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309)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309)화(309/326)
솔직히 말하면 좀 더 큰 후에 시작할 줄 알았는데, 지난번 그 호랑이 사건 직후에 스트레스 때문인지 뭣 때문인지 갑자기 터져서 깜짝 놀랐다.
물론 원래 갑자기 터지는 거지만 나는 미경험자도 아니니 시작 전에 감이 올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조금 당황했다.
생리 시작한 후에는 키가 안 큰다는 말이 있어서 좀 실망도 했고.
‘숨기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처소 궁녀들이야 다 내 편이고, 여자들만 있는 공간이니 숨기는 게 어려울 리가.
당연히 세화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했다. 물론 매일 진맥하러 오는 사람이다 보니 뭔가 눈치챈 거 같지만 그쪽도 입을 다물고 있었다.
세화 입장에서도 아직 정리된 게 없고, 내가 감추고 싶어 하는데 굳이 들춰 낼 사람도 아니었다.
‘내가 집 떠나기 싫어서 감추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 같아서 좀 찝찝하지만,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성 겸사복은 언제 돌아오려나. 지난번보다는 빨라야 할 텐데.
달거리를 시작했다는 사실을 감추는 건 어렵지 않은데 생리통은 감추기 어려울 때가 있으니 가능한 한 빨리 와 줬으면 좋겠다.
왜 생리통은 다시 태어나도 이렇게 뭣 같은지.
좋은 것만 먹고 곱게 살았는데 빨리 성장한 후유증인지, 타고난 체질인지, 그것도 아니면 정말 스트레스 때문인지 생리통이 만만치가 않았다.
안 그래도 PMS(생리 전 증후군) 때문에, PMS가 맞던가? 아무튼, 기분도 더럽고 몸 상태도 안 좋은데 말 타고 질주해야 했던 원인이 눈앞에 있는 이 인간이라고 생각하면 멱살을 잡고 싶었지만, 성원 세자의 사회적 체면을 생각해서 일단 참기로 했다.
“사람을 이렇게 고생시켜 놓고 넌 여기 얌전히 있어라? 내가 그 말을 들을 거 같습니까, 오라버니?”
“미안하다고 하지 않았느냐.”
“미안하면 제대로 얘기해. 오라버니도 그날 영빈과 경언군 때문이라고 했었잖아?”
내 추궁에 성원 세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좋은 얘기는 아니지 않느냐.”
“그쵸. 사람한테 독도 먹이는 사람들인데.”
“…….”
지금 새삼 내 앞에서 뭐 좋은 얘기 안 좋은 얘기를 가리고 있어?
나야 그런 생각이었지만 내가 한 말의 타격이 너무 강했는지 성원 세자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푹 숙였다.
아이고. 내가 위로도 해야 하니, 원.
“독 먹었어도 살아서 잘 컸잖아. 그쪽은 이미 이 세상 사람도 아니고.”
“……미안하다.”
나는 성원 세자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들기며 한숨을 내쉬었다.
“오라버니, 지금 내가 몇 살로 보여?”
“……가능하면 어릴 때 한 번 더 보고 싶었는데.”
이런 헛소리 할 정도면 괜찮은 모양이다.
“됐으니까 어서 말씀하시지요.”
“그저, 영빈에게 내가 세자 자격이 없다는 말을 들었을 뿐이다.”
“주제에?”
“푸훗.”
성원 세자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거의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내 말에 성원 세자는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말이야 바른말이지.”
“그야 그렇다만.”
“오라버니는 영빈이 하는 말을 믿어?”
한참을 웃으며 헐떡이던 성원 세자는 숨을 고르며 답했다.
“믿지 않기에는 너무 걸리는 것이 많더구나.”
“그 ‘걸리는 게’ 뭔지 확인은 했어?”
“그래. 했단다.”
“그게 뭔데. 나도 좀 알자.”
“…….”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요.”
“동생들에게 못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구나.”
“이미 충분히 보인 거 같은데요.”
“못 본 사이에 우리 막내가 무서워졌구나.”
“내가 농담하러 여기까지 온 것처럼 보이실까요. 오라버니?”
세자는 내가 빤히 쳐다보면 빠르게 항복하는데. 이쪽은 역시 연륜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트라우마가 없어서인지 쉽게 먹히지 않았다.
“내가…… 염치가 없어서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구나.”
또 입을 다물 기세라 나는 빠르게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기로 했다.
“그럼 연 좌세마 불러올게. 측근이니 알고 있지? 대신 말하라고 하자.”
“아니아니아니, 잠깐만, 내가 할게. 내가 하마, 시아야.”
내가 넘어가지 않는 것을 확인한 성원 세자는 결국 포기하고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승하하신 내 어마마마 때문이란다.”
“?”
“경언군, 경원군, 그리고 시아 너까지 내 형제들은 손을 꼽을 정도로 적지. 그 이유를 영빈에게서 들었다.”
나는 경험에 입각해 답했다.
“영빈이 죽인 거 아니었어?”
“아니…….”
“아님 경언군이 죽였거나.”
“뭐?”
기억이 흐릿하긴 하지만 거기 궁녀들이 그런 뉘앙스의 말을 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가이는 뭔가 알고 있을 것도 같지만 거기서 지냈던 게 그리 좋은 기억일 거 같지는 않아서 물어본 적은 없지.’
당시에 말할 기회가 있었을 텐데 말하지 않은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테니 굳이 끄집어낼 생각은 없었으므로 적당히 납득할 만한 대답을 해 주었다.
“나도 죽이려고 했잖아.”
“누가 너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더냐.”
성원 세자의 얼굴이 심각한 것을 보니 뭔가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누가 그런 흉흉한 얘길 감히 제 앞에서 꺼내 놓겠습니까. 그냥 제가 기억하고 있답니다. 오라버니.”
“어찌…… 그런 것을 기억하고 있단 말이냐.”
“충격적인 일이라서?”
별생각 없이 이어진 내 말에 성원 세자가 충격받은 듯 어깨를 늘어뜨렸다.
“미안하구나. 그때도, 내가 좀 더 빨리 알았더라면…….”
“세자가 내궁의 일을 어떻게 알겠어. 아바마마도 잘 모르실걸?”
아마 지금 세자도 내가 말 안 하면 전혀 모를 거다.
물론 지금 내궁에는 이렇다 할 사건은 없이 조용한 편이지만.
“그래. 사내들이 쉬이 알기 힘든 내궁의 일이지. 하지만 모른다는 것으로 넘어갈 수 없는 일도 있는 법이 아니겠느냐.”
“……왕손들의 죽음이 관련된 거랬지?”
성원 세자가 설명하기 힘든 일일 거라는 생각에 먼저 말을 꺼내자 성원 세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성원 세자의 생모인 성현 왕후가?’
성원 세자는 힘들게 태어난 아들이었다고 들었다. 물론 그 전에 잃은 아이들도 있었고.
그중에는 후궁의 아이들도 있었다고 했던 것 같다.
중전과 태어날 원자의 위치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라면……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었다.
“승하하신 어마마마께서 직접 관련이 되어 있는 것인지까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임 상궁을 추궁하였을 때 그이는 자신이 한 일임을 부정하지 않았다.”
“!”
임 상궁 그 사람이 좀 독해 보이긴 했는데 영빈과 동급이었어?!
“도리어 내가 그 일에 대해 자신의 충정에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하더구나.”
세자의 얼굴은 고통과 부끄러움으로 얼룩져 있었다.
“그래서 도망친 거구나.”
“도망이란 말이 맞다. 어찌 이런 피 웅덩이 속에서 세자라고 떳떳하게 고개를 들고 살 수 있겠느냐.”
“오라버니 잘못이 아니야.”
“내 측근이 나를 위해 저지른 일이니 그것 또한 나의 죄다. 게다가 내가 그들을 내치지 않는 한 그들은 언제 또 그런 짓을 반복할지 모르지.”
성원 세자는, 사람이 모질지 못한 것이 탈이었다.
“심지어 영원 대군, 아니, 지금의 세자 저하마저 내가 믿었던 이들의 손에 의해 끔찍한 일을 당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는데 어찌 내가 계속 세자 노릇을 하겠느냐.”
“오라버니.”
나는 성원 세자를 위로하기 위해 손을 잡아 도닥였다. 말을 꺼내지 못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말하라고 한 것은 나였다.
하지만 그만두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임 상궁은 어마마마와 자신들이 저지른 일의 관련성에 대해서는 부정했지만, 그들의 죄를 공론화하면 어마마마의 명예에 누를 끼치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입을 열기 힘들어하더니 한번 털어놓기 시작하자 세자는 비교적 담담히 지난 일들을 쏟아 냈다.
“게다가 내가 그 사실을 알았다고 자신들을 더 귀히 대우할 거라 생각하는 그들을 보니, 내가 만일 그대로 왕이 된다면 그들이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겠더구나.”
“그냥 그 사람들을 벌하면 안 되는 거야?”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나를 돌봐 온 수족이었다. 이유 없이 내칠 수 없고 그들 역시 납득하지도 않겠지.”
그 말대로라면 그들이 순순히 입을 다물고 있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그들을 죽일 정도로 단호하지도 못했지. 그것이 바로 나의 죄란다.”
“오라버니.”
그들을 죽일 수도, 그렇다고 곁에 둘 수도 없었기에 본인이 사라지는 것을 택했다는 뜻이었다.
“계획적인 건 아니었다고 했잖아.”
“사라져 버리고 싶은 충동은 있었단다. 도망쳐 버리기 위해 이런저런 준비도 했었지. 하지만 실행에 옮길 용기도 쉽게 나지 않았지.”
성원 세자는 내 손을 꼭 붙잡고 조곤조곤 옛 기억을 더듬었다.
“그런데 그날, 나는 강무에서 잠시 벗어난 사이 호랑이와 조우했다. 그 순간 나는 이대로 죽어 버리는 것이 순리라는 생각을 했었지.”
“!”
붙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자 성원 세자가 씁쓸히 웃었다.
“그런데 나는 살아남았다,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빚지고 얻은 삶이었지만 그래도 살아남았어. 게다가 도망칠 기회까지 얻었을 때 나는 하늘이 내게 내려 준 기회라고 생각했다.”
“…….”
성원 세자의 얼굴을 보니 나 역시 더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이제 너도 납득해 주겠느냐.”
“…….”
“일이 끝날 때까지 안전하게 여기에 있어 주겠느냐.”
“오라버니는, 스스로 도망쳐 놓고 왜 다시 돌아온 거야?”
“비록 도망쳤다고는 하지만 나는 이 나라의 세자였다. 내가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그것을 마무리해야 하지 않겠느냐.”
“하지만 그 말은…….”
성원 세자는 내 말을 듣지 않고 제 할 말만 쏟아 냈다.
“너에게는 미안한 마음뿐이구나. 나는 10년 전, 동궁전 궁인들이 감히 방자하게 굴 때에도 그들을 따끔하게 벌하지 않아 너를 곤란하게 했었지. 게다가 내가 영빈을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하고 사라진 탓에 너와 윤 숙의가 그런 끔찍한 일을 겪게 했다.”
“오라버니 탓이 아니잖아.”
“내 탓이다. 그때 내가 좀 더 독한 마음을 먹었더라면, 차라리 좀 더 빨리 행동에 옮겼더라면…….”
성원 세자는 그리 과거를 곱씹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성원 세자는 고통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런 그를 보며 내심 안심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자신이 세자 자격이 없다며 자책하는 놈이 역모는 무슨 역모.
성원 세자는 그런 짓을 할 만큼 몰염치하지 못했다.
그런 성원 세자가 이런 일을 벌인 이유.
아까부터 말하고 있는 자신이 해야 할 마무리.
‘후궁들 배 속의 용종을 죽일 정도로 잔인했던 이들이 아직도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새로운 세자의 치세를 방해하고 있으니, 그들을 깨끗하게 정리할 기회를 주고 싶은 거겠지.’
어차피 성원 세자가 살아 있는 이상 이 역모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역모의 중심에는 성원 세자의 외숙인 파평부원군이 있었으니까.
그건 나보다 성원 세자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