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49)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49)화(49/326)
“무슨 일이지?”
“아기씨, 제가 알아보고 올 터이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내가 말에서 뛰어내릴 기세로 보였는지 송비가 나를 붙잡고 있는 사이, 성윤이 후다닥 사람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어째서 알게 된 지 반나절도 안 된 둘이 이렇게 손발이 척척 맞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주변을 보니 사람들은 대부분 무심하게 지나가거나, 멀리서 힐끔힐끔 바라보기만 할 뿐 누구 하나 중재하거나 막아서는 사람은 없었다.
그야 아이들을 윽박지르고 있는 게 한 무리의 사내들인 걸 보면 누구라도 쉽게 나설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음, 좀 건달? 같은데.’
이 시대의 서민 생활에 대한 상식이 사극 외에는 없는 수준인 내가 봐도 한눈에 알 만한 관상들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놔두면 안 될 것 같았다. 웅크리고 있는 모양새를 보니 이미 폭력 행위가 있는 것 같았으니까.
“이건 훔친 돈이 아니에요! 우리가 가지고 있던 돈이라구요!”
“너희 같은 거지새끼들이 이렇게 많은 돈이 어디서 났다고!”
아, 이거 설마.
사내의 손에 아까 내가 준 엽전 뭉치가 들려 있는 것이 보였다.
돈을 돌려받기 위해 아이들이 악착같이 매달렸으나 사내들은 매몰차게 아이들을 밀쳐 냈다. 하지만 아이들도 포기하지 않았다.
“돌려줘!”
“이놈들이!”
윽박지르던 건달들의 발길질이 아이를 향했다.
그리고 그 장면을 보고 나보다 먼저 급발진해서 움직이는 존재가 있었다.
“어? 잠깐, 적아, 적아야??”
“아, 아기씨??”
히히힝!!
주변이 동요하거나 말거나, 적아는 마치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사내들을 향해 돌진했다.
하지만 나만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적아가 딱히 내 뜻대로 움직인 게 아니라는 걸.
“으아악??”
“엑, 멈춰, 멈춰, 멈춰.”
아까 아이들이 맞고 있을 때와는 달리 흥미진진해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야 그럴 수밖에.
“비켜비켜비켜!!”
“으헉? 으아아악?!”
“으엑? 잠깐만요, 형님! 아이고!”
적아는 정확하게 아이들을 피해 사내들을 향해 돌진했고, 느닷없는 교통사고에 사내들은 기겁해서 뒷걸음질 치다 저들끼리 부딪치며 뒤로 나자빠지기 시작했다.
“킥.”
“푸훕.”
아이들을 괴롭히는 게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던 탓일까, 아니면 당연하게도 평소 평판이 안 좋았던 것일까. 사람들은 말에 치여(?) 반쯤 쓰러진 듯 보이는 건달들을 아무도 걱정하지 않고 그저 다들 소리죽여 킥킥 웃을 뿐이었다.
나는 고삐를 꼭 잡은 채 일단 주인 된 도리로 일단 변명을 했다.
“미안~ 우리 말이 폭력 현장을 안 좋아해서.”
“뭐, 뭐??”
주저앉아 있으니 당연히 말에 타고 있는 나를 올려 보게 된 건달들은 내 차림새를 보고는 양반이라는 걸 깨달았는지 아까 같은 욕설을 내뱉지는 못하고 입만 뻐끔거렸다.
“위험하니까 좀 물러나 줄래? 얘가 가끔 말을 안 듣거든.”
“아, 아니 위험, 위험하지 않, 습……니까?”
“응, 그러니까 물러나라고. 말한테 잘못 밟히면 다리가 부러질 수도 있어? 물론 치료비는 줄 수 있지만 평생 다리 절며 살고 싶지는 않지?”
다리가 부러지면 다행인데 으스러지면 이 시대 의술로는 어떻게 안 되겠지?
“혀, 협박하는 거요?”
“응? 난 진실을 말한 것뿐인, 데.”
히이잉-
뭐가 또 맘에 안 들었는지 고개를 휘젓는 적아 때문에 내 말이 중간에 끊겼다.
나에게 대거리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머리를 가져다 댄 적아가 푸릉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말에 타고 있는 내 위치에서는 보이지 않아 일단 고삐를 잡아 저지했다.
“아, 안 돼. 지지야. 먹는 거 아니지?”
“히이익?!”
내 머리카락도 질겅거린 적이 있어서 한 말인데 왜 오해를 산 거 같지.
아니 설마 말이 육식 동물이라고 생각하진 않겠지. 하지만 주변 분위기를 보니 적아의 표정이 많이 안 좋은가 보다.
건달들은 반쯤 기다시피 하며 후다닥 뒤로 몸을 빼고 있었는데, 적아는 무슨 생각인지 그런 사내들을 계속 졸졸 쫓아가고 있었다.
“으악! 오, 오지 마! 아니, 오지 마십시오!!”
“내가 가는 게 아니라. 얘가 가는 거야.”
귓가에 멀리서 낄낄거리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재밌나요? 근데 저는 좀 무섭네요.
브레이크 잘 안 먹히는 차가 자율주행으로 사람을 밟으려고 하는데 대체 얘를 어떻게 해야 하나.
“자, 자, 그만하고 가자. 응?”
히잉!
적아는 조금 반항했지만 겨우 멈춰 섰고, 도미노처럼 무너져 있던 사내들은 그제서야 엉거주춤 일어나더니 내 뒤쪽에 있는 아이들에게 눈을 흘기며 도망가기 시작했다.
“어이쿠, 조심하시게.”
어디 있던 건지 사내들 중 하나와 어깨를 부딪치며 나타난 성윤이 적아의 고삐를 잡았다.
“이렇게 거친 말을 계속 타고 다녀도 괜찮으시겠습니까?”
푸릉!
성윤의 말이 맘에 들지 않았는지 적아가 다시 성난 소리를 냈지만 나는 적아의 갈기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저었다.
“위험하니 손 놓게.”
“예. 아기씨.”
적아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걸 느낀 건지 성윤이 순순히 손을 놓고 물러서자 기다렸다는 듯 송비가 다가왔다.
“아기씨, 괜찮으시옵니까?”
“응. 잠깐 고삐 좀 잡아 줘.”
“예.”
송비에게 고삐를 맡긴 나는 말에서 내려와 아이들의 상태를 살폈다.
사내들의 시야에서 벗어나고 바로 도망쳤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직도 바닥에 웅크리고 덜덜 떨고 있는 아이의 상태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나는 우선 아이가 감싸고 있던 어린아이부터 나오게 했다.
두려움 때문인가 울고 있던 어린아이는 안심했는지 내 품에서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아직 일어나지 못하는 대장 아이의 어깨 위에 조심스레 손을 얹었다.
“괜찮은 거야?”
“괘, 괜찮, 괜찮아…….”
몸을 일으키지 못하는 게 그다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그건 다른 아이들 눈에도 마찬가지였는지 주변에 있던 아이들 중 어린아이들 몇몇은 그대로 울음을 터트려 버렸다.
“흑, 으으우…….”
“야, 울, 지 마. 울지 말라고……!”
“넌 일어나지도 못하면서 무슨 기운이 있다고 소릴 질러? 괜찮아, 얘들아. 걱정하지 말고.”
엎드린 채 아득바득 소리를 질러 대던 아이는 겨우 몸을 일으켰으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게 흥분해서만이 아닌 것 같았다.
“우선 의원한테 가자.”
“그, 그런 돈…… 없어!”
“그럼 혜민서로 가든가.”
“괜……찮으니까 내버려…… 둬.”
여태 소릴 질러 대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몸을 일으켰던 아이는 일단 긴장이 풀린 건지 결국 의식을 잃고 풀썩 쓰러지고 말았다.
“어찌하시겠습니까?”
쓰러지는 아이를 붙잡은 성윤의 말에 나는 한숨과 함께 물었다.
“근처에 아는 의원 있어?”
“송구합니다. 이 근처는 저도 잘 알지 못합니다.”
“아, 그럼 혜민서로 가자.”
남대문에서 가깝……지는 않지만 말을 타고 가면 멀진 않을 터였다.
‘난 분명 그냥 옥가락지를 찾으러 나왔을 뿐인데 이게 뭔 일이람.’
그렇다고 다친 애를 그냥 두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혜민서(惠民署)는 백성들을 무료 치료해 주는 관청으로, 현대로 치면 을지로 어드메쯤에 있었다.
그리고 아이를 말에 태우고 도착한 그 혜민서는 정작 사람이 많다는 이유로 환자를 가려 받고 있었다.
“저희도 인력이 부족해서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럼 아픈 사람은 죽으란 말입니까?”
“민간 의원을 찾아가시거나 기다리시는 수밖에요.”
혜민서에서 일하는 의원은 그렇게 매정하게 말했다.
물론 사람이 많기는 했다. 현대 서울만큼은 아니더라도 한양에 인구가 밀집되어 있는 편이니 이상할 것도 없지만, 사람을 못 받을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흠.’
지금 필요한 건 혹시 뇌물일까? 하지만 다른 가능성도 하나 시험해 보고 싶어졌다.
나는 의원 앞에서 송비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천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항아님, 옹주 자가께 청하여 보면 아니 되옵니까?”
“……그…….”
합의되지 않은 상황극에 잠시 스턴이 걸린 송비를 두고 성윤이 장단을 맞춰 주었다.
“옹주 자가께서 아신다면 분명 도와주시겠지만, 이런 일로 일일이 웃전을 성가시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어찌 웃전에 대해 함부로 입에 올린단 말이냐.”
잠시 굳어 있던 송비도 곧 생각시를 대하듯 나에게 하대를 했다.
그리고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의원의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왕족을 모시는 지밀궁녀들은 품계가 어찌 되었든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존재였다.
물론 옹주를 모시는 궁녀가 무슨 힘이 있겠냐마는 지금 궁에 있는 하나뿐인 옹주가 전하와 세자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다는 건 모르는 이가 없을 테고.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허둥지둥 혜민서 안으로 뛰어 들어간 의원은 곧 우리를 안으로 인도했다.
‘역시 권력이 최고인가.’
좀 씁쓸하지만 덕분에 다친 아이들은 무사히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지만.
“아이들에게 현금을 주는 게 생각보다 위험하네.”
그럭저럭 잘 숨기고 다닐 줄 알았더니 바로 뺏기다니.
‘그렇게까지 큰돈은 아니었는데. 현대로 치면 이삼십만 원 정도 아닌가?’
그야 어린애들이 들고 다니기에 큰돈이냐면…… 맞긴 한 거 같다. 지폐가 아니니 부피도 커서 숨기기도 좋지 않고.
그것 때문에 이렇게 다치고 치료비까지 더 나간다는 게 서글펐다.
‘내가 재수 없이 거지로 태어났으면 이런 처지였으려나.’
호의호식하다 어린 나이에 독 먹고 한 큐에 저세상 가기와 추위와 배고픔에 떨며 수십 년 살기. 둘 중 하나를 택한다면 어느 쪽이 나을까.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들 하지만.’
물론 어느 쪽이든, 타고난 삶에 선택지는 없었다.
기껏해야 나보다 두어 살 정도 많아 보이는 아이는 내내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때와 달리 평온해 보였다. 오래가진 않았지만.
“헉!”
“깼네.”
나는 어리둥절해하는 아이에게 여기가 혜민서라는 사실과 대강의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고 일단 확인해야 할 사항을 물었다.
“네…… 부모님은?”
“있으나 마나 한 거 찾지 마!”
“어. 미안.”
하긴 제대로 된 부모가 있다면 아이가 동냥질을 하고 다니진 않으려나.
내가 반사적으로 사과하자 아이는 눈을 부릅떴다.
“운 좋게 태어나서 편하게 사는 주제에 누굴 동정해?”
“오, 이건 반박하지 못하겠는데.”
“아기씨!”
내 뒤에 있던 성윤과 송비가 울컥한 거 같지만 뭐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내가 좀 재수가 없어서 독까지 먹은 거지 보통은 평온하고 부유하게 잘 사니까.
‘지금도 충분히 평온하고 부유하긴 하네.’
비꼰 거 같지만 그런 걸로 화를 내기엔 나도 그리 어리지 못했다. 나는 덤덤하게 할 말을 전했다.
“다른 애들은 모두 무사하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아이가 의식을 잃고 있는 동안 성윤이 아이들 안위를 확인하고 왔는데 혜민서까지 따라왔다더라.
아마 지금도 밖에서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아이는 아까 일을 떠올렸는지 울컥한 표정으로 입술을 지그시 깨물더니 퉁명스럽게 입을 열었다.
“……돈은 뺏겼지만, 부탁받은 일은 제대로 할 거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 돈이라면 여기 있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