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45)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45)화(45/326)
히히힝!!
사내의 태도가 맘에 안 들었는지 적아는 앞발을 들며 거칠게 위협했다.
“그만두시는 게 좋을 거요. 성격이 보통이 아니라 주인 아니면 거칠기로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까.”
“사람을 그리 가리면 군마로 쓰기는 힘들겠군?”
옆에 있던 겸사복의 말에 사내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말을 돌보던 서리도 한마디 보탰다.
“어차피 옹주 자가께서 몹시 아끼시는 말이니 탐내셔도 소용없습니다.”
“하긴 성원 세자 저하께서 하나뿐인 누이께 남기셨다는 선물을 누가 감히 탐을 내겠나.”
그리 말하면서도 남자의 눈은 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말하면서 남의 말을 왜 그렇게 쳐다봐.
내 불편한 심기를 눈치챘는지 가이가 먼저 나섰다.
“어찌하여 옹주 자가의 말을 그리 불경스레 쳐다보고 있는 것이오?”
“옹주 자가 드셨사옵니까.”
서리가 익숙하게 고개를 숙이자 겸사복과 사내도 놀라서 마찬가지로 황급히 고개를 숙인다.
“송구하옵니다.”
“아직 질문에 답을 하지 않았소.”
“소, 소인은 성 아무개라 하옵니다.”
이름도 직책도 뭐 하나 제대로 설명하질 않았는데.
내가 눈썹을 치켜 올리자 옆에 있던 조금 익숙한 얼굴의 겸사복이 열심히 변명을 한다.
“송구하옵니다. 옹주 자가. 이자는 소인의 옛 벗이온데 곧 겸사복이 될 것이라 궁을 안내해 주고 있었사옵니다.”
“이곳은 전하의 여마(輿馬)를 관장하는 사복시이니 외인을 쉬이 들인다면 후일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할 것이네.”
“예, 옹주 자가.”
두 사람은 내 말에 그저 허리를 숙일 뿐이었다.
“그래서, 내 말에게 문제라도 있는가?”
“송구하옵니다. 훌륭한 말이라 눈이 갔을 뿐이니 괘념치 마소서.”
겸사복이라는 말이 사실인지 딱히 태도에 문제는 없어 보였으나 저 남자, 어딘지 목소리가 익숙했다.
‘궁 안에서만 지내는 내가 아는 남자라고는 거기서 거기인데.’
신경 쓰기도 귀찮아 적아에게 다가가자 두 사람은 뒷걸음으로 물러났다.
“적아. 이리 온.”
히히잉.
아까와는 달리 내 부름에 적아가 좋아하며 다가오자 사내가 슬쩍 고개를 들었다.
“적아?”
“어찌 감히 옹주 자가 앞에서 허락 없이 고개를 드는 것이오.”
“송구하옵니……다.”
가이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고개를 든 남자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가이도 남자의 목소리에 조금 당황한 듯했으나 모르는 척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사내는 대범하게 입을 열었다.
“혹 말의 이름이 붉을 적(赤)에, 갈가마귀 아(鴉)자가 아닌 아이 아(兒)자를 쓰는 적아(赤兒)이옵니까?”
순간 어제 낯선 사내와 나눴던 대화가 머리를 스쳤다.
‘어쩐지 목소리가 익숙하더라니.’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이었다.
분명 어제 그 남자였다!
하지만 그걸 티 내면 하수(下手)가 아니겠는가.
물론 어제는 내가 여러모로 심신이 지치고 고단해서 좀 허술하게 대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혼자도 아니었고.
“그걸 어찌 아시었소?”
“그것이…….”
가이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사내가 대답을 망설이고 있는 사이 나는 적아를 돌봐 주던 익숙한 서리에게 말을 걸었다.
“적아를 한 바퀴 돌게 해 주어야겠다.”
“예. 옹주 자가.”
내가 나타난 순간부터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듯 안장을 올린 서리가 마지막으로 점검을 하고 적아를 마장(馬場) 밖으로 인도했다.
산책 나가는 강아지 마냥 나를 본 순간부터 들떠 있던 적아를 몇 번 쓰다듬어 주고 그대로 말 등에 올랐다.
이미 익숙한 내 궁인들과 서리는 담담한 반면 겸사복들이 당황해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옹주 자가, 말군도 아니 입으셨는데.”
“다녀오마.”
어제도 안 입었지만 아무 말도 안 했었는데. 이러는 걸 보면 그냥 옆에 있는 겸사복들을 의식해서 하는 소리인 듯했다.
영혼 없는 잔소리를 뒤로하고 적아를 몰고 가려는데 다소 소리를 낮춘 가이의 뾰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연한 분란을 일으킬 생각은 마시오.”
나는 안 들린다, 안 들려.
아마 어제 뒷돈을 받고 적아를 몰래 꺼내 준 서리의 귀에도 아무것도 안 들릴 거다.
“역시 어제 그분이…… 아직 어리신 옹주 자가를 어찌 그리 위험한 곳에 홀로 둔 것입니까?”
“어제 일은 잊어버리는 것이 좋을 것이오.”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못 들은 척하고 적아의 상태를 살피며 말을 몰았다.
어제 많이 돌아다녀서 그런가 적아는 지치기는커녕 오히려 평소보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
조금 신경이 쓰여 적아를 담당하는 서리에게 물었다. 적아는 성격이 다소 까탈스러워서 사복시에서 가장 어린 서리 하나가 거의 전담으로 맡아 돌보고 있었다.
“적아는 성격이 활달하니 혹 여기를 답답해하지는 않는가?”
“목장으로 가지 않는 이상 어디에 있어도 여기보다 잘 지내지는 못할 것이옵니다요.”
“나중에 내가 하가(下嫁)하면 데리고 가야 할 텐데 여길 떠나면 외로워하지는 않겠는가?”
“호불호가 확고한 성정이오니, 그때 친밀해 보이는 말이 있으면 함께 청해 보심이 어떻겠사옵니까?”
저기요? 혹시 지금 적아한테 친구 없다는 말을 돌려서 하는 건가요?
우리 애가 친구가 없다니!
조금 심란한 마음으로 사복시를 한 바퀴 돌고 돌아오자 가이와 궁녀들이 익숙하게 들고 온 보따리를 건넸다.
“먹을 것을 좀 가져왔는데 들게.”
“옹주 자가께서 내리시는 것이니 감사히 받겠사옵니다.”
“적아 잘 돌봐 주고.”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서리들은 화색이 되어 보따리를 받았다.
늘 빈손으로 오지 않다 보니 서리들은 나의 방문을 저어하지 않았다. 적아를 돌보는데도 지극히 적극적이고. 아무리 궁에서 일한다 해도 왕실에서 먹는 음식을 먹어 볼 기회는 흔치 않으니까.
참고로 카스텔라는 아니다. 들어가는 재료가 비싼 것도 있지만 희소성을 지키자는 주의라.
“많이 가져왔으니까 겸사복도 벗과 함께 가져가게.”
“황송하옵니다. 옹주 자가.”
피차 괜히 아는 척해서 좋을 것도 없지만 어제 도움도 받은 것도 있으니 이 정도면 무난하려나.
시국이 좋지 않으니 너무 오래 머물러 있어도 좋을 것 없겠다 싶어 말 등에서 내려 마지막으로 적아에게 다시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적아, 나는 이만 가 볼 테니 잘 놀고 있어.”
“말을 많이 아끼십니다.”
뭐, 왜, 뭐가 문제야.
이 아저씨가 어제 좀 봤다고 묘하게 친근하게 군다.
내가 그렇게 막 말을 걸어도 되는 그런 신분이 아니거든?
‘이 아저씨는 대체 뭔데 겁이 없지.’
겸사복이라면 신분이 높은 편은 아닐 가능성도 높은데 오히려 그래서 겁이 없나.
아니면 내가 어제 너무 예의 바르게 굴어서 만만하게 보인 걸까.
그건 그것대로 곤란한데.
신분제가 엄격한 곳이니 문제가 될 일이야 만들겠냐마는 어제 꾸벅 고개 숙여 인사한 게 좀 신경 쓰이기도 하고.
‘그거 들키면 나야 조금 혼나겠지만 이 아저씨는 끌려갈 수도 있지 않나.’
원래 윗사람이 잘못했어도 아랫사람이 혼나는 게 불합리한 세상의 이치였다.
아무리 고개를 숙이고 있어도 필연적인 키 차이 때문에 나를 내려다볼 수밖에 없는 예비 겸사복은 묘하게 나를 말똥말똥 쳐다보는 듯했다.
‘궁에서 일하는 겸사복이나 내금위 같은 경우는 외모도 본다던데 이 아저씨도 키가 크네.’
왜 그리 쳐다보는 건가 싶어 물어볼까 말까 잠시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요란스러운 소리가 났다.
“무슨 일이지?”
“궐내각사 쪽인 듯하옵니다.”
사복시는 궐내각사와 가까운 편이니 그쪽에서 소란이 인다면 여기까지 들리는 것이 이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거기서 이렇게 소란을 피울 일이 있던가?
‘아, 혹시 역모…… 관련인가.’
지금 궁 안에서 이 정도로 소란스러워질 일이라고는 그 외에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나는 아직 안에 들여보내지 않은 적아의 고삐를 잡아당겨 목을 쓰다듬어 주며 괜찮다고 안심시켰다. 다들 훈련받은 말들이지만 익숙하지 않은 소란에 동요해 날뛰다 저들끼리 부딪쳐 다칠 수도 있었다.
정기적인 운동을 위해 다른 말들도 나와 있는 상태였던지라 소란이 일자 몇몇 예민한 말들이 과민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옹주 자가, 말은 소인에게 맡기시고 어서 자리를 피하시는 편이…….”
주변이 어수선해지자 예비 겸사복이라는 사내가 미간을 찌푸리며 나 대신 적아의 고삐를 붙잡으려 했다. 정작 적아는 기분 나쁜 듯 뒷걸음질까지 하며 그 손길을 피했지만.
‘말은 뒤로 잘 못 걷는다던데, 적아가 언제 저런 기술을 익혔지.’
그리고 문제는 다음 순간 일어났다.
“비켜!!”
“잡아라!!”
처음 목소리의 주인은 하급 관원이었다. 그 뒤로 비슷한 차림새의 하급 관원 몇이 따르고 있었고, 의금부 나장으로 보이는 이들이 그들을 쫓고 있었다.
누가 봐도 도망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왜 이쪽으로 오지?
“?!”
예비 겸사복이라는 말이 허언이 아니었는지, 이쪽으로 달려오던 하급 관원 하나는 예비 겸사복의 손에 잡혀 그대로 고꾸라졌다. 뒤따르듯 달려온 관원 하나는 나를 보지 못했는지 그사이에 겁도 없이 적아를 붙잡아 올라탔고,
“아.”
히이이이잉!!
“으어억!!”
다음 순간 불쾌한 듯 몸부림치는 적아의 등 위에서 요란스럽게 낙마했다.
그리고 그런 적아의 몸부림과 관원의 비명 소리, 달려오는 나장들 때문에 놀란 주변 말들 몇몇이 여기저기로 달려가고, 그 때문에 다른 말들도 놀라 날뛰기 시작했다.
“꺄아악!”
“으아아악!!”
적아는 똑똑한 아이였으므로 요령 좋게 사람을 밟지도 않고 피해서 날뛰고 있었지만 다른 말들은 아니었다.
“헉!”
적아와 땅에 떨어진 관원 때문에 시작된 소란 속에서, 마찬가지로 놀란 말 하나가 내가 있던 방향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이대로 있으면 발에 치인다! 피할 틈도 없이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리는데 누군가가 내 몸을 낚아챘다.
“!”
“옹주 자가!”
정신 차리고 보니 나는 예비 겸사복이라는 사내의 품에 안겨 있었다.
“?”
“옹주 자가, 무사하시옵니까?”
“어, 응.”
아까까지 분명 도망치고 있는 관원을 붙잡고 있었는데 어느새 나타난 건지.
덕분에 살긴 했는데 갑작스런 사태로 말들이 날뛰는 사복시 내부는 혼란스러웠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그리고 그렇게 느긋하게 있을 틈이 없었다.
“뒤, 뒤에!”
“꽉 붙잡으십시오!!”
“응!”
내 말에 놀라 뒤돌아본 사내는 그대로 몸을 굴렸다. 나는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대로 꼭 붙들고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래도 나는 시키는 대로 가만있는 게 도와주는 것 같았다.
“윽……!”
바닥을 구르고 일어나는 것과 동시에 뭔가 뚜둑, 하더니 예비 겸사복 아저씨의 입에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다쳤……? 또, 또 온다!”
“크흐윽…….”
어딜 다친 건지 신음을 흘리던 아저씨는 내 말에 다시 한번 굴러 겨우 비어 있는 마장(馬場) 쪽으로 몸을 피했다. 다행히 서리들이 진땀을 흘리며 말들을 하나씩 붙잡아 안정시킨 덕분에 사태는 조금씩 진정되고 있었다.
소음이 잦아들며 다시 조심스레 눈을 뜬 나는 상황을 파악하다 문득, 내 손이 붙들고 있던 게 옷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손에 있는 건…… 검은색의…… 실뭉치……가 아닌…… 머리카락과 비슷하지만 많이 짧은……
‘어, 혹시 이거…… 그…… 설마…… 수염……인가?’
설마 아까 이 아저씨가 몇 번인가 신음했던 게 어디 다른 데를 다친 게 아니라……?
눈동자를 굴려 머리 위를 보니, 예비 겸사복 아저씨의 턱에 수염이 뽑힌 크레이터가 선명했다.
아앗…….
“…….”
본의 아니게 은혜를 원수로 갚아 버린 나는 그냥, 그 자리에서 기절한 셈 치기로 하고 눈을 감았다.
마침 피곤하기도 했고…… 잠이 오는 것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