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298)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298)화(298/326)
‘아, 하지만 아무래도 그 아이들 쪽이 더 아는 게 많겠구나.’
그 아이들은 시영원에서 지내는 아이들이니 아무래도 기본 정보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아저씨들은 천호가 뭔 생각을 하는지는 별 상관없이 일단 긍정적인 대답에 기뻐하고 있었다.
“그럼 너를 통하면 좀 돌아가더라도 옹주 자가께 말씀을 올릴 수 있는 거지?”
“예? 글쎄요. 아마도?”
“아, 왜 대답이 이렇게 시원찮아. 젊은 놈이.”
“젊은 거랑 뭔 상관이신지.”
“아무튼 너 그 아기씨랑 친해 보이던데 나중에 말씀 좀 전해 드릴 수 있겠냐?”
별 의미 없어 보이는 말이었으나 천호는 어쩐지 대답을 망설였다.
친한가? 옹주 자가와?
“친하냐고 하면…… 글쎄요.”
“아, 또 왜 글쎄야! 그럼 다른 좀, 친분 있는 높으신 분은 없어?”
아저씨들은 답답한 듯 성질을 냈으나 천호는 천호대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전에는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는데…… 나 지금 혹시 미움받고 있는 건가? 아니겠지?’
아저씨들 때문에 별걱정을 다 하게 되었다는 생각에 대답이 퉁명스럽게 나갔다.
“왜 그러시는데요.”
“어, 아니 그냥. 높으신 분이랑 연이 있으면 좋잖아.”
“어떤 의미의 높으신 분이요?”
세자의 측근들과도 그럭저럭 안면이 있긴 하지만 뭔가를 청탁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일단 생각나는 대로 화살을 돌려 봤다.
“저는 잘 모르겠고, 숙부님한테 부탁해 보시지 그러셨어요.”
“아, 그러니까 말이야. 김회엽 이 인간이 내가 전부터 찾던 사람 소식 전해 주자마자 집도 안 가르쳐 주고 그대로 연락 두절이라니까? 심지어 술값도 안 내고 갔어!”
그렇게 먹어 놓고!
분통 터지는 목소리에 천호도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어……. 숙부님이 너무하셨네요.”
“그렇지! 너는 그렇게 살면 안 된다.”
“예. 숙부님 돌아오시면 꼭 연락드리라고 할게요.”
어른들의 사정에 괜히 끼고 싶지 않았던 천호는 슬슬 몸을 뺐다.
어차피 이미 시영원도 들렀고, 이곳에서 볼일 역시 이미 끝났으니 이제 궁으로 돌아가야 할 때였다.
‘이번에 시영원에서 받아온 것들 중에 괜찮은 정보가 있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천호가 떠나려는 걸 눈치챈 아저씨들은 끝까지 옷자락을 붙잡고 질척거렸다.
“꼬맹아, 혹시 우리가 말없이 떠나게 되면 그 전에 여기 서신이라도 맡겨 놓을 테니 찾아가라. 알았지?”
“예, 뭐 그럴게요.”
그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닌지라 천호도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들 상대하는 것보다는 역시 빨리 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가능하면 기뻐하시는 얼굴을 보고 싶은데.’
천호의 속이 복잡한 것과는 또 별개로 근래에 걱정거리가 많아서인지 옹주는 내내 얼굴이 그리 밝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천호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신문과 시영원을 통해 들어온 정보들을 전달하니 옹주는 밝은 얼굴을 했다.
“전직 익위사 사람을 찾았대. 다행히 지역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어.”
“그럼 도성 안이옵니까?”
“그건 아니고. 으음. 아마 지난번에 궁녀들 찾아갔던 거랑 비슷한 정도?”
“그렇사옵니까.”
소이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소이는 쉬어도 괜찮은데. 지난번에 넘어진 데도 아직 안 좋지?”
“아니요. 소인이 가겠습니다. 옹주 자가를 모시는 건 제 일인걸요.”
“허리 조심해야지. 나이가 들면 잘 낫지도 않는대. 소이는 아직 젊어서 다행이지.”
“…….”
뭐라 반응해야 할지 몰라 천호는 침묵했다.
“겨울에는 조심해야 해.”
“이제 봄인걸요.”
“아직 여기저기 빙판은 그대로인걸. 아직 개나리도 안 폈는데 봄은 무슨.”
그렇게 말하며 옹주는 한숨을 내쉬었다.
“천호도 수고했어. 물러가 봐. 아마 근시일 내에 또 외출해야 할 거 같으니 나중에 일정 다시 알려 줄게. 일단 기다리고 있어.”
“예…….”
천호에게 말하고 있었지만 옹주는 천호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평소라면 늘 눈을 맞추며 말을 걸어 주시는데…….’
요즘에는 눈을 마주친 기억이 없었기에 천호는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역시 나 뭔가 잘못한 건가? 당장은 필요하니까 아무 말씀도 안 하시는 건가?’
천호가 부정적인 생각을 하며 물러나는 사이 소이와 옹주의 대화는 끊기지 않고 이어졌다.
“날짜를 너무 미루면 안 되겠는데 내일이라도 나갈까?”
“외출하셔도 괜찮으시겠사옵니까.”
“으으음. 뭐 괜찮겠지.”
천호는 어쩐지 요즘 옹주 자가의 목소리에 기운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처소에서 물러났다.
‘아, 또 소설 안 읽었다.’
***
“아기씨?”
“헉!”
천호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나는 얼른 몸을 바로 세웠다.
아까부터 말 위에서 꾸벅꾸벅 조는 나를 보며 천호가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어제 일이 많으셨습니까?”
“아…… 아니, 괜찮아. 옷을 너무 따뜻하게 입었나 봐.”
“그건 다행입니다만…… 아, 이제 다 왔습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산 밑에 있는 작은 촌락이었다.
“내리시려고요?”
“응,”
내가 말에서 내리려 하자, 천호가 손을 내밀었다.
“길이 좋지 않으니 조심하십시오.”
“안 잡아 줘도 괜찮은데.”
“그러다 넘어지시면 큰일입니다.”
“음.”
나는 적당히 대답하고 혼자 지면에 착지했다.
“……제가 뭘 잘못했습니까?”
“딱히?”
뭘 안 잡고 내려왔다고 이렇게 서운해하는 얼굴이람.
앞으로 계속 이렇게 둘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데 너무 익숙해지면 좋지 않았다.
‘음…… 근데 얘 어째 아직 소설 안 읽은 거 같지? 말 참 안 들어. 그야 바쁘긴 하겠다만.’
내가 공부를 하란 것도 아니고 소설책을 하나 읽으라는 건데 그게 그렇게 어렵니!
아, 근데 생각해 보면 학교 다닐 때 독후감 숙제 나오면 다들 싫어하긴 했어.
원래 숙제가 되면 하기 싫지…….
‘공부보다는 몸 쓰는 걸 선호하는 쪽인가.’
무과(武科) 쪽은 일단 필기는 쉬운 편이라던데. 병서만 달달 외우면 된다고.
물론 실기 난이도가 이상한 걸로 유명했지만…….
뭐, 나중 일이다.
생각해 보니 얘도 나중에 장기 고시생을 빙자한 백수가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세화 설득해서 뭔가 일을…… 아니, 세화가 가만두고 보지 않을 거 같기도 하고?’
어차피 나중에 누나가 알아서 하지 않을까?
그러니 내가 나설 건…… 아니지.
‘뭔가 조금 씁쓸하네.’
내가 생산성 없는 생각을 하는 동안, 천호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촌민들에게 수소문을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하긴, 일하는 거 보면 부지런하기도 하고 알아서 하겠지.
아이들하고도 잘 놀아 주던데 조카라도 생기면 얼마나 예뻐하겠어.
‘음. 이런 생각은 그만하자.’
아직 결혼도 안 한 커플의 2세까지 생각하고 있다니 본인들이 알면 소름 끼쳐 할 일이었다.
그러는 사이 천호가 밝아진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단서를 잡은 모양이었다.
“이 근처에서 본 적이 있답니다. 그리고 얼굴에 흉터가 있는 이도 봤다고요.”
“정말?”
연선오 좌세마가 다른 전직 익위사 사람들과 함께 있다니 뭘 하고 있는 걸까?
‘그리고 강원도에는 대체 왜 갔던 거지?’
“이런 곳에서 뭐 하는 거지.”
“산에서 사는 걸까요?”
나와 소이의 말에 이 촌락에서 사는 듯한 중년의 사내와 여인은 조금 겁먹은 듯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저희도 잘은 모릅니다요.”
“그런데 어쩐 일로 찾으십니까?”
“아는 사람을 찾고 있지. 내가 어릴 때 내 오라비를 도와주었던 사람인데 연락이 끊겨서 어떻게 사는가 싶어서.”
“어떤 분을 찾으시는지요.”
말하는 게 뭔가 맘에 걸리기는 했지만 일단 옆에서 천호가 손짓·발짓 더해 가며 설명부터 했다.
“얼굴에 이렇게 흉터가 크게 있는 사람인데…….”
“아. 그분이요?”
“아는가?”
“그럼요. 훤칠하니 잘생기신 친구분이랑 늘 함께 다니시는 분 말씀하시는 거지요?”
“?”
뭔 소리인지 감도 안 잡히는 나와 달리 천호는 짚이는 것이 있는 듯했다.
“아, 맞습니다. 그 얼굴이 희고 묘하게 기품 있는 부드러운 목소리의…….”
“아이고, 맞소. 그럼 제대로 찾아오신 거 같네.”
걱정했는데 제대로 찾았다니 다행이었다. 나는 일단 안부부터 확인했다.
“잘 지내는 듯하였나? 행색은 괜찮고?”
“아…… 예. 다들 건장하고, 뭐 괜찮아 보였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야.”
“사실 행색도 눈에 안 들어와서 원.”
“?”
“……잘생겨서요?”
“그렇지!”
곧 촌민 아낙과 천호는 뭐가 그리 재밌는지 둘이 죽이 맞아서 그 잘생겼다는 좌세마의 동행에 대해 대화를 이어 갔다.
“어휴. 내 살면서 그리 잘생긴 사내는 처음 봐서 아직도 꿈에 나온다니까.”
“보기 드문 미남자이시긴 하죠.”
처음에는 왜 저런 대화를 하는 걸까 싶었는데 의외로 효과가 있었다.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건지 영 말이 없었는데, 잘생긴 사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얼굴이 확 밝아지며 입도 가벼워졌으니까.
그리고 반대로 여인의 남편으로 추정되는 사내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정말 그렇게 잘생긴 사람이 있었나?”
“잘생겼다고 몇 번을 말해?”
“난 못 봤는데.”
사내가 얼굴을 찌푸리거나 말거나 여인은 여전히 자신이 본 미남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별로 대단한 내용이 있지는 않았으나 여인이 행복해 보여서 필요 없는 대화지만 그냥 좀 듣고 있기로 했다.
“진짜, 눈이 확 뜨이는 얼굴이었다니까.”
“아니, 이 사람이 노망이 났나.”
“내가 살면서 본 사람 중에 제일 잘생겼어. 정말 지금까지 내가 인생 헛살았지…….”
그렇게까지 말하니 조금 슬퍼지는 거 같기도 하고.
그리고 옆에 있는 사내는 다른 의미로 슬퍼진 것 같았다.
“아, 그만하라고.”
“아니. 내가 잘생겼단 말밖에 더 했어?”
“저기. 진정하세요.”
아직 제대로 된 정보도 못 들었는데 싸우게 둘 순 없어서 천호가 두 사람을 말리기 위해 어렵게 입을 떼자 여인은 천호를 보면서도 감탄했다.
“근데 이 총각도 참…… 잘생겼네.”
“아하하하. 가, 감사합니다?”
우리는 일단 산속에 사는 이들이 더 있고, 윤선오 좌세마가 동행과 함께 이곳에 드나들고 있다는 얘기까지는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산속으로 더 들어가야 했다.
“후우. 부부싸움 시작하는 줄 알았습니다.”
“음. 그래도 눈은 확실한 분인 거 같은데.”
천호가 잘생기긴 했지. 아마 아까 말한 좌세마의 동행도 꽤 잘생기지 않았을까?
대수롭지 않게 중얼거리는데 천호가 들었는지 움찔 놀라 대답했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