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62)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62)화(62/326)
“세자 저하께서 어인 일이십니까?”
“오라비가 하나뿐인 누이를 찾는데 이유가 필요하더냐.”
“요즘에는 다망하시어 이유가 있을 때에만 찾아오시지 않으셨사옵니까.”
“어허, 그래서 오라비가 온 것이 맘에 들지 않는 것이냐.”
“생각해 볼 일이지요.”
대화만 들으면 어떨지 몰라도 나도 세자도 웃고 있었기에 주변에 서 있던 궁녀들이나 세자를 따라온 궁인들도 편안한 표정이었다.
세자는 성 겸사복과 내가 먹고 있는 과자를 힐끔 내려다보며 투덜거렸다.
“요새 오라비에게는 찾아오지도 않더니 성 겸사복에게만 이리 맛있는 걸 주고 있었다니.”
“소녀의 오라버니는 재미가 없는 걸 어찌하겠사옵니까. 저하.”
“겸사복의 이야기가 재미있는가 보구나.”
“그럼요. 마침 잘되었습니다. 성 겸사복이 일하기 싫어하는 듯하니 오라버니께서 데려가시지요.”
“과자는 아니 줄 것이냐?”
“어찌 일국의 세자 저하께 다 식은 것을 드리겠습니까?”
나는 그리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자의 목소리가 들린 순간 당황해 일어났던 성윤은 나를 따라 자리를 피하려 했으나 나는 뒤를 돌아보며 슬쩍 고개를 저었다.
“모처럼이니 오라버니의 궁인들도 조금 쉬었다 가라 하시지요. 송비, 간단한 다과를 준비해 줘.”
“예, 옹주 자가.”
나는 누가 말 붙일 틈이 없이 후다닥 말을 쏟아 냈다.
“오라버니 것도 지금 만들어 올 터이니 잠시만 기다리시지요. 성 겸사복은 잠시 세자 저하의 말벗이라도 해 드리게.”
“예, 예. 옹주 자가.”
내가 자리를 떠나며 세자의 뒤를 따라온 궁인들까지 우르르 몰아내자 순식간에 주변이 조용해졌다.
남은 것은 늘 세자의 뒤를 따르는 송 내관뿐이다.
나는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나인들을 불러 아무도 오지 못하도록 단속했다.
나 역시 곁에 건물 모퉁이를 돌아 서 있으니 세자와 겸사복에게는 내 모습도 보이지 않을 터.
궁녀들은 내 지시대로 만들어 둔 다과를 대접하고 있을 테고, 송비가 토스트를 만들어 가져올 때까지 잠시 이곳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곧 세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옹주가 혹 자네를 괴롭히지는 않는가?”
“옹주 자가께서 그럴 리가 있겠사옵니까.”
“솔직하게 말해 보게.”
세자의 장난기 섞인 짓궂은 목소리에도 성 겸사복은 결코 방심하지 않았다.
“옹주 자가께서 소인을 찾으실 적에 결코 빈 상으로 맞아주시는 일이 없으시니 멀쩡히 혀가 있는 자라면 어느 누가 옹주 자가의 부르심을 기뻐하지 않겠사옵니까.”
“어찌 된 여유인지 알 것 같군. 궁 안에 옹주의 음식에 빠진 사람이 한둘이 아니니, 자네도 그리 빠진 것이겠지. 옹주가 혹 못살게 굴거든 언제든 내게 말하게.”
세자야, 나한테 불만 있니…….
앞으로 반쯤 탄 식빵 꼬투리만 먹여 줄까?
기특하게도 누구랑 달리 성 겸사복은 그간 잘 먹인 보람을 느끼게 했다.
“옹주 자가께서는 심성이 곧고 정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호기심은 많고 겁은 없지. 혹여나 엉뚱한 짓을 하지 않게 자네가 잘 지켜 주게.”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세자 저하.”
그럭저럭 공통 소재인 나를 화제로 둔 스몰토크가 끝나고 대화는 본론에 들어갔다.
“자네는 혹…… 김선익 대감에 대해서 아는 것이 있는가.”
세자의 말에 성 겸사복은 동요하지 않았다.
“소인은 그저 국경을 넘어 다닐 뿐이니 대감과는 그리 연이 깊이 닿아 있지 않사옵니다.”
“아니, 내가 질문을 잘못했구나. 이미 역도로 몰린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이 있냐고 물었으니 말이야.”
세자가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모르는 바가 아닐 성 겸사복 역시 직설적으로 답했다.
“소인도 김선익 대감의 영애께서 세자빈 후보에 올랐다는 소문은 들은 바가 있사옵니다.”
“함경도에까지 이미 말이 퍼졌던가?”
“소인의 소임이 정보 수집이었기에 조금 들은 바가 있을 뿐이옵니다.”
“김선익 대감은 어떤 인물이었는가? 한양에서 건너건너 듣는 말과 그곳에서 직접 대감을 겪은 이들의 말이 같은지 궁금한 것뿐이네.”
“소인이 알고 있는 한은 병영 내에서도 대감에 대한 병사들의 신망이 높았던 것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하지만 역모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사옵니다.”
“그런가…….”
세자의 낙심한 목소리가 들렸다.
모르는 바는 아닐 거다. 김선익 대감의 역모 가담을 가장 믿고 싶지 않아 했던 인물은 세자보다도 부왕이었을 테니 그에 대해 조사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김선익 대감의 휘하에 있던 이들이 김선익 대감이 역모에 가담했다는 증거를 가져왔다네.”
“그들이 대감을 음해할 이유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전하께서 가장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런가.”
“소인이 주제넘게 한 말씀 올리는 것을 허락해 주시겠사옵니까.”
“말해 보게.”
“설령 김선익 대감이 역모에 가담했다는 것이 사실이라 해도, 세자 저하께 따라붙은 불미스러운 소문 따위를 이유로 그런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고맙네.”
나는 슬슬 마무리되어 가는 대화를 들으면서, 멀리서 소반을 든 채 주춤거리며 다가오는 송비를 발견하고 괜찮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성 겸사복을 만나게 해 달라더니 이유가 그거였군.’
나를 통해 물어보는 게 더 나았을 텐데 직접 확인하고 싶었나.
아니, 역당에 대해 묻는 것이니 나를 배제하려고 한 건가.
‘하지만 이게 더 성가시지 않나.’
뭐 본인이 하겠다는데 어쩌겠냐마는 그것 때문에 사람을 이렇게 귀찮게 하는 것도 좀.
하긴 아무리 소설에서 묘사는 생략된다곤 하지만 여주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남주는 역시 매력 없었다.
나는 마치 내가 직접 음식을 만들어 온 양 앞장서 두 사람 앞으로 다가갔다.
“저하께서 혹 내가 없는 사이 성 겸사복을 괴롭히지는 않으셨는가?”
“아니옵니다. 옹주 자가.”
“혹 세자 저하께서 괴롭히면 꼭 나에게 말해야 한다.”
“예, 옹주 자가. 소인은 옹주 자가만 믿겠사옵니다.”
성윤이 능청스레 대답하자 세자가 뚱한 얼굴을 했다.
“나는 옹주가 만들어 주는 음식이 가장 맛있다는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어찌 오라비에게 이리 차가운지 모르겠구나.”
웃기고 있네.
나를 따라온 송비가 세자 앞에 소반을 내려놓고 뒤로 물러났다.
“자, 드시지요.”
“흠. 이게 이번에 새로 만들었다는 그 과자로구나. 어마마마와 할마마마께만 올리고 이 오라비가 가장 뒷전이라니.”
“중전마마와 대비마마께서는 부드러운 음식을 좋아하시니까요.”
너도 하도 밥 잘 안 챙겨 먹고 일만 해서 유동식 먹여야 하는 거 아닌가 고민된다만…… 아직 젊으니 괜찮겠지.
“그런데 대비마마께서 드셨나요?”
“흠. 오늘 문안 갔을 때 머리맡에 두신 걸 보았으니 몰래 드시는 것이 아닌가 싶더구나.”
호오. 그렇단 말이지.
“아직도 네 문안은 거부하고 계신다고 들었다. 너에게는 미안하구나.”
“세자 저하께서 대비마마와 척지는 것보다는 나을걸요.”
대비는 아직도 화를 풀지 않고 있었다.
세자는 이 일의 시작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으므로 나에게 퍽 미안해하는 모습이었다.
‘하여간 죄지은 사람이 더 웃어른이면 무조건 아랫사람이 나쁜 거지.’
사실 대비가 계속 저러니까 대비전 앞에 돗자리 펴놓고 석고대죄하며 용서를 빌어야 하나 고민했었다. 물론 준비단계에서 이미 왕과 세자의 귀에 들어가서 석고대죄는커녕 처소에 감금당할 뻔했지만.
대신 중전한테 다시 한번 혼나는 걸로 끝났는데, 대비는 아직 문안을 거부 중이어서 그냥 불효 중이었다.
‘나 너무 대충 살고 있지 않나…….’
유교 국가에서 이래도 되나 싶은데 어느 동네나 아픈 아이에게는 관대한 법 아니겠는가.
아마 둘 중 누가 잘못했냐고 물으면 유학자란 놈들을 다들 내가 잘못했다고 할 거 같지만 그렇다고 나에게 석고대죄를 하라고는 할 수 없을 거다.
그래도 내가 보낸 간식은 또 몰래 드시고 계시다니 좋은 신호였다.
“맛이 있구나. 그래, 이것이 이름은 또 무어라 지었느냐?”
“식빵입니다.”
“……뭐라고?”
“식빵이요.”
“……혹시 나한테 욕하는 건 아니지?”
“네?”
아니, 어쩌다 저런 생각을?
‘대체 어떤 놈이 구중궁궐에서 순수배양으로 자란 우리 세자한테 비속어를 가르쳤어?’
나는 모르는 척 동요를 감추며 고개를 저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지만 먹을 식(食)에 잘 부풀어서 빵빵하니 빵이라고 지은 겁니다.”
적당히 둘러댔는데 내가 들어도 좀 그럴듯했다.
세자는 미심쩍은 얼굴이었지만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도 탱글이보단 낫구나.”
“맘에 안 들면 드시지 않아도 괜찮사옵니다.”
“아니다. 먹을 거다.”
정색하며 접시를 사수하는 걸 보니 맛있나 보군.
“그러고 보니 이번 일들 때문에 세자빈 간택도 미뤄지게 될 모양이다.”
“응. 그렇겠지요.”
역모 때문에 제법 피를 보기도 했고, 연루된 사람이 많으니 아마 후보부터 다시 정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 뽑는 게 세자에게 좋을 거 같지도 않았고.
그런데 세자는 나에게 뜻밖의 말을 했다.
“덕분에 부마를 고르는 일까지 계속 미뤄지게 되었으니 미안하구나.”
“딱히 일찍 하가하고 싶지는 않은데요.”
“하지만 본디 좋은 집안 괜찮은 자제들은 일찍 혼약을 맺는 법이 아니겠느냐.”
네가 지금 남 말할 처지가 아니야.
원래 세자빈은 세자보다 살짝 연상인 경우가 많은데, 이는 왕손을 일찍 보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우리 세자는 잘못하면 본인보다 어린 세자빈을 맞을지도 몰랐다.
‘아니, 그런데 그러면 여주는 어떻게 되는 거지.’
이미 원작하고 얘기가 많이 바뀐 건 알겠는데, 설마 둘이 안 이어지지는 않겠지?
하지만 둘이 이어지게 되면 세자빈은 어떡하지.
아무리 왕이 후궁 들이는 게 당연하다고 해도 정서가 좀 안 맞을……려나?
원작에선 남주가 여주와 재회할 때까지 미혼이지 않았나? 분명 세자빈은 없었는데.
나는 오랜만에 기억을 더듬으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땐 더 어린 자제들이 남아 있겠지요.”
“…….”
세자가 떨떠름한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아니, 지금 여덟 살인 나를 설마 뭘로 보고??
아, 왜. 원래 조선 시대에는 당파랑 집안끼리 급을 맞추다 보니 짝을 못 찾아서 여자 쪽이 훨씬 연상인 경우도 있었다고.
세자의 떨떠름한 시선에 짜증 섞인 눈빛을 보내자 내 시선을 애써 피하던 세자는 또 뜻밖의 말을 꺼냈다.
“사실 아바마마께서 일전에 조정에서 네가 한 일을 언급하신 것도 그 때문이란다.”
“?”
내가 걸인들을 위해 거처를 만든 걸 말하는 건가? 그게 왜?
세자는 내가 영문을 몰라 하는 게 재밌는지 싱글싱글 웃으며 내 소리 없는 질문에 답했다.
“네가 이리 총명하며, 전하의 총애를 받고 있으니 사윗감으로 나서고 싶은 집안으로 알아서 처신하라는 뜻이란다.”
“?!”
“내가 세자빈을 맞아들이기 전까지는 너도 혼인하기 어려울 수도 있으니 눈치를 주신 게지.”
나는 뜻밖의 정보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게 그런 의도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