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43)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43)화(43/326)
‘도적……이라고 하면 좀 거창한 거 같고.’
도성, 그것도 숭례문에서 그리 먼 거리도 아니니 그리 대단한 도적단 같은 게 있을 것 같진 않았다.
‘말하자면 오늘 같은 날 나같이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을 털어먹는…… 음, 저런 사람들을 뭐라고 하더라, 깡패? 아니, 이 시대 말로는 깍정이패? 맞나?’
밤중에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거야. 심장 떨어질 뻔했네.
나는 시치미를 뚝 떼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 물었다.
“누구?”
“꼬마 아가씨. 길을 잃은 모양인데, 우리가 집까지 데려다드릴까? 무서워하지 말고. 이래 봬도 아가씨 부모님과 잘 아는 사이거든.”
“그럴 리가 없는데.”
잘 봐줘 봐야 빚 받으러 온 불법 추심원 정도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데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릴.
“실은 우리가 아가씨 어머니와 잘 아는 사이라니까?”
‘아니, 이 시대에 웬 보이스피싱……?’
과연 친인척을 빙자한 사기의 역사가 길다 하겠다.
하지만 사기를 당하기에는 내 외가 쪽 가계가 전멸 상태였다. 오죽하면 숙의까지 올랐는데도 찾는 이가 없고, 장례를 치를 때도 종친 중 하나가 빈소를 차릴 집을 빌려주기까지 했을 정도였다.
“우리 엄마는 오래전에 돌아가셨는데.”
“어, 그, 그래?”
“친척도 하나도 없는 천애 고아셨다고 했는데…….”
“그렇구나…….”
건들거리던 장정들은 갑자기 기가 죽은 듯 약간 시무룩해졌다.
그러더니 자기들끼리 뭔가 쑥덕거리며 의견을 나누는 듯했다.
이대로 지나쳐 가야 하나, 아니면 말을 돌려 도망가야 하나 잠시 고민하는데 의견이 일치된 듯 사내들이 다시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 우리가 실은 아가씨 어머니의 옛 친구들이야.”
“그런데 사실 우리가 지금 사정이 좋지 않아서 그런데, 혹시 아가씨가 가진 것들 중에 돈이 될 만한 걸 좀 우리에게 나눠 주면 어떨까.”
본격적인 삥뜯기였다.
하지만 내가 가진 거? 안타깝지만 주고 싶어도 딱히 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걸음마 시절부터 늘 수발드는 사람이 있으니 나는 그런 걸 들고 다닐 필요가 없었으니까.
심지어 오늘은 아까 수천에게 다 털어 주기까지 했고.
“죄송해요. 아까 엄마는 어릴 적 돌아가시고, 아빠도 사고로 못 만나게 되고, 집이 망해서 누나랑도 헤어진 애가 있어서 걔한테 다 줬는데…….”
“…….”
내 말에 남자들이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듯 머리가 갸우뚱 기울어졌다.
“이상한 애한테 속은 거 아냐?”
“진짠데!”
어떤 놈이 선수를 쳤다고 느꼈는지 이어지는 건달의 목소리에 좀 억울함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진실만을 말한 나는 억울했다.
“그래. 다들 진짜라고 하겠지.”
“혹시 그 아이가 빤질빤질하니 잘 생겼지 않든?”
“……그야, 잘생겼죠.”
아직 어리기는 하지만 수천의 얼굴은 객관적으로 잘생긴 얼굴이었지. 아직 어리지만 장래가 기대되는 재목이었다.
“세상에, 어린놈이 벌써부터 그런 사기를 치고 다닌다니, 쯧쯧.”
“하여간 잘생긴 놈들은 해롭다니까.”
아무래도 다들 잘생긴 남자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덕분에 어쩐지 분위기는 조금 물렁해졌다.
“그럼 혹시, 그 말이라도 내놓으면…….”
“얘는 죽은 오빠가 남겨 준 앤데…….”
“……아빠는 있는 거지?”
“새어머니도 계세요. 오빠의 친엄마는 아니지만.”
“그렇구나…….”
말하고 보니 굉장히 복잡한 콩가루 집안 같네.
어두워서 얼굴이 잘 보이진 않았지만 남자들이 이상한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 뻔해 한숨이 나왔다.
나도 생각보다 인생이 험난했구나 싶어 우울해지기도 하고.
엄마도 죽고, 아빠도 죽고, 누나랑도 헤어져 오늘부터 나보다 험난한 인생을 시작하게 된 수천을 생각하니 어쩐지 새삼 눈물이 나왔다.
“훌쩍.”
히히힝!
내가 울기 시작하자 적아가 안절부절못하며 앞에 있던 사내들을 위협했다.
“아니, 우리도 그냥 돈 될 거 조금 달라는 것뿐이었는데…….”
삥뜯으러 온 놈들이 대체 왜 당황해.
진짜 옛날 드라마 같은 데서나 나오는 동네 깡패? 양아치? 같은 건가.
“그럼 입고 있는 옷이라도 좀?”
나쁜 놈 맞네.
순간 뇌를 거치지 않고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훌쩍. 변탠가 봐…….”
“뭐, 아니야!!”
“너, 너 그런 놈이었어?”
심지어는 동료들조차 그 사내에게서 거리를 두고 뒷걸음질을 치자 남자는 아니라고 소리를 질러 댔다.
아니긴 뭐가 아냐.
내 기준으론 소아성애자는 말발굽으로 치어 죽여도 살인으론 노카운트였다.
아마 죽진 않겠지만.
심호흡을 하며 말고삐를 꼭 쥐는데 뜻밖에 뒤쪽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푸훕.”
“뭐, 누구냐!”
“거 분위기가 생각보다 험악하지 않아서 어지간하면 그냥 지나가려 했더니 안 되겠구나.”
깜깜해서 몰랐는데 내 뒤쪽에서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적아를 의식했는지 나에게서는 빙 돌아서 사내들 앞으로 다가간 사내는 나를 위협하던 양아치들보다는 조금 나이가 있는 목소리였다.
“어디서 굴러먹던 패거리 놈들인지 몰라도 저런 어린 아기씨를 겁박해 울려서야 되겠느냐?”
“거 같이 좀 먹고살자는 건데 야박하게 구시네.”
“우리도 어린아이라 난폭한 짓은 안 하고 있었는데 아저씨라면 얘기가 다르지, 안 그래?”
“그래, 확실히 어린아이보단 댁이 더- 으악?!”
퍽! 퍼퍽!
어두워서 잘 안 보이는데 아무래도 양아치들이 맞고 있는 거 같았다.
‘뭔 일이야 이거.’
어디서 갑자기 저런 고수가 튀어나왔지?
4대 1의 싸움을 거뜬히 끝낸 것으로 추정되는 아저씨는 두고 보자며 도망치는 양아치들을 웃으며 쫓아 보낸 후 손을 짝짝 털며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는 도성으로 가야 해서 남대문으로 가는 길인데, 아기씨는 어디로 가시는 길이었습니까?”
“네? 아, 저도 남대문이요.”
앗, 너무 솔직하게 말해 버렸나.
“그럼 제가 앞서갈 터이니 거리를 두고 따라오시지요. 그 말이 기세가 흉흉해서 솔직히 좀 무섭습니다.”
“아? 어, 네.”
그렇게 말하며 빠른 걸음으로 앞서 걷기 시작한 사내는 중간중간 내 상태를 살피듯 뒤를 돌아보곤 했다.
“그리고 변명을 해 두자면 저놈들도 아기씨한테 이상한 짓을 하려던 게 아니라 옷을 가져다 팔려고 했을 겁니다. 비단옷은 귀하니까요.”
“아.”
그러고 보니 나도 수천에게 팔라고 했었지.
“비단옷을 입고 말을 타고 다니는 양반가 아기씨를 잘못 상하게 할 정도로 대범한 놈들은 아닌 듯합니다만, 아기씨께서 이런 시간에 혼자 다니시면 위험합니다.”
“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에서 내리지는 않은 채 고개를 꾸벅 숙이자. 남자는 묘하게 웃었다.
“?”
“귀한 댁 아기씨께서 저 같은 것에게 고개를 숙이시니 신기해서 그렇습니다.”
“아.”
그러게. 내 고개를 숙이게 할 만한 사람이 몇 명 없는 비싼 모가진데.
어린아이답게 슬쩍 입을 막으며 고개를 저었다. 만일의 경우 도망치려면 적당히 얕보이는 편이 나았다.
“아바……지랑 오라버니가 알면 시끄러우니까, 비밀로 해 주세요.”
“하하. 알겠습니다.”
내 말이 재밌었던지 남자가 발을 멈추고 웃자 뒤따라 걷던 적아도 거리를 두고 멈춰 섰다.
“굉장히 똑똑한 말이군요.”
“적아는 똑똑해요.”
남자는 적아가 경계하는 것을 알았는지 다시 거리를 두고 걸었다.
말에게 걷어차여 뼈가 부러지느니 현명한 선택이었다.
“이름이 적아(赤鴉:붉은 까마귀라는 뜻이지만 해 속에 있는 삼족오를 부르는 말로 은유적으로는 해를 뜻한다)입니까?”
“원래는 아기라는 뜻으로 적아(赤兒)라고 지었는데 평이 안 좋아서 그냥 적아(赤鴉)로 하기로 했어요.”
“예? 하하하하.”
“처음 봤을 땐 지금보단 많이 작았단 말이에요.”
너무 적막한 것도 좋지 않아 아무 말을 던지고 있었는데 그럭저럭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왜, 밤길에 마주친 예비 범죄자에게 친근한 척 말을 걸면 상대를 사람으로 인식해서 해코지를 잘 못 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물론 아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스토커와 데이트 폭력 가해자와 사이코패스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겠지만.
‘어라, 그럼 의미 없지 않나.’
범죄자들의 인성에 기대야 한다니.
애초에 성범죄자들은 상대가 어린아이라도 여자가 자길 유혹했다고 생각한다는데 말을 걸면 더 헛소리를 하지 않나?
어차피 이 동네 법과는 상관없는 생각을 하느라 복잡한 머릿속과는 별개로 입은 적당히 스몰토크를 이어 갔다.
“적토마(赤兎馬)도 빨간 토끼잖아요.”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를 아시는군요.”
“재밌잖아요.”
결말이 너무 파격적이라 그렇지. 솔직히 오리지널 소설이었음 작가 돌 맞았다.
어느 정도 가다 보니 마침 사람이 많이 돌아다니는 길이라 여기저기 불빛이 보여 조금 마음이 놓였다. 도성이 가까워지니 남대문이 어디 있는지 찾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 말을 타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사람이 분명 아는 사람이었다.
“가이!”
“아기씨!”
내 목소리를 들은 가이가 울 듯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아무래도 송비에게 얘기를 전해 들은 모양이었다.
“보호자가 온 듯하니 저는 이만 물러갑니다.”
“응, 고마웠어요!”
주변에 빛이 생기니 방금 전까지 곁에 있던 아저씨의 얼굴이 슬쩍 보였다. 그건 아마 저쪽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하지만 다시 볼 일은 없을 테니 상관없겠지.’
가이가 이쪽으로 다가오자 적아 역시 알아서 그쪽으로 다가갔다.
“아기씨, 무탈하시옵니까?”
“응. 걱정 마.”
“저 사람은…….”
“나 도와준 좋은 사람.”
자세한 얘기를 해주면 가이가 기절할 거 같아 앞부분은 생략하고 길을 인도해 준 것만 말해 주자 가이는 한숨과 함께 가슴을 쓸어내렸다.
나는 주변을 살피고 다가가 물었다.
“잘 된 거 같아?”
“분부대로 말을 한 필 주어 보냈으니 무사히 떠났을 겁니다.”
“그래. 다행이다.”
수천은 무사히 도망친 거겠지?
“오라버니랑 같이 있던 지화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까 그 하인의 언동을 봐선 지화를 도망치게 도왔을 리는 없고.
“아기씨,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씀이지만.”
“알아, 이미 잡혔으면 내가 어쩔 수 없다는 거.”
애초에 그런 재주도 없고.
‘하지만 지화는 잡힐 거 같지 않지.’
주인공이 괜히 주인공이 아니다. 분명 잘 도망쳤을 거고, 세자도 일단은 도왔겠지.
“무사해야 할 터인데.”
“너무 마음 쓰지 마시옵소서. 아기씨.”
“응.”
아마 이렇게 도망치는 데 성공하면 다시 잡기는 어려울 거다.
아이를 기억하는 하인들을 동원해 용모파기(몽타주)를 그려 뿌린다 해도 아직 어린아이의 얼굴이니 몇 년 지나면 알아보기 힘들 테니까.
‘하지만 정말 이런 전개가 될 줄이야.’
어째서일까. 정말 귀양 간 좌의정이 뭔가를 한 걸까.
내가 고민을 하거나 말거나 적아는 가이의 뒤를 따라 남대문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아, 오라버니다.”
그리고 그 앞에선 창백한 안색의 세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