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301)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301)화(301/326)
내 말에, 성원 세자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그 순간,
쉬익-!
화살 한 대가 성원 세자의 얼굴 옆을 스쳐 지나갔다.
“!”
“누구냐!”
대화에 방해되지 않도록 우릴 등지고 서 있던 연선오가 칼을 뽑아 들고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향해 외쳤다.
그리고 바닥에 박힌 화살을 본 나는 바로 세자를 밀쳐내고 달렸다.
“시아야!”
“오, 옹주 자가?”
두 사람이 나를 따라오려 했으나 움직일 때마다 화살이 바닥에 박히는 소리가 났다. 아마 그들 발 앞에 화살이 박혔을 것이다.
뒤쪽에서 좌세마가 누군가를 불러오고, 여러 사람의 발소리가 들렸으나 동시에 성원 세자의 목소리도 들렸다.
“절대 옹주를 상하게 해서는 아니 된다!”
이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다행히 돌아가는 길은 기억하고 있었다.
초가집 하나를 더 지나자 예상했던 인물이 눈앞에 나타났다.
천호였다.
“무사하십니까?”
“덕분에!”
아마 어디 나무 위든 지붕이든 올라가서 활을 쏘고 뛰어 내려왔겠지.
천호의 실력은 잘 알고 있으니 걱정되지 않았다.
다른 게 걱정이었지.
천호의 주변을 살피며 입술을 깨물었다.
‘소이는?’
발목을 삐끗해서 잘 뛰지도 못할 텐데.
물론 성원 세자가 나를 모시는 궁녀를 붙잡아 핍박할 거라는 생각은 안 하지만, 그것도 모를 일 아닌가.
내 손을 잡은 천호가 안심하라는 듯 외쳤다.
“먼저 내려갔어요!”
“!”
천호는 내 손을 잡아끌고 달리다가, 답답했는지 나를 안아 들고 달리기 시작했다.
‘산길을?’
어이가 없었지만 덕분에 뒤에서 추격해 오는 사람들이 잘 보였다.
“!”
몇몇이 활을 들고 천호를 겨냥하려다 천호에게 매달려 있는 나에게 맞을 것 같아 주저하는 모습이 보였다.
‘의외의 효과가……?’
내려오는 길이라 그런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는데 어느새 촌락과 이어진 산길 초입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우리가 타고 온 말을 끌고 온 소이가 대기 중이었다.
‘뭘 어떻게 알고 이렇게까지 대비해 둔 건데?’
바닥에 내리자마자 적아의 고삐를 잡은 내가 외쳤다.
“두 사람이 먼저 출발해!”
“안 됩니다. 옹주 자가!”
“저들은 나를 공격 못 해! 내가 마지막으로 가는 게 제일 안전하다고, 게다가!”
“?”
“빨리 가!”
이미 말을 탄 두 사람이 멈춰 서 있는 걸 본 내가 소릴 버럭 지르자, 말들이 놀랐는지 주인들이 놀랐는지 서둘러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 역시 적아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날 따라온 듯한, 어딘지 낯익은 얼굴의 사내들에게 외쳤다.
“너희 주인에게 전하거라! 오라버니 말이라고 내가 무조건 따를 거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라고! 가자!”
내가 외치자 적아는 분위기라도 탔는지 요란하게 소리를 내며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먼저 떠난 두 사람의 말이 시야에 들어왔다.
천호와 소이를 먼저 보낸 이유도, 두 사람이 일단 순순히 따른 이유도 단순했다.
‘적아가 제일 빨라.’
이 아이는 본래 성원 세자가 나를 위해 준비해 둔 아이였는데, 이 아이를 타고 성원 세자에게서 도망치게 되다니 참 기분이 묘했다.
‘하, 골치 아파.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다만 도망을 쳤어도 역시 머리는 아팠다.
한참을 쉬지 않고 말을 달려 도성 안까지 들어오자, 그제야 우리 세 사람은 안심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소이 괜찮아? 어떻게 혼자 내려온 거야?”
“하아. 천호가 물가에서 사람들 소리를 듣고 빨리 돌아가야 할 것 같다고 뛰어왔는데, 아기씨께서 보이질 않으니 ‘이건 분명 또 뭔가 위험한 일에 끼어드신 거’라며 발목에 부목이랑 물수건 대 주고 빨리 먼저 내려가서 떠날 준비를 해 두라고 하기에 그대로 했죠, 뭐.”
“……미안하다.”
내가 아무래도 액땜 굿이라도 좀 해야 할 거 같아.
‘문제는 귀신도 아니고 살아 있는 놈들이 일으키고 있지만.’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천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얘는 그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들은 거지?’
성원 세자의 일까지 제대로 얘기를 해 줘야 할까?
“아기씨, 괜찮으십니까? 마침 안면이 있는 주막이 있으니 좀 쉬었다 가시지요.”
“응…….”
너무 말도 안 되는 일을 겪어서 그런가, 몸에 진이 다 빠졌다.
천호는 아직 발목이 좋지 않은 소이가 말에서 내려오는 것을 먼저 도운 후, 쭈뼛쭈뼛 망설이며 내게로 다가왔다.
왜 저러는지 알 거 같아서 나는 한숨을 쉬며 천호를 불렀다.
“천호. 내려오는 것도 도와줄래? 기운이 없어서.”
“아, 네.”
안절부절못하던 천호가 내 말에 확 밝아진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내외고 뭐고 힘들어 죽겠네.’
생각해 보니 적아로 이렇게 달린 것도 거의 처음 같았다.
나는 반쯤 쏟아지는 듯한 느낌으로 천호의 품에 매달려 말에서 내렸다.
“!”
“아까는 고마웠어. 덕분에 살았어.”
“아, 아닙니다. 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인걸요.”
어깨를 토닥이며 귓가에 속삭이자 천호의 얼굴이 발개졌다.
‘……어라?’
천호의 반응이 신경 쓰이긴 했지만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쳐 있다 보니 더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나는 돈을 주고 주모의 방을 삥 뜯어 소이와 함께 잠시 누웠다.
“하…… 빨리 집에 돌아가야 하는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소이는 그렇게 물어봤지만 나는 차마 대답을 해 줄 수가 없었다.
사실 나도 아직 성원 세자에 대해 뭐라고 나쁜 말이 잘 나오지가 않는 처지였다.
‘그래도, 세자랑 부왕에게는 말을…… 해야지.’
감정적으로 끝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다른 것도 아닌 반역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또 다른 문제 하나가 마음에 남았다.
‘부왕은 성원 세자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던 거 같은데…….’
그럼 부왕의 의중은 무엇일까.
설마 어느 아들이 왕이 되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지.
‘그럼 세자가, 이화가 너무 불쌍하잖아.’
어린 시절 조금 멍청해서 세자인 형이 하는 공부 다 따라 한 헛똑똑이지만, 그래도 좋은 세자가 되기 위해 내내 노력해 왔는데.
이제 와서 그만두라고?
하여간, 오라비라는 것들을 여동생을 못살게 구는 데에 특화되어 있는 생물이 틀림없었다.
나는 남의 집이라 벽이고 바닥이고 마음대로 두들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하며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눈을 뜨니 익숙한 내 방이었다.
무슨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이지만 그럴 리는 없고, 답은 하나뿐이었다.
‘아니. 아까 기절하고 싶긴 했는데, 진짜 기절을 했네?’
아마 소이와 천호……. 아마 거의 천호가 혼자서 나를 옮겼을 가능성이 높았다.
잠깐만 자고 일어나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생각보다 피로가 컸나 보다.
“거기 누구 있어?”
“옹주 자가.”
내가 부르자 기다렸다는 듯 밖에서 소운이 들어왔다.
“소이는 발목 다쳤는데 어때?”
“의원을 불러 치료받고 한동안 안정하라는 진단을 받았다고 들었사옵니다.”
“나 어떻게 들어왔어?”
“천호가 모시고 왔사옵니다. 더 쉬시도록 하고 싶었는데 너무 늦으시면 곤란해질 사람이 많다고요.”
“아. 그렇겠지.”
“불러올까요?”
“아니, 천호도 쉬고 있을 텐데 됐어.”
내 말에 소운이 고개를 저었다.
“옹주 자가께서 깨어나시는 걸 뵙고 가겠다고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아니, 저런…….”
기력이 넘치네. 정말 괜찮나?
‘그럼 데리고 가야겠군.’
나는 걱정하면서도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동시에 휘청하며 몸이 기울었다.
“오라버니께 가봐야 할 거 같으니 채비하거라…… 아?”
“옹주 자가.”
“어…… 왜 어지럽지?”
서둘러 나를 부축했던 소운은 내 말에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진지를 거르셨으니 당연하지요. 서둘러 상을 올리라 전하겠사옵니다.”
“아니, 나 동궁에…….”
“천호에게는 간식을 내주고 기다리라 할 터이니. 옹주 자가께서는 먼저 진지부터 드시지요.”
“……저녁밥은 줬니?”
“예.”
“그래. 다행이다.”
굶기기까지 했으면 더 마음이 무거울 뻔했다.
“하. 밥 먹기도 귀찮은데.”
“저희도 걱정했사옵니다.”
“……알았어.”
그렇게 나오면 이쪽도 세게 나갈 도리가 없었다.
곧 저녁상이 들어왔기에 나는 일단 머리에 영양분을 투하하며 세자에게 알릴 것들을 정리했다.
‘일단 성원 세자가 살아 있다는 거 알리고, 반역에 대해서 알리고, 그 외에는 뭐가 있더라.’
아무래도 수면과 영양 섭취가 이루어지니 아까보다 머리가 더 잘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
그렇게 서두른 것이 무색하게도, 늦은 시각에 찾아간 동궁에서는 제법 바람직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세화가 눈을 감고 제 얼굴을 세자에게 내밀며 만지라고 종용하고 세자는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는 연애적 모먼트가 이루어지고 있는 바람직한 모습…….
“자요. 세자 저하. 마음껏 만지셔도 됩니다.”
“어허, 어, 어찌 말을 그렇게 하는가.”
아니, 저걸 보기 좋은 풍경이라고 해도 되는 걸까.
나는 굳이 좋은 분위기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멀찌감치 떨어져 대기 중인 송 내관에게 다가갔다.
“송 내관.”
“아, 옹주 자가. 오셨사옵니까.”
“쉿, 쉿. 조용히.”
내가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대며 속닥대자 송 내관도 나를 따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때, 저 둘 잘되어 가는 것 같아?”
“허허. 글쎄요.”
대답은 안 해 줘도 흐뭇하다고 얼굴에 쓰여 있는 수준이었다.
송 내관이 저런 반응인 걸 보면 진전이 있는 거겠지?
둘이 저러고 있는 것도 그렇고. 흐뭇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나의 소박한 즐거움은 다음 순간 세화의 입에서 나온 건전한 발언 덕분에 무참히 사라졌다.
“얼굴 좀 만지는 걸 어찌 그렇게 말씀하시옵니까?”
“크흐음!”
세화가 웃으며 그리 말하자 세자가 부끄럽다는 듯 헛기침을 하며…… 자세한 설명을 생략한다.
그리고 그런 광경을 보고 있는 나는 참…… 마음이 아팠다.
“송 내관. 나 언젠가 조카는 볼 수 있는 거지? 그렇겠지?”
귀여운 조카는 한 번 안아 보고 독립할 생각이었는데, 이래서야 그냥 내가 독립해서 아이 낳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옹주 자가…….”
“송 내관 생각은 어때?”
“희망을, 희망을 가지시옵소서. 옹주 자가.”
“……송 내관도 포기한 거 아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