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268)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268)화(268/326)
세자한테 가기 싫다고 징징대던 성 겸사복은 옹주 처소에서 적당히 안부 인사를 마치고, 먹을 거 먹고 마실 거 다 마시고도 좀처럼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제 슬슬 가 보게.”
“가기 싫사옵니다…….”
“어디서 앙탈이야. 오라버니가 사람 안 잡아먹어.”
“그야 옹주 자가께는 그러시겠지요.”
“음. 그건 그렇네.”
어처구니없다는 듯 성 겸사복을 달래다가도, 곧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수영 옹주의 얼굴은 자신이 떠나기 이전과 달라 보이지 않아서 성 겸사복은 적잖이 안심이 되었다.
‘소문이 무성해서 걱정했는데 정말 무탈하신 듯해서 다행이야.’
못 본 사이 또 좀 자라신 것 외에는 달라진 것도 없고, 겉보기로는 생채기조차 없었다.
그렇다고 운신이 불편해 보이거나 기운이 없어 보이지도 않았고.
‘내가 확인하지 않아도 세자 저하나 옹주 자가의 궁녀들이 어련히 잘 챙겼겠지만서도.’
역시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 안심이 되지 않았다.
듣기로 호랑이가 궁에 침입하고, 처음에는 온갖 흉흉한 소문이 먼저 도성 안에 퍼졌다고 한다.
대리청정을 하고 있는 지금의 세자가 불민하여 궁에 호랑이가 들었다든가.
덕분에 세자가 호랑이에게 습격당해 목숨이 위태롭다든가.
그러니 곧 새로운 세자를 세워야 할지도 모른다든가.
‘심지어는 죽은 성원 세자가 지금의 세자를 저주했다는 소문까지 퍼졌다고 했지…….’
성원 세자를 저주한 건 사약 먹고 죽은 경언군인데, 왜 성원 세자가 지금의 세자 저하를 저주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앞뒤 사정을 잘 분간 못 하는 백성들 중에는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었고 한다.
하지만 그 소문들은 오래가질 못했다.
곧 더 충격적인 소문이 터졌으니까.
‘옹주 자가께서 활로 호랑이를 쏘아 잡았다니…….’
안 그래도 왕실에 손이 귀한 데다 수영 옹주는 여러 가지 이유로 워낙에 유명 인사였다.
어느 정도 연배가 있는 사람들 중에는 아직도 불행하게 생모를 잃고 독살까지 당할 뻔한 사건을 기억하는 이들이 제법 있어 온정적인 분위기가 강했고, 젊은 사람들은 시영원과 시영 공원 등 수영 옹주가 지금까지 해 온 일들 때문에 비교적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세화 의원이 수년간 자라지 않던 옹주의 병증을 고쳤다는 소문이 퍼지자 백성들 중에는 너무 잘됐다며 괜히 눈물을 훔치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수영 옹주가 활로 호랑이를?
너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지만 워낙에 흥미진진한 내용인지라 그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그리고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신문에 정확한 정황까지 실렸다.
활을 쏘아 호랑이를 잡은 것은 아니지만, 사람에게 달려드는 호랑이에게 활을 쏘아 명중시킨 것은 맞다고.
‘지금까지 거짓 기사를 실은 적이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시영원 사람들조차 반신반의했지.’
처음에 수영 옹주가 호랑이를 잡았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는 [옹주 자가라면 그럴 만하다]고 주장하는 파와 [아무리 옹주 자가라도 그건 무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로 나뉘어 있었지만, 그냥 [옹주 자가가 활을 쏴서 호랑이를 맞혔다]는 기사가 나오자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였다고.
결론적으로 이러니저러니 해도 옹주 자가는 유명 인사이니 호랑이가 궁에 들어와 난리 친 것보다 옹주의 이야기가 더 화제가 되어 버렸다.
심지어는 호랑이를 잡은 장본인들보다 말이다.
‘힘들게 호랑이를 잡은 본인들은 섭섭할지 몰라도 세자 저하께는 나쁘지 않은 일이지.’
초기에 떠돌던 어딘지 불온한 소문들은 옹주를 둘러싼 소문에 비하면 아무래도 화제성도 신빙성도 부족했다.
성 겸사복 역시도 궁에 들어오기 전에 그런 대화를 들으며 실없이 웃어야 했던 기억이 있었다.
‘니들, 그거 알아? 이번에 궁에 호랑이 들어갔잖아. 지금의 세자가 부족해서 죽은 세자가…….’
‘아, 나도 들었어. 옹주가 호랑이 쏴서 죽였다며?’
‘웃기고 있네. 그게 말이 되냐?’
‘저기, 죽은 세자가 저주를…….’
‘수영 옹주 독 먹어서 안 자란다며! 무슨 화살을 쏴!’
‘그거 고쳤거든? 다 자랐댔거든? 너 신문도 안 보지? 이 멍청한 새꺄.’
‘와. 이 새끼 멍청한 거 티 내네? 여자가 활 쏴서 어떻게 호랑이를 죽여!’
‘왜 못 죽여? 너나 한번 죽어 볼래? 나보다 활도 못 쏘는 게.’
‘내가 왜 너보다 못 쏴? 해 볼래?’
‘응~ 오락원에서 나보다 순위 쩌어어~ 아래에 있는 새끼랑은 재미없어서 같이 활 안 쏨. 연습이나 좀 하고 말해라. 너보다 어린 꼬맹이들도 너보다 순위 높던데 안 부끄럽냐? 나라면 부끄러워서 벌써 절벽에서 뛰어내림~’
‘아아악!!!’
‘……내 말도 좀 들어라. 이 새끼들아…….’
이때 들은 대화를 옹주 자가께 전해 드리면 재미있어하시지 않을까 싶어 고민했지만, 괜히 자극했다가 다음에는 쏴서 잡아 보겠다는 포부를 품을까 두려웠으므로 성 겸사복은 조용히 홀로 웃고 넘어가기로 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호랑이에게 활을 쏠 정도로 가까이에 있었다는 옹주 자가께서 많이 놀라셨을까 걱정이었는데, 이렇게 보니 전과 다른 것이 없어 성 겸사복도 안심했다.
“그럼 소인은 이만 물러나 보겠사옵니다.”
“오냐. 빨리 보고하고 가서 쉬어.”
“여기서 많이 쉬었습니다.”
“그런 소리 하다가 다시 끌려가서 부려 먹히는 거야.”
“예. 주의하겠습니다.”
빠른 퇴직을 선호하는 입장에서는 아니 될 말이었다.
성 겸사복이 나오자 옹주 대신 배웅을 나온 송비가 웃으며 말을 걸었다.
“옹주 자가께서는 무탈하시니 너무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송구합니다. 소문이 너무 무성하니 역시 걱정이 되어서…… 그런데 옹주 자가께서 호랑이를 쏘아 눈을 맞히셨다는 건 정말 사실입니까?”
차마 옹주에게 직접 물어보지는 못한 성 겸사복이 송비에게 슬쩍 물었다.
“직접 목도하지는 못하였으나 사실이라고 들었습니다.”
“거참…….”
가끔 활 쏘는 걸 봐 드린 적은 있으니 옹주 자가께서 활을 잘 쏜다는 건 성 겸사복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대범함은 다른 문제지…….’
새끼 호랑이도 아니고 사람을 덮칠 정도로 큰 호랑이가 눈앞에 있는데 굳지 않고 활을 쏠 정도의 기백이라니.
평범한 양반가에서 사내로 태어났다면 장군감이라고 칭송을 들었을 텐데 아까운 일이었다.
물론 옹주가 아닌 왕자였으면 좀 눈치가 보였겠지만.
‘그나저나 진짜 빨리 퇴직하고 싶군.’
수영 옹주 처소에서 맛있는 거 먹고 따뜻하게 시간을 보낸 탓일까. 세자에게로 가는 발걸음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이미 대강의 사정은 전해 들었을 텐데 왜 굳이 오라고 하시는지.
그간 벌어 놓은 돈으로 따끈한 아랫목에서 몸이나 지지며 보내고 싶은데 세자와 엮이면 고생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성 겸사복이 왔다는 사실을 전해 들은 세자는 일하던 것을 밀어 두고 그를 굳이 밖으로 불렀다.
‘이럴 줄 알았다니까.’
따끈한 실내를 놔두고 실외에서 대화하는 습관은 대체 어쩌다 생기는 건지.
역시 혈기가 넘치는 나이라 그런 걸까?
그럼 빨리 후사나 좀 보시면 좋을 텐데.
성 겸사복의 비뚤어진 생각을 알지 못하는 세자는 오랜만에 보는 그를 반갑게 맞았다.
“왔는가?”
“세자 저하. 부르셨사옵니까.”
굳이 왜 불렀냐는 뜻이었다.
세자의 측근들은 그런 성 겸사복의 태도가 영 맘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지만 세자는 개의치 않았다.
“오자마자 옹주에게로 달려갔다고 들었네. 수영 옹주가 그리 걱정이던가.”
“송구합니다. 워낙에 소문이 무성하여 직접 확인해야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사옵니다.”
“이제 안심했으니 직무에 전념할 수 있겠군.”
“맡기신 임무는 완료하였으니 이만 사직하겠사옵니다.”
“불허하네.”
“…….”
성 겸사복이 사기꾼을 보는 듯한 불온한 시선을 보내자 송 내관이 도끼눈을 떴기에 성 겸사복도 눈을 내리깔았다.
“그리 걱정이면서 용케 옹주를 두고 강원도까지 갔다 왔군.”
“사실 궁에 호랑이가 들었다는 말을 듣고 조금 후회했습니다.”
자신이 떠나지 않았다면 옹주 자가께서 그런 위험한 일을 겪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이 넓은 궁 안에서 옹주 자가를 지킬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어쩌면, 차라리 궁 밖이 낫지 않을까.
“재난이었지. 감히 궁궐 안까지 들어와 행패를 부린 호랑이들은 이미 가죽만 남은 처지가 되었고 말이야. 흔한 일도 아니고 그 후 여러모로 경계를 강화했으니 또 그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네. 그런데도 자네는 옹주가 그리 걱정인가?”
“소인이 출세할 것도 아닌데 퇴직 후 재취직을 생각하면 응당 옹주 자가를 모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벌써 퇴직할 생각 말고 일 좀 더 하는 게 어떻겠나?”
“옹주 자가께서 거둬 주신다고 할 때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안 그래도 소인 이제 슬슬 몸이 노쇠하여…….”
“자네가 일 다 했다는 말은 동행한 이들에게 이미 들었네.”
그 도움 안 되는 놈들이.
“그저 잔머리나 좀 돌아갈 뿐인데 어찌 동료들의 공을 제 몫으로 돌리겠사옵니까. 공은 그들에게 돌리고 소인은 노후 보장이 되는 일자리로 하루빨리 떠나고 싶사옵니다.”
노후 보장! 그야말로 아름다운 울림이었다.
“아니…… 봉록 잘 챙겨 준다니까.”
“소인은 평화롭게 지내고 싶사옵니다.”
“내가 자네를 뭐 사지로 보낼까 봐 그러나.”
“…….”
보낼 거 같은데.
성 겸사복은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침묵했다.
사실 능력 있는 체탐인 안 놔주려는 이유는 뭐 비슷하지 않나.
이번에 시킨 일도 그렇고.
성 겸사복이 침묵하자 세자도 민망했는지 헛기침을 하며 본론을 꺼냈다.
“크흠. 그래. 왔으니 보고를 듣지.”
“이미 보고는 들으셨을 것으로 아옵니다.”
출세하고 싶어 하는 애들에게 설명을 양보했던지라 자신이 입 아프게 다시 얘기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높으신 분의 뜻은 또 다른 모양이었다.
“그래. 하지만 자네가 알아챈 것은 그들과 다를 수도 있지.”
“기대에 미치지 못할까 저어되옵니다.”
“이 겨울에 강원도까지 가서 고생한 보람이 있어야지.”
“송구하옵니다.”
아니, 절 왜 기다려요. 들을 거 다 들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