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68)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68)화(68/326)
얼마 전 내가 던진 불씨로 쓸려 나간 무단 결근자들은 대부분이 하급 관원들이었다.
듣기로는 위로 올라갈 야심이 있는 사람일수록 열심히 출근 도장을 찍는 데다 출세하기 좋은 부서일수록 일도 많다고.
아무튼 파직된 이들 중에는 반란과 관련해 공을 세운 공신들의 가문 사람들도 섞여 있어 다소 불만을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이에 관해 몇몇 대신들이 꿍얼거리자, 부왕은 이제 정리된 반정 관련 논공행상(論功行賞)에 대한 논의로 은근슬쩍 말을 바꿨다고.
반역이 진압되면 역적들의 재산은 몰수된다.
그리고 반란을 막는 데에 공을 세운 공신들에게 상을 줄 때 그 몰수한 재산을 나눠 주는 법이었다.
왕은 공신들에게 상을 내리며, 공신의 자손들에게는 은전(恩典)을 베풀어 이번에 한해 파직을 면하게 해 주는 것에 대해 신하들에게 하문하였다. 공신이라고 수가 많은 것이 아니다 보니 파직된 공신의 자손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결국에는 공신들과 그렇지 않은 대신들 간에 언쟁이 붙었다.
결론적으로는 반년간 녹봉을 주지 않는 것으로 타협하며 일단 이번에는 넘어가지만 앞으로는 더 빡빡하게 점검하겠다는 정도로 마무리 짓고 넘어갔다. 그리고 그에 이어서 사실 하급 관원들은 매일 출근해서 5~6시진(10~12시간)이나 일하지 않아도 되는 게 아니냐는 의견과 그렇게 한가한 부서는 인원을 감축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이야기로 흘러갔다고 한다.
그리고 그 화제에 집중하다 보니 보통 공신들에게 포상으로 나눠 주는 노비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나 불만이 없이 지나갔다.
조선에서는 반역(反逆)을 모의하다 걸리면 삼족(三族)을 멸한다.
삼족이란 본인을 기준으로 외가(外家), 친가(親家), 처가(妻家)를 말하는데 주로 남자들은 처형당하고 여자와 어린아이들은 노비가 된다.
본래는 공신들에게 상으로 내려 주는데 이번에는 그들에게 노비를 나누어 주지 않았으니 다 그냥 공노비가 된 셈이었다. 물론 역당의 집안에서 부리던 노비들도 함께.
‘본격적으로 난을 일으키기 전에 적발된 것이라 공신도 그리 많지 않았지.’
그리고 내가 알기로 부왕은 사노비를 이 이상 늘리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공노비는 결국 나라에서 써야 하는데 이미 있는 인원들로 잘 돌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사람을 추가 배분하는 것도 썩 귀찮은 일이었다.
“세자는 노비들을 어찌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느냐.”
“국가에서 필요한 곳에 쓰는 것이 온당하지 않겠사옵니까.”
내가 만들어 온 푸딩, 아니 세자의 반발로 결국 연란고(軟卵固)라는 이름으로 개명하게 된 음식을 앞에 둔 두 사람은 심각한 대화를 나눴다.
역모로 노비가 된 자들이 많으나, 군으로 보내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이들도 많았다.
그리고 처음 나왔을 때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푸딩을 안타깝게 쳐다보던 나는 두 사람 사이에 말이 끊기자 아무 생각 없이 한 마디씩 던졌다.
예전에 직업군인에 대해 얘기했던 것이 떠올랐던 탓이었다.
“기존에 있던 공노비들을 일정 기간 군 복무를 하면 면천(免賤:천민의 신분에서 벗어나 양인이 되는 것.)토록 하는 것은 어떻겠사옵니까. 그들이 있던 자리를 새 노비들로 채우면 되지 않겠사옵니까?”
“흐음.”
“몇 년 더 기간을 채우면 가족들도 면천할 수 있다고 하면 나쁘지 않을 듯하옵니다.”
그렇게 수년 구르면 직업군인이지.
면천에 시끄러운 할아버지들 납득시키기도 좋고.
“아니면 그냥 노역(奴役)을 시키는 것은 아니 되옵니까?”
“노역이라, 네가 노역이 무엇인지 아느냐.”
“토목사업이나, 광산, 염전 같은 곳들은 지금 자리가 없어도 얼마든지 새로 일자리를 만들 수 있지 않사옵니까?”
내가 말했지만 왜 다 채찍질 당할 거 같은 이미지람.
“그래, 광산이라.”
“?”
“시아가 참으로 영특하구나.”
“황공하옵니다. 아바마마.”
나중에 세자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부왕은 내 첫 번째 의견이 마음에 들었던지 나중에 좀 더 논리적으로 보완해서 제도로 썼다고 들었다.
그리고 그냥 넘어간 줄 알았던 두 번째 의견 역시 나중에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여졌다.
지금 있는 광산들 외에도 광맥이 있다고 의심되는 곳들을 개발하며, 광부로 일할 이들을 모집했다. 힘은 들지만 민가에서 찾기 전에 먼저 나랑 비슷한 시기에 문을 연 구호소에 있는 걸인들을 채용했다고.
광맥(鑛脈)을 찾아 규모를 키울 생각이라는 걸 보니 이 기회에 실업자 수를 줄일 모양이었다.
광산 개발은 예전에도 몇 번 시도했던 일인데 대신들이 지금 있는 광산으로도 충분한데 사치를 조장할 수 있다며 반대했었다고 한다.
‘하긴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때 여기저기에 다 뜯겼던 걸 생각하면 그냥 지금 파서 쓰는 게 나을 거 같지.’
앞날이 어찌될지 모르는데 아끼느니 지금 나라 재정에 보태는 게 낫겠지.
그리고 듣기로는 아무래도 은광 개발과 연은분리법(鉛銀分離法:납과 은의 녹는점 차이를 이용해 은을 추출해 내는 기술. 연산군 때 발명되었으나 조선에서는 제대로 활용되지 못했다.)이 사장되지 않고 이어져 온 모양이었다.
‘아. 생각보다 화폐 경제가 발달한 것도 그 때문인가.’
다행히 국가 기밀로 잘 유지되고 있는 것 같은데, 또 누가 일본에 유출시킬지는 모를 일이었다.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듯하니 전보다야 오래 가겠다만.
아무튼 그 일은 그렇게 넘어가는 건가 했는데, 부왕은 얼마 후 나에게 뜻밖의 상을 내렸다.
“시영원에?”
“예, 옹주 자가.”
시영원에서 부리라며 이번에 노비가 된 이들 중 일부를 나에게 내려 주었다고.
나한테……?
대체……? 왜……?
의아해하는 나에게 민심을 수습한 공이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어……. 그게, 그렇게 되나?’
원래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이 나면 민심도 좀 요동치고 분위기가 흉흉해지고 그러는 법인데, 내가 공교롭게도 시기적절하게 걸인들을 돌보면서 분위기가 훈훈해졌다고.
거기에 찬합을 보낸 일로 과거사가 밝혀지며 나나 왕에 대한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아무튼 이유는 그렇다 치고.
내 사가가 들어설 자리의 건물 철거도 아직이었고, 궁에서만 지내는 나에게는 시중들어 주는 궁녀도 잔뜩 있으니 노비는 딱히 필요 없었다.
그러니까 이건, 시영원에서 일손으로 쓰라는 뜻인 듯했다.
‘월급 안 줘도 되는 노동력이라고 하면 듣기는 좋지만 좀 찜찜하군.’
듣기로는 여자와 어린아이, 노약자가 많다고 하니 나에게 반쯤 떠넘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생각해 보면 다른 데 가는 거보다야 그냥 내가 데리고 있는 게 마음 편한 일이었다.
처소로 돌아가 알리자, 내 살림살이를 관리하고 있는 가이는 약간 질린 얼굴을 했지만 군말 없이 노비 명단을 받았다.
“아무래도 양반가 부인과 아가씨였던 이들이 많은 듯합니다.”
“으음.”
순간 지화가 도망치지 않았어도 괜찮았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꼭 내 노비가 되었으리라는 법은 없겠다 싶어 얼른 부정했다.
게다가 공식 신분이 대놓고 역당의 여식인 노비 신세면 세자와의 로맨스에 애로 사항이 꽃핀다.
이 소설은 그런 장르가 아니었다.
아마도.
“양반가 여인들인데 글을 알겠지?”
“반가의 여인들 중에는 학식이 높은 경우도 드물지만 있다고 듣기는 했습니다만, 너무 기대하지 않으시는 것이 좋을 듯하옵니다.”
“음. 그래도 언문 정도는 알겠지?”
“그럴 것이옵니다.”
“그럼 일단…… 직접 가서 분류를 하자.”
“예?”
***
그렇게 이번에도 나는 몰래 궁을 빠져나오게 되었다.
어차피 사가가 완성되면 그쪽도 오갈 거니까 괜찮지 않겠냐고 했지만 가이는 못마땅한 얼굴을 했다. 이번에도 동행한 성 겸사복은 그저 허허 웃을 뿐이었다.
“분위기는 어때?”
“다들 당혹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저희 같은 이들이 어디 사람을 부려 본 적이 있겠습니까.”
성 겸사복의 말대로 다들 갑자기 생긴 노비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고.
물론 그건 아이들도 마찬가지라 서로 쭈뼛쭈뼛 꾸벅꾸벅 어색하게 거리를 두고 집안일만 하고 있단다.
“그래도 민 상궁 마마님께서 계셔서 다행입니다.”
“경력직 관리자가 있다는 건 좋은 일이지.”
그 와중에 민 상궁만이 도착한 노비들의 숙소를 정해 주고 할 일을 정해 주며 바쁘게 보내고 있다고.
역시 월급 주는 보람이 있었다.
“아니, 이건 내가 할게…….”
“아, 아닙니다. 소인이 하겠습니다.”
“그냥 내가 하면 안 될까?”
내가 시영원에 도착하자 마주한 풍경은 그런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양반이었다 보니 뽀얀 얼굴의 노비와, 아직도 거리의 때가 남아서 조금 꼬질꼬질한 아이 하나가 빨랫감을 두고 서로 자기가 빨래를 하겠다고 어색하게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싸우거나 박대하는 것보다야 낫지.’
나는 웃으며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아이들도 집안일을 배우는 것이니 다 해 줄 필요까지는 없다.”
“!”
갑자기 들려온 내 목소리에 깜짝 놀라 몸을 일으킨 이들은 노비들이었고, 표정이 밝아진 이들은 원래 이곳에서 지내던 아이들이었다.
“집주인 언니다!”
저 타이틀은 아직 건재하구나.
내가 누군지 모르는 이들도 민 상궁이 나와서 나에게 인사를 하는 것을 보고는 대충 감을 잡은 듯 얼굴에 긴장한 기운이 역력했다.
“아기씨. 오셨사옵니까.”
“응. 갑작스럽게 사람이 늘어서 민 상궁이 당황했겠네.”
나는 일단 새로 온 사람들을 데려오도록 했다. 점고야 민 상궁이 알아서 했을 테니 내가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관비가 됐다고 그렇게 험하게 다루고 싶지 않았고, 이 사람들도 관비 신분으로 떨어지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듯해서 적당히 다독여 주었다.
내가 아니고, 가이가.
“이곳에서의 생활이 이전과 비교하면 다소 험할 것이나 옹주 자가께서는 자네들을 부당하게 대할 생각은 없으니 너무 떨지 않아도 될 것이네.”
“소인들은 그저 옹주 자가의 은혜에 감읍할 따름이옵니다.”
다들 연습이라도 한 것처럼 한입으로 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립서비스 같겠지만 사실 다른 집으로 가는 것보다야 내 밑에 있는 것이 여러모로 심신이 편할 건 말할 것도 없었다.
특히 아는 집으로 간다면 끔찍하겠지. 그전까지 동급으로 지냈던 사람이 갑자기 상전이 되고, 혹시라도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니 무서울 테고.
그에 비해 모셔야 할 상전이 아직 어린 왕족이라면 그리 나쁠 것도 없었다.
‘다들 너무 떨고 있으니 괜히 내가 잘못한 거 같네.’
아마 여기로 오기 전에 의금부로 끌려가 고초를 겪었을 테니 겁에 질려 있을 만도 했다.
듣기로는 그래도 하루아침에 진창으로 처박힌 인생에 적응 못 하고 거부감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는데 주변에서 어찌 잘 설득했다는 모양이었다.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나도 당장 이들을 면천시키기는 어렵다.
‘당장 갈 데도 없을 테고.’
재산은 몰수되었고, 지인들도 역당과 얽히는 걸 바라지 않을 테니 몸을 의탁하기도 쉽지 않을 테지.
‘나중에 지화가 나타나서 역모에 대해 재조사하고 누명 벗기고 나면 풀려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고.’
그러니 한동안은 내가 보호하는 게 낫다. 지금 일손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고.
가이는 내가 미리 일러 준 대로 일단 특기 조사에 나섰다.
양반가 아낙들이라고 해서 다들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사는 건 아니었으므로 특기 분야가 있을 터였다. 종갓집 종부들도 제사에 올릴 음식들은 종부 본인이 요리법을 섭렵하고 있는 법 아니겠는가.
고급 인력이 있는데 적재적소에 쓰지 않는다면 아까운 일이었다.
“문자, 한문을 읽고 쓰기 가능한 이는 손을 들게.”
“자수가 특기인 이는 있는가?”
“바느질을 잘하는 이는?”
“요리에 자신 있는 이는?”
미리 언질을 주었기에 가이와 민 상궁이 손을 든 이들을 분류해 이름을 적었다.
물론 겹치는 분야도 있었기에 나중에 재주가 더 뛰어난 분야를 확인하거나, 일손이 필요한 쪽으로 돌리기로 했다.
그리고 당연하다고 해야 할지. 안타깝게도 이렇다 할 재주가 전혀 없는 사람도 있었다.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사실이 민망한 듯 억울한 듯 얼굴을 푹 숙이고 있었지만 사실 별로 상관없었다. 다들 언문은 읽고 쓰기가 가능했고, 재주가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은 많으니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안 해 본 사람에게는 일단 배워 볼 기회를 주기로 했다.
이건 노비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라 시영원에 있는 사람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지는 기회였다.
배워 봐도 재주가 없으면 어떻게 하냐고?
‘할 수 있는 게 없으면 그냥 몸으로 때워야지.’
아무리 재주가 없어도 땔감은 주워 올 수 있고, 빨래와 설거지도 가능하고, 울고 있는 아이도 업어서 달래 줄 수 있었다.
게다가 이곳에는 아픈 사람도 적지 않으니 돌봐 줄 사람도 필요하다.
하지만 뜻밖에도 무능하다는 낙인이 찍힐 뻔한 아이들 중에는 대범한 사람도 있었다.
10대 후반쯤 되었을까 싶은 소녀가 손을 번쩍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