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302)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302)화(302/326)
나는 내 말에 바로 대답하지 않고 침묵하는 송 내관의 무엄함을 용서하기도 했다.
쟤들이 아직도 저러고 있으니, 나보다도 옆에서 보고 있었을 송 내관이야말로 아주 속이 썩어 문드러지지 않았을지.
그건 그거고 나는 일단 이해가 가지 않는 것부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둘이 왜 저러고 있는 거야?”
송 내관과 측근들 외에 다른 사람들은 좀 더 멀찍이 떨어져 있으니 달리 보는 사람도 없는 것 같아 다행이긴 한데, 아무래도 세자로서의 위엄이 조금 걱정스러웠다.
측근이라고 주인 연애하는 것도 다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 궁인들이 본인 직무에 현타를 느낄 것이 조금 걱정되기도 하고, 사생활의 자유가 없는 세자가 불쌍하기도 하고, 그런 세자와 연애 중인 세화가 더 불쌍하기도 하고.
‘음. 왕실의 일원이 된다는 게 그런 거긴 하지.’
지켜보는 눈이 너무 많으니 답답할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나야 그렇게 중요한 위치도 아니고, 곧 탈주할 거지만.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송 내관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흘러나왔다.
“실은 이건 옹주 자가께도 약간의 책임이 있사옵니다.”
“아니, 내가 왜?”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세자 저하께서는 옹주 자가께서 아직 연소(年少)하시던 시절부터 그…… 허물없이 옥안(玉顔)에 손을 대곤 하지 않으셨사옵니까.”
“아, 내 볼살?”
아직도 말랑탱글한 내 볼을 톡톡 두드리며 되묻자, 송 내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옹주 자가께서 자라시고 난 뒤로 이제는 그리할 수 없으니 세자 저하께서 많이 아쉬우셨나 봅니다.”
“흠.”
본래라면 내가 성장하며 벌써 몇 년 전에 그만두었어야 할 버릇이건만 내가 어린아이 외형이다 보니 나도 세자도 주변 사람들도 그런 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었다.
그러다 내가 갑자기 성장하면서 세자도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겠지.
“세화 의원과 대화 중에 그런 이야기를 나누시는 거 같더니 어느 순간부터 저렇게 하고 계셨사옵니다.”
“아…….”
거기까지 들으니 대충 알 거 같다.
세자가 툴툴거리니까 세화가 그럼 ‘제 볼이라도 만져 보시겠습니까?’ 하고 장난 반으로 물었을 테고, 세자는 ‘어찌 여인의 얼굴에 손을 대겠느냐.’ 어쩌구 하면서도 내심 만지고 싶은 마음에 갈팡질팡하며 저렇게 알콩달콩하고 있는 거겠지.
그리고 송 내관과 궁인들은 그사이 눈치껏 빠르게 뒤로 멀어진 거고.
‘어휴, 이 블랙 직장 정말이지 못 해 먹겠어.’
나라면 벌써 때려치웠다.
집에서 부인이 기다리고 있을 송 내관(*조선 시대 내관들은 혼인을 하고 양자를 들일 수 있었다.) 외에는 다들 강제 솔로 인생인데 한겨울이고 한여름이고 남들 저러고 있는 걸 밖에서 강제로 지켜보기까지 해야 하다니.
나는 짠한 눈으로 동궁전 궁인들을 보다가 다시 세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둘이 좋은 시간 보내고 있는데 미안하지만, 이건 하루빨리 2세를 만들어야 하는 신혼부부라도 잠시 갈라놓아야 하는 중대사안이었다.
역모라고, 역모.
“애석하지만 나도 오라버니께 할 말이 있어서 온 것이니, 방해해야겠군.”
“소인이 고하겠사옵니다.”
“됐어, 그냥 내가 갈게.”
괜히 원망받는 역할은 내가 하는 게 낫다.
세자가 보기보다 꿍한 구석이 있어서 나중에 송 내관한테 뭐라고 꿍얼거릴지 모를 일이니까.
‘뭐 그럴 여유는 없겠지만.’
나는 굳이 가까이 다가가지는 않고 일단 멀리서 소리를 질렀다.
“오라버니!”
“!”
다행히 내 목소리를 들은 세자가 화들짝 놀라 곧장 이쪽으로 향했다.
세화 역시 조금 민망한 얼굴로 그 뒤를 따랐다.
그러고 보니 결국 얼굴은 만진 거야, 어쩐 거야.
“시아 네가 이 시간에 여긴 어쩐 일이냐. 나 요새 무리하지도 않았고 아직 침수 들 시간도 아닌데.”
그동안 겪은 것들이 있다 보니 세자의 입에서 자동으로 변명의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긴 세자가 말한 용건들 외에는 내가 이 시간에 동궁전에 오는 일이 거의 없긴 하지.
세화도 오고, 내가 성장하고 나선 아예…… 없었던 것 같다.
딱히 컸다고 새삼 내외한 건 아니고, 그냥 그간 내가 워낙에 졸리고 바빴다.
세화랑 둘이 놀라고 일부러 좀 사양한 것도 있고.
‘그렇게 배려한 것치고 별 소득은 없었지만.’
애석한 일이었다.
내가 대답하지 않으니 세자의 머릿속에서 사태가 점점 악화되었는지, 목소리도 조금 심각해졌다.
“아니면 혹시 뭐 사고 쳤니……?”
아니다. 이놈아.
내가 대답이 좀 늦었다고 어디까지 가는 거야.
“둘이 좋은 시간 보내는데 방해해서 미안하지만 세자 저하께 중요한 얘기가 있어서 말입니다.”
“크흠.”
나도 어지간하면 방해하고 싶지 않았단다.
“지난번에 내가 말한 것 중 하나의 결과를 알았거든요.”
“!”
진지한 이야기라는 것을 깨달은 세자는 바로 눈빛이 바뀌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날이 아직 춥지만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다른 사람이 들을 수 없도록 그냥 밖에서 대화하기로 했다.
나와 세자 외에 다른 사람들은 들을 수 없도록 일단 송 내관은 물론 세화와 천호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모두 물리고 대화를 시작했다.
“실은 오늘 다른 일로 도성 밖으로 나갔었는데…….”
“너 도성 밖까지 나갔느냐?”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잔소리를 시작할 조짐이 보였기에 나는 거두절미하고 핵심부터 말했다.
“산속에서 군사 훈련을 하는 수상한 놈들을 목격했습니다.”
“뭐, 네가 직접 말이냐?”
“예에. 이 두 눈으로 직접요.”
내 말에 세자가 얼굴을 굳혔다. 그럴 만한 일이긴 했다.
“아니, 위험하게…… 괜찮은 것이냐?”
“응. 일단은. 천호 덕분에.”
세자는 내 말을 듣자마자 내 몸을 또 빙글빙글 돌리며 이리저리 살피더니 다친 데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과 함께 잔소리를 시작했다.
“천호가 또 너를 살린 모양이구나. 그런데 왜 그런 위험한 일을 한 것이냐?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런 건 줄 몰랐어. 나도 우연히 발견해서 당황했다고.”
“도성 밖에는 왜 나갔는데?”
“그건…… 예전 세자 익위사 사람들을 만나러 갔었거든. 성원 세자 생각도 나고 해서.”
“으음.”
내 말이 납득은 갔는지 세자도 그 이상은 추궁하지 않았다.
그런 세자를 보는 나도 마음이 복잡했다.
아무래도 성원 세자 만났다는 말을 하자니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역모도 역모지만, 죽은 세자가 실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면 경악하지 않을까.
거기까지 생각하던 나는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혹시 얘도 알고 있는 거 아냐?’
설마.
그야 물론 알아도 쉽게 말하지 못할 일이긴 했다.
“익위사라. 성원 세자의 측근들이라면 형님의 죽음과 함께 출셋길이 막힌 자들이니 생각해 보면 그자들이 역모에 관련되어 있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구나.”
“그래?”
“음. 그들 중에는 나한테 불만인 사람들도 많으니까. 게다가 전부터 성원 세자 쪽 사람들과는 영 뜻이 맞질 않더구나.”
나도 들은 바는 있었다. 그리 깊이 관여하지 않으려고 비교적 노력했지만 그래도 들려오는 것은 있으니까.
“형님을 생각해서라도 많이 대우해 주려 노력했었다. 하지만 내가 계속 그들에게 맞춰 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겠느냐.”
“그렇지.”
예의는 차렸지만 길이 같지 않다면 반목이 있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형님 사후에 점차 뒤로 밀려난 이들이 대부분이지. 안 그래도 뜻이 맞지 않는 데다가 형님과 달리 내가 그들의 말을 무조건적으로 들어줘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
“흐음.”
세자의 말에 의하면 그래도 성원 세자가 있을 당시에 힘을 키워 둔 이들이 남아 있어 아직까지 깔짝거리고 있다고 했다.
성원 세자를 생각해서 적당히 대우해 준 것이 화라면 화일지도 모르겠다고 세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듣기로 경언군 일로 반 토막이 나긴 했지만, 성원 세자를 생각해서 남겨 둔 이들이 있다 보니 지금의 세자가 세력도 별로 없었던 시절에는 제법 오만방자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 건드리는 놈은 없던데.”
“종친 말도 안 듣는 애한테 누가 시비를 걸겠느냐.”
“아니, 나도 나 못살게 굴지 않는 다른 종친들한테는 부드러운 사람이야.”
“그래그래. 그렇겠지……. 아마도.”
그렇게 말하며 세자는 히죽 웃었다.
나 따라 하니.
“당시에야 어쨌든 지금은 나도 내 사람을 만들었고, 정계에는 다른 세력이라 부를 이들도 적지 않으니 예전 같을 수는 없지. 성원 세자, 형님께서 살아 계셨으면 세자의 그늘에서 부귀영화를 누렸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을 테니 저들 딴에는 원통하기도 하겠지.”
듣자 하니 지난 영천군 역모 사건 때도 그럭저럭 피해 간 모양이었다.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성원 세자 쪽이 생각보다 인물들이 별로였구나.”
“시아 네가 그들을 볼 일이 많지 않으니까. 오랜 명문가이기는 하지만 경언군 일로 치명타를 입었고.”
“흐음.”
“그래도 제법 내 일에 반대하고 있어 조금 골치가 아팠지. 근래에 조금 얌전하기에 마음을 좀 접었나 했더니 다른 이유가 있었구나.”
“오라버니.”
유독 피곤해 보이는 세자의 팔을 두드리자, 세자는 조금 자조적으로 웃었다.
“만약 내가 아니라 형님이 이 자리에 계셨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테고, 그들 역시 순순히 따랐을지도 모르겠구나.”
벌써 세자가 된 지가 몇 년인데, 아직 세자에게는 성원 세자의 그림자가 남아 있는 듯했다.
그런 세자를 보고 있노라면 나도 성원 세자에 관해서는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아직도 별로 믿기지는 않지만 성원 세자가 권력을 잡겠다고 역모를 일으킨다면…….
‘지금의 세자는 세자에서 폐해지겠지.’
성원 세자 역시 동생들을 죽일 생각은 없을 거다.
물론 죽이려고 한다면 죽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정말 세자를 편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었다.
역모를 꾀하더라도, 적어도 형제들을 해치지는 않을 거라고 믿고 싶다.
그렇게 동생을 애지중지하던 사람이 아닌가.
아무리 세월이 흘렀다 해도 그렇게까지 변하지는 않았을 거다.
나는 망설인 끝에 입을 열었다.
“……만약 성원 세자가 살아 있다면 오라버니는 어떻게 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