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7)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7)화(7/326)
세자와 아저씨는 후다닥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아까 시아가 또 크게 울었다고 들었는데 이제 괜찮은 것이냐.”
“심려 마시옵소서, 아바마마. 마침 대전을 찾았던 소자가 울음소리를 듣고 시아를 보러 가니 울음을 그쳤사옵니다.”
갑자기 찾아온 건 생물학적 아비였다.
나와 세자의 생물학적 아비는 이 나라의 왕이다. 그리고 높으신 분이 오시면 원래 좋던 분위기가 깨지기 마련이었다.
흐뭇한 얼굴로 우릴 보던 세자의 스승은 이만 물러나겠다며 후다닥 자리를 떠나고, 왕이 세자의 앞에 앉았다.
‘애랑 잘 놀고 있는데 굳이 찾아오다니.’
하지만 역시 상대가 왕이니 비위를 맞춰 주는 게 좋을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데 왕이 세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종일 아이를 보느라 고단하였을 터이니 이제 이 아비가 데리고 가마.”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매일 시아를 돌보시느라 고단하신 것은 아바마마이신 것을 소자가 어찌 모르겠사옵니까. 소자가 좀 더 데리고 있겠습니다. 다행히 시아가 소자를 잘 따르오니 오늘 하루 정도는 동궁전에서 재우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
“아기의 환경이 자주 바뀌는 것은 좋지 않다.”
“소자가 있으면 괜찮을 것이옵니다. 그렇지 않으냐, 시아야?”
“으응.”
별로 누구랑 같이 있든 상관은 없는데. 안전만 보장해 준다면야.
하지만 세자에게 간다고 하면 지금껏 나름 열심히 돌봐 온 생물학적 아비가 좀 불쌍한 거 같지…….
‘그리고 동궁전 궁인들은 나 별로 안 좋아하는 거 같고.’
게다가 이러니저러니 해도 지금까지 나를 돌봐 온 것은 생물학적 아비와 그 지밀궁녀들이었다.
그냥 못 이기는 척 왕한테 갈까 고민하고 있는데 둘이 이상한 짓을 시작했다.
“그럼 시아가 누구에게 가는지 보시겠습니까.”
“허허. 그간 저를 먹이고 재운 이 아비 말고 세자를 택할 거라 생각하는 것이냐.”
그러더니 생물학적 아비와 세자는 나를 멀찍이 두고 둘이 나란히 앉아 저에게 오라고 나를 부르기 시작했다.
둘이 뭐 하세요…….
‘조선 시대에도 인간은 크게 다를 게 없구나…….’
인류는 진화하지 않은 것인가.
나는 나를 옆에 두고 쓸데없는 경쟁을 하는 부자를 번갈아 가며 떫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생명의 은인과 생물학적 아비를 두고 하나를 선택하라면 딱히 선택 못 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 경우 가장 현명한 답이 뭔지 알고 있는 나는 두 사람이 있는 방향으로 가는 척하다 방향을 틀었다.
바깥으로.
“??”
“시아야?”
“……왕녀 아기씨?”
정자 밖에 시립해 있던 이들 중 내가 떨어질까 놀라 달려온 사람은 아까 그 세자의 호위와, 늘 왕의 뒤를 따르는 내관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보다 한발 늦은 다른 한 사람은 대전 상궁.
“우우!”
나는 손을 뻗어 대충 아무나 잘 잡히는 옷자락을 잡았다.
“……왜 선오에게…….”
붙잡고 보니 본의 아니게 나에게 간택 받은 건 오늘 처음 본 세자의 호위무사였다.
이름이 선오인가 보다. 선오라 불린 젊은 호위무사는 내 시선에 맞춰 어색하게 몸을 숙였다.
“우우!”
옷자락을 붙들고 손가락으로 정자 밖을 가리키자 그는 내 말을 찰떡같이 알아듣고 되물었다.
“혹 여기서 나가고 싶으시옵니까?”
“웅!”
“아기씨께서 그리 원하신다면야 소인은 따를 수밖에요.”
이 사람, 분위기 파악을 할 줄 아는걸.
고개를 숙이고 있지만 분명 입은 웃고 있었다.
“하지만 주상 전하와 세자 저하께서 기다리고 계시니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시면 아니 되겠습니까.”
나는 망연해 있는 두 사람을 한번 돌아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두 사람에게 다가가 한가운데에 떡하니 앉아 바닥을 찰싹찰싹 치며 시위했다.
“우우우!”
“그래, 알았다. 안 하면 되지 않느냐.”
“아바마마. 소자 어린아이에게 혼이 나는 것은 처음이옵니다.”
“나도 처음이로구나.”
신분만 높은 부자의 의미 없는 장난이 끝나고, 두 사람은 평범하게 최근 배우고 있는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산책을 했다.
‘날 내려놔…….’
굳이 날 데리고.
그리고 당연하지만 결국 그날 나는 다시 대전으로 돌아왔다.
세자는 아쉬운 눈으로 나를 보냈지만 어차피 내일 또 문안인사를 오면 보게 되겠지.
나는 세자와, 이용당한 세자의 호위에게 손을 흔들어 주며 생물학적 아비의 품에 안겨 이제는 익숙해진 왕의 처소로 돌아왔다.
‘그냥 원래 있던 곳에나 보내 주지.’
아직 말을 못 하는 게 이렇게 서럽다.
그리고 그날 이후, 생물학적 아비는 전보다 더 내 옆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안 그래도 내가 자고 있을 때를 빼면 늘 나를 곁에 두고 일을 하고 있었는데, 왕이 자리를 비운 사이 내가 비명을 지르며 울었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놀란 모양이었다.
영빈과는 관계없는 궁녀들에게는 미안한 일을 했다 싶어 그 뒤로 조금 잘해 주기로 했다.
‘하지만 나도 놀랐다고.’
그렇게 따르진 않았지만 태어나서 몇 개월간 계속 봐 온 사람들이 진심으로 내 목숨에 위협이 되는 사람이었다니.
제대로 내 신변을 걱정하는 인물이 아니면 안심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여기에 계속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이대로는…… 안 돼!’
안정적이긴 한데 계속 여기서 얌전히 지내다간 언니한테 못 돌아갈 것 같았다.
설마 또 다른 후궁에게 보내진 않을 테고, 계속 여기 있게 되는 건 아니겠지?
아무리 애가 얌전하다지만 계속 옆에 두고 일을 하는 건 좀 아니잖아!
하여간 수업 받는 데 아기를 데려간 세자나, 일하는데 아기를 옆에 두는 왕이나 누가 부자 아니랄까 봐 똑같았다.
‘적당히 사고를 쳐서 애 보는 게 쉽지 않다는 걸 느끼게 해 주는 수밖에!’
가끔 TV나 인터넷에서 본, 집 안을 엉망으로 만들고 해맑게 웃던 아이들의 영상이 떠올랐다.
‘그래 뭐, 좀 어질렀다고 이런 어린 아기를 죽이기야 하겠어?’
고사리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마지막으로 전의를 다졌다.
“후우.”
단단히 마음을 먹은 나는 깊은 한숨과 함께 몸을 움직였다.
생물학적 아비가 상소문을 보느라 나한테서 시선을 두고 있지 않다는 걸 확인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고 보니 여기 왕의 침전이겠지?’
정말 사극에서나 볼 수 있는 곳이었다. 그것도 고증이 맞는지 확인하기 어려운.
아무튼 방 내부는 드라마 세트장이나 박물관에 있어야 할 듯한 것들로만 채워져 있었다.
‘그래, 기왕 말썽을 피울 거면 사심을 채우자.’
저기 있는 문갑에 뭐가 들어 있는지 궁금했어.
엉금엉금 기어서 가까이로 다가가 보니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자개장이 눈에 들어왔다.
‘자개장……. 나도 하나 갖고 싶다.’
그리고 문갑 위에 있는 도자기도. 박물관에서나 보던 푸른 용 그림이 그려진 백자의 자태에 나도 모르게 군침을 꿀꺽 삼켰다.
‘저런 거 하나 갖고 싶었지…….’
그리고 홀린 듯이 문갑을 잡고 일어나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서, 섰다?!”
“우?!”
고개를 돌리니 언제부터 보고 있었던 건지 생물학적 아비가 놀란 눈으로 나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고 있었다.
“으헤.”
나는 반사적으로 히죽 웃고 말았다.
드륵-
그리고 동시에 내가 잡고 있던 문갑의 서랍이 갑자기 스르륵 당겨졌다.
***
‘왕녀…… 시아를 어찌해야 할까.’
왕은 상소를 보다 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 가능한 정을 주지 않으려 노력했던 아이였건만.
결국은 이리 곁에 두게 되었으니 참으로 세상일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아이를 맡길 이를 정하고 가능한 한 관심을 두지 않는 것도 좋겠지. 어차피 제대로 돌봐 주지도 못한 몹쓸 아비인 것을.’
자신이 아니어도 저 마음 약한 세자가 어린 왕녀를 보는 눈빛에 벌써 애정이 가득하니 신경 쓰지 않아도 아이를 잘 보살펴 줄 것이다.
‘역시 생모인 윤 상궁에게 맡겨야 하나. 왕녀를 키우려면 후궁으로 봉하는 것이 모양새가 좋을 터.’
왕자도 아닌 왕녀 하나를 낳았다고 바로 후궁 첩지를 내리는 경우는 흔치 않았으나 안 될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윤 상궁을 숙원(淑媛:내명부 종4품 후궁의 작호. 왕의 후궁 중에서 가장 낮은 지위)으로 봉하면 성가시게 굴 작자들이 눈에 선했다.
‘안 그래도 중전 간택에 대해 대신들이 말이 많은데 정궁(正宮:중전)을 정하지 않고 후궁 첩지부터 내린다며 시끄럽게 굴겠지.’
얼마 전 잠이 들었기에 영의정의 독대를 받아들이고 잠깐 자리를 비웠더니 하필 그사이 잠에서 깨어 혼절할 듯이 울음을 터트렸다던 아이를 떠올리니 한숨이 나왔다.
세자가 있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아이가 어찌 되었을지 모를 일이었다. 늘 얌전하고 울지도 않는 의젓한 아이였으나 아직 어린 아기였다. 울다가 탈진이라도 할까 언제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아이 곁을 떠나지 못해 한동안 대신들의 들볶임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나 얼마나 갈지 모를 일이었다.
‘어차피 그들이 원하는 답은 정해져 있으니.’
이번에 영빈이 왕녀를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일로 기세가 꺾이기는커녕 영빈을 감싸느라 더 분주했다.
‘그들 중 과연 왕녀를 걱정하는 자가 있기나 할까.’
오동통한 볼과 말랑한 팔다리, 작은 손가락.
한참 기어 다닐 때인 아이는 늘 만사 귀찮은 표정으로 궁녀들이 가져온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며 이불 위를 뒹굴었다. 그러다 심심하면 이쪽으로 다가와 상소문을 바라보는데 신기하게도 함부로 손을 대는 일도 없이 옆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덕분에 혼자 있고 싶을 때에도 아이를 돌볼 다른 이를 들이지 않고 방 안에 둘 수 있었다.
너무 조용하니 도리어 걱정되어 일하는 도중 종종 아이를 얼러 주며 놀아 주기도 했다.
그리하면 아기는 무엄하게도 피식 웃으며 아버지의 손을 툭툭 때리다 까륵 웃었다.
‘웃을 때면 어찌나 귀여운지.’
아비를 성가시게 하는 아이였지만 생각하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질 수밖에 없었다.
문득 고개를 돌려 아이의 자취를 좇았다.
어쩐 일로 늘 그 자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던 아이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어디 갔지?’
아직 걷지도 못하는 아기가 혼자 문을 열고 나갔을 리는 없으니 걱정보다는 의아함이 앞섰다.
왕은 다시 시선을 옮겼다. 방 안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위치에 앉아 있었으니 아이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
아이는 방 한편에 있는 문갑에 매달려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거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으나, 아이의 손이 향하는 곳에는 도자기가 있었다. 혹시 도자기가 떨어져 아이가 다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놀라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아이의 짧은 두 다리가 똑바로 바닥을 디뎠다.
“서, 섰다?!”
“우?!”
저도 모르게 흘러나온 목소리에 놀란 듯 고개를 돌린 시아가 아비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으헤.”
드륵-
그리고 동시에 시아가 붙잡고 있던 문갑의 손잡이가 스르륵 당겨지며 아슬아슬하게 지탱되고 있던 아이의 발이 바닥에서 미끄러졌다.
아이의 몸이 머리부터 뒤로 기울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순간 저도 모르게 몸이 움직였다.
쿠당탕! 쿵! 쾅!
드륵-!
요란한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지자 밖에서 시립 중이던 김 내관은 문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전하! 무슨 일이…… 헉!”