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42)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42)화(42/326)
“자, 잡아라!”
“꺄악.”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야?”
갑작스러운 일에 겁을 먹은 이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파수꾼들이 아직 빠져나가지 못한 말과 그 어린 주인 앞을 막아섰다. 말고삐를 잡고 있던 여인이 당황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말을 탄 여자아이를 자신이 모시던 역당의 아들로 지목한 노비, 덕칠도 놀란 사람 사이를 헤치고 달려와 말을 붙잡았다.
김선익 대감댁의 노비로, 수천 도련님의 몸종으로 살아온 덕칠은 비록 아는 것은 없어도 반역이라는 게 무슨 말인지는 알았다.
그래서 시키는 대로 지화를 찾아가 말을 전하는 대신 다른 길을 택했다.
이대로 자신을 부리던 가문이 적몰(籍沒)되면 자신은 또 어느 집 노비살이를 하게 될지 몰랐다.
김선익 대감 집은 지내기 나쁜 곳이 아니었지만 주변 다른 집 노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모질게 대하는 집도 적지 않았다. 다음 주인이 그런 놈이라면 어찌 버티겠는가.
게다가 가족과 멀리 떨어져 다른 집에 가게 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었다.
차라리 도주하는 역적의 자식을 고발하면 상을 받아 그런 고통은 면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덕칠은 저를 따르던 어린 도련님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을 애써 외면하며 필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어딜 도망가!!”
“네 이놈! 감히 어디에 손을 대느냐!!”
“힉?! 아, 아니.”
모진 원망의 목소리를 각오하고 있던 덕칠의 귀에 예상과 다른 목소리가 꽂혔다.
“내가 역도의 자식이라니, 네가 감히 그 말에 책임을 질 수 있겠느냐?”
“그, 아니.”
덕칠이 말을 더듬자 나장이 의아한 듯 다가왔다.
“똑바로 말해라. 역도의 자식이 맞느냐?”
“아, 아닙니다. 이, 이게 대체…….”
아니다! 분명 아까 그 앞에서 엿들었을 때 수천 도련님이 저 푸른 옷을 입고 말에 탄다고 했는데! 어찌하여 다시 아까의 여자아이가 말에 타고 있을 수가!
그렇다면 저 아이가 수천 도련님의 행방을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덕칠은 자신의 예상과는 다른 전개에 어찌할 바를 몰라 덜덜 떨리는 몸을 추스르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문제는 그 순간 일어났다.
당황해 비틀거리던 덕칠은 저도 모르게 말의 꼬리를 붙잡았고, 안 그래도 낯선 사람들이 무기를 들고 다가오자 긴장한 상태였던 말은 놀라 난동을 피우기 시작했다.
히히힝!!
“꺄악!”
“아, 아기씨!!”
말고삐를 잡고 있던 이와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당황해 몸을 피했다.
그리고 정작, 말을 붙잡았던 덕칠은 도망치지 못했다.
지금 이 말의 주인은 수천 도령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여기서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말꼬리를 붙잡았고, 그것은 큰 화(禍)가 되어 돌아왔다.
빡-!
제 도련님이 말을 배울 때 곁을 지킨 경험이 없던 하인은, 말의 꼬리를 붙잡고 있다가 그대로 뒷발에 차이고 말았다.
“꺄아악!”
말에 차여 쓰러진 덕칠을 본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으나 덕칠은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자신이 지금 무슨 일을 당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아, 안 돼!!”
그리고 제 꼬리를 붙잡고 있던 것을 떼어 낸 말은 미친 듯이 앞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고삐를 잡고 있던 여인은 어찌어찌 말의 뒤를 쫓아 보려 했으나 사람의 다리로 말을 쫓는 것은 무리였기에 곧 포기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
황망함에 다들 굳어 있는 와중 매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짜악!
아까까지 고삐를 잡고 있던, 얌전하게만 보였던 여인의 손이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덕칠의 멱살을 잡고 매섭게 그 뺨을 후려치고 있었다.
“네 이노옴! 만약 아기씨께 무슨 일이 생긴다면 네놈은 무사하지 못할 줄 알아라!!”
“아, 아아…….”
저 아이가, 아까까지 도련님과 함께 있었으며, 도망갈 수 있도록 옷을 준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말해야 했는데. 그저 머리가 얼얼하다는 생각과 함께 덕칠은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나장들 역시 분노한 여인을 쉬이 말리지도 못하고 덕칠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일개 노비의 허위정보를 믿다가 괜히 있는 집 아기씨를 다치게 했다는 오명을 쓰면 앞날이 고달파질 것이 뻔했다.
그리고 남대문 앞에서의 소란을 지켜보던 이들은 괜히 엮이지 않으려 슬슬 자리를 떠났다.
쉽사리 떠나지 못하고 군중에 섞여 소란을 지켜보고 있던, 어린 아기씨를 업고 있던 하인도 마찬가지였다.
잠이 든 척 하인의 등에 업혀 있던 아이는 말이 달려간 방향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하인의 옷을 꼭 움켜쥘 뿐이었다.
***
“워어, 워어어. 멈춰, 멈춰. 그렇지. 착하지.”
푸르르!
“괜찮아, 괜찮아. 많이 놀랐구나.”
나는 손을 뻗어 적아의 갈기를 쓰다듬었다.
‘그 상황에서 나를 떨어트리지도 않고 잘 달리네.’
물론 내가 잘 매달려 있었던 것도 있지만.
나는 아직도 두근거리는 심장을 좀 진정시키려 심호흡을 하며 아까 일을 떠올렸다.
‘그놈이 멍청하게 다가와서 적아를 자극할 줄이야.’
사실 원래부터, 적아가 놀란 척 소란을 일으키는 것은 반쯤 계획된 일이었다. 덩치와는 달리 의외로 겁이 많은 말들이 놀라 소란을 일으키는 일이야 뭐 드문 일이 아니었으니까.
예상치 못한 방해꾼 때문에 계획을 보류하려던 차에 정작 그놈 때문에 말이 놀라 실감 나는 연기까지 했으니 뭐, 생각보다 나쁜 결과는 아니었다.
‘남대문 쪽 파수꾼들은 남매를 잡으라는 연락을 이미 받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
그 댁 하인들이 남대문 근처까지 뛰어올 시간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도성 근방에서 군사를 일으킨 것도 아닌데 오늘 같은 날 사대문을 일찍 닫아 괜히 민심을 흉흉하게 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 정도 권한이 있는 높은 분에게 올라가려면 시간도 걸릴 테고.
게다가 도망친 것도 고작해야 하인들과 놀러 나간 아직 어린아이들뿐이었다.
아마 기껏해야 지화와 수천 오누이와 비슷한 나이대의 남매를 잡으라는 정도의 연락만 받았겠지. 언제 용모파기(容貌疤記:몽타주)를 배포하겠는가?
물론 붙잡힌 하인들 중에 누군가가 배치되어 이들을 지목할 수도 있을 테고, 말을 탄다거나 하면 너무 눈에 띄어 좋지 않을 것이 분명했으므로 차라리 내가 어그로를 끌어 시선을 모을 생각이었다.
‘설마 지화에게 소식을 전하라 보낸 수천의 몸종이 여기에 그런 식으로 나타날 줄이야.’
아마 원작에서도 수천의 몸종은 비슷한 행동을 하지 않았을까.
‘혹시 원작에서 애가 죽은 원인도 그건가.’
만약 그렇다면, 수천은 일단 가장 큰 고비를 넘긴 셈이었다.
아까 분명 수천은 나보다 조금 앞서서 남대문 밖으로 나갔으니까.
이미 해도 저문 지 오래인 시각이었으니 구경하다 지친 채 잠이 들어 칭얼거리는 어린아이와 그런 아이를 업고 가는 이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하아.”
일어나지 않길 바랐던 일이 결국 일어났다는 사실에 탈력감이 밀려들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원작에서 이 역모는 처음부터 김선익 대감이 얽혀 있던 것이 아니었다.
다른 세력들이 모의하던 역모가 밝혀지는 과정에서 그들이 함경도 절도사인 김선익 대감을 끌어들이고자 한 일이 드러나자, 김선익 대감을 거꾸러트리고 싶었던 좌상의 손에 의해 아예 그가 역모 주축 중 하나로 탈바꿈하게 되는 각본이었다.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부하들이 절도사인 김선익 대감을 배신하고 조정에 밀고하며 커진 사건이었다. 그자들의 이름까지 기억하지는 못했지만 아마 이번에도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높았다.
소설에서 경언군과 좌상이 세자의 자리가 공고해지는 것을 막고, 왕의 마음을 흔들기 위해 역모 사건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희생양이 된 김선익 대감은 주인공인 지화가 도성을 떠날 이 무렵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후일 지화가 그 사실을 알고 몹시 괴로워하던 장면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 대체 이번에는 누가? 무슨 이유로?’
이미 경언군도, 좌상도 몰락했으니 그럴 능력이 없을 텐데.
아니면 아직까지 그런 영향력이 남아 있는 건가?
함경도는 북으로 국경과 맞닿아 있어 군사적으로 긴장 상태인 곳이었고, 군사가 많은 만큼 조정에서는 함경도의 군사 움직임에 대해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만큼 신임받는 신하를 함경도 절도사에 보낸다.
게다가 여식은 세자빈 후보.
김선익 대감의 앞날은 탄탄대로 그 자체였다.
어쩌면 그를 시기한 이들이 있을 법도 했다.
사실 대감이 역모를 일으킬 만한 이유가 없으니, 왕도 밀고를 믿지 못하고 한참을 망설이지만 조작된 증좌들이 너무 선명했다.
‘게다가 함경도에 있던 대감에게는 새로 얻은 후처(後妻)가 있었지.’
도성에 살고 있는 자식들이 있는데 어찌 이들을 남겨 두고 반역을 일으켰겠냐는 의문에, 후실(後室)이 낳은 아들과 딸이 함경도에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반역이 더욱 설득력을 얻었다.
원작에서 그들이 어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주인공인 지화가 후에 그 사실을 알고 복잡한 마음을 품었던 건 알고 있었다.
‘지화는 무사할까. 주인공인데 아무렴 무사하겠지?’
하지만 적어도 나루터에서 동생과 합류하자는 말을 듣지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 하인이 지화에게 말을 전하지 않았을 테니까.
오히려 지화가 있는 방향도 고해다 바쳤을 가능성이 높은데, 그래도 세자가 함께 있었으니 어떻게든 지화의 탈출을 돕지 않았을까?
‘지화와 함께 있어야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싶었는데.’
어쩌면 이게 최선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우선 당장은 남의 일을 신경 쓸 때도 아니었다.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던 나는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도성을 벗어나서도 제법 달렸었는지 사람이 보이질 않았다. 도성 밖에도 민가가 많을 텐데 대체 여긴 어디길래 이렇게 컴컴해.
“여긴 어딜까, 적아야.”
푸르릉!
내 말에 적아는 마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야, 네가 달려왔잖아.
‘뭐, 거의 길을 따라 달려온 거 같긴 한데.’
갈림길이 나오기 전까지 길을 따라 돌아가다 사람이 좀 나오면 도성 가는 길이야 금방 알 수 있지 않을까.
일단 멀리서 봐도 그 도성 근방과 목멱산(木覓山:남산)만 유등으로 불이 밝혀져 있어서 방향만 따라간다면 돌아가는 일이 불가능해 보이진 않았다.
일단 여기서 도성이 보이는 걸 보니 말을 타고 가면 그리 멀지 않을 것 같았고.
“돌아가자.”
내 뜻을 알아챈 듯 적아는 알아서 방향을 돌렸다.
“그래, 우리 적아 똑똑하기도 하지.”
칭찬하며 갈기를 쓰다듬어 주자 기분이 좋은 듯했다. 오랜만에 실컷 달린 덕도 있는 것 같고.
‘잘 도망쳤을까.’
헤어지기 전, 겁에 질린 동글동글한 얼굴의 아이를 마지막으로 꼭 안아 주며 괜찮을 거라 말해 주었다.
무사할 테니, 나중에 꼭 다시 만나자고.
당연히, 아이의 생존에 확신은 없었다.
그건 그저 나의 바람에 지나지 않았지만, 내가 소설의 전개와 달리 이렇게 살아남은 것처럼 그 아이도 살아남기를 바랐다.
‘헤어지기 전 아이에게 입혔던 겉옷을 바꿔 입혔지.’
그 몸종은 아마 마당 밖에서 우리 대화를 엿듣고 의금부 나장에게 갔을 것이다.
그러니 마음이 급해 제가 모시던 도련님도, 그 아이를 업고 있는 행랑아범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그저 내 옷만 찾았겠지. 덕분에 일이 잘 풀렸다.
내가 입고 있다가 수천에게 준 옷이 아무래도 너무 고급 같아서, 조금 더 무난한 옷을 구해 입혔던 것이 생각보다 큰 역할을 한 것 같아, 새삼 웃음이 나왔다.
아이는 무사할 거다.
남대문과 비교적 거리가 가까운 서소문(西小門)인 소의문(昭義門)으로 나간 가이가 두 사람에게 말을 내주고 돌아올 거다.
말이 있다면 훨씬 빨리, 멀리 도망칠 수 있었다.
어린아이의 체력과, 발걸음을 상정해 추적할 테니까.
그러니 죽어 버린 성원 세자처럼, 혹은 언니나, 언니의 배 속 아이처럼, 나와 얽혀 죽지는 않을 거다.
‘해냈어. 살린 거야. 이번에는.’
저절로, 입가가 끌어 올려졌다.
이제 돌아가서 가이에게 그들이 무사히 떠났다는 사실만 확인받으면 된다.
그 아이는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몰랐겠지만.
나는, 그 아이가 살아남기만 한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어쩌면 그 아이의 남은 인생이 관노로 사는 것보다 비참해질지도 모른다고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했어.’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서 돌아가야지. 다들 기다리고 있을 테니.
낙심한 세자를 위로하고, 고생한 가이와 송비와 내관을 달래 주고, 내 부재를 감추기 위해 애간장을 태웠을 처소 궁인들의 잔소리를 들어주고, 피곤하니 수정과를 한 사발 마시고 잠자리에 드는 거다.
역모 사건이 일어났으니 또 많은 사람이 죽겠지만 내가 어찌하겠는가.
내 손으로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살렸으니, 나는 이제 평온한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후후.”
한밤중에 혼자 히죽히죽 웃으며 말을 타는 어린애라니 무슨 괴담 같았다.
킥킥 웃으며 적아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던 내 앞에, 낯선 목소리들이 끼어들었다.
“꼬마 아가씨. 이런 곳에 혼자 있으면 못써.”
“오.”
이것 참. 진짜 스펙터클한 하루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