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277)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277)화(277/326)
하지만 제삼자인 내가 커플 사이에 있었던 일을 딱히 자세히 알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물론 사생활을 보호받기 힘든 세자이니 송 내관이나 누구 붙잡고 잘 구슬리면 알아낼 수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하는 것은 좀…… 그렇지…….
‘그렇게까지 해서 알려고 하는 것도 이상해 보일 테고. 옆에서 너무 참견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고.’
솔직히 말해서 친혈육의 연애 사정에 대해 자세히 알려고 한다니. 객관적으로 좀 소름 끼치는 일이었다.
그나마 액면가가 어린애일 때는 좀 나았겠지만 지금은 여러모로 꺼림칙해 보이지 않겠는가.
그러니 그냥 오늘따라 유난히 밝은 세화의 얼굴을 보며, 뭔가 세자와 둘 사이에 진전이 있었으리라 미루어 짐작할 뿐이었다.
잃어버린 동생을 찾은 거라면 어떻게든 오히려 일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숨기려고 했을 거 같기도 하고.
‘세자랑 둘이 빨리 잘되면 좋겠다.’
하지만 내가 남의 연애사에 이 이상 이래라저래라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그래도 둘이 잘되고 있는 거 맞겠지?
안 그래도 세자가 무능해서 아직 세화를 사로잡지 못한 것인가 의심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뭐 그리 권장할 일은 아니지만 원래 사랑에 빠지면 앞뒤 가리지 않는 법이라니…….
물론 두 사람 사이에 큰 장애가 하나 남아 있으니 그걸 해결하지 않는 한 제자리걸음인 셈이었다.
‘세화는 이성적인 사람이고.’
사랑에 맹목적이라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드는 건 아무래도 여주인공으로는 실격이지.
그런 건 주로 서브 여캐나 악역 여캐의 역할이니까.
특히 사극 장르에서 그런 식으로 나대다가 잘못하면 사망으로 빠른 하차하는 수가 있었다.
아무튼 주인공 커플의 빠른 성사를 위해서는 지금 성 겸사복의 출장 내용이 중요했다.
사실 투덜거리기는 해도 성 겸사복의 얼굴이 자신만만한 걸 보면 수확이 있었다는 것은 대충 알 수 있었고.
“갔다 온 일에 대해 적당히 간결하게 설명 좀 해 봐.”
“예에…….”
성 겸사복은 지금 여기서 말해도 되는 건가 하고 망설이듯 주변에 있는 이들을 살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성 겸사복을 안심시켰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괜찮아. 밖에서 듣는 사람은 없고.”
“예. 옹주 자가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괜찮겠지요.”
이래 보여도 우리 처소 군기와 경계가 동궁전 못지않단다……. 신문 취급하다 보니 기밀이 많아져서.
“저어, 정말 제가 같이 있어도 되겠사옵니까?”
“응. 전에 얘기 꺼냈을 때 두 사람도 있었으니 모르는 얘기도 아니잖아? 설마 어디 얘기하고 다닐 건 아니지?”
“그럴 리가 있겠사옵니까.”
세화는 당황스러우면서도 반색하는 듯했고, 천호는 워낙에 내 곁에 오래 있어서 그런가 당연하다는 얼굴이었다.
사실 성 겸사복을 부른 자리에 굳이 세화까지 부른 것은 세화의 아버지와 얽힌 역모에 관해 뭐 좋은 소식이나 알아낸 거 있으면 좀 전해 주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세자는 자세한 설명까지는 안 해 줄 거 같고 말이지.’
성 겸사복이 돌아온 당일은 워낙에 지친 거 같기도 해서 일 얘기는 안 하고 안부만 확인했으니 마침 이래저래 핑계 김에 좋지 않은가.
무엇보다 일단 세자에게 먼저 보고해야 하는 게 맞기도 하고.
성 겸사복이 어영부영 내 사람이긴 하지만 일단 아직 공식적으로는 궁에서 일하는 겸사복이고, 일을 시킨 것도 세자니까 세자한테 보고를 하는 게 우선이었다.
성 겸사복도 괜히 자기 때문에 내가 곤란해지는 것을 원하지는 않으므로 그날도 세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자세한 얘기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이란 별거 아닌 거 같은 사소한 일로도 사이가 벌어질 수 있으니 성 겸사복도 나를 위해 주의하는 모양이었다.
‘세자한테 보고도 다 한 거 같고 이제 괜찮겠지. 애초에 이 일은 내가 먼저 말을 꺼낸 거고, 성 겸사복에 대해서도 알고 있으니 나한테 숨길 일도 아니고.’
본인과도 직접 대화하면 좋겠지만 세자는 요새 또 뭐가 그리 바쁜지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물론 조선에선 세자가 바쁜 게 정상이긴 했다.
어째선지 옹주인 나까지 바쁜 거 같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냥 좀 자업자득이고.
성 겸사복은 내가 요구한 대로 중요한 이야기만 요약해서 전달했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그래서 김선익 대감이 역모에 가담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만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만약 사실이 밝혀진다면 성 겸사복이 공을 세운 셈이네.”
“하지만 아직 조사가 끝나지 않았으니까요…….”
세자가 증거 찾으러 이번에는 북병영으로 가라 했다고 말하는 성 겸사복의 얼굴에는 피로와 체념 같은 감정들이 가득 차 있었다.
은퇴는커녕 또 떠나야 한다는 사실에 성 겸사복은 무척이나 피폐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날이라도 빨리 따뜻해지길 기도해야 하나.’
미안하지만 내가 줄 수 있는 거라곤 먹을 거랑 돈과 약밖에 없었다.
다행히 그 약을 지어 줄 사람은 흥미진진한 얼굴로 눈을 반짝이며 성 겸사복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그래서 어찌 그 서찰을 찾아내신 겁니까?”
“어, 그게…….”
이야기를 들으며 내내 눈을 반짝이던 세화는 성 겸사복에게 무한한 호의의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가.’
아버지 누명을 벗길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 준 사람이고, 동시에 찾아 줄 사람이었으니까.
‘세자가 알면 또 귀찮게 구는 거 아니겠지…….’
천호한테도 질투를 한다는데 상대가 아저씨라고 안 할 거 같지도 않았다.
물론 내가 알 바는 아니었지만.
나는 모험담 풀기가 끝난 후 신중하게 성 겸사복을 진맥해 주는 세화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뭐 본인 집안 명예를 회복하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니, 내가 뭐라고 안 해도 세화가 몸에 좋은 보약들로 알아서 성심성의껏 챙겨 주겠지.
중요한 이야기가 끝났다는 것을 궁녀들에게 전달하자, 곧 송비가 궁녀들과 함께 전복과 삼 등 여러 약재가 들어간 삼계탕과 찬이 곁들어진 상을 들고 왔다.
낡고 지친 직장인, 아니, 공무원들은 보기 드문 귀한 재료들이 들어간 보양식을 보고, 감격한 얼굴로 눈을 반짝였다.
“옹주 자가, 이것은……!”
“정말 저희가 이런 귀한 음식을 먹어도 괜찮은 것이옵니까?”
너무 감격한 것 같아서 오히려 좀 미안하군.
“응. 아무래도 다들 일이 많고 고생들 하니 보양이 좀 필요해 보여서.”
“역시 옹주 자가밖에 없사옵니다.”
“저희가 어디서 또 이런 귀한 음식을 맛보겠사옵니까?”
무척이나 진실성이 느껴지는 칭찬이었다.
다들 배가 고팠는지 음식이 나오고 한동안은 말도 없이 음식에만 몰두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고 있는 나는 어쩐지 좀 흐뭇했다.
정말이지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왜 다 저렇게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나까지 포함해서.
보양식을 먹이고, 차와 간식까지 모두 해치운 후 세화는 여전히 밝은 얼굴로 먼저 몸을 일으켰다.
“사실 세화도 내의원 일로 바쁠 텐데 내가 또 새로운 일거리만 떠넘긴 것 같아서 미안하네.”
“아닙니다. 응당 의원인 제가 해야 하는 일이 아니겠사옵니까.”
세화가 싫어할 리가 없다는 건 알지만 한번 말해 봤다.
“음. 그럼 부탁할게.”
“예, 맡겨만 주십시오.”
그렇게 세화는 의기 충만한 얼굴로 웃으며 인사를 하고 순식간에 내 처소에서 사라졌다.
오늘따라 상태도 좋고, 잘 먹여 놓기까지 했으니 성 겸사복에게 줄 보약은 알아서 잘 만들어 오겠지.
이제 뭔가 좀 진행되는 느낌이 들어서 마음이 편했다.
“나도 밥을 먹었으니 조금 있다가 나가서 산책 좀 해야겠다.”
“늘 저자를 돌아다니시던 옹주 자가이시니, 근래에는 밖으로 나가질 못하셔서 갑갑하신 모양이옵니다.”
“음. 하지만 다들 걱정이 많으니까 조금 참아 주고 있어.”
“하하. 고생이 많으십니다.”
부왕도 세자도 어찌나 걱정이 많은지 원.
“호랑이가 그리 걱정이라 밖에도 못 나가게 하실 정도면 아예 대대적으로 사냥이라도 좀 하든가.”
“안 그래도 호랑이 사냥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 모양입니다.”
내 말에 천호가 뭔가 들은 것이 있는지 이것저것 입을 열었다. 요새 여기저기 끌려다니더니 아는 게 많아진 것 같았다.
“그래도 궁궐 경비가 우선이니까요.”
“그렇죠. 그리고 크게 다친 사람은 없어서 다행입니다.”
“다행이지.”
듣기로 아무래도 호랑이 때문에 다친 사람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퇴직해야 할 정도로 다친 사람은 없다고.
‘일단 천호부터가 호랑이 때문에 다친 사람이니까.’
그래도 돌아다니는 걸 보면 멀쩡해 보이는데, 가끔씩 움직일 때 움찔하는 걸 보면 아픈 부위는 아직 다 낫지 않은 모양이었다,
‘내가 겉보기로는 어려 보여도 천호보다 훨씬 나이도 많은데, 이 어린 것을 위험하게 계속 방패처럼 쓰고 다닐 수는 없지.’
천호가 덩치만 컸지, 아직 몸도 마음도 어린애라는 사실을 되새기면 아주 죄책감이 몰아쳤다.
그런 내 속을 알 리 없는 두 사람은 밖에 나가지 못하고 있는 나를 위해 이야깃거리를 찾아오고 있었다.
“그거 아십니까? 요즘 옹주 자가에 관한 이야기가 저자에 가득합니다요.”
“나? 내가?”
“아, 그야 그렇지요. 호랑이를 쏘아 맞히는 옹주 자가라니 어디 흔한 일이겠습니까.”
“역시 옹주 자가께서는 뭔가 달라도 다르시다고 하는 목소리도 제법 있습니다.”
“아하하하.”
두 사람의 말을 들은 내가 어색하게 웃거나 말거나 성 겸사복의 찬사가 이어졌다.
“달려드는 호랑이의 눈을 쏘아 맞히는 용맹함이라니. 장군감이십니다.”
“음. 왕실 사람들이 다들 활을 잘 쏘거든.”
“그렇사옵니까?”
“응. 세자 저하도 활을 잘 쏘지.”
성원 세자 오라버니도 활을 잘 쐈는데.
나는 문득 스쳐 지나가는 생각을 굳이 입 밖에 내지 않고 흘려 넘겼다.
“세자 저하가 너무 잘 맞히니까 익위사 사람들은 가끔 재수 없어 하더라.”
“세자 저하께서는 문무를 겸비하셨지요.”
“음. 어쩌면 본인이 쏘지 못해 아쉬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네.”
“생각해 보니 그러실지도 모르겠사옵니다.”
농담으로 주고받은 얘기였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라, 혹시 이거 내가 세자의 활약을 뺏은 거…… 는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