡아 두었던 닭을 죽여 궁으로 가는 길목마다 피를 뿌리는 문원을 보며 사냥꾼들은 혀를 찼다.
자신들도 돈을 받아서 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역시 저자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설마 호랑이들이 궁에 들어가는 걸 바라는 건 아니겠지.’
그런 거라면 지금 자신들이 몰래 쓱싹해 버리고 신고하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저렇게 어설픈 역모에 잘못 엮이는 것은 사절이었다.
***
“옹주 자가, 오늘은 일찍 안으로 들어가시죠.”
“왜? 무슨 일 있어?”
내 의문에 소이는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근래에 호랑이 울음소리를 들었다는 이들이 있습니다.”
“호랑이? 궁 안에서?”
문득 예전에 있었던 누군가의 자작극이 떠올랐으나. 그때와는 다른 상황이겠지.
“겨울밤에 호랑이 소리라니, 사람들이 공포에 떨고 있겠군.”
“예. 날이 짧아 해가 금방 지니 더욱 그렇지요. 궁녀들도 다들 어두워지면 밖에 나오는 것을 꺼린답니다.”
“음, 그래도 오늘은 조금 걷고 싶으니까. 금방 갈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예.”
내 말에 따라 소이와 궁녀들은 뒤로 물러나고 천호만 조용히 뒤를 따랐다.
“옹주 자가께서 복수도 해 주셨는데 마음에 차지 않으십니까?”
“아무래도 좀 부족한 거 같아서. 그런 놈들은 본인이 잘못했다는 자각이 없어서 도리어 피해자를 원망하거든.”
“그렇습니까?”
하여간 늘 피해자들만 힘든 법이었다.
게다가 영선의 태도를 보면 뭔가 더 밝히지 않은 사실이 있는 모양인데 이걸 추궁하기도 그렇고.
그런 생각을 하며 걷고 있으려니 주변이 적막했다.
“겨울이라 그런가, 주변이 조용하네.”
오랜만의 산책인데 오늘따라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평소에는 새들이 시끄러운데…….’
내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사이,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천호도 눈발이 신경 쓰였는지 재차 권했다.
“옹주 자가. 눈이 오니 어서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응.”
본래 오늘처럼 생각할 것이 있어 산책을 할 때는, 평소처럼 줄줄이 따라다니지 않고 천호만 내 뒤를 따르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유독 평소와 무언가가 달랐다.
“쉿.”
“?”
천호가 갑자기 내 손목을 잡아 제 뒤로 보냈다. 평소라면 있을 수 없는 무례였으나 지금 그걸 따질 분위기가 아니었다.
“뭐야?”
“소리 내지 말고 천천히…….”
“?”
그렇게 말하는 천호는 내 시야를 묘하게 가리고 있었으나, 천호가 무엇을 가리고 있는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천호의 커다란 몸으로도 가릴 수 없을 만큼…… 큰 것이었으니까.
나는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을 부정하고 싶었다.
“왜? 저런 게 왜 이런 데 있는 거지…….”
뭔가…… 으르렁거리는 소리 같은 게 나는데……?
천호가 검집에 손을 얹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몸이 굳었다.
천호는 세자에게 허락을 받아 검을 차고 출입하고 있었지만 내 앞에서 검을 뽑아 드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검을 뽑으려 한다는 것은…….
“저한테 꼭 붙어 계세요.”
“응.”
이쪽을 돌아보지 않는 천호의 등에 매달리듯 달라붙어 주변을 살폈다.
‘일단, 이쪽에는 없는 거겠지?’
‘그것’이…… 꼭 한 마리란 법은 없었으니까.
일단은 다행히, 달리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없었다.
아니, 다행은 뭐가 다행이야.
뭐야, 저거. 진짜야? 진짜인가??
천호 때문에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꼬리는 확실하게 보였다.
현실적으로 너무한다 싶지만 착시가 아니라면, 저것은 호랑이가 맞는 것 같았다.
‘미쳤나…….’
조선 시대에 왕궁이든 관아든 호랑이가 들이닥쳤다는 기록이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요?
지금이 왕조 초기도 아닌데!
게다가 성원 세자의 일로 호랑이 사냥도 잦았는데?
하지만 일단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산속에서 여기까지 내려왔다는 건 배가 고프다는 뜻일 테니까.
그리고 짐승들도 먹잇감으로는 기왕이면 작고 약한 개체를 선호하는 법.
천호와 내가 있으면 당연히 나를 공격하겠지…….
아니, 천호를 공격해야 된다는 뜻은 아니고.
‘소이랑…… 다른 궁녀들은 어디 있지?’
아무리 궁 안이라도 나와 천호만 두고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처럼 대치 상황일 때 소리를 질러서 괜히 자극하는 것도 좋지 않은데.
천호가 뒷걸음질로 천천히 거리를 벌렸다.
그때였다.
“옹주 자…….”
“꺄아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