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271)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271)화(271/326)
시작은 나름 화기애애했던 대화였으나, 이야기가 전개됨에 따라 성 겸사복의 언성이 높아졌다.
“옹주 자가께서 그렇게 위험한 상황에 처하셨다고? 너는 그걸 가만 보고 있고?”
“가만 보고 있지는 않았…… 소, 송구합니다.”
초반에는 옹주 자가를 위험한 상황에서 가능한 한 떼어 놓는 전개(?)였으므로 성 겸사복도 그럭저럭 납득하고 안도하며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수영 옹주가 위태롭게 호랑이에게 습격당하며 위험천만하게 달려드는 호랑이의 눈에 활까지 쏘는 전개로 이어지자 천호를 향해 눈을 부릅떴다.
산전수전 다 겪은 아저씨의 싸늘한 눈길은 천호조차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게 만들었다.
‘주상 전하도 이렇게 화내지는 않으셨는데……!’
오히려 옹주를 지키고 호랑이를 잡았다는 사실을 크게 칭찬하고 상까지 내리셨는데!
천호는 억울했다.
솔직히 그날 일이 천호의 책임은 아니지 않은가? 그래도 천호는 나름 목숨 걸고 수영 옹주를 지켰다는 사실에 조금 자부심도 가지고 있었다.
당연히 주변에서도 칭찬이 쏟아졌다.
그런 천호를 까는 사람은 성 겸사복이 두 번째였다.
심지어 두 사람은 똑같은 소리까지 했다.
“역시 내가 있는 동안 좀 더 굴렸어야 했는데.”
“안 굴러도 잡을 수 있어요…….”
천호의 소심한 항변에 성 겸사복은 인상을 구겼다.
“그런 헛소리하지 마라. 호랑이 정도는 맨손으로 잡았어야지.”
“아니, 대체 왜 그런 위험한 일을 해야 하는 겁니까.”
가끔 힘이 장사라 호랑이를 팔로 목 졸라 죽였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전해 내려오지만 천호는 비교적 회의적이었다.
그 사람들도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으려고 한 게 아니라 그냥 상황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맨손으로 잡았을 뿐일 텐데!
그냥 함정 파서 잡는 게 더 안전할 텐데! 왜 그런 위험한 짓을 해야 하지?!
그런 천호의 반응에 주변 아저씨들은 혀를 찼다. 힘도 좋은 놈이 아깝게 왜 저리 야망이 없는 건지 모르겠다나.
그게 대체 무슨 야망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호랑이 무서워하면서 왜 남한테 그런 걸 강요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문제는 지금 이런 얘길 하는 사람들은 그런 아저씨들과는 결이 좀 다르다는 데에 있었다.
“저희 숙부도 비슷한 말씀을 하시던데. 겸사복 아저씨도 그렇고 왜들 그렇게 저를 못 잡아 드셔서 안달이신지.”
“뭐 이놈아?”
성 겸사복은 천호를 보고 인상을 썼으나 뜻밖에서 폭력을 쓰지는 않았다.
‘확 쥐어박고 싶다는 표정이었는데?’
천호는 의아해했으나 곧 답을 찾았다. 자신이 옹주 자가를 보호하다 다쳤다는 것 정도야 궐 안에 소문이 파다하니 옹주 자가를 애지중지하는 이 아저씨도 알고 있을 터였다.
“네 말을 들으니 네 숙부와는 제법 마음이 맞을 것도 같구나. 궁에서 일하고 계시다고 했지?”
“예. 이번에 호랑이도 잡아서 승진하셨죠.”
“그래. 널 가르치신 분이니 오죽하겠냐마는……. 그러고 보니 같은 곳에서 일하면서도 네 숙부를 본 적이 없구나.”
“그야 같은 곳이 아니니까요.”
궁궐이 오죽 넓고 일하는 사람은 오죽 많으랴.
배치된 지역이 다르고 보직이 다르면 피차 잘 모르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소개해 주지도 않았고.
“아, 하지만 요즘에는 승차해서 세자 저하…… 동궁 호위로 들어가 있어요. 아까 동궁 쪽에서 오셨으니 어디서 마주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오, 출세했구나.”
“호랑이를 잡은 공이 있으니까요.”
“네 말대로라면 보통 사람은 아닐 테고…….”
그렇게 중얼거리던 성 겸사복은 천호에게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일단 너는 나랑 좀 붙어 보자.”
“추운데 이러지 마세요…… 저 아직 부상자입니다…….”
“젊은 놈이 패기 없기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성 겸사복은 천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히죽 웃었다.
정말, 어린놈이 제법 싹수가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입에 오르내린 그 사람은 두 사람이 모르는 곳에서 큰 사고를 치고 있었다.
***
세화는 동궁전 근처 인적이 드문 곳에서 불안한 얼굴로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일단 해야 할 일은 어느 정도 끝낸 상태였으나 언제 누가 자신을 부르러 올지 모르니 빨리 마음을 결정을 내려야 했다.
자신이 자리를 비웠을 때 동궁전 아니면 옹주 자가의 처소로 찾으러 오는 것은 이제 내의원의 상식 같은 것이었으니까.
‘성 겸사복이 돌아왔다고 들었는데…….’
다른 지방에 있을 때도 시영원을 들르기 때문에 다쳤다면 이미 치료를 받았을 거다. 그러니 딱히 내의원으로 치료를 받으러 오는 것은 아니었지만 무관들이란 대체로 내의원들과 어느 정도 안면이 있는 사이가 많았다.
덕분에 성 겸사복이 오랜만에 궁으로 돌아왔다는 소문도 세화의 귀에 일찌감치 들어왔다.
‘뭔가, 뭔가 단서를 발견했을까.’
세화의 아버지인 김선익 대감이 연루되었던, 이제는 10년째가 된 그 역모 사건에 대해 조사하기 위해 세자가 성 겸사복을 강원도로 보냈다는 것은 세화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덕분에 세화는 어느 누구보다 그의 무사 귀환을 기도해 온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성 겸사복이 돌아왔다는 말을 들으니 종일 안절부절못하고 일이 손에 잡히지를 않았다.
‘의원이 이러면 안 돼.’
다행히 소식을 알기 전 세화가 해야 할 진맥이나 일처리는 모두 끝낸 상태였다.
세화는 자신의 성실함에 안도했다.
‘성 겸사복이 돌아왔다는 것은 뭔가 실마리를 붙잡았다는 의미일지도 몰라. 하지만 만약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면…….’
성 겸사복이 돌아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가 돌아오는 날을 기다리며 희망에 부풀어 있었는데, 정작 그가 돌아왔다고 하니 쉬이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진실이 밝혀지기 전에 적어도 세자 저하께는 내 정체에 대해 내 입으로 고해야 한다.’
이대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은 너무 비겁하지 않은가.
적어도 자신의 아버지가 죄인인지 아닌지, 자신이 확인하기 전에 세자 저하께 고하고 그에게 처결을 맡겨야 옳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세자 저하였다.
역도의 딸이면서 계속 정체를 숨기고 곁에 있다는 것은…… 결코 그에게 이로운 일은 아니었다.
‘내가 누군지 알면 환멸하지 않을까.’
이름도 출신도 바꾸고 거짓된 신분으로 그의 신임을 얻고 마음을 얻었는데.
세자가 배신감을 느끼고 자신을 멀리한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설령 그리된다 해도…… 아버지가 죄가 없다면 밝혀 주시겠지.’
세자가 세화의 아버지 일에 대해 다시 조사하는 것은 세화 자신과는 전혀 관계없는 이유에서였다. 세화는 그 사실이 기뻤다.
그리고 그런 세자가 여색에 빠져 역도의 죄를 벗겨 주려 한다는 말을 듣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제 옹주 자가의 병도 다 나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저하께서 옹주 자가를 위해 참지 않고 나를 내치셔도 될 거야.’
그러니 지금이야말로 모든 사실을 털어놓을 적기였다.
‘더 늦어진다면 의원으로서도 사람으로서도 완전히 세자 저하의 신뢰를 잃고 돌이킬 수 없게 될지도 몰라.’
언젠가는 밝혀야 하는 사실이 아니던가.
지금이라도 가서 무릎 꿇고 진실을 고하면 세자는 받아들여 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런 기대를 품고 있다가 아닐 경우 감당할 수 없었다.
어차피 그날 도망치지 않았더라면 관비가 되었을 몸이니 의녀 신세로 떨어진다 해도 불만을 가질 처지는 아니었다.
‘이젠 최악의 경우로 관기(官妓)가 되는 일도 없으니……. 어찌 보면 마음이 편하다고 해야 할까.’
자신의 정체가 밝혀지면 언제나 다정하고 유쾌하신 옹주 자가도 어쩌면 자신을 경계하고 멀리하실지도 몰랐다. 하지만 역시 위험한 인물을 곁에 둘 수는 없으니까.
만약 자신이 아닌 누군가 역당의 자식이 세자 저하나 옹주 자가의 곁에 있다면 세화 자신도 조심하라며 멀리하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세화는 두려움과 망설임을 떨쳐 내기 위해 몇 번이고 심호흡을 하고 동궁전으로 들어섰다.
이미 세화의 얼굴을 모르는 이가 없으니 얼굴만으로 프리패스였다.
세자가 지시해 둔 일이기도 했다. 세화가 찾아온다면 세자가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가 아니라면 언제든지 고하지 않고 들여보내도 된다고.
덕분에 세자가 세화를 각별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눈치챈 이들은 적지 않았다.
괜히 입방정 떨었다가 장래의 군왕의 눈 밖으로 벗어나는 바보짓을 하지 않을 뿐이지.
그리고 그 덕분에 세화는 예상하지 못한 뜻밖의 선객이 세자 앞에 무릎 꿇는 모습을 목격해 버렸다.
“세자 저하께 감히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
덕분에 세화는 세자 앞에 나서지 못하고 어정쩡한 거리에서 뒤로 물러나야 했다.
‘망설이는 사이에 선수를 빼앗겼어?’
그동안 세자의 곁에서 제법 시간을 보내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세화는 조금 혼란스러웠으나 일단 대화를 방해하지 않도록 건물 뒤쪽으로 몸을 숨겼다.
‘다, 다음 기회로 미뤄야 하나? 아니, 이건 현실 도피잖아. 역시 이런 일은 결심했을 때 해치우지 않으면 안 되겠지?’
그렇게 세화는 다시 결심을 다졌다.
그리고 잠시 정신을 못 차리는 동안은 깨닫지 못했는데, 평소 세자 저하의 뒤를 따르던 궁인들이 대화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다소 먼 거리에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위험한 거 아닐까?’
물론 늘 세자 저하의 곁을 지키는 송 내관이나 호위는 곁에 있지만 어쩐지 불안해서 세화는 주저하면서도 건물 그림자에 몸을 숨긴 채 세자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들리지 않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조금 더 멀어져야 할까?’
하지만 만에 하나 세자 저하께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자신이 도움이 될지도 몰랐다.
세화가 홀로 치열하게 고민하는 사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단어가 귓가에 들어왔다.
“저는 당시 북병영에서 김선익 대감의 밑에 있던 사람입니다.”
“!”
순간 숨이 멎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지금 들은 것이 무엇인가를 깨달은 세화의 가슴이 무섭게 뛰기 시작했다.
“김선익 대감께서는 역모를 꾀한 적이 없습니다! 부디 그분의 무고함을 밝혀 주십시오, 세자 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