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61)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61)화(61/326)
나의 부름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성 겸사복은 내가 사람을 보내자 잽싸게 달려왔다.
오늘은 모처럼 비도 그치고 날이 시원했기에 밖에서 겸사복을 맞기로 했다.
“지금 나에 대한 요란스러운 소문들, 성 겸사복이 흘린 거지.”
“옹주 자가께서 걸인 아이들의 거처를 마련해 주신 일에 대해 전하께 고한 것은 소인이 맞사옵니다.”
내 앞에 무릎을 꿇은 성윤은 깔끔하게 자신의 소행임을 시인했다.
당당한 걸 보면 믿는 구석이 있나 본데.
‘그야 물론 왕이 물어봤다면 숨길 수 없겠지만.’
왕은 내 친아버지고, 나는 아직 어린아이고, 아무리 나에게 들어오는 돈이라고는 하지만 내가 쓴 금액이 적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이해하는 거랑 용납하는 거는 다른 문제였다.
“하가 후 식객 자리는 다시 생각해 보자.”
“옹주 자가,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그러게 왜 나의 안락한 나날을 방해해.
성윤은 조금 과장스럽게 고개를 숙이며 변명을 이어 갔다.
“성상께 고하기는 하였사오나 옹주 자가께서 몰래 궐 밖으로 나가신 것은 발설하지 않았사옵니다.”
흠. 정상참작을 해 달라, 이건가.
“아바마마께 말씀드린 거야 그렇다 치고, 도성에 소문낸 건?”
“도성에 소문이 파다하게 난 것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소인이 아니오라…….”
어디서 발뺌하고 있어.
성 겸사복이 변명을 늘어놓기 전에 내가 먼저 말을 끊었다.
“나는 맛있는 거도 주고 노후 보장도 약속해 주었는데 성 겸사복이 은혜를 원수로 갚았느니라.”
“소인이 어찌 옹주 자가의 뜻을 거역하겠나이까. 다만 이 일은 아무래도 감출 수가 없는 사안이었사옵니다. 걸인들의 거처를 만든다는데 인근 백성들이 누가 좋아하겠사옵니까.”
“흐음.”
아, 여기도 님비 현상은 있겠구나.
대부분이 어린아이들이지만 일단은 다들 걸인들이니 싫어할지도 모르겠네. 아이들이 많으면 확실히 시끄러울 테고.
“게다가 옹주 자가께서 내거신 조건을 거부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처음에는 생각보다 사람이 많이 모여들었기에 누가 시작한 일인지 모두 알고 싶어 하였사옵니다. 그런 와중에 아기씨께서 대신들에게 찬합을 보낸 일을 듣고 차라리 먼저 알리는 것이 낫겠다 싶었습니다.”
타이밍이 너무 늦으면 나에 대한 동정 여론을 만들기 위해 자선사업을 하는 것으로 의심받을 수 있으니 먼저 소문을 퍼트렸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나를 위해 일부러 퍼트렸다?”
“송구하오나 그렇사옵니다.”
“그런데 왜 방금 본인이 아니라고 했지?”
“그것은…….”
성윤은 조금 뜸을 들였다.
“소인이 아니라 아이들이…….”
“……아이들이?”
“아기씨를 위한 일이라고 하였더니 다들 신이 나서 소문을 내고 다녔사옵니다.”
“아니, 멋모르는 아이들에게 그런 일을 시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심려치 마시옵소서. 옹주 자가께서 걱정하실 만한 일은 없었사옵니다.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거처를 마련해 주신 분이 누군지를 묻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아이들은 사실만을 말했을 뿐이옵니다. 그리고 그런 옹주 자가의 일이니 다들 당연히 좋은 말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걸인 아이들을 거두어 거처를 만들어 준 일은 선행(善行)이니, 껄끄러워하는 인근 주민들 외에는 다들 별 거부감 없이 좋은 일이라 칭송하는 것이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는구나.”
“소인이 시키는 일만 했다면 이렇게 살아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옵니다.”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더 물고 늘어지기도 그랬다.
게다가 말하는 게 틀린 것은 없었다. 시키지도 않은 짓을 했다는 게 걸리긴 하지만 나에게 해가 될 만한 일은 한 것은 아니었다.
‘나에 대한 여론이 생각보다 좋았던 게 그냥 우연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는데.’
어린 나이에 일찍 생모를 잃은 옹주가, 부모 없는 고아들을 도우려 한다는데 그런 이를 누가 욕하겠는가.
게다가 나에 대해 잘 모르던 일반 백성들도 일단 그런 정보를 접한 후에 내가 보낸 찬합에 대해 들었다면 아마 대부분 부정적이기보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을 거다.
‘일부러?’
나는 미심쩍은 눈으로 성윤을 응시했다.
보통 이런 사람을 일 잘하는 부하라고도 부른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기분 나쁘다고 일찍 잘라 버릴 수도 있고.
하지만 나한테는 적당히 필요한 인재상이다.
‘다만 나한테 이렇게 성심을 다해 잘해 주는 이유를 모르겠는데.’
내가, 정말 줄 수 있는 게 없거든?
어차피 이미 벌여 놓은 일이고 딱히 믿고 맡길 사람도 없으니 이제 와 그만두라고 할 수도 없다.
사실 거처 마련해서 애들 데려다 놓고 관리하게 만드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었고.
“그래서 그곳 분위기는 어때?”
“옹주 자가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리니 주변에서 감히 함부로 대하지 않았사옵니다.”
그럼 그전까지는 함부로 대했다는 뜻 아냐.
사실 나도 조금 유난스럽게 진행한 점이 있어 이 일이 조용히 넘어갈 수 있을까 조금 의문이긴 했었다.
‘이 시대 기준으로는 이상한 사람이지.’
내가 한 일이 제법 화제가 된 이유 중에는 걸인 아이들에게 거처를 제공하며 내건 조건이 특이해서도 있을 것 같았다.
[첫 번째, 여름에는 물을 반드시 끓여 먹을 것.두 번째, 겨울철 외에는 7일에 1번은 깨끗한 물로 몸을 씻을 것.
세 번째, 모두 힘을 합쳐 일정량의 땔감을 공수해 올 것.
네 번째, 거처에서는 싸우지 말 것.
다섯 번째, 위법행위-나쁜 짓은 하지 말 것.
여섯 번째, 가르치는 것들은 모두 배우고 익힐 것.
일곱 번째…….]
대충 이런 식으로 특히 위생에 대해선 까다로웠다.
게다가 일정 나이 이상이 되면 반드시 땔감을 구하든 뭘 하든 돈을 벌어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이거 어쩌다 보니 고아원…… 아니, 보육원을 만든 것 같은데.’
마찬가지로 거처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성인들도 제법 있었던 것 같은데 조건 몇 가지만 듣고 모두 그만뒀다고.
사실 내가 저 조건들을 문서화해 수결(手決:자필서명)……은 글을 모르니 어렵고 대신 지장(指掌:손도장)을 요구했으니 성인들은 거부감이 있을 만했다.
거지 처지에 그런 걸 가릴 때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먹고살기 힘들면 자매(自賣), 스스로를 노비로 파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는 세상인데 좀 굶더라도 거지로 살겠다던 사람들이다 보니.
그래서 내가 마련한 거처에 있는 건 대부분 부모가 없는 어린아이들이나 병자와 여자들이라고 했다. 주변의 의원을 수소문해 병자들을 돌봐 주도록 했더니 아픈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었다더라.
‘날 아는 애들이야 날 믿고 그냥 들어온 것 같고, 그 외에는 가까운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간다니까 그대로 따라온 애들이 많은 것 같은데…… 앞으로는 의심하라고 가르쳐야지.’
성윤이 내가 준 돈으로 옛 동료들 몇몇을 고용해 관리해 주고 있어 난동 부릴 걱정은 덜었다.
‘거기에 애들을 교육해 줄 사람도 고용하고 싶은데.’
생각해 둔 인선은 대충 있었으나 그 사람들이 해 줄지는 모를 일이었다.
어쨌든 내 비행을 아는 사람을 더 늘릴 수도 없고, 나를 위해 한 일인 것은 확실해 보여서 화를 내기도 애매했다.
“말해 두겠지만, 나는 내가 모르는 곳에서 일을 꾸미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
누구나 싫어할 거 같지만.
“송구하옵니다. 옹주 자가. 하오나 소인이 어찌 부르심도 없이 옹주 자가를 찾아 뵈올 수 있겠사옵니까.”
말은 잘한다.
원칙적으로는 그렇겠지만 내궁을 드나드는 인원이 한둘이 아니니 방법을 강구한다면 내 처소 나인에게 소식을 전하는 게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쉬운 예로 적아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나나 내 궁인이 사복시에 자주 드나든다는 걸 모를 리가 없었고.
무엇보다 그 정도 요령도 없는 사람이 밀정 같은 일을 할 수 있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애초에 왜 그렇게 내 일에 솔선수범하는데.’
세자한테 잘 보이려 하는 것이라면 이해라도 가지.
나는 아직도 정중하게 용서를 구하고 있는 성 겸사복을 복잡한 눈으로 응시했다.
혹시 만에 하나라도 내 곁에 있다 세자의 눈에도 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라면 불쌍하지만 본인이 그렇게 말한 것도 아니고, 나중에 후회해도 어쩌겠는가. 알아서 하겠지.
이제 와서 이런 돈 안 되는 일을 시킬 마땅한 사람도 달리 없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옹주 자가.”
“그래, 일하는 거 봐서.”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진지한 대화가 적당히 끝날 무렵 송비가 소반을 들고 들어왔다.
고소한 냄새에 겸사복의 고개가 절로 돌아갔다.
“왔으니 간식은 좀 먹고 가.”
“전과는 다른 냄새이옵니다.”
“음, 신작이야. 거부하시는 분도 계시지만.”
오늘도 대비가 거부했다지. 아까워라.
냄새만으로도 고소해서 대비전 궁인들이 침을 꿀꺽꿀꺽 삼킨다던데.
내 말을 들은 성윤은 어디서 소문이라도 들은 게 있는지 뭔가 깨달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
“먹어 봐.”
그렇게 말하며 나는 먼저 젓가락을 들었다.
성윤의 눈이 벌써 음식을 보며 기대에 차 웃고 있는 것을 보니 먹이는 보람이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형태가 깔끔하지는 않지만 노랗게 물들어 윤기가 반지르르 흐르는 따끈따끈한 빵 조각을 입 안에 넣었다.
계란물을 입힌 촉촉한 빵조각이 입 안에서 스르륵 녹았다.
‘이것도 약간 실패작이지만 이렇게 해 먹으면 맛있지.’
그래도 송비의 솜씨가 점점 좋아지고 있었다.
이제 내버려 두면 혼자 뭔가 만들어 내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 밀가루만 더 풍족하면 이것저것 해 볼 텐데 모험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프렌치토스트를 먹으면서 앞을 보니 한 조각 입에 넣은 성윤이 광대를 씰룩이고 있었다.
“계란밀떡도 맛있었지만 이것도 참으로 맛있습니다!”
“다행이네. 근데 만들기 힘들어서 이건 많이 안 만들려고.”
“만드는 것이 까다롭습니까?”
“까다롭기도 한데…… 조금 힘들기도 하고.”
그 밀가루 반죽이란 놈들이…… 기온과 습도를 타지 말입니다.
내가 그걸 잊어먹긴 했는데, 온도계도 습도계도 없으니 솔직히 이건 기억하고 있었어도 쓸 수가 없다.
물론 빵 반죽도 힘들고, 거기다 숙성도 해야 한다.
정작 나는 가끔 못해 먹겠다고 포기하고 싶은데 옆에 있던 송비는 몇 번 하더니 뭔가 깨달음을 얻은 얼굴을 하더라.
뭔데. 뭘 깨달은 건데.
본인이 재밌어하니 그나마 다행이다만.
“혹 힘쓰는 일이 필요할 때는 소인을 불러 주십시오.”
“……그러지 말고 가서 일해.”
체탐인 시절 받은 돈이 많다 보니 봉록이 아쉽지 않은 것 같다만 그래도 일은 하자. 겸사복.
내가 칼같이 거절하자 내온 음식들을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운 성 겸사복이 아쉬운 얼굴을 했다.
프렌치토스트가 꽤 맛있었나 보다. 하긴 처소 궁녀들도 하나같이 고개를 흔들며 좋아했지.
지난번 일 이후 중궁전에도 갖다 바쳤는데 중전은 솔직하게 기뻐하며 드셨다. 대비는 여전히 거부하고 계시고.
‘신경이 안 쓰이는 건 아니지만, 어차피 왕과 세자가 건재한 동안은 나를 공격하기 어렵기도 하고.’
아무래도 내가 독을 먹고 쓰러진 일은 아마 앞으로도 계속 까방권으로 쓸 수 있을 것 같다.
세자는 질색하겠지만.
그리고 떠올리기가 무섭게 당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 겸사복이 이런 곳에 있다니 신기한 일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