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257)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257)화(257/326)
찢어지는 비명 소리와 함께 ‘그것’이 방향을 바꾸는 것이 보였다.
날붙이를 들고 있는 커다란 덩치의 천호보다 만만해 보이는 사냥감을 발견했으리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서 나와 천호를 제외하면 ‘저것’의 눈에 띌 만한 사냥감은 방금 나를 부르던 내 궁녀들뿐.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온몸에 핏기가 가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 안 돼!”
“옹주 자가! 반대쪽으로 뛰어요!”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천호는 나에게 그렇게 외치는 것과 동시에 호랑이를 향해 돌멩이 하나를 집어 던졌다.
“크허헝!!”
어딘가에 명중했는지 호랑이의 성난 울음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굳어 있던 나는 그 울음소리에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정신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뒤에서 들려오는 정체를 짐작하기 어려운 소음에 등골이 오싹했다.
‘안 돼, 뛰어야 해.’
뒤돌아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미친 듯이 달렸다.
내가 옆에 있으면 천호에게 도리어 방해만 될 테니 빨리 사라져 주는 게 나을 터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이 시대의 다른 사람들보다는 좀 호랑이 울음소리에 익숙하다는 것 정도였다.
물론 이렇게 목숨을 위협받는 것은 처음이지만 그런 만큼 죽을힘을 다해 뛸 수 있었다.
뒤에 남은 천호가 걱정이었지만 내가 지금 돌아본다고 천호에게 도움이 될 리가 만무했다.
‘빨리 다른 사람을 불러와야 해.’
다행히 이쪽 방향으로 가면 익위사들이 훈련하는 곳이 있었다.
활 쏘는 연습을 하는 곳이라 나도 자주 찾았기에 익숙한 곳이다.
“헉! 안 돼!”
멀리 뒤에서 들려오는 천호의 목소리와 동시에 깨달았다.
‘이거 아무래도 호랑이가 내 쪽을 향하고 있는 거 같은데…….’
동물들도, 아니, 동물들이야말로 약한 개체를 귀신같이 알아보고 목표로 하는 법이니까.
아까 나는 천호의 뒤에 있어 그리 눈에 띄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게다가 옷 색깔마저 화려하니 눈에도 잘 들어올 터.
쓸데없이 냉정한 생각을 하는데 멀리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으르렁!!”
“꺄아악!!!”
오금이 저려서 쓰러질 거 같아 차라리 비명을 질렀다. 이미 따라오고 있는데 달라질 게 뭐가 있겠는가.
그나마 익위사들 훈련장에 아직 누군가 남아 있다면 도움을 청할 수 있을 터였다.
아니, 일단 중문까지만 가도 문을 지키는 누군가가 있겠지. 누구든 궁녀들보다는 나을 것이다.
‘천호는 무사할까?’
뒤에서 계속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해서 차마 뒤를 돌아볼 수도 없었다.
다행히 곧 멀리서 여러 사람과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음과 비명 소리 등이 들려왔다.
그리고 동시에 중문이 보이며 익위사 사람들의 목소리도 들렸다.
“옹주 자가!”
“무슨 일이십니까?”
멀리서 소란이 일어난 것 같기는 한데 쉬이 자리를 비울 수 없어 갈팡질팡하던 이들이 나를 보고 급히 달려왔다.
아는 사람이 보이자 안심해서인지 휘청거리며 무릎이 꺾이는 것을 겨우 버티고 걸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는지 시선이 내게 집중되었다.
나는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말이 제대로 나오질 않았지만 손가락으로 내가 뛰어온 쪽을 가리키며 겨우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
“호, 호랑이!”
“예?”
“호랑이가, 나왔다고!”
“!!”
내 말에 긴장하고 있던 이들의 눈빛이 바뀌었다.
“활과 화살부터 챙겨!”
“예!”
훈련 중이던 몇몇 익위사 관원들의 얼굴에 긴장의 빛이 흘렀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세자를 모시는 이들 중에 죽은 성원 세자의 일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세자를 지키지 못한 데다가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고는 하나, 세자를 지키기 위해 홀로 호랑이를 잡았다는 연선오 좌세마의 존재는 익위사 내에서 말 그대로 전설이었다.
그리고 그 일로 인해 현재 세자를 지키는 익위사 내에는 어느 때보다 실력 위주로 뽑은 이들이 많았다.
물론 그 덕분에 ‘너희도 연선오 좌세마 정도는 해야 하는 거 아니냐.’ 내지는 ‘아무리 잘난 척해 봐야 연선오 좌세마처럼 호랑이를 잡지는 못하겠지.’ 같은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역대 어느 익위사 때보다도 빡세게 굴려져야 했다.
덕분에 익위사 관원들에게 연선오는 그야말로 선망과 증오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정말 호랑이가 나타났으니, 긴장과 동시에 죽어도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함께하는 듯했다.
“지금 천호가 위험해!!”
“네?”
“천호가, 혼자 호랑이를 막고 있었는데…….”
“네에?”
“그 어린놈이?”
대부분 일전의 일로 천호를 알고 있었으므로 놀란 얼굴로 서로 시선을 주고받고는 몇 명이 먼저 무장을 챙겨 앞으로 나섰다.
“저희가 가 볼 테니 너무 심려치 마시지요.”
“예, 옹주 자가. 어서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
천호가 걱정된다지만 다들 목숨 걸고 달려가는데 뭘 더 해 달라고 투정 부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부축을 받아 몸을 일으켰다.
‘아까 소란스러웠던 걸 보면 그쪽에서도 도와줄 사람들이 왔다는 건데. 천호는, 다른 사람들은, 무사할까.’
안전한 곳에 들어왔는데 가만히 있으려니 도리어 몸이 벌벌 떨렸다.
괜찮을까? 괜찮겠지?
다들 분주한 가운데 나만 할 일 없이 있으려니 더욱 머리가 복잡해졌다.
‘게다가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
이쪽 역시 소식을 전하고 군사들을 부르러 달려 나가긴 했지만 어차피 익위사에는 사람이 그리 많은 편도 아니었다.
물론 머릿수가 많다고 꼭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었지만.
나는 불안한 마음에 두리번거리다 내 활을 찾았다.
다들 갑작스러운 사태에 정신이 없었으므로 내가 뭘 하는지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찾았다.’
나도 세자와 함께 이곳에서 종종 활 쏘는 연습을 했으므로 내가 쓰던 활도 여기에 보관되어 있었다.
평소에는 다른 사람이 꺼내 주지만, 어디에 있는지는 나도 알고 있었으므로 찾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근래에서야 조금 큰 활을 쓰기 시작했지.’
몸이 작았을 때는 팔이 짧으니 장난감 같은 활을 쓸 수밖에 없었지만, 어쨌든 나도 비교적 오랫동안 활을 쏴 온 편이었다.
물론 움직이는 호랑이를 맞힐 정도의 실력은 못 되어도 빈손인 것보다는 마음이 안정되는 기분이었다.
‘하긴, 다른 것보다는 차라리 활이 낫지.’
내가 칼을 휘둘러 봤자 호랑이한테는 생채기도 못 남길 거다.
“저기 누군가 옵니다!”
혹시 호랑이가 달려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문 근처를 경계하고 있던 이들 중 하나가 소리치자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다.
아까 갔던 익위사 관원들과 함께 익숙한 사람이 달려오고 있었다.
“옹주 자가! 무사하십니까?”
“천호!”
나는 활을 꼭 쥔 채 천호에게로 달려갔다.
달려오고 있는 것을 보니 다행히 사지는 멀쩡해 보였…….
“너 팔 다쳤어?! 호랑이한테?? 다른 데는?”
내가 천호를 이리저리 살펴보다 피가 흐르는 팔을 붙잡자 천호가 우는 소릴 했다.
“아야야. 아니, 아니, 다행히 스치기만 해서 옷이 터진 거예요. 이건 땅을 구르다가 다친 거고요.”
“정말?”
“예. 아니었음 뭐…… 지금쯤 저세상…….”
찰싹.
나는 헛소리하는 뺨을 두 손으로 박수 치듯 살짝 손봐 주었다.
“악. 아파요…….”
음. 얼굴에도 좀 긁힌 자국이 있는 걸 보니 아플 거 같긴 한데, 정말 말하는 걸 보니 멀쩡해 보였다.
“호랑이는 어떻게 된 거야? 다른 사람들은 무사해?”
“네, 호랑이가 들어오는 걸 다른 쪽에서도 이미 목격해서 추격 중이었는지 군사들이 바로 도착해서 다행히 쫓아냈습니다.”
“쫓아냈다고?”
“예에. 사람이 몰려와서 활을 쏴대니 안 되겠다 싶었는지 그대로 도망쳤습니다.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마 산으로 쫓아내든 잡든 하겠죠.”
“휴우. 그래.”
나는 안심하고 어깨를 늘어뜨렸다.
주변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다른 익위사 관원들도 마찬가지였는지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천호도 주변을 둘러보다가 내가 들고 있던 활을 발견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옹주 자가께서도 잡으시려고 활 들고 나오신 겁니까?”
천호의 말에 나는 살짝 부끄러워져서 들고 있던 활을 슬쩍 숨겼다.
가장 안전한 곳에 숨어 있는 처지에 어설픈 무기를 들고 있다는 게 역시 조금 민망했다.
“그, 잡으려고 했다기보다는. 혹시 모르니까……. 상대가 누구든 저항도 못 해 보고 당하는 건 억울하다고나 할까.”
“하하. 옹주 자가는 그런 분이시죠.”
천호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동감한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긴장되어 있던 분위기가 풀린 건 좋은데…….
“다들 얼굴 기억해 뒀다.”
“아니, 놀린 거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감탄했을 뿐입니다!”
익위사 사람 중 한 명이 천호의 상처를 보러 왔다가 찔린 듯 허허 웃었다.
분위기는 좀 가벼워진 것 같지만 멀리서 와아- 하는 소리가 들려오자 다들 다시 굳은 얼굴을 했다.
“잡은 걸까?”
“지금쯤 고슴도치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죠.”
그러면 좋을 텐데.
“지금 궁에는 착호갑사 출신도 많던데요. 호랑이를 처음 보는 사람이면 놀라서 못 움직이다 당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걱정은 없을 겁니다.”
“그래?”
예전 성원 세자의 일 이후 실무 경험자의 비율을 높인 것은 익위사만이 아니었다.
“엄격하게 훈련받은 군사들은 명령하면 반사적으로 움직이는 법이고요.”
“응…….”
내가 별로 안심한 눈치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천호는 일부러 가볍게 말했다.
“아까 보니까 호랑이 쫓는 사람 중에 저희 숙부도 있던걸요. 괜찮을 겁니다.”
“엑.”
아니, 지금 자기 숙부가 호랑이를 쫓고 있는데 뭔 그런 태평한 소리를.
이걸 괜히 입 밖에 내어 지적하면 그건 그것대로 입방정인 거 같아 그저 말없이 째려보기만 하자 천호가 여전히 긴장을 풀지 않은 상태의 익위사 관원들을 보며 가볍게 웃었다.
“옹주 자가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저희는 호랑이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의미로 죽을 수도 있다니까요?”
“진짜 못 하는 말이 없어.”
하지만 그 말에 주변에 있던 익위사 관원들 역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하하.”
“하지만 그 말이 맞습니다.”
“옹주 자가께서 무탈하셔야지요.”
“놀라셨을 테니 어서 안에 들어가 쉬고 계십시오.”
“…….”
으음. 내가 활 들고 나와 있으면 역시 신경 쓰이겠지.
“방심하지 말고.”
“예.”
“아마 호랑이를 잡고 나면 곧 옹주 자가를 모시러 올 겁니다.”
“지금은 쉬이 움직일 수도 없으니, 안쪽에서 기다리시지요.”
“알았어.”
나는 주변의 권유에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문득 이상하게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심장이 멎을 것 같은 기분을 느껴야 했다.
“저, 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