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288)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288)화(288/326)
‘천호의 숙부인…… 김…… 뭐더라 김회엽이랬나, 아무튼 그 사람이 김선익 대감의 의동생이라고 했지?’
게다가 천호는 그 사람의 친조카가 아니고 절친한 사람의 조카라고 했지……?
이게, 우연일 수가 있을까?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한번 생각이 떠오르자 점점 가능성이 높게 느껴졌다.
‘마침 나이도……. 수천이가 나보다 한 살 연하였는데 천호도 마찬가지고. 천호에게 잃어버린 누나가 있다고 했었는데, 천호가 찾고 있던 누나가 세화라면 적극적으로 찾지 못한 것도 납득이 가잖아.’
생각해 보면 누이를 찾고 싶다고 했던 것치고는 신문에 광고를 내는 것도 은근히 피했다.
너무 어릴 때 헤어져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다 해도 일단 시도해 보면 누이를 찾을 수 있을 가능성이 높아지는데도, 천호의 태도는 애매했다.
하지만 천호가 사실 수천이라면 그러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누나를 찾으려면 헤어질 당시의 장소나 상황, 이름을 밝혀야 하는데, 그랬다가 잘못하면 역적의 자식이라는 사실이 밝혀질지도 모르니까…….
세화가 동생을 찾고 싶어 하면서도 신문에 광고를 내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유였다.
‘게다가 천호가 수천이라면 이상하게 내 곁에 붙어서 헌신하는 것도, 어느 정도 설명이 되지 않나……?’
물론 이 시대가 좀, 높으신 분에게 복종하고 왕족은 받들어 모셔야 하고 그런 의식이 강하다지만, 목숨을 걸 정도는 아니잖아.
어린 시절부터 세뇌 교육을 받고 자란 궁녀나 내관들도 아니고.
그날 어리바리 붙잡힐 뻔했던 수천을 도망치게 한 게 나였으니까…….
은혜를 갚으려고 그러는 게 아닐까 생각하면…….
‘어라? 그럼 천호는 언제 내가 수영 옹주라는 걸 안 거지? 설마 처음부터?’
왜옹-!
거기까지 사고(思考)가 흘러가던 나는 다시 벌떡 몸을 일으켰다.
덕분에 노곤하게 늘어져 있던 꼬마도 다시 놀라서 몸을 일으켜야 했다.
나는 아까처럼 소리를 내지는 않고, 그저 머리맡에 있던 자리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벌컥벌컥 미지근한 물을 마신 후 다시 자리에 누웠다.
꼬마가 항의하듯 내 어깨를 두드리고 있었으나 신경 쓸 정도는 아니어서 붙잡아 잘 달래 주니 곧 얌전해졌다.
‘아니, 잘 생각해 보면 그게 목숨을 걸 만한 일은 아닌 거 같아.’
그야 호감이야 갖겠지만.
그거 때문에 목숨 걸고 호랑이랑 싸우고 그러는 건 좀 지나치지 않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천호를 지켜봐 온바. 천호는 그렇게 단순무식한 성격은 아니었다.
‘어찌 보면 무슨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는 부분도 있고.’
나한테 충성을 다한다고 다들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 천호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부분이 많았다.
나도 별생각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생각해 보면 이상한 거지…….
성 겸사복도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나를 무척 따라서 나도 모르게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경우가 좀 다르고.
이유는…….
벌떡!
왜오오옹!
‘천호가 정말 수천이라면 어쩌면 일부러 나한테 접근했을 가능성도 있지 않나?’
다시 이불을 박차고 몸을 일으켰던 나는 곧 다시 베개 위로 스르륵 쓰러졌다.
이번에야말로 화가 난 듯, 꼬마가 내 배 위로 올라왔기에 이불에 말아 자연스럽게 바닥으로 내려 주었다.
‘아, 하지만 내가 납치당해서 처음 만났을 때는 내가 누군지 알았을 리가 없지 않나?’
납치당한 아이가 나라는 걸 알았을 리가 없는데.
게다가 그냥 두고 가기까지 했다고.
하지만 만약 그 후에 다시 만난 것도 일부러 그런 거라면…….
왜오오오옹-
불만이 가득한 울음소리에, 나는 다시 꼬마를 끌어안았다.
생각에 잠긴 채로 손은 자연스레 꼬마를 쓰다듬었다.
‘이유는 글쎄, 복수……보다는 어떻게든 왕실에 들어가 김선익 대감이 연루된 역모 사건에 대해서 뭔가 알아내기 위해서라든가?’
하지만 다른 목적이 있는 거라면 역시 나보다는 세자에 옆에 있는 게 더 나을 텐데.
거기까지 생각하며 잠시 눈이 스르륵 감기던 나는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다시 또 벌떡 일어났다.
왜오옹!!
‘아니, 내가 너무 드라마적 사고방식에 물들어 있는 거 아닐까.’
원래 소설이나 드라마에서는 등장인물들만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법이니까, 이름 있는 조연들이나 엑스트라들 중에서 실은 중요한 인물이 있다거나 하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잖아?
‘복선으로 미리 깔아 놓지 않으면 나중에 왜 갑자기 전개가 급발진하냐는 말도 나올 테고.’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게 개연성 있게 흘러가지 않는 법이었다.
갑자기 처음 보는 아이가 나타나서 자기가 실은 세화의 동생이라고 할 수도 있고, 세화가 평생 동생을 찾지 못하고 마음속 깊은 곳에 한으로 품고 살 수도 있고, 알고 보니 전에 치료해 준 적이 있는 사람이 세화의 동생일 수도 있는 법이었다.
‘오히려 드라마 쪽이면 사실 역당 쪽에 있다거나 하는 극단적인 전개도 있을 법하지.’
하지만 아무리 내가 아는 이야기와 이 현실이 같아 보여도, 그런 시나리오적인 법칙까지 같다고 확신할 수는 없는 거 아닌가?
‘수천이는 원래대로라면 죽었어야 할 인물이니 갑자기 등장해야 할 개연성도 없지.’
물론, 세화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천호가 만약 수천이라면, 좋은 일이겠지만.
애초에 수천이란 아이는, 죽어도 살아도 이야기에 영향이 없는 아이였다.
내가 살아남은 것과 마찬가지로.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다시 풀썩 자리에 누웠다.
꼬마는 이제 화가 난 건지 가까이 오지 않았으나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천호가…….’
눈꺼풀은 무거운데 잠은 오질 않고, 아무것도 안 했는데 몸이 피곤했다.
곧 익숙한 감촉의 털 뭉치가 품 안으로 들어오는 감각을 느끼며 조금씩 잠에 빠져들었다.
‘처음부터 그냥 이불 속에 들어올 것이지…….’
***
“옹주 자가 혹 간밤에 잠자리가 불편하셨사옵니까?”
“응? 아니. 평소와 똑같았는데. 왜 그래?”
“어젯밤에 유독 꼬마가 요란스럽기도 했고, 평소보다 조금…… 피곤해 보이십니다.”
“그냥 일찍 일어나서 좀 졸린 거겠지. 걱정 마. 돌아다니다 보면 깰 거야.”
다행히 소이는 내 말에 한숨을 쉬면서도 더 이상 토를 달지 않고 나갈 채비를 했다.
그런 나와는 반대로 어젯밤 소음을 일으킨 꼬마는 아직 따끈한 아랫목에서 몸을 지지고 있었다.
하여간 좋은 팔자라니까.
나는 고양이를 보며 피식 웃다가 곧 평소보다 조금 까칠한 얼굴을 매만지며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다 보니 잠을 좀 설쳤네…….’
왜 이제 와서 졸리고 그래.
졸리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제 와서 예정을 변경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보다 먼저 일어나 준비 중인 궁녀들에게도 민망한 일이었고, 내가 몸이 안 좋다고 하면 다들 얼마나 소란을 피우고 나를 처소에 감금할지 상상만 해도 몸서리가 쳐졌다.
‘이 나이에 하룻밤 정도 잠을 못 잔 건 별로 큰일은 아니니까.’
여기서야 형광등도 없는 시대에 굳이 밤까지 지새울 이유가 별로 없지만, 전생에는 밤을 새우는 일이 종종 있었다. 물론 그 상태로 다음 날 크게 문제가 있던 적은 없었고.
‘아마 이 상태로 나갔다 오면 오늘 밤에는 피곤해서 죽은 듯이 잠들겠지만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겠지.’
전생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추측이었다.
대충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후 몸단장을 하고 옷도 꽁꽁 싸매 입고 밖으로 나왔다.
미리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던 천호에게 아침 인사를 건네니 천호가 공손한 인사에 이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물었다.
“송구하오나 옹주 자가, 혹 어딘가 미편하신 곳이 있으신 것이 아니옵니까? 낯빛이 좋지 않으신 듯하옵니다.”
왜 이렇게 다들 눈이 좋은 거야.
“뭐 그런 건 아니고. 어디 아픈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어제 천호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가, 이렇게 보고 있으니 뭔가 좀 불편한 거 같기도 하고.
어제 무슨 쓸데없이 생각을 그렇게 많이 했던 걸까.
이렇게 졸린 걸 보면 꽤 늦게 잠든 모양이었다.
사실 늦게 잠들었다는 것도 그냥 예상뿐이다. 시계도 없고, 아직 밤이 긴 계절이라 밖을 보아도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알 수 없는 시대니까.
‘불편하긴 하지만 이제 이쪽 시대의 슬로우 라이프에도 익숙해지긴 했지…….’
그나저나 왜 늦게 잠들었는데도 평소 일어나는 시간에 일어나는 건데.
아직 젊은 몸이라 다행이지.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더 일찍 일어나서 내 수발을 드는데 여기서 더 투정을 부릴 수도 없었다.
‘물론 못 할 건 없지만.’
그런 식으로 변덕스럽게 구는 상사도 좋은 상사는 아니었다.
나는 애써 시선이 마주치는 것을 피하면서도 천호의 상태를 살폈다.
보아하니 아침부터 또 어디서 훈련 당하고 돌아온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천호는 궁 안에서 지내는 게 더 힘든 거 같은데?”
“그 정도는 아닙니다, 걱정 마세요. 그냥 가볍게 몸만 풀고 온 겁니다.”
하긴, 타고난 근수저들은 기운이 넘치더라.
‘근데 좀 가기 싫기는 하네.’
흐느적거리며 말 위에 오르는 나를 보며 다들 조금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정말 괜찮으시옵니까? 의원을 부를까요?”
“조금 졸린 거뿐이야. 말짱해.”
어차피 내가 좀 졸면서 가도 적아가 잘해 주겠지.
나는 반쯤 눈을 감은 채 적아의 갈기를 쓰다듬어 주었다.
“적아가 나 대신 열심히 가겠지. 안 그래?”
“그렇기는 합니다만…….”
푸르릉거리는 적아를 토닥이며 나는 졸음을 쫓기 위해 눈을 깜빡였다.
“걱정 마. 떨어지지 않게 잘 갈 테니까.”
“……걱정됩니다.”
소이와 천호가 못 미더운 얼굴을 했지만 어차피 말을 타고 속도를 내면 잠들 수가 없었다.
‘대중교통이 필요해…….’
말이 아무리 편하다 해도 말안장은 푹신하지 않았으며, 빨리 달릴수록 찌르는 듯한 겨울바람은 피할 수가 없었으니까.
길 때문에 속도를 조금 늦추자, 마찬가지로 옆에서 말을 타고 달리던 천호가 걱정스러운 듯 말을 걸어왔다.
“옹…… 아기씨, 괜찮으시옵니까?”
“응. 괜찮아.”
나는 손을 내저으며 적아를 몰아 앞으로 나아갔다.
‘왜 이렇게 뭔가 불편한 건지 모르겠네.’
천호랑 수천이 관계가 없을지도 모르는데 내가 너무 신경을 쓰는 걸까.
“이 마을인 것 같습니다. 여기서부터는 내려서 가시지요.”
“응.”
낯선 마을이었으나 퇴궐한 궁녀들이 사는 곳이라고 하니 그리 외진 곳은 아닐 듯싶었다.
“일단 누구한테 길을 물어봐야겠는데.”
“사람을 찾아보겠습니다.”
“부탁할게.”
모처럼 사람을 만나러 여기까지 왔는데 천호 생각만 하고 있어서야 영 곤란했으므로 나는 생각을 떨쳐 내기 위해 애썼다.
‘차라리 확 물어보고 끝낼까 싶기도 한데, 너무 심증밖에 없어서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