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281)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281)화(281/326)
“그런……가?”
“예. 분명 그럴 겁니다.”
천호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데 어째선지 듣고 있는 내가 기분이 묘해졌다.
어딘가가 간질간질한 이상한 기분이었다.
“음. 그나저나 꼬마가 확실히 오동통해지고 있는데 너무 사는 게 편해서 문제인 걸까? 까마귀한테라도 좀 데려갈까?”
“그건 좀 그렇지 않을까요…….”
천호는 애매하게 웃었다.
“분명 어미는 길고양이 출신일 텐데. 궁 안에서 살다 보니 너무 위협이 없고 편하니까 애가 늘어지기만 하니, 원.”
“그래도 꼬마가 덩치가 커지니 오히려 까마귀랑 싸우기도 하지 않습니까.”
“하긴.”
새끼 고양이 시절에는 일방적으로 목숨을 위협당했는데 돼ㅈ…… 뚠뚠 고양이가 된 이후로는 오히려 까마귀한테 막 나갈 수 있게 되었으니 장족의 발전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살찐 게 좋은 게 아니지만.’
어쨌든 까마귀랑 둘이 싸우다 다치면 보는 이쪽만 난감해지기 때문에 둘이 마주치지 않도록 거리를 두고 있었는데 꼬마에게 경각심을 좀 가르쳐 주는 게 좋지 않을까??
“험한 세상이니 강하게 키워야지.”
내가 언제까지 보호해 줄 수는 없으니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하게 키워야 해.
이 교육 방침은 사람을 키울 때도, 동물을 키울 때도 다르지 않게 적용되고 있었다.
“옹주 자가의 교육 방침은 약간 특이하신 것 같습니다.”
“내가 평생 책임져 줄 것도 아닌데 당연하지.”
“앗, 그런데 꼬마는 옹주 자가께서 키우시는 게 아닙니까?”
“글쎄, 원래 세자 저하의 고양이가 낳은 아이인데 어째서인지 나를 잘 따라서 어쩌다 보니 내 처소에서 키우게 됐단 말이지.”
“그것참 신기하네요.”
적당히 맞장구치는 천호를 보다 나도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아니, 그러고 보니 생각해 보니 키우게 된 계기가 너 아닌가?”
“예?”
“그때 분명…… 나무 위에서 까마귀한테 노려지는 새끼고양이를 내려 주느라 네가 날 들어 올린 적이 있었잖아?”
“네? 앗, 아아…….”
그렇게 말하니 천호도 기억이 나는 모양이었다.
“생각해 보니 그렇게 오래전 일도 아닌데 오래전 일 같네요.”
“뭐야, 그 늙은이 같은 말투는”
“게다가 그때에 비하면 옹주 자가께서는 굉장히 많이 자라셨고요…….”
그야 많이 자라긴 했지.
하지만 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한탄할 수밖에 없었다.
“으음. 하지만 역시 키는 좀 더 커야 하는데.”
“왜요?”
“너무 작은 건 별로야.”
“옹주 자가께서는 키가 크든 작든 옹주 자가이신데 그런 걸 걱정하실 필요가 있으십니까?”
“하지만 몸이 작으면 여차할 때 반격하기가 힘들단 말이지. 팔도 짧고, 다리도 짧고.”
그렇게 말하며 나는 안고 있는 꼬마를 하늘을 향해 번쩍 들어 올렸다.
꼬마는 반항했지만 안타깝게도 방향상의 문제로 고양이의 솜주먹은 내게 타격을 주지 못하고 허공을 휘저었다.
애초에 반항할 의욕조차 없는 거 같기도 하고.
“힘도 별로 없고.”
“음. 호랑이를 잡으신 분이 그런 설득력 없는 말씀을 하시다니.”
“안 잡았어. 잡은 건 천호지.”
내가 사실을 적시하자 의외로 천호가 고개를 저었다.
“사실 산속이었으면 반쯤 잡은 거나 다름없어요. 어차피 그 상태였으면 제대로 사냥도 못 하고 굶어 죽었을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아니, 굶어 죽는다니 대체 어느 천년에.”
내가 입술을 삐죽거리자 천호가 변명하듯 말했다.
“시간은 좀 걸렸겠지만요. 하긴 굶어 죽기 전에 길을 잘못 들어서 미끄러지거나 추락사할 가능성이 더 높네요. 호랑이들끼리 안 싸우리라는 법도 없고. 가죽이 상해서 제값을 못 받을지도 모른다는 단점이 있긴 합니다만 사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나쁘지 않네요.”
“헤에…… 그런 건 어떻게 알아? 어디 멀리서 호랑이 감시해?”
“눈이 좋으면 보이기도 한답니다만 저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서요.”
세상에는 정말 신기한 사람이 많군…….
전생에서는 전 세계에 신기한 사람을 인터넷으로 다 볼 수 있었는데 이제 안 되니까 조금 아쉬웠다.
“으음, 하지만 나 정도 활 솜씨는 흔한 편이지 않아? 밖으로 나가면 은근히 쓸모가 없을 것 같은데?”
“말도 안 되는 말씀은 그만하시지요, 옹주 자가. 지금 활 솜씨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하십니다.”
“어, 그런가? 나 밖에 나가도 배는 안 곯고 살 수 있을 것 같아?”
내 말이 뭐가 재밌었는지 천호는 쿡쿡 웃으며 답했다.
“예. 날아가는 새들 적당히 잡아다 먹고 팔고 해도 굶지는 않으실 겁니다.”
“오, 다행이긴 한데 생각해 보니 나 동물…… 고기 손질 못 해.”
솔직히 내가 너무 곱게 자라서 그건 좀.
그리고 큰 짐승일수록 피 냄새나 비린내도 엄청날 텐데. 그걸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전생에도 정육점에서 사 온 고기를 요리하려고 썰어 본 적은 있어도 도축은…… 미경험이라.
‘일단 그 시대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 볼 일이 없지 않을까?’
내 말을 듣고 있던 천호가 또다시 한숨을 내쉬며 웃었다.
“귀하신 분이 그런 거 하시면 안 되죠. 손 거칠어집니다. 게다가 실수로 다치시기라도 하면 어떡합니까.”
다치면 다치는 거지…….
하지만 그런 말을 하면 천호보다도 내 뒤에 있는 궁녀들이 더 무서웠으므로 말을 가리기로 했다.
“에이. 하지만 기껏 잡았는데 못 먹는 것도 아쉽잖아.”
“그럼 뒤처리는 제가 대신하면 되죠. 왜 옹주 자가께서 그런 것까지 하실 걱정을 하십니까.”
“아니, 인생은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법이니 알아 두면 좋지 않아? 이전까지야 어린아이 몸이었으니까 뭘 해 보겠다는 생각을 못 했던 거고 지금은 해 볼 수는 있을 것 같은걸.”
“…….”
내 말에 대답하기 난처하다 싶었는지 천호가 잠시 침묵했다.
이제 와서는 자라지 않았던 것도 과거의 일이라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데도, 주변에서는 여러모로 신경 쓰며 화제를 꺼내지 않으려고 노력하곤 했다.
나도 괜찮다고 강조해 말해 봤자 아무도 안 믿는다는 걸 알기에 굳이 오해를 풀어 주진 않고 천호의 어깨를 토닥이며 화제를 바꿨다.
“그러고 보니 천호, 요리도 한다고 했던가?”
예전에 그런 얘기를 했던 것 같은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천호도 기억을 더듬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냥꾼들은 대체로 고기 요리 전문이긴 합니다만…….”
“아 그렇겠네.”
“물론 배고프면 나물도 캐고, 버섯도 따고 하죠.”
“하하하.”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옹주 자가는 따라 하지 마세요. 그런 거 어설프게 아는 지식으로 따라 하다가 큰일 납니다. 저도 산에서 그런 사람들 여럿 봤거든요.”
“응. 알았어. 주는 대로 먹을게.”
여전히 꼬마를 들고 팔 운동을 하며 걷던 나는 다시 질문을 반복했다.
“아. 그래서 천호, 요리 잘한다고?”
“……결론적으로 요리를 할 수 있는 건 맞긴 맞습니다만, 수준이 다른 궁중 요리를 드시고 자라신 옹주 자가 앞에서 요리를 한다고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지 않겠습니까?”
“천호는 말하는 거 보면 어디 가서 굶어 죽진 않겠어.”
“제가 숙부한테 배운 건 그거 하나죠.”
“……천호, 숙부한테 배운 게 많은 것 같은데.”
“그야 오랫동안 가족이라고는 숙부 한 사람뿐이었으니까요.”
“……소중하겠네.”
“하하. 낯간지럽네요.”
어린아이에게 단 한 명뿐인 보호자가 어떤 의미인지는, 나도 모를 수가 없었다.
설령 이제는 혼자서도 살 수 있다고 해도 말이지.
‘내 경우는 독립해도 절대 혼자는 아닌 것 같지만.’
분위기가 처지는 게 싫어서 다시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그나저나 도망쳐도 천호를 데려가면 먹고사는 데에는 지장이 없겠네.”
“음…….”
“왜?”
“아닙니다.”
전에는 비슷한 얘기를 했을 때는 나를 데리고 도망치겠다더니 천호의 반응은 예전과 조금 달랐다.
“아, 이제 무거워져서 나 들고 못 뛰겠지?”
“네? 아직 하나도 안 무겁거든요?”
“진짜? 시험해 봐?”
자신만만하던 천호는 갑자기 정색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네? 아니, 아뇨. 지금은 곤란합니다.”
“왜?”
“왜냐뇨…….”
그렇게 말하는 천호는 조금 난처한 얼굴이라 나도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천호는 왜 그렇게 나를 지키려고 해?”
“글……쎄요?”
“글쎄요는 뭐야, 대체.”
그리 맘에 드는 대답은 아니었다.
“음. 그냥 그러고 싶어졌나 보죠.”
천호는 그렇게 말하며 결국 내 손에 있는 꼬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천호 때문일까, 얌전하던 꼬마가 다시 버둥거리기 시작해서 결국 나는 근력 운동을 포기하고 묵직한 고양이 한 마리를 끌어안고 가야 했다.
***
적어도 며칠은 기다려야 할 거라 생각했던 김회엽은 생각보다 이른 세자의 부름에 기꺼이 떠날 채비를 했다.
‘천호에게는 서찰을 남겨 두면 되겠지.’
궁에서 지내고 있기는 하지만 집에는 가끔 들르는 것으로 알고 있으니 괜찮을 것이다.
시간이 있었다면 좀 더 제대로 된 서신을 남겼을 텐데, 급하게 떠나느라 제대로 사정을 설명하진 못했다.
물론 제대로 된 사정은 서찰로 남길 만한 것이 못 되었고, 세자가 천호를 좋게 보고 있는 듯하니 적당히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 사정을 전해 줄 것 같았다.
‘천호가 옹주 자가를 구한 적이 있으니 설령 나한테 무슨 일이 있어도 잘 돌봐 주시겠지.’
수영 옹주 자가는 제 사람들은 끔찍이 챙기는 것으로 유명했으니까.
천호에게 남기는 서신에는 그저 세자 저하의 명으로 잠시 다른 일을 하러 떠나니 자신이 없는 동안 무모한 짓 하지 말고 잘 지내라는 말밖에 남길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떠나기 전 김회엽은 뜻밖에도 다시 궁으로 가 세자를 만날 수 있었다.
“자네의 말을 믿어 볼 것이니, 함경도로 가서 증거를 가져오게.”
“!”
이미 어느 정도 전달받은 내용이었으나 세자의 입으로 직접 들으니 몸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다만 자네를 혼자 보내지는 않을 걸세.”
“상관없습니다. 아니, 차라리 잘되었습니다. 그편이 더 무고함을 증명하기 좋겠지요.”
“성 겸사복에 대해서는 알 테고, 여차할 때 필요한 조사 권한을 가진 문관 한 명이 더 동행할 걸세.”
그 말은 정말 본격적인 증거 수집이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심지어 세자는 가는 동안 필요한 노잣돈에, 웬 연고 같은 것도 함께 주었다.
세자의 옆에 있던 여인이 와서 건네주는 것들을 받고 김회엽은 감읍하여 고개를 조아렸다.
“세자 저하! 감사합니다!”
“그리고 떠나기 전 자네에게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네.”
“예. 하문하십시오.”
“자네는 혹, 김선익 대감의 자녀들을 만난 적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