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297)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297)화(297/326)
“쟤는 오늘따라 왜 저런대?”
“뭘 잘못했는지 옹주 자가께서 화나셨다나 봐.”
“저런 어쩌다가.”
천호가 기운이 없으니 다들 걱정해 줬지만 별로 영양가는 없는 얘기들뿐이었다.
“뭐…… 옹주 자가 밑이 아니어도 다른 길은 많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다른 길 안 간다니까요.”
“그 관대하신 옹주 자가께서 화가 나셨다니 그야 걱정스럽겠지만, 뭐 큰 죄를 지은 것도 아닌 거 같고.”
아저씨들은 훈훈하게 웃으며 지쳐서 헐떡이는 천호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아, 그런 거 아니거든요?”
아저씨들의 팔을 밀쳐 내며 천호가 짜증을 냈지만 기분 나쁠 정도로 훈훈한 시선은 결국 천호가 훈련장을 떠날 때까지 떨어지지 않았다.
끝까지 꼬맹이를 괴롭히는 데 열과 성을 다한 아저씨들은 어린놈이 가 버리자 그제야 정리를 시작했다.
“그런데 저놈은 왜 그렇게 옹주 자가를 모시고 싶어 할까요?”
“저 또래 꼬맹이가 출세 외의 걸 저렇게 고집할 이유가 하나밖에 더 있어?”
“저런. 그렇게 꿈도 희망도 없는…….”
아저씨들은 낄낄거리는 동시에 혀를 찼다.
“아~ 뭐 그런 동경을 품는 거야 흔한 일이지.”
“우리도 어릴 적에는 어느 댁 셋째 아가씨가 예쁘다는 소문이 나면 괜히 기웃거리고 했었는데.”
아저씨들이 자신들의 어린 시절 회고에 들어가려는 찰나 누군가가 찬물을 끼얹었다.
“어, 하지만 천호가 옹주 자가를 처음 만났을 당시에는 옹주 자가, 아직 어린아이 모습이셨는데요?”
“아? 맞다, 그랬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말 작고 아담했는데 저렇게 순식간에 아가씨로 자라시다니.”
“그러게요. 정말 허리에도 못 올 정도로 작으셨죠.”
우다다 뛰어다니다 세자 저하께 붙잡혀 까르르 웃던 옹주 자가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입가에 저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잔인하게 신하들을 굴리던 세자 저하가 말 안 듣는 어린 동생 때문에 속 썩는 걸 보면 어찌나 꼬시…… 훈훈하던지.
다들 감개무량한 얼굴로 각자의 훈훈한 기억을 떠올리는 사이 누군가가 또 새로운 사실을 떠올렸다.
“어라? 그러고 보니 따지고 보면 천호가 더 옹주 자가보다 더 어리네요.”
“진짜?”
“덩치가 커서 그렇지, 보기보단 어린 놈이야.”
아저씨들은 천호가 사라진 방향을 보며 괜히 한숨을 내쉬었다.
“빨리 현실을 깨닫는 게 낫겠지.”
***
오늘도 새벽같이 일어나 일정대로 움직이던 천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제도 피곤해서 그냥 잠들었네.’
자업자득이었지만 뒷일이 걱정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도무지 책을 읽을 마음이 들지를 않는 것 또한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옥가락지는 대체 어디로 간 건지 보이질 않고…….’
사실 어디서 흘린 건지 짐작도 가지 않아서 잃어버렸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부터 열심히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며 다녔는데, 영 소득이 없었다.
사실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옥가락지를 잃어버린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가 궁궐 안이라는 사실이었다.
심지어 천호가 평소 돌아다니는 범위가 결코 좁지 않다 보니 가락지를 찾기 위해서는 궐 안을 기웃거리며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하는데…….
‘너무 수상쩍어 보이잖아.’
괜히 이상한 데 잘못 들어갔다가 옹주 자가께 폐를 끼칠 수는 없었다.
사실 그것보다 잘못해서 호적 조사 같은 거라도 들어가면 그게 더 큰 일이기도 하고.
심지어 다른 것도 아닌 옥가락지이니 궁인들 중 누군가가 그냥 가져가 버렸을 가능성도 높았다.
설령 찾는다 해도 이름이 적혀 있는 것도 아니니 천호의 것이라고 누가 믿어 주겠는가.
‘나도 옹주 자가가 본다 해도 절대 모르실 거라고 생각해서 그냥 가지고 다니던 거고.’
물론 눈에 띄게 가지고 다니지는 않았지만…….
‘그때 소중히 여기시던 물건 같아 계속 가지고 있었는데 10년이나 지났으면 아무래도 알아볼 리가 없지.’
까맣게 잊어버렸을지도 모르고.
까악- 까악-
이제는 익숙해진 시끄러운 소리에 고개를 드니 까마귀들 몇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저 녀석들, 옥가락지도 탐내려나.’
만약 그렇다면 어디 까마귀 둥지에라도 들어가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애초에 그동안 잘만 가지고 다녔던 물건을 잃어버리게 된 원인이 까마귀와 꼬마……라고 부르기엔 이제 너무 튼실해진 고양이, 그 두 마리에게 있지 않을까 생각하다 보니 까마귀들이 영 곱게 보이질 않았다.
지난번에도 두 마리가 싸우고 난리를 피우는 걸 말리다가 그 발톱 때문에 옷이 터진 적도 있었고.
예전에 그 옥가락지를 처음 보았을 때도 까마귀 발톱에 가락지를 걸어 놓은 줄이 걸리지 않았던가.
도망칠 당시 옹주 자가께서 주신 짐 속에 들어 있던 물건들은 신기할 정도로 도망칠 때 요긴하게 쓰였다.
궁 안에서만 살았던 어린 옹주가 어찌 그리 잘 알았을까 궁금할 정도였다.
어느 날 남은 물건들을 정리하다가 옥가락지를 발견했다.
그것이 옹주 자가가 가지고 있던 옥가락지라는 사실은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때 보았던 것과 같은 색깔의 끈이었고, 끈을 아예 가락지에 묶어 놓은 방식에, 칼로 끊어진 것을 다시 묶은 흔적도 있었으니까.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어쩐지 그 옥가락지는 팔 수 없어서 계속 몸에 지니고 있었다.
나를 도망치게 해 준 사람의 물건이니 부적같이 느껴지기도 했고, 소중한 물건이라고 했으니까 언젠가 돌려주고 싶었다.
‘어린아이의 망상 같은 것이지만…….’
물론 정작 만나고 나서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고.
아비의 누명이 벗겨진다면 그때 당당하게 그날 도와주셔서 감사했노라고 전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허망하게 잃어버릴 줄이야.
‘차라리 밝히지 않고 몰래 어딘가 가져다 놓을 걸 그랬나.’
하지만 그렇게 귀한 물건 같지는 않으니 지금의 옹주 자가한테는 필요 없는 것 같기도 했다.
당시야 어릴 때였으니 그런 걸 귀하게 여겼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지 않은가.
비교적 편한 차림으로 밖에 자주 돌아다니니 화려하게 꾸미는 걸 딱히 즐기지 않을 뿐. 귀한 물건을 당연하게 걸치고 다니는 옹주 자가시다.
그런 물건, 아무것도 아니겠지.
‘게다가 만일 처음부터 내가 수천이라고 밝혔다면 그건 그것대로…… 옹주 자가께 부담을 드리는 일일 테고.’
역당의 자식을 몰래 도피시켜 준 셈이 아니던가.
10년 전이야 옹주 자가 역시 아주 어릴 적 일이고 아는 사람도 발설할 사람도 거의 없지만, 지금은 그렇게 쉽게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으음. 알게 되면 화를 내시려나.’
그 전에 조금이라도 점수를 따 놓고 싶은데 천호가 옹주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딱히 없었다.
원래 옹주 자가 밑에서 일하고 있는 처지이기도 하고.
도움이 되고 싶어서 훈련받으러 다니며 얼굴을 익힌 사람들에게 예전 익위사 관원들에 대해 물어보고 다니기도 했지만, 워낙에 오래전 일이라 옹주 자가가 이미 신문에 낸 것 이상의 다른 정보는 얻을 수 없었다.
가끔 엄청 센 아저씨가 있었다는 얘기가 나올 뿐.
‘숙부도, 성 겸사복 아저씨도 없으니 조언해 줄 사람도 없고.’
보일 때마다 사람을 쉴 틈 없이 굴리던 사람들이 정작 필요할 땐 없다니.
덕분에 그저 새벽같이 돌아다니며 일하고, 훈련받고, 그걸로 끝이었다.
그래도 전에는 그게 지루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데 요즘에는 왜 이렇게 재미가 없는지.
물론 그렇다고 그만두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
‘천호. 혹시 옹주 자가를 좋아하니?’
괜히 세화가 했던 말이 다시 떠올라 머리를 휘휘 털어낸 천호는 다른 생각을 떠올리기 위해 애썼다.
‘좌세마 연선오가 분명 예전에 강원도에서 만난 얼굴에 흉터 있는 그 사람이지?’
무슨 구전 설화 같은 무용담의 주인공이었지만 분명 만난 적까지 있는 실존 인물이었다.
심지어 예전에 착호군 아저씨들한테서 들은 것까지 생각하면 과장이 좀 섞여 있을 것을 감안해도 굉장한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였다.
‘아, 그러고 보니 그 아저씨들 아직도 한양에 있던가?’
마침 천호가 오늘 갈 곳이 오락장이라 그런가, 자연스레 그 아저씨들이 떠올랐다.
생각해 보니 그곳에서 처음 본 이후로 갈 때마다 있는 것 같았다.
‘어디서 취직 제안이라도 받았나? 왜 아직도 한양에서 어슬렁거리지?’
굳이 익숙한 지역을 벗어나야 할 이유가 없는데 왜 한양에서 계속 놀고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사실 함경도에서 한양까지 오기가 쉬운 것도 아니고.
‘요즘 시국이 하 수상하니 별것이 다 의심이 드네.’
그런 생각을 하며 찾아가니 정말로 착호군 아저씨들이 늘 보던 그 자리에 있었다.
“아저씨들은 아직도 여기서 놀고 계십니까?”
“왜 시비여.”
“아니, 이 동네 사시는 분들도 아닌데 이제 여기서 사냥을 하시는 건가 하고요.”
“야, 너 무서워서 뭐 하겠냐?”
너무 시비조였나 싶어 천호도 말을 돌렸다.
“……숙부님은 만나셨습니까?”
그러고 보니 지금 한양에 없는데 보고 가셨던가 싶어 물었더니 아저씨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 친구가 예전에 찾던 지인 얘길 전해 줬더니, 거 인사도 제대로 안 하고 휑하니 가 버리더만. 사람하고는…….”
“찾던 사람이요?”
“너는 어릴 때라 잘 모를 건데. 그 형님이 어디 병영에 있을 땐가 지인이라더라.”
“……그렇습니까.”
얼마 전 집에 들러서 열어 본 편지 덕분에 함경도로 간다는 건 알았는데, 누가 볼까 걱정했는지 자세한 얘기는 적혀 있지 않았다. 다만 어느 정도 눈치로 알았을 뿐이지.
정말 뭔가 변하는 걸까.
“그런데 너는 괜찮은 거냐? 얼굴이 영 좋지 않은데.”
“예에, 뭐.”
적당히 안부를 나눈 후 아저씨들은 경계하듯 슬쩍 주위를 확인한 후 천호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근데 네가 모시는 그 아기씨 말이다. 여기 주인이신 옹주 자가와 아는 사이인 거지? 다들 그 아기씨를 통하면 옹주 자가께 말을 전할 수 있다고 하던데.”
“……아, 예. 그렇죠.”
잠시 무슨 소린가 했던 천호는 너무 늦지 않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생각해 보니 원래 그런 설정이긴 했다.
이젠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사실 외부인들은 옹주 자가께서 그렇게 가볍게 돌아다닐 거라는 생각조차 쉽게 하지 못했다.
그래도 그날 아저씨들을 도둑이라고 몰았던 아이들도 얼추 눈치챘던데 설마 이 아저씨들은 눈치를 못 챘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