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270)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270)화(270/326)
“산에서 우연히 목격하게 되는 일은 있어도 위험하게 그런 걸 뒤쫓아가는 무모한 사람은 없으니까요. 세자 저하께서는 어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배운 것이 없는 백성들에게는 자기 목숨이 더 중한 법입니다.”
“원래 역모는 배운 거 많다는 자들이 하는 법 아니겠나. 백성들에게는 있는지 없는 모를 왕이 가장 좋은 왕인 법이지.”
피식 웃는 세자를 보며 성 겸사복은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그자들도 가능한 한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움직인 모양입니다.”
“그야 그렇겠지. 그나저나 그런 병력을 대체 어떻게 모은 거지?”
세자의 말에 성 겸사복도 자신이 들은 것을 적당히 답했다.
“역시 노비들을 사병으로 만드는 것이 쉽지 않겠사옵니까. 근래에는 왕명으로 막혔지만 예전부터 노름빚을 진 이들이 노비가 되는 일이야 드물지 않으니 어찌 보면 사람 모으기가 어렵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수영 옹주 때문에 왕명으로 빚 때문에 노비가 되는 것을 막은 것이 아직 그리 오래되지는 않으니 마음먹고 한다면 가능이야 했겠다만.”
“예. 흉년에 빚을 진다거나, 노름빚을 지는 일은 흔하지 않사옵니까.”
“노비매매에 노름…… 왠지 예전에 시아가 겪은 일들과 비슷하군.”
“…….”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얘는 대체 뭘 하고 다닌 거람.
‘나름 조선에서 가장 곱게 자란 아이일 텐데.’
물론 어린 시절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긴 했지만, 그 후에는 정말 애지중지 자란 아이인데 뭔가 문제였던 걸까.
세자는 궁중에서의 양육법에 대해 잠시 고민했으나 일단 더 급한 일을 처리해야 했다.
“이 일에 대해서는 내가 사람을 통해 따로 조사를 해 보겠네.”
“예. 세자 저하.”
역모에 관한 일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성 겸사복이 알아낸 사병의 존재는 지난번에 역당들을 일망타진했을 때 잡히지 않은 정보였다.
그러니 누군가 그 사병으로 또 무슨 일을 꾸미고 있을지 알아내야 했다.
‘아마 함께 역모를 꾸미던 이들이 다 잡혀 들어갔으니 지금은 몸을 낮추고 숨어서 때를 기다리고 있는 거겠지.’
하지만 사병을 육성하고 몰래 숨기고 있다는 것은 재물이 제법 소요되는 일이니, 오래 기다리지는 않을 것이 분명했다.
“자네들의 공이 크군.”
“운이 좋았을 뿐이니 어찌 소인들의 공이겠사옵니까.”
성 겸사복의 말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리고 세자 역시 성 겸사복이 말하는 저 ‘운’을 만들어 낸 것이 자신의 하나뿐인 누이동생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조금 묘한 기분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대체로, 뭔가 깊은 생각이나 계략이 있어서 하는 일이 아니지. 그 아이는.’
물론 걸음마도 못 하는 아기 시절부터 활로 호랑이를 쏠 정도로 자란 지금까지 곁에서 지켜봐 온 바, 세자의 하나뿐인 누이동생은, 참 이상한 일이지만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아이는 절대 아니었다.
필요하다면 자신의 신분이든 입장이든 잘만 이용해서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꾸거나, 시비 걸어온 상대에게 엿을 먹이거나 했으니까.
하지만 그런 주제에 하는 일이 죄다 사리사욕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한 일이었으니.
그 점이 더 훌륭하다고 아니할 수 없었다.
아이들이 잘 곳이 없어?
그럼 집을 주자!
사람들이 배고파한다고?
그럼 먹을 것을 주자!
사람들이 불편하게 글을 모른대?
그럼 글을 가르치자!
아픈 사람이 치료받아야 하는데 의원이 없어?
그럼 의원을 늘려!
뭐? 여자 의원이 없어?
키워!
거의 이런 식이 아니던가.
수영 옹주가 해 온 일은, 나열해 보면 너무나 당연한데도 무엇 하나 쉬이 해낼 수는 없는 일들이었다.
‘사실 크게 보면 세자인 내가 해야 하는 일인데, 정작 나는 그리할 수 없었으니.’
그렇다면 자신은 시아가 할 수 없는 일들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역당들은 내가 노비제를 건드리는 게 무척이나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니.’
이 기회에 저들을 뿌리 뽑아야 앞으로 일이 편해지지 않겠는가.
그러니 우선은 아직 남아 있을 역당의 무리를 잡아야 했다.
그리고…….
“자네가 큰일을 해 주었는데 미안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군.”
“혹, 김선익 대감에 관한 일입니까?”
처음 말이 나온 원인이 김선익 대감이 아니던가.
만약 역당의 오명을 쓰고 있는 것이라면 이번 기회에 제대로 밝혀 주어야 했다.
“그렇네. 자네가 찾아온 것들이 증좌의 하나가 될 수 있겠지만 이것만으로는 역모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결정적인 증좌가 부족하네. 그러니 당시 김선익 대감이 있던 함경도 북병영에서도 다시 조사를 해 봐야 할듯해.”
세자가 그리 말하며 성 겸사복을 지그시 쳐다보자, 자신의 불행한 앞날을 눈치챈 성 겸사복이 조용히 몸서리쳤다.
“설마, 막 돌아온 소인에게 또 떠나라는 비정하신 말씀은 아니시겠지요?”
“음…….”
성 겸사복의 말에 세자는 슬쩍 시선을 피했다.
심지어 지금 말이 나온 지역은 함경도였다.
강원도보다 북쪽.
막 무과 급제해서 강제 파견되는 것도 아닌데, 심지어 아직 눈이 내리는 이 계절에?
‘심지어 퇴직하겠다는 나에게?’
사직! 결단코 사직을 해야 했다.
“세자 저하의 주변에 인재가 얼마나 많은데 소인에게 또 그런 중한 임무를 맡기시겠습니까. 제가 분명 과민한 생각을 한 것이겠지요.”
“……크흠.”
“분명 이번 일을 하고 오면 소인은 퇴직을 하겠다 말씀을 올렸사옵니다?”
“……커허음.”
아무리 까라면 까야 하는 관료제 사회라도 사직서를 내겠다는 사람을 붙잡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무려 세자 저하께서 일을 시키겠다는데 거부하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이었고.
“아니, 정말로 제가 또 가야 하옵니까?”
“나도 사람인데 바로 가라는 건 아닐세. 고생하다 왔으니 조금 쉬고…… 자네 혼자 가서 북병영을 조사할 수는 없을 테니 일을 도와줄 사람도 찾아서 붙여 주겠네. 정해지면 함께 가 보게.”
“아니, 너무하지 않으시는지.”
“아니, 글쎄. 자네만 한 사람이 없지 뭔가.”
오래전 아바마마께서 떠나고 싶다던 성 겸사복을 붙잡은 이유를, 세자 역시 알 수밖에 없었다.
유능한 인재는 도망가지 않게 잘 붙들어야 윗사람이 편한 법.
그러니 사람을 부릴 때는 적당한 요령도 필요했다.
“너무 그러지 말게. 김선익 대감의 일로 그 식솔들이 역모죄로 잡혀가던 날 사실 옹주도 그들이 쫓기는 것을 보았었지. 많이 어릴 적인데 그 일을 아직도 기억하는 것을 보면 그때 크게 충격받았던 것이 아니겠나.”
“…….”
명확한 이유까지는 몰라도 성 겸사복이 수영 옹주를 따른다는 것을 아는데 이를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혹시 잃어버린 여동생이나 딸이라도 있는 걸까.’
괜히 남의 상처 들쑤시는 취미는 없었으므로 묻지는 않겠지만, 세자는 대충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성 겸사복에게 일을 시켜서 미안한 건 미안한 거고, 사실 수영 옹주가 그 일을 신경 쓰고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었으므로 양심의 가책은 적었다.
‘옹주 자가께서 나를 처음 만난 날이 마침 김선익 대감의 역모가 밝혀진 날이었지.’
자세한 얘기까지는 듣지 않았지만 어쩌면 그날 무서운 일을 목격했을지도 몰랐다.
그날 홀로 말을 타고 어두운 밤길을 헤매고 있었을 어린아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웠다.
‘심지어 그날 이상한 놈들에게 돈까지 뜯길 뻔하셨지.’
물론 옹주 자가의 성정을 어느 정도 아는 지금 객관적으로 보면 적아를 타고 그대로 밟아 버렸을 가능성에 더 무게가 실리기는 하지만, 그 어린아이가 그날 혼자서 얼마나 무서웠겠는가. 행동이 과감하고 과격하다고 무서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었다.
세자가 그렇게 수영 옹주까지 걸고넘어지는데 그가 계속 거부하기도 어려웠다.
사실 성 겸사복도 권력자라고 강압적으로 굴지 않는 세자가 싫지는 않았다.
“……저도 이제 나이가 있어서 추운 계절은 좀 힘이 드옵니다.”
“이제 봄이 아닌가. 괜한 걱정일세.”
완곡한 승낙의 말에 세자는 싱긋 웃었다.
“입춘도 설도 지났고 이제 따뜻해질 일만 남지 않았나.”
“……예. 그랬으면 좋겠사옵니다.”
봄이라고 해 봤자 북병영에 가면 춥겠지…….
성 겸사복은 서러워졌다.
물론 젊은 시절 온갖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며 살아남았던 기억들을 떠올리면 이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제 좀 편하게 살고 싶었다.
“이만 물러나 보겠사옵니다.”
“그래 인선이 정해지면 후일에 다시 부르도록 하지. 그간 고생했을 테니 한동안은 좀 쉬고 있게.”
“예, 세자 저하.”
세자는 웃으며 성 겸사복을 보냈다.
“하, 사직 실패…….”
허락이 없으면 사직도 불가라니.
물론 다 버리고 혼자 튀면 좋겠지만, 자신처럼 이것저것 많이 아는 인물을 그대로 보내 줄 거 같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옹주 자가를 못 보잖아.’
강원도에 다녀온 사이 또 쑥쑥 자라신 것이 눈에 보여 얼마나 흐뭇한지.
발랄하게 웃고 있는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그리운 얼굴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옛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곤 했다.
‘행복해지셔야지.’
지금도 행복해 보이시지만, 앞으로도 언제나 웃고 계셔야 하지 않겠는가.
그동안 정말 말 그대로 무럭무럭 자라셨으니 앞으로 언제 하가하게 될지 모를 일이었다.
주상 전하나 세자 저하께서 옹주 자가를 아끼시는 것은 분명하지만, 만에 하나 부마가 변변치 못한 놈이라 옹주 자가께서 마음고생이라도 하시게 되면 어찌 되겠는가.
자신도 모르는 곳에서!
‘만약 감히 제 주제 파악도 못 하고 다른 여인에게 한눈이나 파는 놈이라면 몰래 다리라도 분질러서 못 나다니게 만들어 줘야…….’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를 상정하며 적성을 살려 범죄 계획을 세우고 있던 성 겸사복의 눈에 마침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음? 천호? 천호가 아니냐.”
“어? 언제 돌아오셨습니까?”
자신이 없는 사이에도 단련은 게을리하지 않았는지 천호는 아직 추운 날씨임에도 땀투성이였다.
‘이쪽은 익위사인데 설마…….’
천호가 익위사 관원들과 함께 호랑이를 잡았다는 얘기는 성 겸사복도 소문으로 들어 알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이름까지는 퍼지지 않았지만 옹주의 호위가 호랑이를 잡았다는 건 신문에도 실려 있었으니까.
그래도 역시 이런 걸 본인에게 확인해야 하는 법이었다.
“네가 호랑이 잡았다고 들었는데 사실이냐?”
“예에. 뭐…… 혼자서 잡은 건 아니지만 사실입니다.”
“자세히 얘기 좀 해 보거라.”
“하하…….”
아는 사람마다 똑같은 얘기를 요구하니 이미 질릴 정도로 같은 레퍼토리를 반복해야 했던 천호는 질린 얼굴이었지만 오랜만에 보는 성 겸사복에게 나름 반가운 낯으로 당시의 일을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