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262)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262)화(262/326)
“칭찬?”
예의상 세자를 배웅하기 위해 함께 몸을 일으킨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세자가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궁궐에 뛰어든 호랑이를 잡았는데 그야 칭찬해야 할 일이 아니더냐.”
“아.”
“왜 이제 깨달았다는 반응이야.”
너 심지어 현장에 있었잖아.
거들기까지 했잖아.
세자는 눈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지만 나는 모르는 척 시선을 회피했다.
아무래도 마지막에 둘이 갇혀 있던 거랑 다친 거 임팩트가 더 커서 그만…….
그러고 보니 천호가 호랑이를 잡았었지.
‘분명 직접 봤는데도 좀 현실감이 없네.’
주변에서 다른 이들이 돕기도 했고, 내가 활을 쏴서 주의를 흐트러트려 놓기는 했지만 결코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세자도 보고를 받아 당시의 일은 잘 알고 있을 터였다.
덕분에 다시 잔소리가 쏟아졌다.
“시아 너도 앞으로 너무 무모한 일은 좀 피하거라. 범에게 활을 쏘다니. 잘못하면 목표가 너로 바뀔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놈도 눈이 있고 코가 있으니 커다랗고 시커먼 아저씨들 말고 작고 말랑말랑해 보이는 나한테 먼저 달려들었을걸.”
원래 고기도 수놈보단 암놈이 맛있고, 늙은 것보단 어린 게 맛있는 법이지.
“야.”
“앞에 막는 사람이 한 스무 명, 서른 명 되면 몰라, 몇 명 되지도 않는데 숨어 있다가 다 죽고 혼자 쫓기느니 할 수 있는 거라도 하는 게 낫지.”
내가 과녁도 못 맞힐 정도로 서툰 것도 아니고 어지간한 거리면 관중(貫中)하는 거 잘 알면서?
“아니, 어떻게 한마디를 안 지고.”
세자는 짜증이 폭발했는지 내 볼을 잡고 주욱 늘였다.
아니, 이놈이. 요새 좀 자중하는 거 같더니.
“내 차떡 가튼 볼사를 타마다니, 파런치해!(내 찰떡 같은 볼살을 탐하다니. 파렴치해!)”
“아니, 이상한 표현 쓰지 마라.”
나의 비난에 세자는 질색하며 손을 뗐지만, 나는 양 볼을 문지르며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
“오라비가 전부터 내 볼살을 탐내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
“……탐낸 적 없다.”
“오라비의 백설기 같은 피부에 비하면 그야 내 찰떡 같은 피부가 부럽긴 하겠지만 이러면 곤란해.”
“안 부러워! 아니, 그것보다 그거 욕이지?”
“아니이? 백설기 같다는 게 왜 욕이야? 백설기같이 흰 피부 모름?”
“그 뜻이 아닌 거 같은데……??”
“어머, 오라버니 어휘력이 걱정스럽네? 늘 일만 하며 한자어만 써서 이런 걸까나?”
그리 말하며 문득 주변을 살피니 송비와 세화를 비롯한 궁인들이 고개를 숙이고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흐느끼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렇게 재밌었나요.
내 시선을 따라 주변의 반응을 알아 버린 세자는 민망한 듯 헛기침을 하며 당부했다.
“크흠. 아무튼 좀 조심하거라.”
“내버려 둬…….”
알아서 잘한다.
“내버려 두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니 이러는 것 아니냐.”
“난 안전한 궁 안에서 산책 중이었다고. 그런데도 위험이 닥쳤고, 나는 내 힘으로 내 몸을 지켰고. 문제 있으실까요?”
세자는 한 대 쥐어박고 싶다는 얼굴이었으나 딱히 반박할 말은 찾지 못한 모양이었다.
“……어쨌든 아바마마께서도 곧 찾아오실 테니 그런 말 하지 말고 안심시켜 드리거라.”
“음.”
이렇게 된 거 이번 기회에 독립하겠다고 해 볼까.
“아바마마께 이번 기회에 독립하겠다느니 그런 소리 하지 말고.”
“……오라버니는 나를 너무 잘 아는걸?”
“오냐. 간다. 천호 보내는 것도 잊지 말거라.”
“응.”
그렇게 세자는 한숨을 쉬며 떠났다.
어제 그 난리가 났으니 바쁠 텐데 그래도 병문안(?)을 온 것이 나름 기특했다.
‘게다가 부왕도 오신다니.’
사실 나는 생채기 하나 안 났는데 그래도 역시 다들 걱정이 되나 보다.
듣기로 어제 내가 기절하듯 잠든 거는 보고 가시긴 했다는데.
정말 괜찮은 게 맞냐고 내의원 의원들을 들들 들볶다가, 세화가 와서 진맥한 후 괜찮다고 하니 그제야 안심하셨다고.
‘세화에 대한 신뢰가 꽤 깊어지셨네.’
하긴. 자라지 않던 딸의 불치병을 고쳐 준 명의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누명만 벗겨지면 세자와 세화의 관계도…… 괜찮겠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웬만큼 한 거 같은데, 그 문제만은 세화 자신이 어떻게든 해야 할 문제였다.
그런 생각을 하며 세화를 힐끔 보니, 담담한 얼굴이던 세화가 걱정스러운 듯 눈을 반짝였다.
“옹주 자가, 혹 달리 어딘가 미편한 곳이라도 있사옵니까?”
“아니, 괜찮아.”
“기다리십시오. 곧 탕약을 올리겠습니다.”
“괜찮다니까.”
“그래도 탕약은 드셔야 합니다.”
“으음.”
다들 너무 걱정이 많아.
하지만 보호 장치도 마음의 준비도 없이 야생 호랑이랑 예고 없이 근거리에서 아이컨택하는 경험이 심신의 건강에 좋지 않은 것은 확실했다.
‘한동안은 밖에 안 나가고 싶을 거 같네…….’
사실 호랑이가 마음만 먹으면 가벼운 장지문 정도야 몇 겹이든 그냥 뚫고 들어올 테니 무의미하겠지만 역시 기분 문제였다.
그래서 탕약을 먹은 후 그냥 산책을 나가기로 했다.
솔직히 말해서 근육통 때문에 별로 움직이고 싶지 않지만…….
‘내가 방 안에 처박혀 있으면 사람들이 겁먹어서 처소에서 안 나온다고 생각할 거 같단 말이지.’
물론 그게 뭐 크게 나쁜 일은 아니다.
사람이 큰일을 겪으면 방 안에서 뒹굴며 쉴 수도 있지.
‘하지만 만약 누가 일부러 호랑이를 궁에 들여보낸 거라면…… 적어도 내가 겁먹고 틀어박혀 있다는 말을 듣고 좋아할 거 같단 말이지.’
아까 세자가 한 말을 들으면 아무래도 제법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그리고 그런 짓을 한 놈들이라면 목표는 세자일 가능성이 높았고.
물론 세자는 실질적인 타격을 입지는 않았지만, 새해 벽두부터 궁에 호랑이가 들어왔다는 것만으로도 괜히 여러 사람 입에 오르내리게 되는 법.
안 그래도 예전에 세자에게 붙었던 소문을 기억하는 이들은 이번 일에 대해 신나게 떠들어 대지 않겠는가.
그럼 그런 소문에 편승해서 세자 깎아내리기도 좋겠지.
‘그리고 세자 까는 놈들은 대체로 나도 싫어하고.’
그러니 내가 충격받았다고 소문이 나면 그놈들은 당연히 좋아할 거 같았다.
‘내가 그 꼴은 못 본다……!’
내가 호랑이와 마주친 정도는 아무렇지 않을 만큼 건재하다는 사실을 여러 사람에게 확인시켜 줄 생각이었다.
분위기 어수선한데 너무 과하게 돌아다니는 것은 좀 그렇겠지만 산책 정도는 다녀도 괜찮겠지.
“옹주 자가, 무리하지 마시고 쉬시지요. 의원도 정양하시라고 하지 않았사옵니까.”
“응. 잠깐 산책만.”
송비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가득했지만 나는 괜찮다고 손을 내저었다.
참고로 소이를 비롯해서 어제 호랑이랑 마주친 몇몇 궁녀들은 오늘 비번이다.
밤새 내 곁을 지켰으면 됐지, 그 이상의 추가 근무는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
‘아마 지금쯤 무서웠다고 가이 옆에 붙어 있지 않을까.’
사실 근육통을 제외하면 몸 자체는 딱히 어디가 아프거나 하진 않은데 주변에서 너무 극진하게 모시니까 좀 미안할 정도였다.
그러나 나는 주변의 걱정이 괜한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금방 깨달았다.
“으음.”
신을 신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뜻밖에 다리가 좀 떨렸다.
평지였으면 괜찮았을 텐데 하필 건물 구조상 계단을 내려가야 해서.
송비의 시선도 조금 떨리는 듯했지만 나를 막지는 못했다.
“오, 옹주 자가.”
“괜찮다니까.”
송비가 놀랄까 봐 다리에 힘을 주고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는데 도중에 힘이 빠진 듯 휘청 몸이 기울었다.
“!”
‘다치면 곤란한데.’
어차피 높은 계단은 아니다만…….
몸이 기울어지는 순간에도 그런 생각을 하는데 누군가 나를 붙들었다.
“괜찮으십니까?”
“아.”
천호였다.
밥도 먹고 옷도 새로 갈아입고 왔는지 보송보송해 보였다. 무엇보다 아까 헐벗고 있다가 제대로 계절에 맞는 옷을 입고 있으니 확실히 보는 사람도 마음이 편했다.
“음. 따뜻해 보이네.”
“아니, 그런 말씀을 하실 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천호는 어이없이 웃으며 나를 부축해 계단을 내려오는 것을 돕고는 슬쩍 손을 뗐다.
“?”
“?”
정작 나한테 소매를 붙잡혀서 떨어지는 데는 실패했지만.
“왜, 붙잡으십니까?”
“어? 아니.”
나는 조금 겸연쩍어져서 손을 놓았지만 사실 내가 더 의아했다.
너야말로 왜 갑자기 내외함?
“상하신 곳은 없으신 게 맞으십니까?”
“음. 그냥 근육통이야.”
“쉬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렇다고 너무 안에 가만히 있는 것도 좀.”
“……어제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옹주 자가께서는 참…… 한결같으십니다.”
이게 욕이야, 칭찬이야.
“불만이야?”
“아닙니다. 어제 눈까지 와서 길이 미끄러울 수도 있으니 모시겠습니다.”
“오냐.”
어처구니없어하면서도 천호는 결국 내 뒤에 따라붙었다.
정말 부축할 것도 아니니 신분상 천호가 내 옆에 설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런데 어디로 가십니까?”
“음. 적당히 산책.”
밤에도 눈이 왔나. 밖에 나오니 여기저기 눈이 쌓여 있었다.
궁에는 일하는 사람이 많으니 사람 다니는 길이야 다들 부지런히 길을 내어 놨지만 그래도 이미 얼어붙은 곳은 조금 미끄러웠다.
어제 내가 겪은 일들이 대충 소문으로 퍼졌는지 지나가는 사람들도 내 앞에선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지나가고 나면 아닌 척하면서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고 수군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천호야말로 이렇게 걸어 다녀도 괜찮아?”
“못 움직일 정도로 크게 다친 것도 아니고. 천천히 걷는 것은 괜찮습니다.”
“흠. 무리하지 마. 나는 정말 다친 데도 없지만 천호는 다쳤잖아.”
“아예 안 움직이면 몸이 굳어서요.”
그거야 안 다친 부위 얘기지.
“참, 오라버니가 천호 좀 보내라고 하시더라.”
“세자 저하께서 저를요?”
“응.”
세자가 부른다는 말에 천호의 목소리가 조금 가라앉았다.
“왜…… 부르시는 겁니까?”
“칭찬하려고 부르신다던데.”
“칭찬이요?”
“응. 받을 만하잖아. 호랑이도 잡았고, 내가 안 다친 것도 천호 덕분이고.”
“아, 그건 그렇네요.”
왜 얘도 이제 깨달았다는 반응이람.
아무래도 첫 번째 호랑이를 잡은 것보다 두 번째 호랑이 때 밀려나 있던 것이 더 충격적이어서 그런가, 천호도 반응이 영 이상했다.
“저하께서 부르신다니 가 보아야겠습니다……만, 옹주 자가께서 산책 중이니 처소까지 모셔다드린 후 가겠습니다.”
“위험한 일 안 한다니까?”
“걱정됩니다.”
얘도 참 말 안 들어. 어차피 어제 그런 일이 있었으니 한동안은 궁 안팎으로 경계가 강화되어 또 호랑이가 들어올 거 같지는 않은데.
“그럼 그러든가. 급한 일은 아닌 거 같았으니 괜찮겠지.”
“예.”
“오라버니가 이상한 소리 하거나 못살게 굴면 말하…… 고!”
대화 도중 내가 미끄러지자 천호가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와 넘어지는 나를 붙잡았다.
“……역시 처소까지 모시겠습니다.”
“음. 그러게.”
좀 민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