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259)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259)화(259/326)
“뭐 하고 있냐? 얼빠진 놈.”
문이 열리고,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밖은 어느새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고, 횃불을 등지고 있어 문 앞에 있는 것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답은 뜻밖에 내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숙부?”
“그래. 숙부다. 호랑이를 상대로 혼자 날뛰는 미친놈의 숙부.”
“하, 하하. 그건 불가항력이었거든요?”
“쯧쯧쯧. 그렇게 위험한 짓은 하지 말라고 가르쳤는데…… 얼빠진 놈.”
거친 소리가 오가고 있었지만 대충 천호가 안심하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아까도 분명 숙부가 호랑이를 쫓고 있다고 했었지.’
착호군 출신이라서인지, 천호는 숙부의 실력을 믿어 의심치 않는 눈치였다.
“천호의 숙부?”
“그래…… 헉, 옹주 자가?”
아무 생각 없이 대답하던 천호의 숙부는 내가 누군지 알아챈 듯 당황해 고개를 숙였다.
“다른 사람들은 무사한가?”
“예?”
내 질문이 의외였는지 잠시 뒤쪽을 한번 돌아본 천호의 숙부가 여전히 고개를 조아리며 답했다.
“아, 일단 죽은 사람은 없습니다.”
“정말인가?”
“예.”
“후우.”
다행이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몸에 힘이 쭉 빠졌다.
“조심하십시오. 옹주 자가.”
“응.”
천호에게 반쯤 기대어 밖으로 나오니 횃불을 든 군사들이 여기저기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끝난 건가?”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가 자리를 비켜 줘야 안에 있는 부상자들도 이송해서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을 것 같아 나와 천호는 여길 좀 벗어나기로 했다.
좀만 더 오래 있었으면 폐소공포증이라도 생겼을지도 몰랐다.
“조심하십시오.”
“응.”
계단을 내려가는데 이상하게 몸이 붕 떠 있는 느낌이었다.
아직 조금 현실감이 느껴지질 않았다.
바닥에는 피투성이인 커다란 호랑이의 사체가, 하나 더 늘어나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몸서리가 쳐졌다.
“괜찮으십니까?”
“응.”
아직까지도 자꾸 등골이 서늘해지는 감각에 천호의 옷자락에 매달렸다.
“……크흠. 근데 천호 너는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냐.”
“?”
“?”
“핫.”
“앗.”
잠시 멍하니 무슨 소릴 하는 건가 했던 나와 천호는 곧 화들짝 놀라서 후다닥 떨어졌다.
천호의 숙부는 한심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듯했으나 나의 존재를 의식한 듯 그냥 모르는 척했다.
“저, 저것들은 이제 움직이지 않는 건가?”
“예. 죽었습니다. 하나는 이미 죽어 있었고, 나머지 하나는 제법 저항이 심했습니다만 제가 오기 전에 이미 반쯤 죽어 가던 놈이라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다행이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피비린내가 진동을 했다.
‘다친 사람이 많아서도 있겠지만.’
사실 아까부터 심했을 텐데 너무 긴장해서 아무것도 느끼질 못했던 것 같다.
하긴 목숨이 위험한데 피비린내가 대수랴.
‘그러고 보니 눈에 쐈던 화살은 어떻게 됐지.’
호기심이 슬쩍 시선을 두는데 갑자기 호랑이의 몸체가 움찔, 움직였다.
“헉!”
“옹주 자가!”
마찬가지로 호랑이를 주시하고 있던 천호가 나를 감쌌다.
그리고 동시에.
푸욱!
“어이쿠, 이런.”
“…….”
“…….”
귀찮다는 듯한 목소리와 함께 창으로 호랑이 목을 푹 찌른 것은 천호의 숙부였다.
‘이미 상처는 충분히 많은 거 같은데…….’
호랑이의 몸체가 약간 떨리고 있는 거 같긴 했지만 덕분에 그렇게 무섭지는 않았다.
호랑이는.
“거 질기기도 하지. 아까도 몇 번 찔렀는데 아직도 움직이네.”
“…….”
나와는 달리 천호는 역시 익숙한지 한숨과 함께 제 숙부를 질책했다.
“아니, 숙부. 옹주 자가 놀라십니다!”
“그래도 확인 사살이 먼저지, 이놈아. 아, 아니. 송구합니다. 옹주 자가.”
천호의 숙부는 갑자기 정신이 돌아왔는지 예의를 차리며 내 안색을 살피고 다시 호랑이한테 박혀 있는 창을 보더니 당황한 듯 쑥 뽑아냈다.
저게 저렇게 잘 뽑히는 거였나.
창을 뽑은 덕분에 상처에서 피가…….
나는 다시 휘청하며 천호의 팔을 붙들었다. 가까이에 붙들 게 있어서 다행이지.
그나마 저 비릿한 피 냄새에 구역질이 나는 게, 도리어 현실 감각이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기절할 거 같다.’
하지만 내가 지금 기절하면 다들 난리가 날 거 같지…….
게다가 지금 다른 사람들이 무사한지 확인하고 싶었다.
‘소이랑 다른 궁녀들이 어떤지도 확인해 봐야겠고.’
마음이 급해져서 발걸음을 떼려는데 생각과는 다르게 몸이 휘청했다.
“아.”
“옹주 자가!”
이번에도 천호가 나를 부축했다.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응. 아, 하하. 이상하게 몸에 힘이 안 들어가네.”
“아마 긴장이 풀리셔서 그런 걸 겁니다. 아니, 혹시 어디 다치신 거 아닙니까?”
“그건 아닌 것 같은데.”
긴장이 풀린 지금도 몸이 무거운 거지, 딱히 어디가 아프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런 나에 비해 천호는 아직 나를 부축할 정도로 멀쩡해 보여서 도리어 걱정이 되었다.
“아, 천호야말로 다쳤잖아. 어서 치료받아.”
“제가 다친 건 여기서 다쳤다고 하기도 좀 민망한 정도죠.”
그렇게 말하면서 천호는 그대로 나를 부축해 호랑이 사체에서 거리를 벌리는 것을 도왔다.
물론 그래 봤자 거기서 거기라 피비린내는 전혀 옅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눈에 안 보이니까 기분상 좀 나았다.
부상을 입은 사람이 많았기에 익숙한 내의원 의관들이 보였지만, 아니, 내의원 인력 대부분이 나와 있는 것 같았지만 아는 척을 할 기력도 없었다.
물론 그쪽에서는 나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어서 말을 걸어 왔지만, 나도 사람이라 양심이 있었다.
“옹주 자가. 진맥을 받아 보시지요.”
“저기 피 흘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보고 진맥을 받으라니, 내가 그리 염치없는 사람으로 보이는가. 어서 부상자들부터 돌봐 주게.”
“예. 옹주 자가.”
이런 당연한 걸로 감탄하면서 가지 말라고.
의원들과 궁인들이 바쁘게 부상자들을 돌보는 걸 보고 있노라니 안심이 되다가도, 이따금 이유 없이 등골이 오싹해지기도 했다. 날이 추워서 그런가.
“괜찮으십니까?”
“아, 괜찮아.”
“…….”
별로 믿지 않는 눈치였다.
“천호는 괜찮은 거야?”
“저는 저거 보는 것도 처음이 아닌데요, 뭐.”
아니, 나도…… 보는 건 처음이 아냐.
동물원 같은 데서 몇 번 봤으니까. 안전한 데서 보는 건 전혀 무섭지 않았는데.
‘천호가 말하는 건 잡는 게 처음이 아니라는 거겠지.’
만약 보호해야 할 상대도 없고, 무기도 제대로 갖추고 있었다면 천호도 훨씬 쉽게 잡을 수 있었을까?
‘아까 이미 한 마리 잡기도 했고.’
그러고 보니 천호 숙부는 어떻게 잡았을지도 좀 궁금한데.
“아마 곧 항아님들이 옹주 자가를 모시러 올 터이니 조금 쉬시지요.”
“응.”
익위사 관원들이 무사하니 그들을 통해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도 이미 전했을 것이었다.
아, 그럼 궁인들만 오진 않겠구나.
곧 소란스러운 목소리들과 함께 익숙한 목소리들이 들렸다.
“옹주 자가! 옹주 자가!”
소이랑 가이, 송비를 포함한 우리 처소 궁녀들의 목소리였다.
‘오늘 비번인 사람들 목소리까지 들리는 것 같은데.’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였지만 나를 발견하고는 도리어 다들 목소리를 가다듬는 듯했다.
나는 모른 척 그들의 안부를 눈으로 확인했다.
다행히 겉보기에 다친 사람은 없는 것 같은데.
“다들 무사해? 아까 다치지 않았어?”
“소, 소인들은 무사합니다. 옹주 자가.”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
“예.”
“……그래. 다행이다.”
다들 얼굴이 밝았다.
“오, 옹주 자가!”
중요한 걸 확인하고 나니 몸에 힘이 풀리며 눈이 감겼다.
“시아야!!”
음? 세자 목소리도 들렸다.
아마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말에 발이 묶여 있다가 겨우 온 모양이지.
‘세자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큰일이지.’
내가 위험하다는 얘기를 들었으면 걱정했겠는데.
하지만 일단 아는 사람들은 다 무사하다는 사실에 긴장이 풀려서일까.
나는 그냥 좀 자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나 이제 좀…… 자야겠어…….”
“네?”
나는 그대로 의식이 뚝 끊겼다.
***
‘시아는 벌써부터 팔 힘이 이렇게 좋으니 활을 잘 쏘겠구나.’
커다란 손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이 손의 주인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그럼 나중에 오라버니보다 잘 쏠까?’
‘하하. 그럴지도 모르지? 말도 잘 타고, 활도 잘 쏘고, 똑똑하기까지 하고.’
‘받아 주지 마세요. 형님. 진짜인 줄 알고 기고만장해집니다.’
그리고 이 목소리의 주인도.
‘전에 시아가 악력이 세다고 툴툴거리지 않았더냐.’
‘그, 그건 그거고요.’
‘이 오라버니가 손 붙잡고 가르쳐 주면 나 정도는 하겠지.’
‘그야 형님이 쏘시는 활은 백발백중 아닙니까.’
‘영원 대군이 쏘는 활도 만만치 않지. 아직은 어리지만 장래가 기대되는구나.’
‘저, 저도 형님처럼 잘 쏘고 싶습니다!’
눈을 반짝이며 활을 잡는 영원 대군을 보고 나는 내심 혀를 찼다.
저런 철딱서니 없는 놈 같으니.
나는 몰라도 너는 그런 소릴 하면 안 되지!
‘내가 영원 오라버니보다 잘 쏠 거야.’
‘네가 힘이 좀 세다고 될 거 같더냐.’
‘바보.’
‘바, 바보라니. 어찌 오라버니에게 그런…….’
나와 영원 대군이 바보짓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며, 세자는 즐거운 듯 웃었다.
‘자자, 그래. 그만하자. 영원 대군도, 시아도, 분명 나중에 나보다 잘 쏘게 될 테니까 말이다.’
‘어찌 그리 장담하십니까.’
영원 대군의 철없는 투덜거림에 세자는 웃으며 답했다.
‘하하. 그래야…….’
호랑이에게 물려 가지 않지.
“헉.”
눈앞에 보이는 것은 익숙한 내 방의 천장이었다.
‘이건 또 무슨 개꿈이람.’
밖이 어두운 것을 보니 아직 한밤중인 것 같았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주변으로 시선을 돌리자, 옆에는 당연하다는 듯 소이와 가이와 송비와……. 천호가 왜 여기에 있지?
인기척이 느껴졌는지 천호도 눈을 떴다.
아무래도 잠이 든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긴, 바닥에 앉은 자세로 불편해서 어디 제대로 잠이나 올까.
어두운 방 안을 밝히고 있는 촛불의 옅은 불빛 사이로 천호의 걱정스러운 얼굴이 보였다.
“괜찮으십니까? 아까 그대로 의식을 잃으셨습니다.”
“아, 응. 그랬지.”
아직 이상한 꿈의 잔상이 남아서 조금 혼란스러웠지만, 잠들기 전의 충격적인 사건들은 금방 떠올릴 수 있었다.
얼굴에 놀란 걸 티 내지 않는 게 익숙해져서 그런가, 다행히 이상한 꿈을 꿨다는 건 티가 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심장은 이렇게 터질 것같이 뛰는데.’
다행히 이런 것까지 알아채진 못하겠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겸, 몸을 일으키려는데 손에 무언가가 딸려 왔다.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