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317)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317)화(317/326)
“이런, 쓰러지고 싶군.”
“옥체부터 챙기셔야 하옵니다. 저하.”
“심적으로 피로가 쌓이는 거지, 의외로 진도는 순조로우니 너무 걱정하지 말게.”
부왕에게서 전권을 넘겨받은 세자는 아직 살아 있는 관련자들을 문초해서 10년 전 역모 사건에 대해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건 부원군이 이전에도 반란에 손을 얹은 적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김선익 대감이 얽혔던 10년 전 그 역모 때에도 부원군은 뒤늦게 가담했었지만 기록에는 남기지 않고 금전적인 지원만 했다고.
‘부원군의 성격상 조금 이상한 일이었는데 뭘 바라고 한 짓이었을까.’
어쨌든 부원군의 측근들이 입을 모아 말하니 거짓은 아니었다.
이 사실이 죽은 김선익 대감과 어떤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거기까지는 제대로 알고 있는 이가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본인인 부원군이야 알고 있겠지만 쉬이 입을 열 양반이 아니었다.
‘지금은 입을 열 수 있는 상태도 아닐 것 같은데.’
그래도 적어도 김선익 대감의 누명을 벗길 수 있다는 사실에 조금 마음이 가벼워졌다.
‘이걸로…… 세화는 자유로워지겠구나.’
순수한 기쁨과 함께 불안감도 있었으나 세자는 애써 떨쳐 내려 애썼다.
그런 세자의 주변에는 마찬가지로 야근에 지친 폐인 같은 행색의 신하들이 즐비했다.
그들도 이번 역모 사건이 무사히 지나간 것에 안도하며, 역도들을 추포하는 것은 물론 반역으로 인한 후폭풍을 잠재우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여죄가 있던 다른 이들까지 이번 기회에 끌어내서 정리하게 되었으니 이제 한동안 세자의 앞길을 막을 이는 없을 듯했기에 다들 피곤에 찌들어 있어도 안색은 밝았다.
“이미 은퇴한 사람이 많긴 하지만 한동안 인력난에 시달리는 부서도 있을 것 같습니다.”
“나중에 구실을 붙여서 증광시(增廣試,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실시한 임시 과거 시험. 필요하다 싶으면 왕실에 경사 있다는 이유로도 열 수 있었다.)라도 봐야겠군.”
세자의 말에 김칫국부터 거하게 마신 이 하나가 설레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세자 저하, 드디어 국혼(國婚)이라도 올리시는 것이옵니까?”
“거, 자네 마음 급하다고 되는 일이 아니네만?”
“소인만이 아니라 세자 저하께 충심이 있는 이라면 누구든 마음이 급할 것이옵니다.”
마음만은 누구보다 급했으나 정작 아직 확답을 받지 못한 세자는 미안한 얼굴로 들뜬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아직이니 너무 부담 주지 말게.”
“저하.”
“게다가 우선은 역모 사건부터 해결을 하지 않으면 내가 과로사할 것 같네.”
“세화 의원을 부를까요?”
엄살 좀 부렸다고 놀란 듯한 송 내관의 말에 세자는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
“아니, 지금은 내가 다른 일을 시켜서 바쁠 테니 부르지 말게.”
“예. 알겠사옵니다.”
늘 곁을 따르는 송 내관에게조차 성원 세자의 일은 비밀이었으므로, 세화가 어디에 있는지는 말할 수 없었다.
달리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세화에게 형님을 맡겼지만, 세화가 궁에 없어 이 좋은 소식을 당장 전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이 조금 아쉬웠다.
‘이 일에 대한 전모가 밝혀졌다면 좋았을걸. 세화에게 해 줄 이야기가 많지가 않은걸.’
그리고 그 일은 전혀 다른 루트로 세화에게 밝혀진다는 걸 세자가 알 리가 없었다.
***
“10년 전 역모 사건이라면…… 그것도 분명 외숙과 관계가 있을 것 같구나.”
“뭔가 아는 게 있는 거야, 오라버니?”
나는 성원 세자가 뭔가 실마리를 알고 있는 듯해 냉큼 매달렸다.
그리고 성원 세자의 옷이 날씨에 비해 너무 얇다는 사실을 깨닫고 얼른 방으로 밀어 넣었다.
방금까지 멀찍이 있던 세화와 천호도 나와 성원 세자를 따라 방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세자를 따뜻한 방 안에 앉힌 후 자세한 설명을 요구했다.
“저기, 내가 그리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자세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아는 것만 말해 봐.”
“그, 그래.”
성원 세자는 당황한 얼굴이었지만 곧 기억을 더듬으며 입을 열었다.
“언젠가 술에 취한 외숙에게 들은 적이 있다. 반역을…… 도모할 때였던 것 같은데, 예전에도 해 본 적이 있으니 어렵지 않을 거라 말하며 신허도의 역모 얘기를 했었지.”
“신허도라니, 언제 적 사람이야.”
분명 옛날에 난을 일으켰던 사람이 있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그렇게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지는 않았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니 네가 모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
성원 세자가 태어나기 전의 일이라면 지금 여기 있는 이들 중에 그 일을 겪은 사람은커녕 잘 아는 사람도 없다는 뜻이었다.
“당시 아바마마께서는 세자셨고, 선대왕마마께서는 병중이셨다고 들었다.”
요약하면 왕실이 좀 빈약해 보이고 세손도 없고 하는 참에 일어난 난이었다고 했다.
“내 생모이신 성현 왕후께서 당시 세자빈이었지만 세손을 생산하지 못하고 후궁을 들여야 한다는 말이 나올 때였지.”
“설마 그렇다고 역도들과 손을 잡았다는 건 아니지?”
“하하. 확실히 외숙은 좀 그런 사람이었지. 너도 보면 알지 않느냐.”
이제 그냥 막 까는구나.
“그야 그때는 외숙도 젊다 못해 어릴 때였지. 세자빈은 어마마마였으나 당시 권력자는 홍상조였다. 네가 기억할지 모르겠다만.”
“알아. 폐서인 홍씨의 아비잖아.”
“그래. 나와도 인척간이고 내 외숙과도 그러하지. 당시 신허도는 선대왕마마와 아바마마의 신임을 얻고 권세를 얻고 있었으니 당연히 홍상조와도 반목했지.”
“음. 지금 말하는 거 보니 그거 혹시 홍상조가 꾸민 일이야?”
“외숙의 말로는 그랬다. 하지만 원손도 없고 몸도 약한 세자빈의 집안은 불안했겠지. 외숙은 그 사실도 모르고 꾸며진 역도들에게 손을 내밀었지.”
그런 바보 같은 짓을?
“그때 외숙이 말려들지 않도록 도와준 이가 김선익 대감이라 들었다.”
김선익 대감의 이름이 나오자 세화의 몸이 움찔 떨렸으나 애써 침착한 표정으로 주먹을 쥐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안 듣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내가 세화라면 진실을 알고 싶을 거라는 생각에 성원 세자를 재촉했다.
“김선익 대감은 외숙이 어리석은 짓을 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묻어 주었다더구나. 세자빈의 친정이기도 하니 일부러 못 본 척해 주었던 걸지도 모르지만……. 외숙은 그 사실이 밝혀지는 것이 아닐까 두려워했지만 김 대감이 조용히 외근직에 머무는 것을 보고 안심했다고 했다. 하지만…….”
왠지 그 뒤에 이어지는 말은 알 것 같았다.
“세자인 오라버니가 죽고, 김선익 대감의 여식이 새로 책봉된 세자의 세자빈이 될 거라는 사실을 알고 달가워하지 않았겠군.”
“그래. 외숙과 함께 나를 지지하던 세력은 본디 지금의 세자 저하와 그리 사이가 좋지 않았고, 김선익 대감의 여식이 세자빈이 된다면 그때 일로 자신을 공격할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에 선수를 쳤다고…… 했었지.”
“!”
“!”
어쩌지. 지금 이 방 안에 김선익 대감의 자식이 둘이나 있는데.
‘자기 아버지가 그렇게 돌아가시고 집안이 풍비박산이 난 원흉이 그놈이었다는 걸 알면, 처형되기 전에 세화가 독이라도 타는 거 아닌가 몰라.’
나는 슬쩍 세화의 안색을 살폈다. 창백해진 세화의 두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내 뒤에 있어 보이지 않는 천호의 상태도 신경이 쓰였지만, 나는 일단 성원 세자와의 대화에 집중하도록 했다.
“그래서 무슨 짓을 한 거야?”
“자세한 것까지는 얘기해 주지 않아 나도 잘은 모르겠다……. 내가 궁을 나온 이후의 일이지만 김선익 대감이 역모죄로 처형되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니 외숙이 뭔가를 했으리라는 건 대충 예상할 수 있겠더구나.”
음, 나도 대충 그림은 그려졌다.
아마 영천군 역모 사건 때 붙잡힌 두 사람이 돈이라도 받고 부원군의 뜻대로 움직여 김선익 대감을 치고 공을 세웠다고 상을 받은 게 아닌가 싶은데.
안 그래도 그 두 명은 역모 같은 큰일을 하기에는 좀 하찮아 보인다 했더니, 원래 남이 차려 준 밥상에 적당히 젓가락 올리는 게 그들의 최대치였던 게 아닐까.
“그럴 수가…….”
“세화. 진정해.”
나는 충격으로 굳어 있는 세화의 손을 꼭 쥐고 진정시켰다.
동시에 곁눈질하며 천호의 상태를 살폈으나 이쪽은 생각보다 침착해 보였다.
괜찮은 거냐고 묻는다면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세화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성원 세자에게 물었다.
“그럼, 그런 이유로 집안을 몰락시켰다는 뜻입니까?”
“……그럴, 겁니다.”
“…….”
세화도 천호도 생각에 잠긴 얼굴이었기에 나는 이 분위기를 어찌해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다행히 세화가 먼저 몸을 일으켰다.
“송구하오나, 오늘은 이만 물러나 보겠습니다. 혹시 상태가 안 좋아지시거나, 의원이 필요해지거든 불러 주십시오.”
“응. 수고했어. 영선이에게 말해서 방을 준비해 두었으니 거기서 쉬도록 해.”
“예, 감사합니다. 옹주 자가.”
세화는 창백한 안색으로 고개를 숙이며 방을 나섰다.
성원 세자를 보살피기 위해 한동안은 내 사가에서 머물도록 했는데 다행스러운 선택이었다.
“……천호도 오늘 피곤할 테니 가서 쉬도록 해. 마찬가지로 방은 준비해 뒀고.”
“예. 옹주 자가.”
저 둘이 지금 이 얘기를 듣고 함께 충격을 받은 것 같은데, 이걸로 서로가 남매라는 사실을 눈치채는 일은 없으려나.
성원 세자는 두 사람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조금 멋쩍은 얼굴을 했다.
“아무래도 내가 괜한 얘기를 했나 보구나. 내가 얘기하는 내내 저 두 사람이 표정이 영 좋지 않던데.”
“음. 그건 그럴 만한 이유가 좀 있다고나 할까. 오라버니가 괜한 얘기를 한 건 아냐. 그리고 지금 얘기는 나중에 세자 저하한테도 더 자세히 알려 드려야지.”
내 말에 성원 세자의 얼굴도 제법 어두워졌다.
“음…… 아무래도 외숙의 여죄가 추가될 것 같구나.”
“본인의 허물을 덮느라 무고로 다른 사람의 집안까지 멸문시킨 죄는 크지.”
“그래. 당연한 일인 것을. 그 가족들도 분명 괴로운 시간을 보냈을 텐데…….”
그렇게 중얼거리던 성원 세자는 곧 뭔가 생각난 듯 당황한 얼굴로 변명했다.
“내가 외숙의 허물을 덮으려고 일부러 말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나도 지금까지 잊고 있다 생각이 난 것이지.”
“응. 알았어. 믿어. 걱정하지 마.”
자기 목숨까지 걸었던 오라버니이니 그 진정성까지 의심하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고 멸문당한 당사자들의 생각은 다를 수 있겠지만…….
“나도 이만 가 볼게. 여기는 안전하니까 안심하고 쉬어. 오라버니.”
“그래…….”
나는 성원 세자에게 인사를 남기고 일단 밖으로 뛰쳐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