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267)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267)화(267/326)
“으음. 이거 이렇게 솔직하게 적어도 되나?”
“하지만 원래도 신문은 솔직하게 만들었지 않사옵니까?”
그건 그렇지만.
얼마 전 궁에서 일어났던 호랑이 침입 사건은 오래지 않아 도성 내에 소문이 확 퍼졌다.
궁에서 일어난 일이라지만 워낙에 목격자가 많기도 했고, 숨길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나도 적당히 그 사건에 대해 원고를 받고 검열을 거쳐 늘 그렇듯 신문을 만들어 뿌렸다.
‘내가 밖에 나갈 수가 없으니 어찌 보면 소식 전하기에 좋은 수단 같기도 하고.’
천호에게 듣기로는 내가 못 나가니 다들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닌가 걱정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니 아예 내 근황을 이렇게 대문짝만하게 알려 주는 것도 좋겠지.’
안 그래도 내가 호랑이한테 활 쏜 건 이미 도성 안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던데.
‘명중해서 다행이야…….’
실패했으면 민망해질 뻔했잖아.
물론 그때 실패했으면 민망한 게 문제가 아니었겠지만.
아무튼 이렇게 된 거 기왕이면 제대로 된 정보를 뿌리는 게 나았다.
안 그래도 소문이 퍼진 덕분에 여기저기서 내 안부를 묻는 서신이 몰려들어서 읽느라고 바쁘니, 일일이 답장하느니 기사를 내서 제대로 생존 신고를 해줘야지.
어차피 궁 안에서 할 일이라고는 신문 사업이 대부분이었다.
근래에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바빴지만.
‘죽은 성원 세자를 모시던 사람들을 좀 만나러 가 보고 싶은데.’
아무래도 근시일 내에 쉽게 정리가 되지 않을 것 같아서 조금 찜찜했다.
천호는 세자가 내게 감추고 있던 것을 거침없이 알려 주었다.
“역시 누군가 일부러 꾸민 일일 수도 있다는 거지?”
“예에.”
“흐음.”
“궁이 지리상 산과 이어져 있어 호랑이가 들어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만 누가 목숨을 걸고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하긴…….”
듣기로는 찢어진 옷자락 등, 사람이었던 것의 흔적들이 발견되어서 수색하고 있다는데 잘 모르겠다.
사실 궁 뒤쪽은 백악산(白岳山, 현재는 북악산이라고 불린다.)이라 호랑이 한두 마리 숨어 있어도 모를 곳이었다.
주기적으로 사냥을 하니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 정도로는 부족할까.
내가 한숨을 쉬는데 천호가 의외라는 듯 물었다.
“그런데…… 또 나와 계셔도 괜찮겠습니까?”
“벌써 며칠이 지났는데 그래. 음. 게다가 그런 일이 한번 있고 나면 전보다 경계를 철저히 하는 법이니까.”
“그건 그렇습니다만…….”
나는 적당히 천호를 안심시켰다.
사실 궁궐 경비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아마 요즘에는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을 천호가 좋다고 하니 좋은 거겠지.
지난번 호랑이 난입 사건 때 나를 구하고 호랑이를 잡은 이후로 천호는 여기저기에서 어마어마한 신임을 받고 있었다.
덕분에 내 심부름으로 나갔다 올 때 외에는 궁에서 머물고 있을 정도였다.
반면에 나는 반쯤 감금 상태였고.
‘좀이 쑤셔서 산책이라도 안 하면 죽을지도 몰라.’
아무리 내가 걱정된다지만 좀 너무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천호와 함께 걷고 있을 때였다.
마침 눈에 익은 까마귀가 다가왔다.
까악- 까악-
그리고 사람을 놀리듯이 잡을락 말락 한 거리에서 시끄럽게 까악거리기 시작했다.
“저놈이 또…….”
“참으세요. 호랑이도 쏴서 맞히시는 분이.”
“그러게. 호랑이 있을 때 도움 돼서 참는다…….”
그때 그 까마귀와 동일한 까마귀일지는 알 수 없지만,
“안 잡히고 도망갈 자신이 있어서 그런가, 새들은 겁이 없더라고요.”
“한 입 거리 주제에…….”
“호랑이도 어지간히 배고프지 않으면 딱히 먹을 게 없어서 안 먹을 거 같긴 하네요.”
참새도 아니고 까마귀 정도면 그래도 좀 먹을 게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니 인간은 배가 안 고파도 참새까지 잡아 구워 먹으니 더 지독한 거 같기도 하고.’
천호는 적당히 내 말에 대거리하거나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산책을 하던 도중 천호가 입을 열었다.
“참, 그러고 보니 이번 일로 저희 숙부가 승진한다는 모양입니다.”
“오, 잘됐네.”
그날 두 번째 호랑이한테 막타…… 아니, 결정타를 먹여 잡은 것이 천호의 숙부라고 들었다.
천호도 그렇고 그 숙부도 그렇고, 호랑이를 잡는 피지컬은 역시 유전인가 보다.
다른 건 하나도 안 닮았는데.
“세자 저하의 눈에 들었으니 출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천호도 출세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내 말에 천호는 미묘하게 웃었다.
“으음. 저는 아직 어리니까요. 일단?”
일단?
‘그야 물론 어리긴 하지.’
이제 해가 바뀌었으니 천호도 열……일곱이었다.
‘아직은 어리다고 적당히 넘겨도 되겠지만 역시 능력을 너무 입증해 버렸는데.’
이 정도면 솔직히 세자가 가만있는 게 이상했다. 어떻게든 데려가서 적재적소에 써먹을 생각 안 하고.
역시 한동안은 내가 데리고 보호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인 걸까.
만약 천호가 내 호위를 그만두고 세자를 따라갈 경우 아쉽지 않냐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런 인재를 왕이나 세자가 놓칠 거 같지가 않은걸.’
안 그래도 둘 다 나와 만났을 때 은근슬쩍 천호에 대해 어필도 하던데.
하지만 아마 부왕과 세자 중에 누가 천호를 데리고 갈 거 같냐고 한다면 당연히 세자였다.
“옹주 자가, 익위사에서 천호를 데려가도 괜찮겠냐고 사람을 보내왔습니다.”
“알았다. 천호, 그만 가 봐.”
그날 이후로 익위사에서 천호를 불러내는 일이 확연하게 잦아졌다.
처음 얼마간은 상처 때문인지 좀 내버려 두는 거 같더니.
“아직 옹주 자가의 산책이 끝나지 않았으니 처소까지 모셔다드린 후에 가겠습니다.”
“……그럼 그러든가. 근데 나 밖에서 일할 건데?”
“한겨울인데 감모 드십니다.”
“가끔은 괜찮아. 옷도 따뜻하게 입었고.”
내 궁녀들이 가끔 떨어서 그렇지. 여러 가지 의미로.
“천호야말로 다친 데는 괜찮아?”
“가끔 땅기는 느낌이 드는 거 말고는 괜찮아요.”
이젠 사람들도 많으니 괜찮을 텐데 천호는 여전히 내 안전을 챙겼다.
‘그러고 보니 전에는 익위사에서 부르면 싫어했던 것 같은데 이젠 좋다고 가는 것 같네.’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나.
하긴 호랑이 두 마리와 목숨을 건 조우를 하고 나면 아무래도 느끼는 바가 있었을 것이다.
좀 더 실력을 단련해야 한다든가.
‘묘하게 뺏기는 기분이야.’
어차피 늘 일만 하느라 천호랑 놀아 줄 처지도 못 되는데 미안한 일이었다.
“냐앙-”
자리 잡고 앉아 신문 사업 관련한 소식을 보려는데 언제부터 따라왔는지 이젠 완전히 성장이 끝난 뚠뚠 고양이, 꼬마가 와서 매달렸다.
왜 꼭 일할 때 와서 놀아 달라고 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나는 적당히 안아서 달래 주다가 무릎에 앉혔다.
“너 이제 무거워서 안아 들기가 힘들구나아.”
“냐아아앙-”
꼬마가 무릎 위에서 항의했지만 안타깝게도 녀석을 받아 주기에 나는 기력이 조금 부족했다.
놀아 주지 않을 걸 알아서인지 꼬마는 금방 포기하고 천호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천호도 오늘은 꼬마와 제대로 놀아 주질 않았다.
“오늘은 못 놀아 주니까 옹주 자가께 가 있어.”
“와앙.”
꼬마는 뭐가 그리 성이 났는지 천호에게 발톱을 세웠다.
“!”
다행히 팔 길이의 차이로 천호에게 별 타격은 주지 못한 것 같지만 그동안 잘 지내던 애가 갑자기 화를 냈다는 사실에 조금 침울한 얼굴이었다.
“왜 이러지, 나한테서 아직 호랑이 냄새라도 나나…….”
“푸후훗. 천호한테서 나면 나한테서도 날걸, 어라?”
“어찌 그러십니까?”
의아해하는 천호의 한쪽 팔을 가리키자 이를 본 천호의 얼굴도 찡그려졌다.
“이건…….”
“까마귀나…… 동물의 배설물…… 같습니다.”
겨울이라 옷이 두꺼워 제대로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뭐라고 좀 했다고 이렇게 바로 복수를?”
새들이 똑똑하다는 말은 사실이었나…….
“천호는 가서 옷 갈아입고 익위사 쪽으로 가 봐.”
“아……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이 녀석도 데리고 가지요.”
“음. 냄새 때문인가 확인해 보게?”
“예.”
“상처 덧나지 않게 조심해.”
“예.”
나는 궁녀 하나를 붙여 천호가 갈아입을 만한 옷을 챙겨 주도록 했다.
꼬마는 나한테 오고 싶었는데 강제로 끌려가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격하게 반항하긴 했으나 천호에게 들려 흔들흔들거리며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오늘은 어쩐지 의욕이 안 생기는데.”
“어딘가 미편한 곳이라도 있으시옵니까?”
“그건 아닌데, 음. 역시 일찍 들어갈까?”
송비의 말에 나는 다리를 건들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내키지 않을 때는 안 하는 게 좋지.
“오늘은 조금 쉬자.”
“예. 간식이라도 준비할까요?”
“응. 오늘따라 감란전병이 당기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송비는 흐뭇한 미소로 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날 저녁 무렵, 예상치 못한 방문객이 찾아왔다.
“옹주 자가, 격조(隔阻)하였습니다.”
“성 겸사복! 정말 오랜만이야. 어디 다친 곳은 없고?”
“그럼요.”
강원도로 떠나 몇 개월을 보지 못한 성 겸사복이었다.
시영원 분원을 통해 가끔 서신이 오가긴 했지만 역시 직접 만나는 것과는 달랐다.
떠나기 전보다 수척해 보였으나 걱정했던 것에 비하면 건강해 보였다.
“옹주 자가야말로 괜찮으신 것이옵니까? 소인도 소문으로 궁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도는 들었습니다.”
“아.”
저런, 알고 있구나. 하긴 도성에 소문이 파다하니 한양 인근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나와 호랑이에 대한 소문이 쏟아졌겠지.
“소인이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아십니까? 호랑이라니!”
“음. 나도 놀랐어…….”
나는 허허 웃으며 성 겸사복에게 내가 다치지도 아프지도 않고 멀쩡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어야 했다.
“하필이면 소인이 없는 사이에 그런 일이 생겨서…….”
“그래도 성 겸사복 대신 천호가 열심히 했어.”
“그놈 들볶아 둔 보람이 느껴집니다.”
들볶았구나……. 어쩐지 애가 질색을 하더라니.
마침 송비가 차와 감란전병을 가져오자 성 겸사복은 어딘지 감격에 젖은 눈으로 공손히 받았다.
“?”
“하아. 그동안 이게 얼마나 먹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음, 잘됐네.”
성 겸사복은 배가 고팠는지 차와 다과를 게 눈 감추듯 해치우고 행복한 얼굴을 했다.
“참. 오라버니한테 보고는 했어?”
“저 말고 딴 놈들이 하고 있겠지요.”
“아니, 그러면 못써.”
당신 중요한 거 조사하러 갔다 왔잖아.
앞으로의 전개에 있어서 완전 중요한 역할이라고.
하지만 성 겸사복은 이미 많이 비뚤어진 상태였다.
물론 춥고 지친 상태에서 따뜻한 실내로 들어오면 원래 사람이 좀 풀어지는 법이기도 하고.
하지만 성 겸사복의 불만은 단순히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옹주 자가, 저 이번에야말로 퇴직할 겁니다…….”
“저런, 마음은 알겠지만 그러다 붙잡힌다…….”
“싫습니다.”
“그러지 말고 가서 오라버니한테 보고부터 하고 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